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9월18일 미국 워싱턴에서 출생한 가경자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미국 일리노이 글렌 엘렌 소재 메리놀회 신학교에서 학사과정(1948-1952)을 마치고, 1953년, 중국의 선교에서 유명하고 성인 같은 벨기에 사제 뱅상 레브신부(1877-1940)의 영감으로, 방인주교 밑에서 활동하는 선교 사제를 양성할 목표로 창설된 루뱅 소재 외방 선교 협조회(Societe Auxiliaire de Missions, SAM)에 입회 하면서 루뱅 가톨릭 대학교에서 신학과정을 (1953-1957) 수료하였다.

어릴 때부터 선교 사제가 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를 원했던 알로이시오 신부는 미국 메리놀회를 떠나 벨기에로 갔고, 그곳에서 가난한 이의 동정녀께서 발현 하신 바뇌 성모 성지를 찾았고, 5년 동안 15회에 걸쳐 성지를 방문한 알로이시오 신부는 사제 서품전 방문에서 가난한 이의 동정녀에게 자신의 사제직을 바쳤다. 이 일련의 사건을 성모님의 안배로 여긴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의 수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께 속한 나의 사제직’(Mon Sacerdoce Appartient a la Vierge des Pauvres, 바뇌 성모 성지 총사무국에 보관 중)에서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에게 속한 사제입니다.” 라고 밝혔다. 그리고 바뇌 성지가 속하는 리에지 교구의 커크호프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그리고 동일 주교의 명의로 미국 워싱턴 대교구 성 마틴 성당에서 1957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았고, 선교지 한국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부산교구에 입적하였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1961년에 워싱턴에서 민간 원조 기관인 한국 자선회를 설립, 이 기관을 통하여 모금한 기금으로 한국에서 구호활동을 활발히 전개했고, 1962년부터 부산교구 송도 본당의 주임신부로 재직 하면서 1964년 마리아 수녀회를 창설하였고,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마리아수녀회의 사도직에 전념하기 위하여 1967년 5년 동안의 송도 본당 주임직을 사임 하였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생전에 한국, 필리핀, 멕시코의 6개 도시에 의료시설과 정규교육기관을 갖춘 6개소의 소년/소녀의집을 설립하여 수많은 불우 어린이와 청소년을 돌보았다. 1969년 7월에는 부산시의 노숙자 200명을 보호하는 마리아수녀회 구호소를, 1981년에는 서울특별시의 노숙자 2000명을 돌보는 마리아수녀회 ‘은평의 마을‘을 시작하였다. 1981년 5월 10일 그리스도수도회를 창설하였다.
(종전에는 이 수도회에서 은평의 마을을 운영함.2010.12.29 서울시에 이관 운영중임.)
1975년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1976년 5월 미국 뉴욕 포담 대학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에는 필리핀의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고,
1984년과 1992년 2월, 2 회에 걸쳐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1990년 2월에는 교황청으로부터 고위 성직자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1989년 10월 뜻밖에도 근육무력증으로 일명 ‘루게릭의 병’이라는 3년 시한의 불치병 진단을 받았다. 이 고통스런 투병기간 동안에도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휠체어에 의지하여 필리핀과 한국, 한국과 멕시코를 왕래하며 1991년 10월 멕시코 찰코시에 2000명의 불우 청소년을 돌보는 소년/소년의집의 1단계 사업을 완성 개원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5개월 후 1992년 3월16일 마닐라 산타 메사의 소녀의 집 사제관에서 운명하였다. 멕시코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서 하루하루 꺼져가는 목소리로 녹음기에 구술, ‘조용히 다가오는 나의 죽음’ (원명: Killing Me Softly)의 원고를 임종9일 전에 탈고 하였다.
신부님의 유언에 따라 마리아 수녀회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를 기리는 벨기에 바뇌의 성모님
발현 기념 경당의 복제 경당을 필리핀 실랑 소녀의집 구내에 건립, 그 제대 아래 신부님의 시신을 묻고, 무덤 위에는 몬시뇰께서 손수 작문하고, 임종 하루 전날에 문장과 철자를 확인한 비문이 새겨진 동판이 놓여있다. “여기 알로이시오 슈월쓰 신부가 묻히다. 모든 찬사와 영예와 영광과 감사를 가난한 이의 동정녀에게 바친다.” (영어원문: “Here lies Fr.Al Scwartz. All praise, honor, glory and thanksgiving to the Virgin of the Poor!")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를 열렬히 증거한 삶을 살았던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현재 시복시성 후보자로 올라 ‘하느님의 종’의 칭호를 받았다.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사업을 이어받은 마리아수녀회는 현재 한국,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온두라스,브라질의 10개 도시에 의료시설과 정규교육기관을 갖춘 10개의 소년의 집과 소녀의집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무료기숙과 교육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20,665명의 가난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정규교육과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 마리아 수녀회는 브라질리아의 소녀의집에 이어 산 파울에서 대규모 소년의집 사업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소년/소녀의집사업이외에 한국에서 두개의 무료병원, 노숙자를 위한 부산 구호소, 2개의 미혼모 보호시설을 부산과 서울에서 운영하고, 그리스도 수도회는 서울과 파주시에 2개의 부랑인 복지시설을 운영하여 2000명의 집 없는 성인남자에게 시설보호와 자활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필리핀 카비테 실랑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분원을 두어 노숙자 보호를 위한 수도회의 사도직 사업을 계획 중에 있다.
2015년 1월22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가경자'로 선포되셨습니다.
■가경자 알로이시오 슈왈츠 몬시뇰의 약력■
1930. 9.18 미국 워싱톤시 출생
1930.10.5 미국 홀리네임 성당에서 유아세례 받음 1948-1952 미국 일리노주 글리 엘렌 메리놀 신학교에서 수학
1953_1957 벨기에 루벵 대학 신학부 졸업
1957. 6. 29 . 미국 워싱톤시 성 마틴 성당에서 사제 서품
1957. 12. 8 한국 부산교구에 입적
1961. 3.10 모금 단체 한국 자선회(korean Relief. lnc.)를 미국 워싱톤시에 설립
1962. 6. 1 부산 교구 송도 성당 주님 신부
1963년 여름 부산 서부 빈민 지역에서 모금용 손수건 자수 자조 사업을 전개.
2.000명의 가정 주부에게 수놓는 일감을 공급,1969년까지 계속 하였음
1964. 8. 15 가족 단위 고아원 설립
1964. 8. 15 마리아 수녀회 창설(현재 한국.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온두라스,
브라질등에서 200여 명의 수녀가 활동 중임)
1966 '굶주린 자와 침묵하는 자(The Starved and The Silent)출판
-Doudleday 출판사
1966. 9. 1 부산 서구 아미동 빈민 지역에 첫 번째 진료소 개설
1967. 1. 18 부산 서구 암남동과 중구 보수동의 빈민 지역에 각 1개소의 진료소 개설
1968 우리시대의 징표; 가난(Poverty; Sign of our Times)출판
-Alba House 출판사
1968. 12. 10 부산 서구 아미동에 아미 고등 공민 학교 설립
1969. 7. 1 부산시로부터 서구 장림동 소재 행려 환자 구호소의 관리 운영
1970. 4. 10 부산 서구 암남동에 첫 소년의 집 사업 시작
(부랑아 300명에게 안식처와 교육을 제공)
1970. 10. 25 부산 서구 암남동 120병상이 무료 구호 병원 개원 2009년 신축을 하며,"알로이시오기념병원"으로 함.
1973. 1. 1 부산 서구 암남동에 공식 부산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 개원
(1999년 현재 수혜 아동; 1725명)
1973. 3. 1 부산 소년의 집 초등학교 개교(1976년 서울 소년의 집 초등학교에 병합)
1974. 3. 1 부산 소년의 집 중학교 개교(1999년 알로이시오 중학교로 명칭변경)
1975. 1. 1 서울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 개원(1999년 현재 수혜 아동: 943명)
1975. 3. 1 서울 소년의 집 초등 학교 개교
1975. 5. 28 국민 훈장 동백장 수상
1976. 3. 1 부산 소년의 집 기계 공업 학교 개교(1999년 알로이시오 전자 기계
공업 고등 학교로 명칭 변경)
1976. 5. 16 5 . 16 민족상 교육 부문 수상
1976. 5. 29 뉴욕 포담 대학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 수여
1981. 1. 6 서울 시립 갱생원의 관리 운영 인수
(1999년 수혜 인원:집 없는 성인 남자 2.200명->1996년 7월 1일 '은평의
마을'로 명칭 변경 ->2010.12.29 서울시 이관함)
1981. 5. 10 그리스도 수도회 창설
1982. 6. 29 서울 소년의 집에 12병상의 무료 병원 도티 기념 병원 개원 (2017년 6월 29일 35년만에 폐원)
1983. 8. 30 필리핀 마닐라에서 막사이사이상 국제 협동 부문 수상 1984. 3.1 미혼모의 집 "모성원" 설립 운영(자립 기간 ;2년 부여)
1985. 2. 12 마닐라 대교구장 하이메신 추기경의 초청으로 소년의 집,소녀의 집 사업
필리핀 진출
1985. 7. 15 마닐라 퀘존 인스티튜트에서 결핵 사업 시작
(무료 수혜 환자: 2.000명.1992년까지 계속)
1986. 8. 15 마닐라에서 소녀의 집 개원(1999년 수혜 아동: 3.600명)
1989. 10. 루게릭병(ALS병) 얻음(전신의 근육 신경을 마비 시키는 불치의 병/3년 시한)
1990. 2. 1 교황청으로부터 고위 성직자 "몬시뇰" 칭호를 받음
1990. 8. 23 필리핀 세부 딸리사이에 소녀의 집 개원(1990년 수혜 아동: 3,410명)
1990. 10. 1 한국에서 60회 생일을 맞이함. 축하 미사에 1000여 명의
한국의 소년, 소녀의 집 출신 열매들이 참석
1991. 7. 23 필리핀 카비테주 실랑시에 소년의 집 개원(1990년 수혜 아동: 2.970명)
1991. 9. 마리아 수녀회 영성 지도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다' 출판 -
Governmen lnstitute 출판사
1991. 10. 7 멕시코 찰코시 소년, 소녀의 집 개원(1999년 수혜 아동:3,175명)
1992. 3. 7 '조용히 다가오는 나의 죽음(killing Me Softly)'자서전 원고 탈고
1992. 3. 16 필리핀 마닐라 소녀의 집에서 선종
시신은 처음 가무덤에 안치 되었다가 벨기에 바뇌의 성모님 발현 성당인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경당'을 모방하여, 실랑 소년의 집 구내에
건축한 경당의 제대 아래에 1992년 6월 29일 묻혔음.
무덤 위 성당 바닥에 "모든 영예와 영광과 감사를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에게
바칩니다!"라는 비문이 적힌 석판이 놓여 있음.
위키피디어에 소개된 "알로이시오 슈왈츠 사제"(아래 클릭)
https://ko.wikipedia.org/wiki/%EC%95%8C%EB%A1%9C%EC%9D%B4%EC%8B%9C%EC%98%A4_%EC%8A%88%EC%9B%94%EC%B8%A0
=======================================================================
가경자 알로이시오 사제의 생애를 한눈에 보는 기념 우표
가난한 아이들을 영원히 사랑하신 아버지 신부님(Fr.Al)
평생을 가난하고 청빈한 사제의 삶을 추구 하심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신 경당(위치 ; 필리핀 실랑 소녀의집)



경당 옆에는 2013년 6월 29일(사제서품 받은날,경당에 묻히신 날),
열매,후원자들의 정성으로 가경자 알로이시오 사제의 기념관을 오픈함.


신부님의 생애나 저서,시복 시성 및 마리아 수녀회에 대한 내용은
AL연구소 카페,마리아 수녀회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기도와 더불어 후원의 사랑을 함께 하여 주세요.
|
첫댓글 여기도 인쇄 하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은평의 마을은 2010년 12월29일자로 그만 두면서 사회봉사의 귀감으로 한국부랑인시설연합회장상, 서울특별 시장상, 은평구청장상을 받으며 갖은 찬사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받고 특별히 천주교 대교구장이신 정진석 추기경님의 감사패도 받았답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돌립니다.
위의 가경자 알로이시오 사제의 약력에 해당되는 사진들을 오늘 추가 보완하였습니다.
2016.10.30 위키피디어에 15기 박효준 열매가 올려놓은 "알로이시오 슈왈츠"소개 자료도 함께 참조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