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괘한 오월 어느 날
-오까 슈우조오
오월의 어느 일요일.
아빠와 엄마는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나갔다. 중학생인 누나도 학교 특별활동을 하러 가서 내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집에 없었다.
엄마는 나가기 전에 생각나는 것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점심은 냉장고에 있으니까 데워 먹어.”
“숙제 일찌감치 해 놔.”
“게임은 딱 한 시간이야.”
“친구 부르는 건 좋은데, 집 어지르지 마.”
“아 참, 꽃에 물도 좀 줘.”
그 밖에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말하고 마지막으로,
“집 잘 봐. 부탁한다.”
하고 말했다.
상쾌한 오월의 일요일인데 나는 혼자서 집을 보게 되었다.
아, 혼자가 아니다. 고양이 ‘샐러드’도 함께이다.
샐러드는 아침나절에 자신의 영역을 한 바퀴 돌고 와서 툇마루에 뱀처럼 길게 엎드려 있다.
“쳇, 일요일인데 심심하게 이게 뭐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자유롭고 한가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널따란 집에 달랑 나 혼자.
잔소리하는 엄마도 없다.
말은 하지 않지만, 공부 안 해도 돼?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빠도 없다.
내 간식을 뺏어 먹는 누나도 없다.
텔레비전을 실컷 볼 수 있다.
냉장고에는 간식도 잔뜩 들어 있다.
아무데나 뒹굴어도 잔소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야호! 샐러드, 최고의 일요일이다!”
나는 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샐러드와 함께 길게 엎드렸다. 따끈따끈해서 기분이 좋아지자 머릿속도 텅 비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요일인가······ 이윽고 졸음이 쏟아졌다.
바로 그때였다.
현관 쪽에서 “안녕하세요!”하는 소리가 났다.
‘에잇, 누구야! 모처럼 기분 좋게 있는데!’
행복한 순간을 방해받은 나는 불끈 화가 치밀어 현관으로 나갔다.
동그란 얼굴에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어이쿠, 많이 컸구나, 꼬마야.”
아저씨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누구지, 이사람?’
“나야 나. 저런, 기억 안 나? 아빠 계시냐?”
“나가셨어요.”
“뭐, 나갔어? 엄마는?”
“엄마도요.”
“뭐, 둘 다 없단 말이야?”
아저씨는 기운이 쏙 빠진 모습으로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돌아가나 싶었는데 현관 앞에 앉는 것이었다.
“없단 말이지. 잘됐군.”
“아저씨, 누구세요?”
“아, 나? 나야 나.”
“나, 나라니, 이름이 뭐예요?”
“아, 이름이 말이야. 나는 이, 이노우에 신조오라고 한다.”
“이노우에 신조오 아저씨?”
“있잖아, 아빠 사촌. 기억 못 하는구나. 나는 너 어렸을 때 봤는데. 네가 우리 시골에 온 적이 있거든.”
“네······?”
내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자 아저씨가 일어섰다.
“그럼.”
하기에 돌아가나 싶었더니,
“기다리지 뭐.”
하고 아저씨는 자기 멋대로 슬리퍼를 신고 거침없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다까시가 없단 말이지.”
‘다까시’는 아빠 이름이다.
아빠 이름을 알고 있으니까 이 사람은 진짜 친척이 아닐까?
“누나던가, 여동생이던가, 있지?”
“누나는 특별활동 때문에 학교에 갔어요.”
“그래. 다 나가고 너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단 말이지. 그래, 그래.”
아저씨는 거실 소파에 털썩 앉더니 집 안을 둘러보았다.
“다들, 잘 있냐?”
“네, 네에.”
“그래, 그래. 그럼, 다까시는 몇 시쯤 들어오지?”
“글쎄요. 결혼식에 갔으니까 늦게 오실 것 같은데요.”
“누나는?”
“누나도 저녁에 와요.”
“그래, 그래. 그럼 다까시는 몇 시쯤 돌아오지?”
“글쎄요. 결혼식에 갔으니까 늦게 오실 것 같은데요.”
“누나는?”
“누나도 저녁에 와요.”
“그래, 그래. 응. 아, 나 목이 마른데 뭐 마실 것 좀 주겠냐?”
“아, 네.”
쳇, 이렇게 되면 한가하게 지내려던 일요일을 완전히 망쳐 버리는 거다. 하지만 아빠 친척이 아저씨니까 하는 수 없다. 나는 차를 따라 가져갔다.
그러자 아저씨가 말했다.
“아, 나는 차가운 게 좋은데. 맥주 같은 건 없냐?”
“아, 있어요.”
아빠는 밤마다 맥주를 마시기 때문에 냉장고에는 언제나 맥주가 두 병씩 들어 있다. 나는 한 병을 꺼내 유리잔에 따라서 가져갔다.
“캬아, 바로 이 맛이야!”
아저씨는 연거푸 두 잔을 마시더니 꺼억 하고 트림을 했다.
“아, 맛있다. 이제야 살 것 같군. 오는 내내 기차에서 시달렸더니 얼마나 목이 마르던지. 그러고 보니 밥도 아직 안 먹었네. 그렇지, 꼬마야, 아니지, 너 이름이 뭐였지?”
“코오이찌.”
“그렇지, 그렇지. 코오이찌. 여기 오는 길에 보니까 초밥집이 있던데,”
“버드나무 초밥집요?”
“그래, 그 집. 코오이찌, 거기 가서 초밥 좀 부탁하고 와. 너도 먹을 거지? 이 아저씨가, 특제 초밥 사 주마.”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엔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주었다.
“배달은 시간이 걸리니까, 네가 기다렸다가 가져와라.”
‘특제 초밥이라고! 아, 그 정도는 돼야지. 얼마 만에 먹어 보는 초밥이야.’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서둘러 초밥집으로 뛰어갔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었기 때문에 초밥집은 한산했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특제 초밥이 나왔다. 물론 내 것은 고추냉이를 넣지 말라고 미리 일어두었다.
초밥을 사 가지고 돌아와 보니 아저씨는 멋대로 냉장고에서 남은 맥주 한 병을 꺼내고 있었다.
“이야, 수고했다, 수고했어. 아직 점심 먹기는 조금 이르지만 너도 먹어라.”
생선 냄새를 맡고 고양이 샐러드가 느릿느릿 일어나 바짝 다가왔다.
‘특제란 말이야, 너한테 줄 것 같으냐!’
아저씨는 한 손에 맥주를, 한 손에는 초밥을 집어 들었다.
“특제치고는 시원찮은데, 이 초밥집. 이러니 파리 날리지.”
하고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다.
나는 초밥이라고는 버드나무 초밥집 것밖에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시원찮은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특제’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아저씨는 다가오는 고양이한테 “옛다!”하고 생강 절인 것을 던져 주었다. 샐러드는 잠깐 냄새를 맡저니 ‘장난하냐?’하는 얼굴로 툇마루로 돌아가 버렸다.
초밥을 다 먹자 아저씨는 나를 불렀다.
“꼬마야, 아니지, 이름이 뭐였더라?”
“코오이찌요.”
“아, 그래 그래, 코오이찌.”
“이봐라, 아저씨가 지금 꼭 나가 봐야 할 데가 있거든. 헌데, 땀 냄새가 나서 말이야. 목욕을 좀 해야겠다.”
“네, 목욕요?”
“그래, 물 좀 데워 주겠냐? 나는 물이 데워질 때까지 잠깐 누워 있을 테니까, 다 데워지면 깨워라.”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 소파에 누웠다.
그러고 금세 드르렁드르렁 코를 풀며 잠이 들어 버렸다.
‘아니, 뭐? 목욕을 한단 말이야?’
뻔뻔한 아저씨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목욕물을 준비했다. 준비라고 하지만 스위치를 넣고 삐삐삐하고 단추만 누르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할 일은 없다.
아저씨가 자고 있는 동안, 나는 할 일이 없어서 게임을 했다. 샐러드는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가 너무 커서인지 목을 부르르 떨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얼마 뒤에 ‘목욕물이 데워졌습니다.’라는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아저씨를 깨웠다.
“아, 잘 잤다. 어,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나. 목욕물 데웠냐? 좋아, 좀 씻어볼까. 수건 좀 가져와라.”
네, 네. 이제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합죠. 마치 하인 같다.
이윽고, 목욕탕 안에서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삼십 분쯤 지나자 아저씨는 삶은 달결 같은 얼굴을 하고 나와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으면서 말했다.
“으음, 코오이찌였지. 이 부근에 편의점 있냐?”
“있어요. 좀 나가야 하지만.”
“미안하지만 말이다. 축의금 봉투 좀 사다 주겠니?”
“축의금 봉투라니요?”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돈을 넣는 봉투지. 모르냐? 축의금 봉투라고 하면 알 거다.”
그렇게 말하고 아저씨는 이백 엔을 주었다.
“자전거로 갈 거냐?”
“네.”
“서두르면 사고 나니까 천천히 갔다 와. 급하게 갔다 오지않아도 돼.”
나는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휴, 한심한 일요일이다.
괜히 급하게 달리다가 다치면 안 될 성싶어 나는 아저씨 말대로 자전거를 천천히 타고 갔다.
축의금 봉투는 백 엔짜리와 이백 엔짜리가 있었지만 비싼 쪽이 좋을 것 같아 이백 엔짜리를 샀다.
“저어, 축의금 봉투 사 왔어요.”
그렇게 말하고 거실에 들어가 보니 탁자 위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있어야 할 아저씨가 없었다. 화장실에 갔나 하고 노크해 보았지만 없었다. 이층도 마당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 갔지?”
‘틀림없이 뭔가 또 준비할 게 생각나서 직접 사러 나갔을 거야.’
하지만 금세 ‘아냐, 그게 아니지.’하고 고쳐 생각했다.
현관에 아저씨 구두가 있는 걸.
‘그럼 어디에 있지?’
설마 숨바꼭질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축의금 봉투를 가지고 어딘가에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럴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럼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나는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왠지 마술에 걸린 듯 기분이 이상해져서 그저 바보처럼 멍하니 몇 시간이나 기다린 모양이다.
“야옹.”
샐러드 소리에 번쩍 눈이 뜨였다.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피난 갔던 샐러드가 방으로 돌아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시계가 대앵하고 울렸다. 쳐다보니, 벌써 네 시였다.
대체 아저씨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내가 늦게 돌아와서 기다리다 못해 나가 버린 거겠지?
하지만 구두도 신지 않고?
도무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상쾌했던 일요일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결국, 오늘 하루 동일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여우한테 홀린 것 같은 하루였다고 생각하면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엄마 왔다.”
하고 현관에서 엄마 목소리가 났다.
“코오이찌, 안에 있니?”
“엄마 왔어?”
나는 현관으로 뛰어나가 인사를 했다.
“불도 안 켜고 뭐해?”
하고 말하면서 엄마는 현관 불을 따악 하고 켰다.
“어머, 웬 구두야, 손님 오셨니?”
“그거, 친척 아저씨 구두야.”
"친척이 오셨어?“
“그런데 사라져 버렸어.”
“사라졌어? 누가?”
하고 아빠가 고개를 들이밀고 들어왔다.
“이노우에 신조오라는 아저씨. 아빠 사촌이라던데.”
“내 사촌 이노우에 신조오? 이노우에라······ 그런 사촌이 있었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코오이찌?”
그래서 나는 점심 때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다 듣더니 아빠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무래도 수상해. 먼저, 내 사촌 가운데 이노우에라는 사람은 없거든.”
“그럼 누구였지, 그 사람?”
엄마는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는 듯이 말했다.
“그 사람, 빈집털이범이 틀림없어.”
“빈집털이범?”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집에 사람이 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빈집털이범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던 거라고.”
“어, 그 아저씨가 도둑이었다고?”
나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그 아저씨가 도둑이었다니!
“그 사람, 아빠 이름을 알고 있었어.”
“그야 문패에 써 있으니까.”
“아, 그렇구나.”
“이봐, 뭐 없어진 거 없는지 확인해 봐. 앗, 구두가 아직 있다는 건!”
아빠는 재빨리 신발장을 열었다.
“아, 없어졌어! 가장 비싼 구두를 신고 가 버렸다고!”
그때 이층에서 비명이 들렸다.
“왜 그래?”
아빠와 나는 냅다 이층 안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엄마는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봐. 무슨 일이야?”
아빠가 물었다.
“없어.”
“뭐가 없어?”
“돈. 옷장 서랍에 넣어 둔 생활비.”
“얼마나 있었는데?”
“십오만 엔쯤.”
“다른 건?”
“내 반지랑 목걸이.”
“그리고?”
“당신 양복.”
“뭐, 내 양복?”
아빠가 옷장을 열자 그 아저씨가 입고 있던 옷이 걸려 있었다.
“비싼 것만 세 벌 없어졌어. 한 벌은 갈아입고 가 버렸고.”
도둑맞은 건 그게 전부였다.
아저씨는 그 커다란 가방에 아빠 양복 두 벌과, 엄마 보석과 돈을 넣고 도망친 것이다.
도둑맞은 것은 그것이 전부였지만······
이번에는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대체 너는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뭐 하고 있었냐고 물으면······.’
“그렇게 뻔뻔스럽게 심부름 시키는데, 이상한 생각도 안 들었던 거야?”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도둑이랑 함께 초밥을 먹은 거야?”
‘네, 죄송해요······.’
“구두가 있는데도, 이상한 생각이 안 들었어?”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봇물처럼 와르르 쏟아지는 질문에 나는 그저,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뿐······
운 나쁘게도 그때 누나까지 돌아와서, 내가 정말 얼간이고,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고, 고양이 샐러드만큼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말을 저마다 퍼부어 대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부끄럽고 비참하던지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엄마가 아아 그렇지! 하는 얼굴로 말했다.
“뭣보다 코오이찌 네가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다. 흉악범이었다면 너를 죽였을지도 모르잖아.”
‘뭐야, 도둑맞은 거 다 헤아려 본 다음에 이제야 내가 다치지않아 다행이라고? 왜 구두나 돈보다 나를 먼저 걱정해 주지 않는 거야!’
뾰로통해졌다.
그때 누나가 “앗!” 하고 소리쳤다.
“아빠, ‘이노우에 신조오’라는 건.”
하고 누나는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위의 위 심장’이란 뜻이야. 봐, 심장은 위의 위에 있잖아.”
그 말을 듣고 나도 엄마도 아빠도 자신의 배를 보았다.
“아하! 하하하하! 위의 위, 심장이라고! 참, 어처구니없는 익살이군.”
아빠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뭐야, 이봐, 맥주 두 병도 마시고 가 버렸어.”
이무튼 상쾌한 오월의 일요일은 이렇게 비참한 하루가 되어, 나는 가족 가운데서도 ‘고양이 샐러드만도 못한 인간’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쉬는 시간이었다.
앞자리의 수다쟁이 마끼꼬가 무리 지어 있는 여자애들 가운데서 유난히 큰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해서 나를 돌아 버리게 한 것이다.
“말이나 돼? 텔레비전이랑 신문에서 그렇게 떠들어 대고 있는데 어제 또 걸려든 바보가 있다니까, 나야 나 사기(우리나라의 전화 사기처럼, 일본에서도 신분을 속이고 무조건 ”나야 나“하면서 돈을 빼앗는 사기가 문제되고 있다. -옮긴이)에 말이야.”
“또 걸려들었어?”
“어머, 텔레비전 안 봤니? 또 있었어. 바보 아냐? 왜 걸려드냐? 이상하다는 생각도 안 드나. 조금만 생각하면 이상하단 걸 알 수 있는데. 암튼, 바보니까 걸려들지. 진짜 바보 멍청이라니까!”
거기까지 들은 순간 나도 모르게 마끼꼬의 머리를 탁 때리고 말았다.
마끼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한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바보, 바보’ 하지마! 만약, 네가 어제 우리 집에 혼자 있었다면 틀림없이 나랑 똑같이 했을 거야.
그런데 왜 바보니 멍청이니 하는 거야!
용서할 수 없었다.
마끼꼬는 ‘한 치의 벌레에도 닷 푼의 혼이 있다’는 속담을 모르고 있는 거다. 나는 ‘한 치의 벌레’보다 훨씬 크다고! 그러니까, 혼도 벌레보다 훨씬 크단 말이야. 너는 말의 칼로 내 마음을 푹푹 찔렀어.
탁!
“왜 그래!”
마끼꼬는 외계인 보듯 나를 보더니 호랑이 같은 얼굴로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금세 맞붙어 싸웠다.
마끼꼬는 몸집이 크다. 힘도 세다. 나도 온힘을 다해 싸웠지만, 할퀸 상처는 오 대 칠로 내 쪽이 많았다. 하지만 울음을 터뜨린 것은 마끼꼬 쪽이었기 때문에 일단 창피를 당하지는 않았다.
까닭도 없이 갑자기 때렸기 때문에 담임인 모또끼 가쯔지 선생님은 방과 후 나를 남겨 놓고 마끼꼬를 때린 까닭을 물었다.
“왜 때린 거냐?”
“······”
“마끼꼬가 너한테 뭐라고 하더냐?”
“······”
“아무 까닭도 없이 때리지는 않았을 거 아니냐? 응? 무슨 말을 좀 해 봐.”
나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바보같이 ‘나야 나’ 도둑한테 걸려들었다고 말할 것 같아? 나한테도 닷 푼의 혼이 있다고. 자존심이 있단 말이야!
모또키 선생님은 짜증을 냈다. 하지만 난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두 손 들고 가 버렸다.
“너도 어지간히 고집불통에 삐딱한 애구나.”
틀림없이 내년 담임이 될 선생님한테 ‘이 아이는 상당히 삐닥한 아이입니다.’라느니, ‘느닷없이 주먹질을 한 폭력성이 있는 아이입니다.’라고 전해져 나는 ‘요주의 인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 그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그 아저씨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또 어디선가 누군가를 속이고 있을까?
이노우에 신조오라고? 웃음이 나온다.
나는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이 분했지만 지금은 ‘분하다’기보다 왠지 ‘슬픈’ 마음이다.
그 아저씨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만약이지만, 아저씨가 또 우리 집에 온다면 나는 또 속아 넘어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속아 넘어가는 척하면서 아저씨가 깨닫게 해 주고 싶다.
“아저씨, 인생을 그렇게 살아서 되겠어요?”하고.
그럼, 아저씨는 틀림없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저씨한테도 ‘한 치의 혼’은 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