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목腐木들
공 진 영
우리 아파트의 정원에 세워진 간이정자는 나와 김 영감 그리고 서 영감 세 늙은이의 독차지다. 날만 새면 셋이 모여앉아 고래 힘줄처럼 질긴 시간을 씹어댄다. 늙은이들은 내남없이 등이 휘도록 고독을 짊어지고 다닌다. 자리에 앉을 때는 엉덩이 무게보다 고독의 무게가 더 무거워 보인다.
“아이구, 아야야.” 하는 비명은 통상적인 인사다.
대체로 서 영감이 먼저 오고 그다음은 내가, 그리고 김 영감은 집이 멀다는 이유로 가장 늦게 오기 마련인데, 오늘은 어쩐지 서 영감이 보이지 않고 김 영감이 먼저 와 앉았다.
늙은이는 같은 또래 둘만 모여도 수다를 떤다. 늙으면 눈도 가고, 귀도 가고, 심지어는 코도 가버렸지만, 입만은 살아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먹고 지내라고 살려둔 것 같은데, 덤으로 말문 역할을 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늙은이의 대화라야 뻔하다. 병원, 약국 다닌 이야기, 문병, 문상 다녀온 이야기, 끝에 가서는 젊었을 때 고생했던 이야기다. 그것마저도 몇 번씩을 되풀이하지만, 말하는 사람도 전에 했던 이야기인지 처음인지 모르고 듣는 사람도 전에 들었는지 처음인지 까맣게 잊고 있기 때문에 대화는 심심찮게 이어져 간다.
우리 세 사람이 각별히 친해진 것은 나이도 망백望百으로 비슷할 뿐만 아니라 살아온 역정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셋이 다 없는 집 맏이로 태어나 평생을 공직에 근무하면서 집안 살림을 꾸려왔다는 점이다. 나는 5남매 맏이지만 김과 서는 공교롭게도 7남매 맏이다. 봉제사奉祭祀에 부모 모시랴 동생들 뒷바라지하랴 내 소생 키우다 보니 어느새 등골이 휘고 백발이 되고 말았다. ‘나’와 ‘오늘’은 모르고 항상 ‘가족’과 ‘내일’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고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꼰대’라는 말 한마디로 뭉개 버리지만, 과거를 반추하며 살아가는 늙은이에겐 그것만이 전 재산인지 모른다.
늙은이들은 시간이 지겹다. 낮에는 해가 두 번 뜨는 것 같고 밤도 두서너 밤이 이어진 것 같다. 당장 세상을 뜨고 싶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생에 대한 애착이 젊을 때 같지는 않다. 오로지 마음을 갉아대는 것은 어찌하면 자식들 애 안 먹이고 잿불 가듯 고이 가겠는가 하는 것이다.
“저어기 서 가가 오네.”
김 영감이 눈 밝은 체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멀찌감치 서 영감이 쌍지팡이를 짚고 허물 벗은 사마귀처럼 어슬렁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왜 이제사 오는고?”
내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거기 대한 대답은 없고
“오늘 지주목支柱木을 철거하러 온다네.” 하며 대단한 뉴스거리라도 몰고 왔다는 듯 어깨를 치세우며 히죽 웃는다.
“지주목 철거라고? 와?” 김 영감이 다그치듯 묻는다.
“수명이 다 됐다나, 우리처럼 말이다.”
정원의 지주목은 우리들의 관심거리로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옮겨 심은 늙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 한창 자라는 애동목이 잘려와서 희생하는 것이 소위 지주목이다. 한 그루에 서너 개씩 달라붙어, 이식목이 착근을 하고 새잎이 돋아나올 때까지 안간힘을 다해 버티며 몇 해를 두고 세월과 싸우던 나무. 정원이 조성된 지가 10여 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지주목의 역할은 끝난 지가 오래다. 역할이 끝난 것만 아니라. 껍질이 벗겨지고 밑동이 썩어, 도리어 수간樹幹에 의지하여 허덕이고 있으니 수명이 다했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더니 석양 나절에야 낯선 트럭 한 대가 들이닥치더니 인부 대여섯 사람을 내려놓는다. 그들은 무엇엔가 쫓기듯 이 나무 저 나무에 달라붙어서 지주목을 철거하기 시작한다. 주간목柱幹木에 묶어 놓았던 철사는 큰 가위로 뚝뚝 잘라내고 밑둥치는 발로 툭 차버리니 덜렁 뽑혀졌다.
‘참 너무 허무하게 뽑히네.’
셋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가, 누구의 뜻인지도 모르게 트럭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 젊은이를 붙들고 물었다.
“이 나무들은 어델 싣고 가는가요?”
“이 부목들 말요? 전에는 기왓굴이나 찜질방으로 팔려 갔지만 요즘은 화력이 약하다고 안 받아줘요. 주로 나무 분쇄 공장으로 가서 가루로 부서져 수목원 비료나 난로용 연료로 나갑니다.”
젊은이는 묻지도 않은 것까지 소상히 말해주었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정원에 있던 지주목은 트럭 위에 실려졌다.
‘부목이라? 그래도 한갓 몫은 더 하고 가는구나.’
정원의 수목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석양이 부목들 허리를 비추고 있었다. 이어 짐차도 떠나고 힘겹게 비추던 석양도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놀이 시간이 지났다. 빨리 서둘자.”
김 영감이 정자 마루 밑에 감춰둔 집게와 비닐봉지를 가져왔다. 셋(실은 둘이다. 서 영감은 따라다니며 구경만 한다) 정원에 흩어진 담배꽁초나 종이 부스러기를 줍고 개똥도 치운다. 남을 위해 하자는 봉사가 아니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는 일이기에 ‘놀이’라고 부른다. 기껏해야 이삼십 분.
‘놀이’를 끝내고 나니 옅은 황혼이 정원수庭園樹 가지를 타고 안개처럼 내려 깔린다.
“우리도 이제 가자. 해 빠졌다.”
서 영감이 쌍지팡이로 땅바닥을 두들기며 재촉을 한다.
“구경꾼이 더 바쁘네.” 김 영감이 지청구를 던진다.
“그래, 가자. 오늘 밤도 무사히……”
“오줌 싸지 말란 말이지.”
“히히 흐흐”
늙은이들은 웃음을 흘리며 각자 집으로 흩어진다. 두 어깨를 짓누르는 황혼의 무게 때문에 숨이 차다.
첫댓글 눈가가 젖었습니다.
인생 미리보기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밤새 안녕하시려면 석식 후 반드시 한두시간 앉아 계시든 서 계시든 하랍디더.
저녁 잘 드시고 새벽에 문 여니 가셨더라는 대부분 음식이 역류해서 기도가 막히는 경우랍디더. 심장마비가 아닌 다음에는.
곽 선생님 부디 건강하셔서 좋은 글 오래오래 읽게 해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