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여행블로거기자단의 제주렌트카여행 퍼레이드는 둘째날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을 돌아보기위해
25명이 승용차렌트카 6대에 분승하여 산방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방산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 395m. 모슬포로부터 동쪽 4㎞ 해안에 있다.
유동성이 적은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종상화산(용암원정구)이다. 화구가 없고 사면경사가 50도 내외이며, 사방이 절벽을 이룬다.
신생대 제3기에 화산회층 및 화산사층을 뚫고 바다에서 분출하면서 서서히 융기하여 지금의 모양을 이루었고
북쪽 사면 일대는 인위적인 식목림과 초지를 이루고 있고, 산정부근에는 구실잣밤나무·후박나무·겨울딸기·생달나무 등
난대림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유일한 섬회양목 자생지이기도 하다.
암벽에는 지네발란·동백나무겨우살이·풍란·방기·석곡 등 해안성 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제주도에서는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도라지가 서식하고 있으며. 학술 연구자원으로 매우 가치가 높아 1966년 천연기념물
제182-5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또한 산양이 서식하고 있다.
이 산에는 옛날 한 포수가 한라산에 사냥을 나갔다가 잘못해서 산신의 궁둥이를 활로 쏘자
산신이 노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날아와 산방산이 되고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여신 산방덕과 고승(高升)이란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이곳의 주관(州官)으로 있던 자가 산방덕의 미모를 탐내어
남편 고승에게 누명을 씌우고 야욕을 채우려 하다가 이를 알아차린 산방덕이 속세에 온 것을 한탄하면서 산방굴로
들어가 바윗돌로 변해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 200m의 남서쪽 기슭에 있는 산방굴은 해식동굴로 부처를 모시고 있어 산방굴사라고도 하는데, 길이 10m, 너비 5m, 높이 5m 정도이다.
고려시대의 고승 혜일(蕙日)이 수도했다고 하며, 귀양왔던 추사 김정희가 즐겨 찾던 곳이다. 굴 내부
천장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은 이 산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 하며, 마시면 장수한다는 속설에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산의 남쪽에는 화산회층이 풍화된 독특한 경관의 용머리해안이 있으며, 이곳에 하멜 표류기념탑이 건립되어 있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마라도·형제도·화순항의 경관이 뛰어나며 이는 제주10경의 하나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4곳의 등산로가 있으나,
주로 북쪽 사면을 이용한다.
아래사진은 논오름 정상에서 본 산방산의 모습이다.
우선 일행은 산방연대쪽에서 용머리해안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용머리해안은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해안으로, 산방산 해안에 있으며,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겉으로 보면 평범하지만 좁은 통로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수천 만 년 동안 층층이 쌓인 사암층 암벽이 나온다.
180만 년 전 수중폭발에 의해 형성된 화산역 응회암층으로 길이 600m, 높이 20m의 현무암력에 수평층리·풍화혈·돌게구멍·해식동굴·
수직절리단애·소단층명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해안 오른쪽에는 반원형으로 부드러운 검은모래사장[黑沙場]이 펼쳐져 있다.
주차장에서 올라가 도로가에 산방연대로 올라가는 길이 나있어
그곳으로 해서 용머리해안쪽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산방연대 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산방 연대는 사계리 산방산 앞 도로변에 인접한 해안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은 ‘연디동산’이라고도 불린다.
조선 세종 19년(1437)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없어졌다.
현재는 산방연대의 주춧돌로 보이는 돌들만이 남아 있다. 이 연대에는 대정현 소속의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어 한 달에 5일씩
6교대로 24시간동안 해안선을 지켰다고 하며, 동쪽으로 당포 연대, 서쪽으로 무수 연대와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연대에 올라가 용머리 해안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용이 꿈틀거리며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있다.
해안가로 내려오다 올려다본 산방산 모습..
이 근처에 조선조 효종4년 (서기 1653년)에 이 지역에 표류했던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을 기념하는 「하멜기념비」가 1980년에 세워졌다.
길을따라 내려오니 용머리해안쪽으로 들어가는 매표소가 나온다.
이런 ...가는날이 장날이란다. 파도가 높아 위험하여 용머리 해안진입을 금지한단다.
이런낭패가...하는수 없어 해안을 돌아 나올수는 없지만, 입구에서 위험하지 않은곳 까지만 내려가 사진 만
찍고 올라오기로 하고 양해를 구한뒤 들어갔다.
아주 협곡이다.
내려가다 보니 우측으로 무슨 굴이 있는데...감옥이었나? ...해설사가 없으니...
내려오며 뒤돌아본 입구..하늘은 맑고 쾌청한데...파도가...?
내려가서 보니 정말 파도가 많이 높게 일고 있었다 .
용머리 해안은수천만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 중 하나로서,
해안절벽을 모진 파도가 때려서 만들어 놓은 오묘한 해안 절경을 보는 순간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작은 방처럼 움푹 들어간
굴방이나 드넓은 암벽의 침식지대가 펼쳐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외국경치에 비해도 전혀 손색없는 관광코스중에 하나이다.
용머리는 이 지역의 지형지세가 마치 용이 머리를 쳐들고 바다로 뛰어 들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중국의 진나라시황은 천하를 통일했으나 늘 자신이 이룩한 왕국이 위협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다가 만리장성을 쌓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더구나 지리서를 보니 탐라섬에 왕후지지(王侯之地)가 있어 제왕이 태어나리라 하니 더욱 더 염려 스러웠다. 이에 땅속을 훤히 보는
풍수사 호종단을 파견하여 맥을 끊어버리고 혈을떠서 기를 아예 죽여버리기로 작정했다.
호종단은 구좌읍 종달리로 들어와 남쪽으로 차근차근 혈과 맥을 끊어나갔다. 그가 산방산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산의 맥이 곧바로
앞 바다로 뻗어내려 막 태평양으로 나가려고 용머리가 꿈틀 대고 있었다. "저게 바로 왕후지지다. 저 놈의 맥과 혈만 끊어버리면 만사 끝이다".
그는 한달음에 산을 내려가 막 고개를 내밀고 바다로 나가려는 용의 꼬리를 한 칼에 쳐 끊고 다시 잔등을 내리쳐 끊은 다음
머리를 내리치려고 하자 검붉은 피가 솟구쳐 오르면서 우르릉 우르릉 신음소리를 토하며 구슬프게 울었다고 하며,
이렇게 하여 왕후지지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고 한다. 저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해안을 한바퀴 돌수 있는데..파도때문에...
무서운 바닷물은 파도에 밀려 협곡을 무섭게 때리고 있었다.
해안가는 어디서 보아도 그 경치가 절경이라서..
두사람이 용감하게 다리를 건너가 본다..
다시 올라오는길에 옆쪽으로 뚫어진 커다란 동굴넘어로
다음협곡의 경치가 진사들의 발을 잡아놓고 있다.
올라오다가 내려다본 우측으로 돌아가는 해안가의 다리에 한사람이 과감하게 건너가고 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시 입구쪽으로 올라간다..
용머리해안 산책로길이 하루 두차례 총 8시간 가량 잠긴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40년전부터 지금까지 20cm정도의 수위가 높아졌다는데..
그래서 제주도는 용머리 해안 산책로길을 약70cm더 높일 계획이란다. 용머리해안 산책로길은 수시로 파도가 거세면 통제를 한다.
064-794-2940 으로 물때시간을 알아보신후 이용하시길....
용머리해안
위치:제주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입장료: 어른 - 2,000원(단체 1,600원), 청소년·군인·어린이 - 1,000원(단체 800원), 도민 및 노인 - 무료
문의전화:064-794-2940
용머리 해안에서 나와 하멜상선 쪽으로 가다보니 말을 타는 장소가 나온다. 그런데...말이란 태어나서 병이들지 않는 이상
평생 앉거나 눕지 않는다고 들었는데...한마리가 누워있다....? 다가가니 벌떡 일어나는데 망아지였다.
그것도 낭설인가 보다.ㅎㅎ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하멜상선을 구경하는것으로 이곳일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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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천했습니다..^^~~
또다른 각도로 보이네요~용머리해안,,,함께 갔어도 보는 시각의 차이가 확연히 남을 느낀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