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레일
오서윤(본명 오정순)
가드레일은 사건의 경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잘리고 뭉개진 가드레일 곳곳에
그날 밤 시간과 속도와 파손의 자국들이 보존되어 있다.
먼저 공격한 것은 속도였다
그러나 가드레일은 급커브와
아찔한 높이를 숨기고 있었으므로
협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가드레일은 속도를 가진 적이 없다
움직이지 않는 위치로 속도를 제압한다는 뜻
절벽을 끼고 도는 노란 야광지시등을 따라
가드레일은 길을 돌고
중앙선을 넘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속도와 맞섰다
대결은 순간에 끝났다
속도와 속도의 파열음이 공중에서 찢어지고
멈출 수 없었던 것들은
가드레일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빠르게 추락했다
먹이를 놓치지 않는 짐승처럼
공중에 매달린 바퀴를 악착같이 물고 있었던
가드레일엔 이빨 자국이 선명하다
도로를 벗어난 속도를 상대한다는 것은
때론 이탈의 항력 쪽으로 열려있다는 뜻도 되겠지만
그러나 속도가 없는 가드레일은 무혐의이다
바람도 아찔한 높이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지만
생각해보면 절벽의 가드레일은
그 밖의 절벽을 먹여 살리는
가장家長이기도 하다.
계간 『스토리문학 』2015년 겨울호에서
오서윤 시인의 시 「가드레일 」은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의 충돌에 대한 고찰로 보아진다. 이는 사람이 이길 수 없는 속도가 아니라 그 속도에 맞게 지나가라는 신호를 어기고 지나가는 행동을 향해 메아리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본다. 가드레일은 속도를 줄이고 지나가라는 암묵적인 신호다. 아래로는 절벽이 있고 다시 그 절벽을 자동차로는 내려가거나 오를 수 없다는 벽이다. 그런 가드레일은 길을 품고 또 다른 반대 방향에는 절벽을 품고 산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은 긍지에 몰려 살아갈 때가 있다. 의무적으로 살아가야 할 때가 있다. "바람은 아찔한 높이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지만 / 생각해보면 절벽의 가드레일은 / 그 밖의 절벽을 먹여 살리는 / 가장이기도 하다"는 표현은 낭떨어지 절벽과 길을 품은 가드레일의 운명을 역설한 것이라 볼아진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이 가드레일처럼 위험을 방지하는 일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의 절대적 희생이 보통사람의 삶을 위험에서 안전한 삶을 지켜주고 있다고 본다.-한결 추천 시메일 33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