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5:16~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되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말씀으로 성경의 주제이며 기독교의 기본교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새롭게 탄생했다는 말, 옛사람이 아닌 새사람이 됐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예전의 악습이나 죄성이 싹 사라진듯 보이진 않고 별로 달라져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이것은 우리의 몸이 아직 죄의 영향력 아래의 땅에 있기 때문이며 비록 달라져 보이지 않아도 그리스도 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은 것이며 그렇기에 이전 것은 지나간 새로운 피조물이 된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것을 믿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바로 새로 태어난 증명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 확실한 증표를 새롭게 된이들에게 주셨다.
고후 5: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바로 성령님을 우리안에 보내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도장을 찍어 주신 것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에게 하신 거듭남에 대한 말씀과도 같다.
요5:5,6"...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수 없느니라. 육에서 난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것은 영이니..."
육은 지나가고 영으로 났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난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우리에게 준 보증이 된다.
여기서 보증은 헬라어 '알라본'으로 우리가 잘 쓰는 보증이나 계약과 같은 의미이다.
하지만 이런 계약이나 보증과 달리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꼭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알라본은 결혼반지란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구원에 대한 약속이며 증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다는 것은 세상의 새것과 지나간것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더 월등히 좋아진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마치 나비가 되기 위한 고치가 한겨울 동안 초라하게 무생물 처럼 지내다 봄이 오면 화려하게 변태하는 것과 같이 다른 생명이 되는 것으로 고치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변화이며 새탄생이다.
세상 사람들은 더 좋아지가 위해 많은 수고와 투자를 한다. 얼굴이 예뻐지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고 아름다운 몸매른 갖기위해 운동과 다이어트를 하고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해 현재의 나에서 업그레이드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우리가 주님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 없고 한계가 있는 변화와 발전이다.
우리가 앞으로 이루게 될 새로운 변화는 우리의 경험했던 변화의 차원과는 다른 상상할수 없는 멋진 것들이다.
앞으로 계시록 말씀대로 지금의 하늘과 땅이 지나가야 새하늘과 새땅이 되는 일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지금의 땅과 하늘과는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떻게 새로울지 어느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는 조선시대 사람이 현재의 문명에 대해 듣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 보다 더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태초부터 그림 그려져 있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다.
아담의 범죄, 인류의 타락,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도의 부활의 동참은 태초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안의 그림이며 의지이다.
여호와란 이름이 자음의 뜻을 그대로 풀면 '내손의 못자국을 보라'라고 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일어날일 계획들이, 지나가고 새로워지는 모든것들이, 시작과 끝이 없는 하나님안에 이미 다 들어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를 무척 혼란스럽게 만든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미 짜여진 그림이라면 그렇다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무엇일까.
그러나 이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는 우리와 시간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시간개념이다. 그래서 육체의 머리를 가진 우리로선 설명할수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은 지으신 모든 만물을 끊임없이 지나가고 새로워지게 만들어 놓으심으로 우리의 부활에 대한 계시를 지구곳곳에 심어 놓으셨다.
아담이 범죄이후, 저주를 받은 모든 피조물들이 그렇게 된것인지 모든 생물들은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창2:17의'정녕죽으리라' 말씀 하신것처럼 아담은 죽었으나 그의 후손들은 끊임없이 새로이 태어나고 또 죽는다.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이 하루를 살건 몇백년을 살건 반드시 죽고, 또 그의 후손들로 부활한다.
또한, 다시는 빛이 없을 듯 어두워지지만, 이내 새날이 밝고, 나무는 낙엽을 다 떨구고 죽은 듯 하지만 또 봄이 오면 새순을 싹 틔우며 살아난다.
이것은 우리 피조물의 완전한 생명으로서의 부활에 대한 수많은 예표들이라 볼수 있다.
또한 우리의 세포가 끊임없이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해 7년이 지나면 우리의 몸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고 한다.
왜 하필 7년일까.
하나님의 시간으로 제7일에 하나님이 현재의 땅과 하늘을 모든것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닐까 한다.
이 지나가 버린 이전 것들의 대표적인 것이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다.
또한 새것이 된것의 대표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이다.
우리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도 새것이 될수 없고 영생을 할수가 없다.
그리스도안에서 지나간것은 육체의 사람이며 새로워진것은 영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5:16)
그래서 우린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 육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닌 영으로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육체로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지식적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같다.
어느나라에서 태어났고, 무슨 유명한 말씀을 했으며, 어떤 기적을 일으켰으며, 제자들은 누구인지...
마치 공자와 소크라테스 석가모니와 함께 사대성인에 이름을 올린 아이들의 위인전에 나오는 그러한 지식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아는것이다.
하지만 우린 새로워진 영으로 그리스도를 알게되면 세상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
영으로 첫번째로 알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랴"(롬8:35)
이 사랑을 아는자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받게 되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육과 영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 외에 지나간 육체의 사람과 새로운 영의 사람의 차이는 또 무엇이 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 차이에 대해 정확히 알려준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19~23)
이 말씀처럼 우리안에 육체의 것들이 지나가지 않고남아 있다면 우린 새로운 피조물이 된것이 아니다. 반드시 새로 태어난 영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법이다.
주님의 산 ㅡ 나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