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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5-11, 건물 성전의 멸망과 종말의 징조, 26.5.24, 박홍섭 목사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마지막 사역과 가르침을 베풀고 계십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전락해 버린 모습에 분노하신 주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성전을 청소하셨습니다. 그러자, 성전의 기득권자들인 종교지도자들이 무슨 자격과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며 주님을 공격했습니다. 주님은 악한 농부의 비유로 이들을 책망하셨고, 이들은 세금 문제와 부활에 관한 질문으로 주님을 잡으려 합니다. 주님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자 다윗의 주로 오신다는 성경의 약속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냐고 되물으시고 서기관들을 삼가라는 경고로 이들의 교만하고 거짓된 믿음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드린 가난한 과부의 사랑과 헌신을 이들과 대조되는 참된 신앙의 표본으로 제시하십니다.
이제 배경이 살짝 옮겨집니다. 주님이 성전을 나와 감람산으로 가실 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어떤 사람들이 헤롯 성전의 아름다움과 화려함과 웅장함을 보면서 감탄하고 자랑합니다. 누가는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평행구절인 막 13:1절과 3절, 마 24장을 보면 이들이 제자이며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상이 성전과 율법의 두 기둥에 의해 떠받쳐진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성전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헤롯왕은 이를 알고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BC 19년부터 초라한 스룹바벨 성전을 대대적으로 증축합니다. 말이 증축이지 거의 새로 짓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공사를 했으며 예수님 때도 여전히 공사하고 있었습니다.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누구라도 이 성전을 한번 보기만 하면 그 웅장함과 화려한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전의 일부 돌들은 길이 12미터, 높이 3미터, 폭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흰 대리석이었고, 일부 모서리 돌은 100톤이 넘었습니다. 햇빛 아래 흰 대리석이 빛나는 성전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눈 덮인 산처럼 보였고, 가까이 다가가면 성전 정면에 도금된 황금으로 인해 떠오르는 태양처럼 강렬한 빛을 발했습니다. 내부 장식은 더 화려했습니다. 정문 위에는 부자들의 헌물로 만들어진 사람 키만큼 큰 황금 포도송이가 달린 거대한 황금 포도 덩굴 장식이 있었는데 당시 부자들은 이 포도 덩굴에 자신의 헌물로 만든 황금 포도알이 추가되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휘장은 바벨론에서 들여온 가장 화려한 천이었고, 모든 장식이 금과 은으로 빛났습니다. 제자들도 아직 건물 중심의 유대교 성전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이들도 이 거대한 성전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입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 지리라.” 지금 헤롯 성전이 오랜 세월 동안 부자들이 풍족한 중에서 넣은 헌금과 헌물로 아름답게 지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높고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성전 건물의 압도적인 위용과 황금 포도 덩굴과 화려한 휘장과 도금된 정문이 있는 화려한 성전을 보면서 차오르는 종교심을 느꼈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의 자부심인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무너지고 파괴되고 멸망한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왜 이 아름다운 성전이 무너집니까? 렘 7:1-7을 보십시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리리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시대에 성전을 출입하며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신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말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거짓말이라고 하십니다. 왜 성전이 아닙니까? 건물이 없어서입니까? 휘장이 없고 지성소가 없어서입니까? 성전의 뜰이 없고 기물이 없어서입니까? 아닙니다. 성전은 자기 백성들 사이에 거하면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 성전을 출입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여 사랑과 자비와 공의와 정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이 없고 건물 성전만 의지하고 자랑하며 그 안에서 하는 종교적 행위에 만족하고 안심하고 있으면 그 건물은 성전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건물에 거하지 않으니,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고 고아와 과부와 압제하는 삶을 살면서 여기에 와서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다. 여호와의 성전이다. 여호와의 성전이다.” 하는 말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짓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지는 렘 7:8-11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서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인들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근거로 부지런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실상 그들의 삶은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고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며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았지만 실상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강도의 삶, 도둑의 삶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의 실상을 보십시오. 렘 5:1로 넘어갑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사하리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절기 때마다 성전을 찾아와서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의 눈에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 강도의 삶을 살고 있었고 도둑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다 살인자의 삶, 간음하는 삶, 거짓 맹세하면서 탐욕으로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약자의 소유를 빼앗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경고하셨으나 이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성전은 무너집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대인들의 신앙이 이때와 똑같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믿으면서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헤롯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지어주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자랑했으며 참 성전이신 주님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내 아버지의 집,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면서도 그 화려한 건물의 외형과 위용과 거대함을 자랑하고 있구나. 이제 때가 되면 너희들이 자랑하는 그 모든 것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다 무너지고 멸망할 것이다.”
왜 건물 성전이 무너져야 합니까?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 반복되는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은 십자가로 가셔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사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성전 삼아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시며 구원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는 짐승의 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피 흘리는 제사도 필요 없습니다. 건물 성전이 필요 없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용서를 완성하는 영 단번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성전의 기능을 다 완성하시고 우리를 성전 삼으시는데 건물 성전, 그것도 타락하고 부패하여 기능을 상실한 건물 성전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충격적인 말씀 앞에 제자들이 묻습니다. 7절입니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습니다. 십자가도 모르고 부활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 성전이 무너지면 세상이 끝난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세상이 끝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로마의 압제가 끝나고 메시아가 주는 새로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세상이 오며 그 나라에서 자신들이 주님의 오른쪽과 왼쪽을 담당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감람산에 앉으셨을 때 조용히 묻습니다. 마 24:3을 보실까요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이 물었던 주의 임하심은 재림이 아닙니다. 아직 십자가의 도도 모르고 부활의 진리도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재림은 상상도 못 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주의 임하심이란 예수님이 로마를 뒤집어엎고 세상의 왕으로 등극하는 그날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주께서 이 세상을 크고 두려운 심판으로 끝내고 영광과 권능으로 유대 나라를 온 세상의 중심으로 세우는 그 날이 언제며 그날이 오기 전의 징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주님은 성전의 파괴와 세상의 끝은 한꺼번에 오지 않고 구분되는 사건임을 가르치고 그것에 근거해서 바른 종말론적 믿음이 무엇인지를 교훈하십니다. 본문 8-11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두 가지를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다른 하나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우리를 참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미혹된 자는 거짓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두려워하는 자는 참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고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주저앉습니다. 미혹된 자는 거짓 약속에 매달리고, 두려워하는 자는 주의 약속을 의심합니다. 미혹된 자는 들떠 있고, 두려워하는 자는 가라앉습니다. 건강한 종말론적 신앙은 종말에 대한 시기와 때를 계산하면서 흥분하거나, 헛된 상상이나 시나리오를 쓰면서 현재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여러 현상과 거짓된 가르침에 두려워하지 않고 미래에 있을 종말을 현재로 끌어와서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의 자세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님은 심판과 종말의 징조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며,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리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어떻습니까?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주님이 말씀하신 징조들이 차고 넘치지 않습니까? 전쟁과 자연재해와 전염병과 난리의 소문과 정치적인 격변과 기근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직전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차고 넘쳤습니다. 눈을 들어보십시오. 매일 우리가 사는 땅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귀를 열어 들어보십시오. 이런 전쟁 저런 싸움, 전염병과 기근과 자연재해와 사고의 소식이 들리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까? 이 표징들은 어느 한 특정 시점에 나타나 종말을 알리는 심판 직전의 긴급한 신호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역사의 전 기간을 채우는 일반적인 표징입니다. 인류 역사에 이런 일이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이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분이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섭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가 되었다는 미혹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말의 징조라고 하면서 두려움을 심어 일상을 무너뜨리고 성도들의 믿음과 영혼을 착취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매일 반복되는 이 종말의 징조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먼 미래에 일어날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세상이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사실을 이 징조들을 보면서 매일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고, 두려움에 마비되지 않고, 깨어 분별하며, 무너지지 않을 한 분이신 주님, 다윗의 자손이며 다윗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믿음의 시선을 들어 올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분만이 무너지지 않는 반석입니다. 그분만이 영원한 약속입니다. 그분만이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두려움이 아니라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와 같이 주님을 사랑하며 지체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종말에 관한 의식이 있습니까? 혹시 우리도 영원하지 않은 것들, 언젠가는 없어지고 무너질 것을 우리의 자랑과 자부심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을 보이는 성전 건물로 꾸미고 치장하는데 열정을 다 쏟으면서 믿음의 책임을 외면하고 종말에 둔감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없는 삶의 어떤 화려함과 거대함도 때가 되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다 무너집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헛된 성전을 무너뜨리고 장차 임할 종말을 오늘 나의 일상으로 끌어와 성실하고 참된 믿음으로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