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에 따라]
두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마을 길을 들어서는 누나와 형들이 있는 집이 부러웠다.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어린 아이의 눈에는 모두가 신기할 뿐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내가 손주를 본 나이가 되었다.
고향에는 친척들이 모여 차례를 지냈다. 아침부터 시작된 의례는 몇 집을 거치는 동안 점심때가 되어야 비로소 끝이 난다. 북적거리는 아이들이 많아 마루가 부족하여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절을 올린다. 나이 순으로 차례 상에서 멀리 떨어져 참석을 한다. 어린 시절 오래된 모습으로 이제는 기록에서만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설날을 맞아 형제들이 모여 차례를 지낸다. 아들 내외는 손주가 막 백일을 지나 오랜 시간 이동하는 것이 염려되어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고 일렀다. 삼 형제가 모처럼 모여 절을 올린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차례상이다. 어머니는 육 년 째 요양 병원에 누워 있다. 근육이 빠져 뼈와 살갗만이 붙어 있다. 삼키는 기능이 떨어져 콧 줄로 미음을 받아 넘기는 것이 몇 년째다. 음식 씹는 맛을 잃은 지 오래다. 언어 상실까지 이어져 자신의 표현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한다. 소리 내어 이야기 하지만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는 웅얼거릴 뿐 의미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단지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에 ‘와’하고 가끔 대답할 따름이다.
의식이 있다가 떨어지는 생활을 반복하고 병상에 누워 목숨을 연명해 나간다. 오 남매 뒷바라지를 하느라 정작 본인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뒷전이었다.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편안히 지낼 즈음 이웃 집 나들이를 갔다가 집 주변 길거리에 쓰러졌다. 오가는 사람이 적은 시간에 뒤늦게 발견되어 지역 응급 센터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한 달여 입원 생활이 이어졌고, 재활 치료를 목적으로 요양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 상태는 나빠져 혼자는 먹는 것도 눕는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요양 보호사의 도움으로 그나마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
일요일 저녁 요양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차를 몰아 응급실로 향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출혈로 의식이 없다. 밤새 온몸에 주사 바늘을 꼽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는데 혈관이 찾아지지 않아 손에서 목 부분까지 주무르다 목에 큰 바늘을 꼽았다. 혈압은 내렸다 올랐다를 반복하고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수혈이 이어진다. 의사는 내시경 시술로 경과를 지켜 보자며 피가 멈추지 않을 경우 재 시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잘못되어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말로 고통을 준다. 이제는 정말 생명의 끈을 놓아야 하는가. 의식 없이 누워 지내는 당신의 고생하는 모습이 측은하다. 어쩌면 차라리 더 나은 길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하였다. 일주일이 지나 병세가 나아지면서 며칠 후 퇴원이 이루어졌다. 의술에 힘입어 억지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살아 있지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육되고 있다는 편에 가깝다. 한편으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아 다행스럽다. 보고 싶을 때 찾아가면 그나마 얼굴을 볼 수 있다. 오고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지라도 침대에 누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안도감에 마음을 채워준다.
형제들과 차례 상을 물리고 음복을 하는데 동생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요즘 시류에 맞춰 제사를 모시는 것이 어떠냐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만 지내고 설과 추석 명절에는 가족들과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단다. 여건이 되면 단체 여행을 가거나 함께 모여 오붓한 일정을 가진다. 아내와 제수 씨도 호응을 한다. 딸까지 맞장구를 친다. 여동생이 먼저 제안하였단다. 최종 결정은 장남인 나더러 하란다. 형제들의 의견이 그럴진 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나 혼자 반대 의견을 제시한들 아내에게 오히려 핀잔을 받기 십상이다. 아내가 이십 년 이상 제사를 가져와 음식을 준비하면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부담을 안았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불만을 이야기 한 적은 없지만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아닌 듯하다.
수십 년 간 이어져 온 제사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두 분 중 먼저 든 제삿날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모시는 일까지 제시한다. 시류에 맞추어 가자는 말에 엉거주춤 반기를 들 틈도 없이 은근슬쩍 묻어 간다. 형제들의 생각이 한 데로 모아졌으니 거기에 따라야지. 아내의 짐을 덜 수 있기는 하다. 명절 차례는 없애고 제사 때만 모여 지내기로 확정을 하였다. 오늘 참석하지 않은 여동생들도 알아야 하기에 가족 단톡 방에 결정된 내용을 정리하여 올렸다. 모두의 의견이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나마 명절 때 얼굴을 마주하는 형제가 점점 멀어지지 않을까. 다가오는 제사까지 몇 달이 남았으니 형제들이 모일 수 있는 방안을 떠올려봐야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단출한 관계를 이어 가는 세상이 되어간다. 가족보다 개인주의로 흘러 나 위주다. 한 집에 서너 명 씩 사촌들이 모이면 스물 명이 넘는 집도 많았다. 이제는 한 집에 하나 둘, 자식 두는 집도 보기 더물다. 결혼은 선택일 뿐이고 부부 둘 만의 행복이 우선이라 자녀 출산은 더더욱 뒷전이다. 오르내리는 웃지 못할 이야기 중 하나가 통계에 의하면, 유모차 판매량보다 개모차 판매가 앞질렀단다. 이는 산책이라도 나가보면 공원에서 마주치는 현실로 와 닿는다.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확인하려는 순간 개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모습을 어쩌랴.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국가 사회 전반에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되어 있지 않다. 주거, 교육, 가치관 등이 제각기 다른 입장에서 어느 한가지 만을 탓할 수 있을까.
다음 명절보다 아버지의 기일이 앞서 있다. 남은 시간까지 좋은 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각 가정의 전통으로 이어져 온 차례가 각자의 편리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현실에 나를 돌아본다. 오래전 뉴스에 나온 일이 떠올려진다. 여행지에서 차려지는 차례 상이 비난의 대상이었다. 결정 내린 이상 후회는 없어야 한다. 혈육의 정 만큼은 이어져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묶어져 지난날을 이야기하고 웃음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과거보다는 현재,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성숙된 인격체로 옮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지금의 결정이 최선이었기를 바라며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 보았을 때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각자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