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싱, 가학적인 장식의 역사
패션의 역사는 인간이 지닌 장식 본능이 시각적으로 표현, 발전되어온 과정이다.
시즌마다 바뀌는 형형색색의 예쁜 옷을 입는 것 외에도
보다 직접적이고 영구적인 장식본능의 발현을 찾아볼 수 있다.
몸에 상처를 내어 흉터를 만드는 상흔(傷痕),
바늘 끝으로 색소를 피부 밑에 침착시키는 문신(tatto), 신
체의 일부에 구멍을 뚫고 고리를 끼우는 피어싱(piercing)을 비롯하여
신체 일부를 제거하거나 늘이거나 줄여서
형태를 바꾸는 변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어떤 경우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과 불편을 견뎌야 한다.
피어싱
이런 가학적인 신체의 장식은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피부가 검은 사람들의 경우 채색 방법이 장식적으로 큰 효과가 없으므로 흉터를 이용했다.
또한 목이 길어야 주목받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고리를 수없이 끼워 목을 30센티미터에 가깝게 늘이기도 했다.
아랫입술이나 귓불에 구멍을 뚫어 지름이 수십 센티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나무쟁반을 끼웠으며,
어릴 때부터 나무틀을 머리에 씌워 헐리우드 영화 속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삼각 머리나 사각 머리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묘사가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은 오지에 사는 소수 부족의 생활상을 다룬 TV 프로그램에서
종종 보았던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이런 영구적 장식은 그 강도가 약해지고,
인체의 자연적인 선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여 현대에는 일부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중 문신과 피어싱은 최근 개성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젊은 세대에 수용되고 있다.
고대의 피어싱은 용감무쌍한 용기를 상징했다.
고대 로마인은 외투를 잠그기 위해 유두에 피어싱을 했다고 한다. 외투와 연결된 유두라니······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제목만으로도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인도의 경전 카마슈트라(Karma Sutra)에는
성기 피어싱이 아파드라비야(apadravya)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천 년 전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종교의식에서 피어싱이 비롯됐다는 설도 전해진다.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 등 부정적이고 일탈적인 이미지가 강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피어싱은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유행으로 번져가고 있다.
신경통 치료에 좋다 하여 뚫었던 귓불을 제외하더라도 모델과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코, 입술, 눈썹, 배꼽, 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이 피어싱 광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보디 피어싱은 액세서리의 한 개념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심지어 치아와 눈동자에까지 보석을 박아 넣고 있다.
일부 유학생이나 클럽 DJ, 백댄서들 사이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피어싱은
테크노와 클럽문화가 정착하면서 빠르게 전파되었다.
압구정동과 홍대 앞 등지에는 전문 ‘피어싱숍’이 성행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30~40 곳의 피어싱숍이 문을 열었다.
배꼽, 눈썹 등에 피어싱을 한 모습은 이제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 카페 ‘다음’에 있는 ‘살쾌(살을 뚫는 쾌감)’라는 피어싱 동호회는 3만여 명의 회원을 자랑하고,
피어싱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수십 개다.
아직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귀는 뚫으면서 다른 부위는 왜 안 되는가 하고 반문해본다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생상 문제와 알레르기로 인한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위한 고통의 감수는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