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달한 문장의 이경옥 시조 읽기
어시장에서 외 1편/이경옥
방수 앞치마에 반장화 차림 아지매
어부 남편이 잡아 온 당일바리 잡어를
어시장 귀퉁이에서
막 썰어 팔고 있다
비릿한 만평 바다 도마 위에 출렁이고
얼떨결에 붙잡혀 와 팔딱이는 선어들이
회칼에 멱살 잡혀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저 옆자리 차고앉아 판때기라도 엎어놓고
갖은 야채에 초장 듬뿍 버무린 무침회를
양푼 째 올려놓고서
한 탁배기 할까예?
열쇠를 쥐고/이경옥
그대와 나 사이는
첩첩산중 엇박자
씨줄날줄 난공불락
자존의 요새를 쌓고
돌앉은 돌부처 같은
당신은 벽입니다
달다 쓰단 말 없고
곁눈질 한번 없지만
쓸쓸한 눈물 보를
늑골 아래 쟁인 채로
독한 척 버티고 있는
그 속을 모를 줄 알고
이쯤서 눈 질끈 감고
차라리 무너져 봐요
겹겹 빗장 질러놓은
당신을 열어젖힐
확실한 단서를 쥐고
작업 들어갑니다.
-2018 개화 27에서-
어제 달섬문학회 시낭송 시간에 초대 시 읽는 시간이 있는데 이 작품을 추천하여 많은 시인들의 동감을 얻었다 습작기에 있는 회원들은 더 많은 감동을 받았으리라 믿는다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덕분에 정말 오래간만에 어시장 바닥에 아무렇게나 마주앉아 무침 회 우물거리면서 거나하게 탁배기 한 사발 잘 마셨다.
크으~~ 거 참 술 맛 한 번 장히 좋다
술 맛도 술 맛이지만 문장이 입에 척 척 달라붙는다.
얼얼하고 맵다
칼칼하고 시원하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무침 회에 탁배기 맛도 까무러칠 일이지만 두 편의 시조를 읽는 맛이 그렇다는 말이다
이쯤이면 무침 회와 시조를 분간한다는 일이 헷갈리고 만다
귀싸대기 번쩍! 얻어맞더라도 오금쟁이 부러지게 걷어차이던 시조나 한 수씩 주고받으면서 밤이 으쓱하도록 마주앉아 있고 싶은 항구의 1번지 풍경이다
재주 좋고 말 잘하는 시인들이 우리 시를 어렵게 이끌고 가는 동안 사람냄새 물씬 나는 낭만적 서정시를 우리는 오래도록 만나지 못 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한국시는 전통적으로 이어내려 온 전범이 있다 그 바탕 위에서 현대시롤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이경옥의 어시장 풍경은 사람 냄새가 너무 진한 논픽션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이야기로 소설과 수필 극시가 같이 포함된 작품이라면 시조문학은 얼마든지 가능성을 갖고 있다.
시조는 이제 아프지도 않으면서 앓는 소리 징징 한다거나 비 오는 하늘을 향해 풍선 날리는 허구한 소리는 지양 되어야 한다
어시장 이야기는 아름다운 풍경화다 질척거리면서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선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전개되는 동영상이다. 멱살 잡고 칼질하는 회감 고기뿐만 아니라 사람 잡는다는 상어나 고래까지도 해체해서 지전을 챙길 수 있는 현장의 역군이다
작품 전체는 리얼하게 표현된 이미지 나열이면서 감추고 있는 깊이는 읽는 사람 몫이다 무엇보다 이 작가는 거침없는 언어구사로 힘 있는 문장을 전개하고 있다. 투박한듯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엮어가고 있다. 목수의 집짓기처럼 필요에 따라 목재를 깎아 맞춰 집을 올리듯이 적소에 알맞는 시어 선택으로 통일성 있는 문장을 전개하고 있지만 실은 노력 없이 쉽게 얻은 작품이 아님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마치 커다란 돌을 갖고 축대를 쌓고 있는 포크레인 기사를 보는 기분이다 작가는 커다란 돌덩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동안 사이사이 공간에 알맞은 작은 돌을 탁탁 치면서 고여 가고 있다 그렇게 완성된 한 편의 축대가 견고하다. 시조는 선택된 주어에 접목 시키는 부사를 적절하게 어찌 다루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적소 적소에 적당한 말을 접합 시키고 있다. 시적 대상물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술자다
「막사발의 노래」가 내 눈에든지 꽤 오래 되었다. 시력詩歷 20년이 넘었으니 그럴만하다. 특히 여성 작가로서 동해 푸른 물결처럼 폭발하는 에너지를」갖고 있다는 것은 남다른 노력의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이어진 작품 「열쇠를 쥐고」 역시 읽는 소감은 마찬가지다
말 없는 남편을 벽이라고 지칭하지만 실은 글 속에
쓸쓸한 눈물 보를
늑골 아래 쟁인 채로
독한 척 버티고 있는
그 속을 모를 줄 알고
피차간에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애정이 고여있다. 어쩌면 서비스 없는 기질의 경상도 남자 이야기 같다
겉으로는 완고한 척 하는 자존심의 남편 자물통을 열어 볼 수 있는 열쇠를 누가 쥐고 있겠는가. 부부간이 아니고서는 확실한 단서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애정이 은근짜로 감도는 글이다
필자 같은 경우 사설시조를 쓰자고 주장하는 입장이어서 이 경우라면 사설시조에 매우 적합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 장이 두 줄로 기술되고 있지만 이 글이 계속 병열로 이어서 사설시조를 만들었을 때는 지금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낭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설시조 낭송은 단시조와 달라서 보다 스피드 하고 넌출거리는 율격으로 인해 랩 음악으로 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현대시조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존재의식 때문에 해 본 소리다.
이경옥 시인의 다음 작품을 또 기대 해 본다
추신 : 이경옥 시인에게
남편이랑 맞추려고 하지 말고 그냥 놔 두세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