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일 화합의 조직―아름다운 조직 육성을
일체를 기원으로 회원 위한 행동을 21세기 신생 한국 개척자로 성장을
전국의 권 이상 간부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임시 전국본부간부회는 이케다선생님의 역사적인 제주도 방한 소식, 제주대학으로부터의 명예문학박사학위 수여에 대한 자세한 소식을 여러분께 전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다소 갑작스럽게, 또 먼길까지 오시게 한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입니다.이번 이케다선생님의 방한은 지난 90년 〈서양회화명품전〉개막식 참여와 98년의 역사적인 본부 방문에 이어진 세번째의 방한으로 한국 광포사의 빛나는 위업, 쾌거로 기록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이케다선생님을 제주도에 모시고 일체의 행사를 성공리에 마친 후, 부산으로 가 제2차 한일문화친선교류단과 합류해99지구환경예술제의 감동적인 리허설을 함께하고 왔음도 보고드립니다.
영광스런 이번 방한을 되새겨볼 때, 떠오르는 것은 초창기 선배 여러분의 공로입니다. 선배님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의 노고가 없었다면 과연 이러한 결실이 있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지도부님들께 가장 먼저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일체는 회원님들의 끊임없는 기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사료됩니다. 이케다선생님께서도 “한국에 와서 이렇게 학위 수여를 받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 한국 멤버들의 신심과 기원이 대단합니다. 오늘은 비가 오기로 되어 있는데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다 한국 멤버들의 기원 덕분입니다”라고 학위수여식이 있는 날, 감탄과 격려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선 이번 방한의 스탭진은 거의가 제주도 현지 멤버였고 청년부를 주축으로 해서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불교회의 副이사장님, 副부인부장님단 조차 거의 모두가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전국의 간부님께 오늘에야 비로소 이렇게 자리를 마련, 서둘러 보고드리게 되었음을 부디 용서해주시고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끝난 시점이기에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간 신중하게 일을 추진하며 순간순간 아찔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격은 것도 사실입니다. 오로지 회원님들의 기원이 있었기에 일체가 변독위약되어 스승을 무사히 모셨다고 확신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주도와 부산지역 멤버에 대해 커다란 격려와 배려가 있었습니다. 제주도만 해도 금포상이 16명, SGI상이 30명이나 되었고, 부산은 금포상 20명, SGI상 40명 수여가 결정되는 등 전례없는 상을 수여해 주셔서 감사의 마음으로 크게 결의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상을 받으신 분은 더욱 겸허할 것과 이번에 상을 양보하신 분은 진심의 축하로 다함께 복운을 만끽하는 자리로 되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5월 16일에 도착하신 선생님께서는 “제주도는 훌륭한 곳입니다. 감명 받았습니다. 훌륭한 제주도입니다. 좋은 경관, 좋은 도로, 좋은 사람뿐이어서 피곤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사업가가 오는 곳이 아니라 시인(詩人)들이 오는 곳입니다. 경치가 멋있습니다”고 감탄하시며 첫날을 휴식하셨습니다.
5월 17일은 학위 수여식 당일날로써 많은 내빈이 달려와주셨는데 특히 조영식학원장은 이날이 바로 경희학원 개교 50주년의 대 행사가 예정, 더욱이 감기까지 걸린 채였지만 학교행사를 미루고 선생님을 빨리 뵙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일찍부터 서둘러 왔다고 했습니다. 정종택 학장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스케줄을 앞당겨 밤에 제주도로 도착했고, 《중앙일보》김원태 편집주간일행과 《경북매일》의 장송림 사장일행은 3박4일간 취재해 갔습니다. 포항 지역의 도민체전으로 모든 신문에서는 1면 톱에 도민체전 소식을 전했지만 《경북매일》의 장송림사장 만큼은 선생님 학위식 소식을 컬러로 보도, 대단한 결정과 용기, 배짱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장사장은 총영사에게 “왜 KSGI활동을 알리지 않느냐? 올바로 알려야 한다. 내가 이렇게 알고 있는데 池田선생님 같은 애국자를 왜 모함하느냐? 난 신념을 갖고 계속 알려가겠다”는 말을 하기도 해 우리 이상으로 선생님을 바로 알고 구도해 가는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만, 제주대학교에 도착해서 조문부 총장과 가진 회견 자리에서의 이야기는 대단히 주목됩니다. 선생님이 ‘각하’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는 데 대해 조 총장이 “선생님,‘각하’라는 말씀은 너무 황송합니다”라고 하자, 선생님께서는 “일본인에게는 각하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일본인은 어리석고 거만하고 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날, 저우언라이 수상을 병원에서 만났었습니다. 그때 저우 수상은 말씀하시길 “각하 잘 오셨습니다”라고 반겨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민간인이고 젊은 나이였기에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더욱이 저우 수상은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각하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우 수상의 비서관으로부터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저우 수상은 정치가에게는 오히려 각하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제나 민중하고 걸어가시는 선생님이시기에 각하라고 하셨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역시 교육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기에 그럼 선생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라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셨습니다.
드디어 수여식장으로 입장, 뜨거운 갈채속에서의 모두는 가슴 뭉클했고, 선생님께서는 시종 자애가 담긴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참석자 들을 쭉 둘러보셨는데 마치 사진을 찍기라도 하시듯 한사람 한사람에게 눈을 맞추셨습니다.
이미 지상으로 발표되었듯이 송대진 대학원장으로부터 선생님의 약력과 세계평화와 인류문화증진을 위한 업적이 소개되면서 학위 수여취지가 낭독되었습니다. 이후 학위기 수여와 함께 조총장의 식사, 참석 내빈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그 때 정종택 학장은 오늘 참석한 언론인들에게 하는 말이라며“이케다 선생님의 업적을 한국의 전국민에게 알려달라”고 호소하듯 말했고, 그러자 선생님께서 곧바로 일어서 가슴에 손을 대고 경의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답사를 통해 이케다선생님께서는 “일본은 귀국과 우정을 맺고 귀국을 존경하고 귀국의 마음을 배워간다면 평화와 번영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귀국에 대해 오만해져 은혜를 모른다면 일본은 반드시 쇠퇴하고 멸망합니다. 이것이 만대에 걸쳐 생명에 새겨야 할 역사관이며 또 인간의 길입니다”라는 깊은 역사관, 한일 우호의 길을 전망하셨습니다. 아울러 대학교류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올 8월의 창가대의 제주대 어학연수가 발표, 양대학간의 희망찬 미래가 예감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답사에 이어진 관현악단의 연주에 대해 즉석에서“대단한 연주에 감사합니다. 바다의 파도소리, 녹색의 음률, 대지의 꽃과 태양의 빛이 조율된 연주였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멋진 치하를 하기도 했습니다.
학위수여식 후 오후 6시, 제주대 주최의 KAL호텔 만찬회에는 우근민 제주도지사, 제주시장, 김세택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장송림 경북매일사장 등 외부인사가 함께 했습니다. 특히 우 지사는 축사를 통해 “이케다선생님께서 펼치시는 평화지향적인 창가운동은 제주가 지향하는 평화의 섬 선포와도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인연으로 제주도와의 인연이 점점 더 깊어지길 바랍니다”라고 하며 제주대와 창가대의 무궁한 발전을 염원한다고 인사했습니다.
곧 이어진 사모님의 ‘국립제주대학교 최고영예상’수여식은 조문부 총장으로부터 예를 다한 인사말과 함께 건네졌으며 사모님께서는 정중하게 이를 받아드는 모습이셨습니다. 무엇보다 기뻤던 일은 남원국립국악원 지도위원인 박동현씨(壯,副지구부장)가 대금으로 ‘청석곡’을 연주하자 선생님은 식사도 잊으신 채, 빨려들어가듯 완전히 심취된 모습이셨습니다. 또 이어진 경기민요 창이 시작되자 선생님께서는 두 손을 합장하기도 하고 꼭 쥐기도 하시면서 매우 즐겁게 경청하셨습니다. 특히 뱃노래를 할 땐 노젓는 시늉까지 함께해 보이시기도 했고, 재미있었던 것은 창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이 기립박수를 하는 바람에 주위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 것입니다. 한국의 가락에 정말로 기뻐하시는 선생님을 뵈며 저 또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5월 18일에는 선생님이 주최하시는 답례연이 개최되었는데 그날의 축하공연으로 남녀혼성그룹인 ‘더더’의 박혜경(관악권 여자부)씨가 축하공연을 했습니다. 곡명은‘괜찮을거야’와 ‘어머니’였는데 특히 ‘어머니’를 부를 때 선생님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계신 부인들께 손을 내밀며‘여러분의 노래’라는 뜻을 보이셨습니다. 한곡을 마친 박혜경씨는 “선생님. 저는 언젠가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꼭 부르고 싶었는데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부른 이 노래는 제가 가장 어려울 때 선생님의 스피치를 읽고 힘을 내어 직접 작사한 노래입니다”라고 하자 선생님은 가슴에 손을 얹으시고 깊이 목례, 노래가 끝난 후 선생님께서는 꽃다발을 증정하며 “너무 좋았습니다. 어머니께도 안부전해주세요. 지난 97푸른환경예술제 때 뮤지컬에서 활약한 걸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셨고, 사모님께서도“훌륭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세요”라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어김없이 선생님이 떠나시는 19일, 이날은 불교회 대표와 현지멤버, 교류단 일행과의 기념촬영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기념 촬영에서 선생님께서는 “여러분 만나 뵙게 되어 아주 기쁩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21세기 대지도자 여러분입니다”라고 인사하셨습니다. 특히 “여성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서 진실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 주세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또 남성은 사회란 무엇인가 불법이란 무엇인가를 잘 알아서 승리자가 되어 주십시오.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여러분 언제나 언제나 참으로 감사합니다”며 촬영해 주셨습니다.
“오늘의 기념촬영을 새로 짓는 소카대학교의 본부동 어본존 곁에 수납하겠습니다.” 끝으로 “연수도장이 만들어지면 다시 오겠습니다”라는 선생님의 일성에 전원은 커다란 환호를 터뜨렸습니다.
출국을 위해 제주 공항 귀빈실로 들어선 선
생님께서는 조총장에게 “덕분에 최고 권위의 국립대학으로부터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며 진심의 감사를 표하자, 조총장은 “부족한 점 그토록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싸주시고 더욱더 이세상 살아가는 데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인간으로서 인간혁명과 결부해서 살아갈 결심입니다”라는 감동적인 결의를 피력해 놀라웠습니다.
마침내 선생님을 배웅하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선생님 오늘부터 열심히 해서 다시 모시겠습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투쟁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고 말씀드렸더니 “직원 여러분에게도 안부 전해 주세요. 만나지 못한 회원들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한국 여러분이 세계최고의 광포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연수도장이 완공되면 또 오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드디어 선생님이 타신 비행기가 이륙하자, 선생님으로부터 ‘여러분이 손을 흔들고 계시는 모습이 보인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를 전해듣자 모두는 울었습니다. 동시에 새롭게 피어나는 가슴벅찬 투쟁의 맹세를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에 의해 지금 한국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생님을 한국에 세번 모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모셨다는 자부심보다는 그 환희를 생명속에 깊이 새기며 이제부터야말로 더욱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대로 세계제일의 화합의 조직, 아름다운 이체동심의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일체를 기원 근본, 일체를 회원을 위해 행동하는 원점으로 삼아가고자 합니다.
“재재제불토 상여사구생”의 어문 그대로, 언제까지나 스승과 함께 태어나 스승과 함께 살아가는 깊은 숙연의 우리들이기에 지금부터야말로 더욱 스승께 직결해서 스승의 은혜에 보은할 수 있는 21세기를 열기 위해 이 역사적인 방한을 계기로 신생 한국의 개척자로서 모두 성장하자고 말씀드립니다. 연세 많으신 지도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이상 보고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