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외국에서 맞이하는 새해 아침이다.새해 첫날이라고 특별한 뭔가를 하는 일은 없지만 ^^.
숙소가 워낙 맘에들지 않았으므로 일어나자마자 배낭을 꾸려 출발했다. 밤에 검색한대로 시계탑을 겨냥하고 열심히 걸어가는데 수언뚱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뭔일인가 바라보니 거대한 탁발 행렬이다. 양산을 쓴 부처님을 모시고 루앙파방에서처럼 스님들이 행진을 하는데 큰길 양쪽으로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다. 시주하는 사람도 있고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아침부터 많이도 나왔다. 루앙파방의 탁밧 행렬과 다른 점은 여기서는 밥이 아니라 포장된 쌀과 꽃, 현금을 주로 시주한다는 점. 그보다도 이곳은 규모가 얼마나 큰지 행렬 중간에 시주받은 걸 자루에 담아 옮기는 일꾼이 여러명 보이고 심지어는 물건을 잔뜩 실은 트럭 여러 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누구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새해 첫날이라 특별한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설마 매일같이 이런 대규모 탁발 행렬이?
여행자거리를 찾아 들어가니 초입에 태사랑에서 칭찬이 자자한 칸라야 게스트하우스가 보인다. 방이 다 찼다기에 그냥 나왔지만 평대로 친절하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내일은 방이 날지도 모르니 다시 와보라고 웃으며 인사한다. 골목 안에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많아서 썰렁해 보였다. 저녁에는 술마시는 사람들로 시끌시끌할 것 같은 풍경인데, 다들 술먹고 늦잠을 자나?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하고 계속 걸어가다가 아주 커다란 호텔을
발견했다. 비싸겠지? 비싸더라도 물어보기나 하자. 작년 마지막날을 허름한 데서 묵었으니 새해 첫날은 좀 비싼 데서 자도 괜찮지 않겠는가? 용감하게 들어가서 물어보니 1,400밧이란다. 엄청 비싼 가격도 아니네? 생각해보면 돈콘의 방갈로보다 싸다. 이름은 왕콤 호텔. 시설도 서비스도 확실한 호텔급이다. 12시가 넘어야 체크인이 된다고 하길래 가방을 맡겨놓고 나와서 일단 아침을 먹고(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는 가운데 현지인들이 바글거리는 싸구려 국수집을 발견했다.)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데이터 정액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번화한 거리를 찾아 다녔으나 통신회사 지점을 찾지는 못했고, 일단 관광이나 하자며, 일단 어제 지나가며 눈여겨 보았던 왓프라께우를 찾아나섰다. 라오스에서도 프라께우(에메랄드 불상) 전설이 있었지만, 이 절에서는 몇 년 몇 월 며칠에 벼락이 치고 불상이 나타났다는, 그리고 어떤 경로로 방콕으로 갔다는 식으로 상당히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러려니 믿을 뿐. 그리고 캐나다산 에메랄드로 만들었다는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신도들도 많고 시주통도 많다. 절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돈 통이 많다. 다행히(?)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관광청 사무소를 들러 지도를 얻고 시내에 있는 다른 절들을 구경하며 호텔 방향으로 가다보니 배가 출출하다. 마침 작은 국수집이 눈에 띄어 들어갔는데 이름도 모르고 시킨 튀김과 국수가 꽤 맛있다. 다 먹고 나와서 간판을 자세히 보니 꿰이띠여우 ?얌이라 써 있다.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옆지기님이 다음날 저녁에도 가보자고 성화를 해서 찾아가 봤는데 이미 문을 닫은 다음이었다.) 이후 ?얌 국수는 우리의 단골 메뉴가 되었고 심지어는 메뉴판에 그게 없는 식당에서도 주문을 해서 먹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호텔방은 대만족이다. 이만한 호텔이면 2,000밧을 받아도 될 듯하다) 나와서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불과 몇 년 전에 개장해서 일약 치앙라이의 명소로 자리잡은 눈꽃 사원(태국말로는 왓롱쿤이고 화이트 템플이란 이름으로 통한다. 한국말 눈꽃 사원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사원만큼이나 예쁜 이름이다.)을 가보려고 나선 것.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길이지만 버스비는 단돈 20밧이다. 차장 아줌마(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니까 자기도 한국말 하나 안다고 자랑한다. 빨리빨리 ^^)가 내리라고 하는 곳에서 내리니 인도네시아에서 왔다는 모녀도 따라 내린다. 한 바퀴 둘러보니 삼거리 저 쪽에 사진으로 눈에 익은 모습이 보인다.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이 지역 출신의 유명 건축가이자 화가인 저 아저씨는 흰색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구불구불 겹치는 옷자락 이미지도 그렇고 우리나라 앙드레김을 연상시킨다. 개장한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사원은 아직 건설중이고 완성까지는 갈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모두 노란 절만 지을 때 과감하게 하얀 절을 지은 그 용기와 통찰력이 이런 명소를 만들어냈고 고향을 더 빛나게 만들었으니 슬그머니 존경심마저 생겨난다. 그러나 입장료가 없는 대신에 곳곳에 기념품과 그림 파는 시설이 호주머니를 열라고 압박한다. 예술가라면서 너무 돈을 밝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우리는 직바을 열지 않고 그냥 공짜 스탬프만 하나 찍어 왔다. 물론 멋진 건축물이고 훌륭한 시도라는 데에는 아무 이의가 없다.
구석구석 구경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 입구 쪽에서 아까 그 인도네시아 아가씨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한다. 썽태우를 잡아놨으니 쉐어하자는 것. 버스비보다 살짝 비쌌지만(2명 50밧) 흔쾌히 썽태우에 올라타고 돌아왔다.
터미널에서 내려 큰길로 나오는데 사람들이 길가에 모여있다. 자세히 보니 줄을 서 있다. 이거 뭐야? 일단 우리도 줄을 서자! 그렇다, 우린 현지인들이 맛있는 거 먹으려고 모여있는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코코넛 밀크와 푸딩 종류가 기본으로 들어가는 것 같고 달걀과 무슨 곡식 가루 같은 것도 보이는데 뜨거운 국물이 있는 것과 아이스크림 두 가지 전혀 다른 걸 만든다. 그릇은 공히 코코넛 열매 껍질. 마침 영업을 시작하려는 시간인가 보다. 5분쯤 기다려서야 줄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우리 차례도 왔다. 그런데 이름이 뭐에요? 뭐러이라는 답을 듣기는 했는데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중 어느쪽이 뭐러이인지 모르겠다. 둘 다 뭐러이? 손짓으로 이거 두 개 저거 두 개 주문해서 나눠 먹었다. 맛있다. 줄 서서 기다린 보람이 있다. (다음날 또 가서 사먹었는데 이에 웬일이래? 그릇이 요플레 용기 모양의 플라스틱 제품으로 바뀌었다.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코코넛 열매가 훨씬 멋지고 맛있어 보이던데, 앞으로는 쭈욱 플라스틱 그릇을 쓰려나?)
저녁을 먹으러 어제의 그 야시장으로 갔으나 길에는 차가 다니고 있다. 어? 여기가 야시장이 아닌가 보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거리는 토요 시장이다. 토요일만 야시장이 열리는 것. 그런데 화요일인 어제는 왜? 아마도 연말이라고 특별히? 그러고보니 아까 호텔에서 터미널로 갈 때 야시장이란 간판이 골목 입구에 있었는데, 그땐 여기와 연결된 곳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상당히 먼 곳이다.) 그나마 어제 공연을 하던 바로 옆의 넓은 광장에는 음식 파는 가게(포장마차)들이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고 테이블과 의자들도 그대로 있다. 야시장이 어디인지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여기서 음식을 사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찹쌀밥과 닭튀김 따위를 먹으며 보니 아까 만났던 인도네시아 모녀도 근처에서 뭔가를 먹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나서 꽃축제가 열리는 수언뚱을 지나 시계탑 앞에 이르러 시계를 보니 7시 50분이다. 7시 이후에 정시마다 시계탑의 색깔이 변하는 이벤트가 있다는 얘길 들었으므로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서 앉아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나와보니 우리 말고도 구경꾼이 많다. 시계탑에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더니 휘황찬란하게 색이 바뀐다. 멋지다. 눈꽃 사원을 건축한 바로 그 사람의 작품이라고 한다.
첫댓글 뭐러이 아니고 붜러이(부어러이)라는 걸 6년 만에 확인했다. บ้วลอ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