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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예수영성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어여쁜자
1. 베들레헴 (Bethlehem) - 예수님의 탄생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5:2)
(베들레헴 도시와 들판) 중앙 하늘가 숲 쪽에 예수탄생교회가 있다..
<위치 및 명칭>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km지점, 해발 780m의 산악지대에 동굴이 많은 석회암 언덕에 있다.
Beth(집)+Lehem(빵)의 합성어로 '빵집'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주민들은 'Beit Lachem(고기집)'이라는 아랍식 이름을 사용한다.
'Beth', 'Beit'가 들어가는 대부분의 지명은 '어떤 신의 집'이라는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님이 유월절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시며 축복하사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마26:26)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역사>
5,000여년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다리 역할을 했던 때부터 시작하고,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오고갔다 한다. 아주 오래된 고대 도시로, 창세기에 처음 등장하는데,
라헬의 죽은 매장지(창35:16-20, '에브랏'이라 칭했고, 유일하게 헤브론에 매장되지 않은 야곱의 애처,
야곱이 묘비를 세웠는데 현재 유대인들의 기도처), 나오미와 보아스의 고향(룻1:19-22), 보아스와 룻의 결혼으로
증손자 다윗의 탄생(마1:5-6)등으로 유명하다.
역대상 2:19,50,54에는 씨족이름('에브랏', '에브라다', '베들레헴')으로 나온다.
다윗(BC 1010~970년경)이 태어나 목동으로 자라고,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이스라엘 2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곳이고 (삼상16:1-13). 분열왕국 후 르호보암 왕은 예루살렘 방어를 위해 이곳을 요새화했다(대하11:6).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유다땅의 조그마한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곳이다.
6C말에는 바벨론에서 귀환환 123명의 사람들만이 이 곳에 살았다 하는데, 이 때 미가 선지자는 큰 예언인
메시야의 탄생을 약 700년전에 예언하였고(미5:2, '에브라다'라 칭함),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에 따라
인구조사를 위해 마리아와 요셉이 호적하러, 나사렛에서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옴으로써 성취되었다(눅2:4).
2C 유대인 반란으로 인해 로마에 의해 황폐화되고 유대인들은 추방되었으나,
4C에 예수탄생기념성당이 세워진 이후로 기독교인들이 이 곳에 많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아랍인들이 살지만,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했었다.
1995년 12월에는 팔레스타인에게 반환하고 철수하므로써
현재는 Westbank지역에 속하는 땅이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리한다.
주민들은 80%가 무슬림, 20%가 구교계통의 기독교인이다.
<경제,문화>
농업이 주를 이루고 올리브 수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10월 첫 주간에 수확을 시작하는데, 거친 기후에 강하고 많은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올리브나무와
그 밖에 무화과, 과일, 땅콩류를 재배한다. 공장, 채석장도 있는데, 장미석의 생산지로 유명한 ‘Beit Jala'의
slaggib 채석장은 탄생교회 내부기둥의 원석임이 분명하다.
자개와 올리브나무 가공산업은 오늘날 순례객들과 관광업에 의해 발달되었다.
우리도 이 곳의 'Shepherd's shop'에서 물건을 구입하였다.
<성탄절>
로마시대에 날짜는 지금의 12월 25일로 결정되었다. 이전부터 로마인들은 겨울에 낮의 태양이 깊어지기 시작하는
이 시기를 축하했었다. 이를 “Sol Invictus" 축제라 하는데,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라고 여겨진데서 비롯된 것이다.
첫 축제가 338년 로마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시작이다.
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1월 6일을 보편적인 성탄절로 기념하고 있었고,
후에 아르메니아인들은 1월 18일을 자신들의 성탄절로 기념하게 되었는데,
이런 문제들은 상호간의 달력의 상이함에서 비롯되어, 베들레헴에서는 3차례의 주요 성탄 행사를 거행하게 되었다.
천주교와 개신교 교회들은 24일 성탄 이브를 기념하고, 그 밤의 행사는 구유광장(탄생교회)에서
전 세계 합창팀들이 참여하는 캐롤과 촛불의식으로 이어진다.
절정은 한밤중에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St. Catherine 성당(탄생교회 옆)에서의 미사이다.
동시에 탄생동굴에서도 작은 미사가 밤새 진행된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유다동네와 아랍동네 사이에 높은 6~7m의 시멘트 담벽이 보인다.
다소 섬뜩한.. 시멘트의 특이한 느낌..
지금은 이스라엘이 세계여론으로 인해 많이 제거했는데 전에는 마치 교도소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2. 예수탄생기념교회 (Church of the Nativity)
지난 6월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영토 내 가장 중요한 관광명소인 이 곳을 유네스코에 건의, 세계유산에 등재하였다.
조속한 보전 대책이 필요한 위기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로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보다 더 오래되었다.
(광장에서) 종탑은 아르메니안 수도원 종탑..
메누하 성지연수 일행들.. 왼쪽 현수형제 팔꿈치밑 검은 곳이 출입문.. ^^
135년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2차 유대반란 진압 후 기독교말살정책으로 탄생동굴 위에 아도니스 신전을 세워놓았던 것을, 기독교공인 이후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성지를 방문한 후 아들에게 청하여 3개의 성당을 세웠다.
예루살렘의 예수 무덤 위에 성묘교회(처음에는 예수부활기념교회..십자군 이후 개칭),
이 곳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에 예수탄생교회, 그리고 감람산에 주기도문교회(엘레오나 성당, ‘올리브나무 숲‘)이다.
예수님 탄생동굴 위에 339년 세워진 첫 성당을 콘스탄틴 성당이라 하는데
510년 대지진때나 529년 비잔틴제국에 반란을 일으킨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불탔고,
성당 중앙통로 바닥에 보존되어 있는 모자이크가 그 유물이다.
지금의 성탄성당은 531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복원하여 지붕, 바닥, 내부 장식 정도 외에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614년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거의 모든 성당들과 수도원들이 파괴되었지만,
이 유스티니아누스 탄생 성당만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동방 박사들의 모자이크가 그들 조상들의 복장을
하고 있어서 오히려 경배하고 돌아갔다 한다.
교회 출입문은 일명 ‘겸손의 문’인 좁은 문으로 낮게 120cm 높이로 되어 있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데,
정복자 군사들이 말을 타고 성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위에 표시가 난다..
이곳도 가톨릭을 대표하는 프란치스코회와 그리스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간의 현상유지법이 적용되는 곳으로,
세 종파간 소유권과 상용권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대부분은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고, 중앙 제대 왼쪽 부분은 아르메니아 정교회 소유이고,
옆의 구유 동굴 부분은 가톨릭 소유이다.
그래서 가톨릭은 1881년 이 성당 옆에 성 캐더린에게 봉헌한 성당을 지었다.
예수님 성탄동굴 옆의, 헤롯에게 죽임당한 무죄한 아기들(마2:16-18, 실제로 유아들 뼈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의 경당과
성 요셉에게 봉헌된 경당등도 가톨릭 소유라고 한다.
(탄생교회 내부) 양쪽으로 4줄의 붉은색 대리석(홍색 회암) 기둥이 각 줄에 10개씩 40개이다.
(중앙제대) 그리스 정교회 소유로 정교회식 제대, 이콘과 많은 등잔들이 샹드리에처럼 늘어져 있다.
(중앙제대 왼쪽) 아르메니안 제대
(중앙제대 오른쪽)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으로 연결된 출입문이 있다.
탄생동굴로 내려가기 위해 수많은 순례객 인파에 묻혀 서있는 일행들..
길고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ㅠ.ㅠ
기둥에는 성인들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양쪽 벽면에 남아 있는 대형 모자이크는 12C 십자군이 유스티니아누스 성당을 수리하면서 덧붙인 모자이크이다.
(정교회의 이콘) 성모자상.. 그리스 정교회는 로마 가톨릭과 십계명에 위배되는 성상논쟁으로 이콘(초상화)을 선택,
그림자가 지지 않게 부조형으로 그림을 그린다. 성상은 없지만, 주로 등잔을 많이 매달아 놓는 것 같다.
성묘교회에서도 12처소등에서 많이 본 것 같다.
탄생교회의 중앙 제대 우측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약간 어두운 공간이 나오는데 그 안에 탄생동굴이 있다.
바닥에는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하는 은색별(14각-- 십자가의 길 14개처소를 나타내면서, 아브라함~다윗 14대,
다윗~바빌론 유배 14대, 그 후~예수님까지 14대 상징)이 바닥에 있다.
별 위에는 라틴어로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라고 써 있다 한다.
(탄생동굴의 제대 윗부분) 벽에 시커먼 것이 이콘이 손상된 것인 듯..
(제대 아래부분) 바로 이곳이 탄생교회의 핵심이다. 여기 손을 대보고 입을 맞추고 한다.
예수님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고.. 주변을 손상되지 않게 대리석으로 해놓았다.
탄생동굴 바로 뒤쪽에는 아기 예수를 구유에 눕혔던 가톨릭 소유의 “구유 동굴(제단)”이 있다.
점토대신 은제로 해 놓았다. 매일 미사를 드린다 한다.
이 곳은 교회가 지형을 변형시켰지만, 당시 마굿간은 자연 동굴을 인공적으로 다듬어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베들레헴은 석회암 지대로 이러한 동굴이 400개 이상이 있다고 한다.
우유동굴이나 목자들의 들판 동굴교회에서 우리가 보았던 그런 것이다.
또 옆에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 제단이다.
(구유제단)
탄생교회는 여러 교파들과 동서의 알력다툼으로 소유권이 나눠지면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는
유스티니아누스 성당 왼쪽 벽에 맞대고 1881년 성 캐더린(카타리나) 성당을 지었다.
성탄절 전야에 예루살렘 주재 가톨릭 총대주교가 집전하여 전 세계로 방송되는 전야 미사는 바로 이 성당에서 거행된다. 내부 좌석은 300여석 정도. 예약제이다.
(성 캐더린 성당의 내부모습) 미사를 드리는 중인데, 안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성 캐더린 성당의 회랑들)
(그 기둥아래 잠언목사님과 제자들...^^)
<참고> 난 성 캐더린(St. Catherine)이 궁금해졌다...
성 캐더린은 알렉산드리아의 동정순교성녀로 10C경부터 동방 교회에서 가장 높이 공경해 오던 성인 중의 한 명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상류가정 출신의 학식이 뛰어난 미모의 처녀였다 하는데, 어떤 환상을 보고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으며
막센티우스 황제가 그리스도를 투옥시키라는 명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여 황제는 그녀를 개종시키도록 50여명의 학자들을 보냈으나 뛰어난 언변으로 이방인 철학자들이 개종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배교하면 황제와 결혼시켜 준다는 회유책을 거부하고 두시간동안 매를 맞은 뒤 투옥되고,
독방에는 비둘기들이 음식을 날라다 주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큰 못을 박은 바퀴에 의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구경꾼이 그 못에 죽었다 한다.
그녀의 굳은 신앙과 인내심은 수많은 군인들을 놀라게 해 200여명이 개종한후 곧 참수를 당하였다.
마침내 그녀를 참수하니 덮었던 수건에 우유가 묻어나왔고, 시신은 시내산으로 천사에 의해 옮겨졌다 하여
그곳에 유명한 교회 성 캐더린 수도원이 세워졌다.
예수탄생교회의 수도원성당이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캐더린에게 봉헌이 되었다.
중동과 팔레스티나 지역은 동방교회의 관할지역이라서 이 성녀가 가장 유명한 성녀가 되었는데,
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성 캐더린 수도원은 많은 순례자들이 찾지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탄생교회에 십자군 관할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들어선 후 작은 경당이 그녀에게 봉헌이 되었다.
후에 이슬람 지배하에서 방치되다가 프란치스칸들이 들어와 거주하게 되었고,
현재 베들레헴의 성 캐더린 성당은 1881년에 확장되어 봉헌된 것이다.
캐더린 성당에서 지하 계단으로, 아니면 예수탄생동굴에서 이어지는 통로로 내려가면 크고 작은 여러개의 동굴들이 있다.
성 요셉 제대(마1:18-25), 무죄한 아기들의 제대(마2:16-18), 히에로니무스 성인의 무덤제대와
그의 서재동굴(성서번역과 집필활동), 그를 도운 바울라 성녀와 딸 에우스토키움 동정성녀에게 봉헌된 제대가 있다.
그 외 크고 작은 동굴들과, 물을 저장했던 곳 등도 있다.
히에로니무스(불. 제롬) 유해는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이장되었다.
성당 정원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참고> 히에로니무스(불. 제롬)는 389년경 베들레헴에 수도원 공동체를 세웠고,
거기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으로 가기 전에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과 함께 공인된
불가타(Vulgata-공동번역이라는 뜻의 라틴어 editio vulgata에서 유래)성서로서
가톨릭 교회에서 표준 라틴어 성서로 사용되고 있다.
성서와 금욕주의, 수도원주의, 신학에 대해 쓴 수많은 저서들은 중세 초기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그의 고전, 성서, 기독교 전승에 대한 이해로 유명하다.
마지막 34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남긴 문학 유산은 당대의 논쟁들, 성서에 대한 열정, 수도원 생활의 산물이다.
서방 가톨릭 교회의 4대교부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노, 성 대 그레고리오)중의 하나이다.
(서재에서 성서번역하는 모습) (영감을 받아 성서를 번역하는 모습의 유리화)
성당 광장 맞은편에는 이슬람 오마스 사원 종탑이 높이 있었다. 오른편은 터미널이다..
(Welcome to Bethlehem)
to be continu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