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장세정 주간님께서 올리신 글을 읽으면, 송선미 발행인과 김유진 평론가가 사적으로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9월 8일)에서, 그리고 이안 편집위원과 장세정 주간, 김환영 운영위원장과의 통화(9월 13일)에서 저희가 공식적으로 요청한 답변(9월 17일)이 모두 완료된 듯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위의 글은 장세정 주간님이 임의로 쓰신 답변이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김유진 평론가의 글에 대한 질문이었던 만큼, 당연히 김유진 평론가의 의사가 반영된 답변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문학》 주간의 이름으로 올린 답변인 만큼, 답변에서 언급하신 문자 메시지나 통화 내용을 확인하셨을 줄 압니다. 문자 메시지를 보셨으니, 김유진 평론가의 답변이 불충분한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송선미 발행인이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질문한 것에 대해서조차 김유진 평론가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발제문의 내용을 거듭 반복했습니다. 또한 그와 무관하게, 김유진 평론가의 글이 공식적으로 제시된 것이니 만큼 공식적인 답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9월 13일의 통화는 김유진 평론가의 글에 대한 이의를 김환영 운영위원장님과 장세정 주간님께 전달한 것이었고, 두 분 모두 반론 지면을 주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저희가 김유진 평론가께 공식 답변을 요청한 것은 김유진 평론가의 근거 제시가 바로 그 반론문 작성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장세정 주간님께서 답변해 주실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반론 지면을 주겠다는 대답은 저희가 공식적으로 요청한 내용(김유진 평론가의 근거 제시)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저희의 요청에 대답을 할 수 있는 건 토론회를 주최한 《어린이와 문학》 관계자가 아니라 그 글의 주인인 김유진 평론가뿐입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글의 주인인 김유진 평론가에게 질문하고, 김유진 평론가의 답변을 요청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기다리면 김유진 평론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장세정 주간님은 반론 지면을 주겠다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김유진 평론가의 발제문의 의미를 추측해 가며 반론문을 쓸 수는 없습니다. 김유진 평론가의 글은 매우 공적인 자리에서 많은 분들이 모인 가운데 발표되었고, 계간으로 전환되는 첫 호인 《어린이와 문학》에 게재되었습니다. 공적인 글인 만큼 주장의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주장이 가리키는 방향이 정확해야 합니다. 그런데 김유진 평론가의 글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김유진 평론가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밝혀져야, 이를 토대로 반론문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여쭙습니다.
“〈동시마중〉은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예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적 운용 면에서 출판사와 관련되어 있으며, 최근 제3회 〈동시마중〉 작품상 시상에서 확인되듯 문예지로서의 ‘공공성’의 과제가 더욱 깊이 있게 고민돼야 할 상황이다.”
①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예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적 운용 면에서 출판사와 관련되어 있으며”
“인적 운용 면”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출판사의 기획위원이나 편집위원은 《동시마중》 편집위원을 겸할 수 없습니다. 김제곤 평론가는 《창비어린이》 편집위원장을 맡으면서 《동시마중》 편집위원에서 물러났고, 유강희 시인은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 기획위원을 맡는 즉시 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동시마중》 편집위원들은 자기가 관계된 책 이외에 특정 출판사의 어떤 책에도 관여한 적이 없고, 관여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닙니다. 그 어떤 출판사도 《동시마중》 편집권에 영향을 미친 적이 한 번도 없음은 물론입니다. 김유진 평론가께서 《동시마중》의 어떤 점과 관련하여 위의 주장을 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점을 염두에 두고 한 주장인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유진 평론가의 공식 답변을 요청드린 것입니다.
② “최근 제3회 〈동시마중〉 작품상 시상에서 확인되듯”
이 부분 역시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작품상 선정 과정을 가리키는 것인지, 시상식 행사를 가리키는 것인지가 불분명합니다. “작품상 시상”에서 무엇이 “확인”되었다는 것인가요?
근거 없이 무책임하게 떠도는 소문과 평론은 다릅니다. 평론은 근거가 정확해야 합니다. 평론은 자기 이름을 걸고 쓰는 글이고, 주장에 대한 근거의 책임을 무겁고도 아프게 질 수밖에 없는 글입니다. 주관성을 완전히 걷어낼 수 없는 작품 비평과 달리, 이번 일은 사실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글입니다.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쓴 글이라면 그것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의 하나 불충분한 글이었다면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사과를 하면 됩니다. 그것이 평론가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이번 일을 통해 평론이 어떠해야 하는지, 평론가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동시마중》은 운영위원이나 후원회원 제도를 운영하지 않습니다. 창간 후 어떤 광고도 실은 적이 없습니다. 후원금을 받지 않고(김리리, 이병승 주간 당시 연희목요낭독극장을 《어린이와 문학》과 《동시마중》이 공동 주최했을 때 몇몇 출판사의 후원금을 받아 함께 정산한 적이 있고, ‘제1회 동시마중 동시 평론상’ 제정을 앞두고 시인, 작가, 평론가, 독자들의 후원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3회까지 수상작을 내지 못해 이 상을 없앴으며, ‘동시마중 작품상’으로 후원금을 이월하였습니다.), 일절 광고를 싣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창간했기 때문입니다. 《동시마중》은 순전히 독자들의 정기 구독료만으로 운영하며 동시 원고에 대해서는 창간호부터, 산문 원고에 대해서는 2017년 3·4월호(제42호)부터 고료를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고료입니다. 창간 후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창간사에서 밝힌 원칙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애써 왔습니다.
《동시마중》 작품상은 올해가 3회째였습니다. 《어린이와 문학》이 1년 동안 지면에 수록된 작품을 대상으로 동시, 동화 부문을 시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제도입니다. 《어린이와 문학》에서 시행하는 상이 그러하듯이 심사위원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미학적 입장에 따라 작품 선정에 임합니다. 《동시마중》 편집위원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녔고, 서로 존중할 만한 미학적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자 자신이 선호하는 작품을 고르고 그 이유를 밝힙니다. 이를 토대로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고, 최종 단계에서는 투표를 합니다. 각자 양보할 수 없는 1인 1표를 행사합니다. 심사 경위 및 심사평은 이러한 과정을 종합해 작성합니다.
《어린이와 문학》 겨울호 마감 기일 한 달 앞선 시점까지(마감일을 알려 주십시오) 김유진 평론가의 공식 답변이 없으면, 이 글과 앞의 글을 다듬어 김유진 평론가의 글에 대한 《동시마중》의 공식 반론문으로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을 《어린이와 문학》에 실어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2019년 9월 23일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발행인 겸 편집인 송선미 편집위원 김륭 김준현 송진권 송찬호 신민규 이안 정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