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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문에서“희망 놓지 않고 오늘도 달린다”라는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위암을 극복한 철인 3종 경기자, 문영용씨의 간증입니다. 이분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건설업자였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건설업에 뛰어들었던 그는 사업이 잘 돼 해외로 골프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로운 삶을 즐겼답니다. 그런 그에게 1991년 갑자기 중풍이 찾아왔답니다. 맥없이 쓰러진 그는 오른쪽 반신이 마비됐고, 온종일 자리에 누워 꼼짝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던 그는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그의 질병은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았답니다. 한방과 기도원에서 기도함으로 어느 정도 몸을 추스리자 이번엔 신장과 위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오장육부가 타 들어가는 자연사 과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현대의학은 그의 증세를 원인불명의 희귀병으로 진단하고 오래 살아야 두 달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내렸답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내렸답니다. 그의 내부 장기는 활동을 멈춘 채 차갑게 식어갔고, 배에는 물이 차기 시작했답니다. 그렇게 무력하게 죽음을 바라보던 그에게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답니다. “뛰어라. 병원에 가면 넌 죽는다”라는 소리였답니다. 그 때부터 그는 기도하며 달리기 시작했답니다. 처음에는 단 10분도 달리기 힘들었답니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서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답니다. 죽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렸다고 합니다. 30대 초반이란 젊은 나이에 죽기가 너무 억울했다고 합니다. "달리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마음으로 달렸답니다. 10년을 줄곧 달렸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면 바로 운동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달리며 기도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답니다. 모든 질병이 깨끗이 나았답니다. 그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열린 하와이에서 열린 세계철인 3종 경기에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참가했고, 7월 24일 강원도 철원에서 있었던 철인 3종 경기에서 아마추어 부분 1위를 하였답니다. 지금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편입하여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달리는 것으로 몸 안의 수분을 강제적으로 배출시켰다고 합니다. 달리는 것으로 위속의 음식물을 소화시켰다고 합니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그는 몸안에 고이는 수분을 처리할 방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 과학자들에 의하면 마라톤을 30분 이상 하면 '최상의 행복감'에 젖게 되는데, 이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한다고 합니다. 베타 엔돌핀이 5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 그 효과는 일반 진통제 수십 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그는 몰랐지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때 달린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절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달린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이분이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달릴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달려야 합니다. 달릴 수 있는 힘 마저 잃어버리면 이제 달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건강의 문제로 염려하고 있습니까? 힘겨운 고민 가운데 절망하고 있습니까? 아직 우리에게는 달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1. 우리는 어떤 경우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주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문영용 성도같은 분이 나옵니다. 몇 살쯤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잘 살았던 주부였습니다. 어느날 혈루증에 걸렸습니다. 피흘리는 병입니다. 자궁암과 같은 것입니다. 당시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원치 않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입니다. 당시 문둥병과 혈루증은 불치의 병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가정에서도 마을에서도 쫓겨나게 되어 있었습니다.(레 15:25-28) 가족들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합니다. 얼마나 힘겹겠습니까? 불치의 병이라고 선고받는 그 자체가 견디기 힘드는 것인데 가족까지도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절망합니다. 일단 마음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찾아오고 근심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입맛도 떨어지고 의욕을 상실합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리가 풀립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했는데 완전히 중환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2년 동안 치료받기 위해 이병원 저병원을 다 찾아 다녔습니다. 살기 위해 의사에게 희망을 걸고 수많은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5장 26절에는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막 5:26)"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찾아 간만큼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있는 재산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병만 깊어졌습니다. 점점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이제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할 것입니다. 사랑도, 재산도, 건강도, 집도, 가족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포기할 만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질병을 치료시켜 주신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 나아갔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질병으로 인해 담다하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질병에 걸려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무기력 증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까?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안되는 것 예수님께서 한 번 은총을 베풀어 주시면 순식간에 될 수 있습니다. 12년 동안 돈만 허비하고 갖은 고생을 하였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니까 순식간에 그 모든 질병에서 깨끗하게 고침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 힘마져도 다 잃어 버릴 때가 옵니다. 이 여인을 혈루증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지만 아직 들을 귀가 있었습니다. 아직 걸어 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아직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었습니다. 들을 귀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걸어갈 수 있는 다리가 아직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기도할 수 있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드릴 수 있을 때 예배드려야 합니다. 찬양할 수 있을 때 찬양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 때문에 더욱 간절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불치 병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만약 이 여인이 이 병이 걸리지 않았으면 예수님을 만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하여도 성한 몸이었다면 예수님을 만나러 갔겠습니까? 자기 볼일에 바쁘지요.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에 절망적인 상황이 올 때 그것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우리 인생에 근본적인 해답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질병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찬송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시며 천한 자의 높임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94장 1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 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의 생명 되시네 (94장 2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94장 3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와 만국인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 되고 우리 영광 되시네 (94장 4절)"
2. 우리는 예수님 겉옷만 만져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 여인은 왜 옷을 만졌습니까?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자신의 질병이 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습니다.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질병에 걸리면 조그마한 것에도 마음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집니니다. 숨이 가쁘고, 모든 것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식욕이 떨어집니다. 우울증 증세가 나타납니다. 마음이 병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마음을 보십시오. 얼마나 의욕적입니까? 겉옷만 만져도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만 나와 예배만 드려도 치료를 받을 것이다. 찬양만 불러도 성령 충만을 주어 내가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기도만 하여도 하나님께서 치유의 광선을 내려 주실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말씀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약 5:15)"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6)" 이 말씀을 믿습니까?
마음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증거할 때 여러 날 귀신이 바울을 괴롭힐 때 바울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 16:18)" 우리도 스스로 머리에 손을 얻고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근심 걱정아 물러갈 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든 생각아 달아날 지어다." 직장 동료들과 경쟁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없습니다. 추석 때 일가 친척 만나 스트레스 받을 필요없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개같은 사람들과 경쟁할 필요없습니다. 개같은 사람과 경쟁해 보았자 이겨도 개보다 나은 놈이 되고 저도 개보다 못한 놈이 되고 비겨도 개같은 놈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무엇이 걱정스럽습니까? 죽음입니까? 죽음 후에 천국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나라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경제적 염려입니까? 우리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안심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다트머스 의과대학 옥스만 박사와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5년 심장병수술을 받은 2백 32명을 조사한 결과 수술 후 6개월 이내 사망한 사람 중 교회에 전혀 다니지 않은 사람의 사망률이 12% ,가끔씩 출석한 사람의 사망률이 5%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반면 신앙심이 깊고 적극적으로 교회를 다닌 사람은 모두 건강을 되찾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마음의 자세입니다. 마음의 안정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적게 분비하여 면역계나 심혈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경내분비 반응을 억제한다고 합니다.
인간 승리 암스트롱에 대한 기사를 보았을 것입니다. 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데 이어 투르 드 프랑스를 4연패한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에 대한 기사 말입니다. 그는 고환암이 폐와 뇌까지 전이돼 생존가능성 절반이었지만 이것들의 그의 정신과 의지를 꺽지 못했습니다. 3년간의 투병생활에서 일어나 99년 투르 드 프랑스를 제패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주간 조선에 "아들 손·발 노릇 20년 위대한 어머니의 기적"이라는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신마비 근육병을 앓고 있는 연세대 2학년 재학중인 신형진군의 어머니(이원옥) 이야기입니다. 38세에 낳은 아들인데 4개월이 지나자 보행기를 잘 타지 못해 그저 발육이 늦는 줄로만 알았다고 합니다.‘애가 이상하다’생각되어 병원에 가보니 국내 병원에서는 병명조차 몰랐고 미국 존스홉킨스병원까지 가야 했는데 "근육병인데 원인은 알 수 없다, 치료 방법도 없다, 진행성이라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척추성 근위축증’리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몸 전체가 마비되어 머리를 1㎜도 움직이지 못하는 악성으로, 늘 누워 지내야 했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절망하지 말자, 되겠지, 되겠지’ 하는 희망을 가졌다”고 합니다. 결국 중학교를 들어가게 되었고 고등학교에서는 반에서 5-6등을 차지하게 되었답니다. 그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을 꿈꾸며 연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다고 합니다. 정신이 얼마나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안해 하는 이 여인을 향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이 병으로 죽지 않고 났게 해 줄테니 안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8)"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3. 우리는 "00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12년 동안 불치병을 앓던 이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 뒤에 가서 겉옷을 만지며 겉옷만 만져도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예수님은 어떻게 평가해 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것을 그 여인의 믿음이라고 평가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에 합격 점수를 맞은 것입니다. 병을 났을 만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만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부를 때 환자로 부르지 않습니다. 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혈루증 환자라고 불결하게 취급하고 짐으로 취급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녀를 딸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딸이 된다는 것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의 딸이 되면 재산을 잃은 것, 건강을 잃은 것, 명예를 잃은 것, 직장을 잃은 것 무엇이 대수가 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얼마나 필요한 때 필요한 것으로 주시겠습니까? 영원한 천국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살롬, 인생의 평안을 선물로 받습니다. 영혼의 구원, 생활의 구원, 육체의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믿음을 인정하자 그 시로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발 앞에 얻드려 병나은 것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①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선포를 들었습니다. ②평안히 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평화의 은총을 선사하신 것입니다. ③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④건강해졌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에도 이런 환희가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말씀만 들어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6)"라고 말씀하면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라고 말씀하면 그 말씀 믿고 기뻐하며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2)예수님을 만지기만 하여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내가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함일러라"(엘레겐)는 미완료 시제로서 그녀가 마음속으로 그 같은 사실을 되뇌이고 또 되뇌였음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3) 믿음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병자가 의원을 찾아 다니며 12동안 고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겠습니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재산을 다 허비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길은 죽음을 각오한 길이었습니다. 무리 가운데 썩여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을 한 것입니다. 당시 문둥병 환자와 혈루증 환자는 격리 수용되었고 성에서 쫓겨났습니다. 정상인에게 손을 댈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돌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사회 통념상 여자로서 뿐 아니라 부정한 자로서 공중(公衆) 앞에 나설 수 없는(접촉 불가) 입장이었으나 그러한 사회, 종교적 장애를 극복하고 담대히 예수께 접근했던 것입니다(레 15:19-27).
우리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 받을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체면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수치심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환경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성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옷만진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미신적 사고이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예배드린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자신의 나태한 성격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굳어진 마음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교만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장애물일 수 있습니다. 역경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충동적인 마음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복잡한 마음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이 장애물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오늘 이시간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5:34)"라는 말씀이 여러분과 저의 생에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