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힌놈의 골짜기
신성한 매실 758
그날 밤이었다.
최림은 전두태가 쓴 ‘666의 비밀’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때 민채원이 최림과 하룻밤을 보낼 때 그의 머리맡에 두고 간 것이었다.
최림 역시 이 책의 내용이 몹시 궁금했던 차였다.
‘도대체 이 책이 뭐길래 많은 자들이 넘어갔지?’
첫 장을 을 펼치자,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나왔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세상에는 악인이 도처에 깔려있다.
그들은 일반인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사악한 악령(惡靈)에 사로잡혀 갖은 범죄를 저지른다.
신약성서에 나온 대로 악령에 사로잡힌 돼지의 무리가 스스로 호수에 뛰어든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오히려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있다.
… (중략) …
따라서 나는 이 악인들을 화형에 처하고 이마에 ‘666’을 표식한 뒤, ‘힌놈의 골짜기’ 안으로 유인하여 하나씩 처단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악인이 모조리 사라지는 날, 나는 유일신이 될 것이다.
그날, 완전한 심판의 날이 끝나는 날에 나는 계시받은 대로 구름을 타고 천계로 올라갈 것이다.」
‘힌놈의 골짜기? 구름 타고 천계로?’
‘천하의 악령이 세상 사람들을 악인으로 묘사한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최림은 기가 찼다.
‘골짜기’란 단어로만 보면 어둠과 사망과 관련이 있어 보였고, 구름을 타고 천상으로 간다는 건 그가 완전한 신을 꿈꾼다는 말이었다.
최림은 놈이 명명하는 힌놈의 골짜기가 어디쯤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신이 되기 이전에 꼭 체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하지만 여자가 더는 산 쪽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뭔가 낌새를 눈치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 조 팀장에게 전화가 몇 번이나 왔다.
서울경찰청에서 곧 내려온다는 전갈이었다.
다음 날, 최림은 결단했다.
여자를 만나 사실대로 말하며 협조를 구하는 거밖에 방법이 없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딸린 조그마한 식당이었다.
그때 민채원과 술을 나누던 장소였다.
여자가 잔뜩 몸을 움츠린 채 최림 앞에 앉았다.
최림은 여자가 안심하도록 예전에 김유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니, 이건 유리?”
“맞습니다. 김유리와 찍은 사진입니다.”
여자는 깜짝 놀랐다.
“이 사진이 왜? 그렇다면 당신은 유리를 잘 안다는 말이네요.”
“그럼요. 함께 근무할 때 제가 김유리 형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자는 아무 말 없이 한숨을 쉬었다.
휴우~.
“유리는 어떤 땐 친구 같고, 또 어떤 때는 여동생 같았지요.”
“…….”
그렇게 최림은 지속해서 여자를 설득했다.
결정적으로 여자가 입을 연 건, 최림이 전두태의 실상을 모조리 까발린 후였다.
“전 교주님이 악령의 우두머리라고요?”
“네, 믿기지 않겠지만 확실합니다.”
“그자가 우리 유리를 죽일 수 있다고요?”
이제 여자가 반쯤 넘어오는 것 같았다.
“네, 천왕봉에서 수족 같았던 민채원도 놈이 죽였잖습니까?”
“정말요?”
“네, 놈은 여자를 이용할 때로 이용하곤 끝내 죽이는 천하의 잡놈입니다.”
“민 사무국장님은 그날 자살하지 않았나요? 우린 모두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 말에 최림은 어이가 없었다.
“절대! 놈이 동반 자살을 위장하여 민채원 씨를 잔인하게 죽였다고요.”
“어떻게 형사님이 확신하나요?”
“그건 제가 그때 그 현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분이 동반 자살할 때요?”
“네, 비가 몹시 내리던 천왕봉 꼭대기였었죠. 마지막 축배를 들고 난 후, 둘은 손을 잡고 밑으로 투신했습니다.”
“그럼 동반 자살 맞네요.”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말았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네, 뛰어내릴 때 민서라는 그냥 떨어졌고, 두류산은 낙하산을 펼쳤어요.”
최림은 여자에게 놈이 순간이동을 했다고 말하려 했으나, 믿지 않을 것 같아 낙하산을 이용했다고 둘러댔다.
최림의 말이 끝나자, 여자의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
“이유가 뭘까요?”
여자는 앞에 있는 자가 형사임을 잊고 오로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싫증이 났던 거죠. 민서라가 아무리 매혹적이고 교태스러워도 그런 유형의 남자는 어떤 여자라도 몇 번 자고 나면 금방 싫증이 나거든요. 그래서 놈이 동반 자살을 가장해서 민서라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 거죠.”
최림이 과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여자가 발끈했다.
“내 동생 유리는 다르거든요!”
“뭐가요? 뭐가 다른데요?”
최림은 이제 뭔가를 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는 흥분한 끝에 자신이 실수한 걸 금방 알았는지,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아니, 제 말은 … 뭔가 하면 …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두 분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한 것으로 전 들었어요. 낙하산 운운하는 건 … 남의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거예요.”
“그를 잘 아시는 모양이죠?”
“아뇨! 잘 몰라요. 하지만 그분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최림은 여자의 변명이 조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직도 전두태를 자신들의 교주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저는 서울에 있을 때부터 놈을 쫓은 형사입니다. 놈을 잘 알고 있어요.”
그 말에 여자는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였다.
아마 동생에 대한 걱정으로 최림은 판단했다.
“다 알고 왔습니다. 유리가 솔봉 근처에 있죠? 유리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 두 명 그리고 예전 민 사무국장 수행원이 전두태를 보호하고 있죠?”
“그걸 어떻게?”
“사흘 전 솔봉까지 제가 미행했습니다. 비록 막판에 놓치긴 했지만.”
여자는 마지막으로 최림에게 물었다.
“만약 장소를 알려주면 우리 유리는 어떻게 되나요?”
“방화·살인한 건 사실이니, 중형을 피할 순 없겠지요. 하지만 한때 경찰에 몸담은 점, 사회가 지탄하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를 죽인 점, 그리고 자수한 점을 들어서 감형이 될 겁니다.”
여자는 그 말에 놀랐다.
“자수요?”
“네, 당신은 유리가 그 악랄한 놈의 성 노리개가 되는 걸 보고만 있을 겁니까?”
이 말이 결정적이었다.
여자는 과도하게 팔을 휘저었다.
“아뇨! 절대!”
“좋습니다. 제가 유리를 자수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내일 그곳에 함께 갑시다.”
이 말이 결정적이었다.
여자는 최림의 손을 잡고 제발 그렇게만 해달라고 사정했다.
“좋습니다!”
다음 날이었다. 최림은 여자를 앞세우고 솔봉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 내내 단풍이 울긋불긋했다.
어느새 지리산은 가을의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솔봉, 전두태와 일당들이 머물던 움막에 도착했다.
“여기 맞습니까?”
“네, 여기가 본채 그리고 저기가 교주님이 혼자 쓰던 별채입니다.”
교주라는 말에 최림은 치를 떨었다.
‘교주는 무슨. 덜떨어진 악령이지.’
그런데 본채와 별채엔 아무도 없었다.
“왜 아무도 없죠?”
“아마 기도하러 갔을 겁니다. 매일 솔봉 바위에 올라가거든요.”
“언제 오는데요?”
“내일 점심 무렵에 올 거예요. 그 전에 제가 밥을 준비해두거든요.”
‘음, 그렇구나.’
가을임에도 말을 마친 여자는 몸을 떨고 있었다.
골짜기에서 부는 바람은 칼바람이었다.
“본채에 누구, 누구 있습니까?”
“여동생과 민 국장 수행원, 장은태 그리고 친구 이렇게 넷요.”
생각이 났다.
장은태란 자가 J 시 원룸 주인의 아들이었다.
그들이 머무는 본채는 제법 컸다.
내부 또한 정갈했다.
별채는 작지만, 아담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최림은 이 공간에서 어떤 남녀의 음습한 냄새가 느껴졌다.
놈이 밤마다 김유리를 유린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그녀의 언니 앞에서 내색할 순 없었다.
그때였다.
주위를 돌아보다가 나뭇가지로 입구가 가려진 동굴을 발견했다.
“여긴?”
“그들이 제(祭)를 지내는 곳이에요.”
“네, 제를 지내다뇨?”
“말 그대로 산 사람을 불길 속에 그대로 태우는 장소입니다.”
헉!
최림은 여자의 말에 무엇인가 잡히는 게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가 힌놈의 골짜기?’
힌놈의 골짜기란 지옥을 말하는 거였다.
“삽과 곡괭이 좀 가져다주십시오.”
여자에게 그렇게 부탁하고 최림은 입구를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치웠다.
그리곤 마침내 삽과 곡괭이로 동굴을 뚫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웠다.
동굴 안은 생각보다 넓었고 제단이 있는 곳엔 햇빛이 들어와 환했다.
‘저건?’
최림은 제단 옆에 있는 심상치 않은 드럼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옆에 있던 여자가 설명했다.
“여기에 산 사람을 넣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