|
[여행]‘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바래길 따라 코리아둘레길 가다
말 그대로 둘레길이다. 동·서·남해안과 비무장지대(DMZ) 등 우리나라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길들을 연결해 관광 브랜드화하는 코리아둘레길 사업. 있는 길은 정비하고 일부 끊어져 있는 부분은 연결해서 2023년 완성된다. 전체 노선은 4500km. 이미 바래길로 유명한 남해군 내 코리아둘레길 구간은 창선·삼천포대교에서 남해대교까지 169km이다. 남해섬 남쪽 끝 바래길 4코스 ‘섬노래길’을 포함한 코리아둘레길 일부를 먼저 걸어본다. 글 황숙경 기자 / 사진 이윤상 작가
계곡물과 바다 만나는 ‘내 아래’ 천하 취재진은 남해바래길 4코스인 ‘섬노래길’과 5코스인 ‘화전별곡길’의 출발점인 천하(川下)마을을 출발지로 정했다. ‘내 아래’란 마을이름에서 짐작하듯 산에서 흘러내리는 천하천의 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유명한 송정해수욕장과는 작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하나의 해변을 나눠 쓴다고 할 정도로 가깝다. 천하는 몽돌해수욕장으로 지도에 소개돼 있으나 파도가 워낙 거세 입영을 제한한다. 아기 얼굴만 한 몽돌의 크기로 파도의 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해변에서 왼쪽으로 비껴 보이는 송정해수욕장의 모래해변과 판이하게 다르다. 신기할 지경이다. 천하는 동쪽바다를, 송정은 서쪽바다를 보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인데 해변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그려낸다. 천하마을 주민들은 ‘물 좋은 곳’이란 장점을 살려 바다와 접한 하천 하류에 보를 쌓고 물놀이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바다를 바라보며 민물에서 놀 수 있는 드문 곳이 됐다. 수심은 어른 무릎 높이 정도. 야영장이 바로 옆에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캠핑족에게 인기가 있다. 바래길 탐방객들이 한나절을 걷고 원점회귀해 발을 담그는 곳이기도 하다. 동행이 많다면 주차시설이 잘돼 있는 송정해수욕장을 출발지로 삼아도 된다.
‘바래’는 물때에 맞춰 바다에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뜻하는 남해 토속어이다. 원주민들이 다니던 길을 그대로 살려보려는 취지에서 만든 길이지만 찻길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천하마을에서 나와 국도19호선을 따라 걷는다. 1km 정도 걷자 송정해수욕장 주차장이 나온다. 송정해수욕장은 정식 명칭이 송정솔바람해변이다. 500m 길이의 해송 숲이 해변을 따라 이어져 있어 솔바람을 맞으며 모래해변을 걸어볼 수 있다. 숲 그늘과 부드러운 바람이 마음 급한 나그네들에게도 망중한을 부르는 곳이다. 솔숲에 서서 모래사장 너머 펼쳐지는 잔잔한 바다를 감상한 후 설리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설리까지는 약 2.5km 거리. 인가 없는 해안을 끼고 도는 도로는 더없이 청량하고 아름답다. 바래길 표지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칡덩굴 밟히는 데크로드를 걷고 있다. ‘걷기가 이리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안한 길이다. 데크로드는 1km 이상 쭉 이어진다.
데크로드 끝 갈림길에서 국도를 버리고 설리마을로 향하는 마을 안길로 내려섰다. 마을을 왼쪽으로 끼고 도는 포장도로가 1km 정도 이어진다. 리조트와 펜션, 민박 등 숙박시설이 보이고, 은모래가 반짝이는 300m 길이의 자그마한 해변이 나타난다. 그런데 뭔가 좀 달라 보이는 해변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백사장 색깔이 독특하다. 반짝이는 모래가 군데군데 회색으로 보인다. 모래 속에 진흙이 섞여 있어 그렇단다. 그만큼 고운 입자의 백사장이다. 하얗게 반짝이는 모래밭 때문에 설리(雪里), ‘눈 마을’이란 이름도 붙었다. 손으로 모래 한 줌을 쥐어보며 때아닌 ‘눈 구경’에 나선다. 설리에서 해상 1km 거리에 사도라는 섬이 있다. 주말이면 스노클링과 카약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데,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사도까지는 초보 카야커도 갈 수 있는 거리. 설리와 사도 사이를 오가는 원색의 카약이 짙푸른 바다를 수놓는 풍경도 볼만하다.
설리해변에서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마을이 답하마을이다. 눈으로는 보이지만 해변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설리마을에서 19번 국도로 다시 나와 걸으면 답하마을을 지나 팔랑마을에 닿는다. 팔랑마을은 답하마을과 야트막한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웃마을이지만 삶의 터전인 바다가 다르다. 답하는 설리와 같은 바다를 보고 있지만, 팔랑은 미조항에 속해 있는 어촌 마을이다. 규모가 큰 미조항은 팔랑, 사항, 미조 등 3개의 마을을 품고 있다. 남해 본섬과 모래섬으로 이어져 있던 곳을 인공적인 매립을 거쳐 지금의 미조항은 완성됐다. 매립지로 육지가 넓어진 사항마을을 가운데 두고 남항과 북항으로 구분된다. 활어위판장으로 유명한 곳이 남항, 매년 5월 ‘보물섬 미조항 멸치바다축제’가 열리는 널찍한 광장이 펼쳐져 있는 곳이 북항이다. 남항과 북항 사이 미조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이 사항마을이다. 북항 광장 끝 천연기념물 제29호 남해미조리상록수림 지나서부터는 미조마을이다. 정박해 있는 어선들과 냉동 창고, 해양경찰서, 제빙공장으로 활기가 느껴지는 팔랑마을을 지나 남해수협활어위판장이 있는 남항의 선착장에 서면 어항 특유의 비릿함이 코끝을 스친다. 뱃길로 10분이면 닿는 조도와 호도가 조망되는 곳이다.
‘안구정화’, ‘맛 삼매경’ 미조항의 2미 바다를 등지고 사항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미조북항으로 향한다. 우체국, 면사무소, 병원, 약국 등 있을 것 다 있는 마을모습이 놀랍다. 곧 넓은 주차장을 갖춘 미조북항의 탁 트인 광장에 도착했다. ‘아, 이래서 미조항을 미항(美港)이라고 하는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미조항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천하마을에서 출발, 8km를 걸어온 피로를 잊게 만든다. 미조항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항’ 중 하나이다. 잘 정비된 수변마당과 미조리상록수림 외에도 강원도 철원까지 이어지는 국도19호선과 강원도 홍천까지 가는 3호선의 출발지임을 알리는 비석 등 볼거리도 있다. ‘안구정화’하는 볼거리 외 미조항의 미덕은 또 있다. 다리 아프고 배고픈 여행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음식특구거리가 그것이다. 거나하게 나오는 회 한상부터 단품으로 뚝딱 해치울 수 있는 물회 한 사발, 남해 토속밥상인 멸치쌈밥, 그리고 뜨끈한 장어탕까지 다양한 메뉴를 차려내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이날 취재진은 야채와 병어, 광어회, 다진 해삼을 버무려 낸 미조항 물회로 맛 삼매경에 빠졌다. 미(美), 미(味)를 다 갖춘 2미의 미조항!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도움말 남해바래길 대표 정준현 , 사무국장 박한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 055)863-87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