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수 에피소드
정병경
몸에 탈이 나기 전에는 밖의 세상이 궁금해서 나가고 싶어 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조심하지 않으면 사건이 생기게 마련이다. 조심이란 단어를 보면 마음을 놓치지 말고 꼭 잡고 있으라는 뜻이다. 특히 여행을 가게 되면 방심을 하여 중요한 물건을 분실하는 경우가 많다. 방심이란 단어를 보면 마음을 제멋대로 다니게 놓아둔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면 흔히 실수를 자주 하게 되는데 젊어서는 정신이 맑아 실수가 드물다. 실수는 손을 놓거나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한두 번의 실수는 있지만 자주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요즘 심각하게 대두되는 치매가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아마 실수에 대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라고 하면 코디미 수준을 능가할 것이다.
나는 40대 때 여행을 가면서 공항 출국장에서 소지품을 검색대 바구니에 그냥 놓고 여권 심사만 받고 나온 적이 있다. 탑승구로 막 나가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기에 돌아봤더니 검색원이 헐레벌떡 쫓아오는 것이었다. 지갑이 든 손가방과 점퍼와 소지품을 건네받고 한숨을 돌린 추억이 있다. 신분을 확인할 단서는 단지 약봉지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여행갈 때는 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 또 심각한 일이 벌어졌었다. 체육 센터에 지프차를 주차하고 서예 공부를 마친 후, 그냥 걸어서 집에 왔다. 1개월 간 잊고 있다가 차를 쓸 일이 있어 찾아 헤맨 적이 있었다. 관리 사무소 CCTV까지 확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의 실수였다. 1개월간의 장기 주차비를 납부하고 차를 가져온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있었다. 한심한 나!
충청도에 사시는 장인, 장모께서 몇 년 전에 마을의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공항출국장에서 여권을 펼쳐 보셨다가 기간이 지난 여권이여서 여행을 못 가시고 되돌아오신 적이 있었다.
김헌길 사장과 함께 오래 전에 괌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바다 수영을 나갔는데 여권과 지갑이 든 바지를 바닷가 벤치에 벗어 놓고 호텔에 들어와 낮잠을 잤다. 그다음은 상상만 하는게 좋을 듯.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꺼내 놓으면 머쓱해진다.
몇 년 전에 일본 오사카 갔을 때의 일이다. 아침식사 중에 날계란을 삶은 계란 인줄 알고 이마에 대고 깨뜨렸는데 머리와 얼굴과 옷에 흠뻑... 껄껄껄!
아침도 못 먹고 다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느라 난리를 겪었던 김 사장! 지난 해에 중국에서 마사지 받을 때 입었던 추리닝을 입은 채 그 위에 바지를 입고 귀국했다고 자신의 심각성을 털어놓는다. 참 딱하다!
며칠 전에 마츠야마에 가서는 계란을 젓가락 끝으로 콕콕 눌러 구멍을 냈는데 삶은 계란이었다. 먼저처럼 실수 안하려고!
계란 하나가 이렇게 많은 세월을 두고 웃음을 줄 줄이야. 실수를 줄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치매 단계는 아닌 듯하다.
흑인과 백인은 조물죽 착색을 잘못한 실수 같지만 어찌 보면 동서양의 인종을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토끼가 실수로 넘어져 죽는 모습을 본 농부가 밭을 갈지 않고 토끼의 실수가 반복되길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 ‘수주대토(守株待兎)’가 있듯이, 어느 동물이나 한 번 정도의 실수는 있게 마련이다.
지난 주에 내가 마츠야마에 간 날 전용한 사장님은 딸을 만나러 터키를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있다가 나와 만났다. 아파트 경비실에서 경비에게 전할 메모를 남기면서 내려놓은 여권과 소지품이 든 가방은 그냥 두고, 몸만 와서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발견해 탑승 1분 전에 휴대폰으로 급히 연락이 와서 다행히 찾아갔는데, 큰 낭패를 면한 현장을 내가 직접 목격했다. 전용한 사장은 여행갈 때 아마 아파트 경비실만 지나면 긴장하며 웃음을 지을 것이다.
자질구레한 실수는 무수히 많았다. 오늘 이후에 또 어떤 큰 낭패를 보는 실수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위험한 실수는 건망증의 단계를 넘어선 치매로 진입하는 수준일 듯하다.
그래서 나는 위험한 실수를 면하기 위해 매일 천자문과 경전을 외우며 뇌를 운동시키고 있다.
2.아버지 떠나신 후
나를 길러주신 아버지께서는 표현은 쉽게 안 하셨지만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가을이 되니 문득 아버지와 이별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객지 생활 50년이 넘도록 경상도 사투리는 바뀌지 않으셨다. 자그마한 체구지만 일은 큰사람 몫을 다하셨다. 고향인 경북 경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경기도에 우연찮게 오셔서 보금자리를 만든 것이 나와 형제들에게는 고향이 된 것이다.
남다른 학벌이나 재능이 없으시니 농사가 천직이 되어 7남매를 부양하는데 적잖이 몸고생을 하셨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고통과 좌절만 남았을 뿐, 유감스럽게도 넉넉함이라곤 반 푼어치도 없이 가난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러나 단 한 푼어치도 불만이 없으셨다. 형제 중 가운데 남동생이 어느날 세상을 등진 것이 옥에 티였다.
곡식 농사는 농부가 노력한 만큼만 댓가가 오는 것이라며 절대 요행을 바라지 않으시고 열정으로 농사를 지으셨다. 중년을 넘기면서 친구가 된 술과 담배로 인해 회갑 무렵부터 간에 이상 신호가 왔다. 칠순을 넘기면서 간암 판정을 받으셨는데 술과 담배는 적이었다가 동지였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당시 의술로는 치료가 불가하다 하여 3개월의 판정이 내려졌다.
40여 년 동안 정이 든 옛집에서 새집으로 이사하려고 서둘러 마무리 공사를 하는 도중, 완공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로 옮겨지셨다. 보름 남짓 입원하시고 2002년 9월, 아버지는 가족과 마지막 작별을 나누셔야만 했다.
떠나시기 전에 이사할 집 텃밭에 심을 씨앗까지 준비하시고, 대문에 걸 문패까지 닦아 놓으셨지만 행복한 꿈은 허사였다. 77년을 살아오신 아버지는 "이만큼이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남겨질 가족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염려하셨다.
삼우제날 묘지 잔디 위에 가랑비가 촉촉이 내렸다. 그 비는 아버님의 눈물이었을까. 하늘이 내린 술이었을까? 퇴계 이황은 좌우면에서 술을 이렇게 탓한다.
아아, 술이여! 사람에게 혹독하게 화를 끼치니
장을 썩게 하여 병이 나게 하고
본성을 어지럽혀 덕을 잃게 하는구나 (하략)
누구보다 아버지가 술과 담배를 못 하시게 말리던 둘째 아우가 명절 차례나 기일 제사상 종헌 무렵에 담뱃불을 올린다. 너무 심하게 간섭했던 것이 미안스러워서일 것이다.
서쪽 하늘에 마차처럼 생긴 구름이 평토제 끝날 때까지 멈추어 있던 기억이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머리에 떠오른다. 무엇을 싣고 가시려고 하셨는지...
<당선소감>
정병경
용감하고 씩씩하다 보면 얻는 일도 생기는 법이다. 수필집을 내기 위해 원고를 정리하는 사이에 문복희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화백문학에서 작품을 모집하는데, 신인문학상에 도전을 해 보라는 제안이었다. 내놓을 작품이 크게 변변치 않아서 망설였다.
문학인은 씩씩해야 소득이 있는 것이라며 용기를 주셨다. 그동안 한 편씩 써서 모아 놓았던 작품 중에 6편 정도를 용감하게 내밀었다. 여러 날 후에 심사가 끝나고 연락이 왔다. 2편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마음이 설레며 내가 내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 시대에 많은 문학도들이 도전하고 좌절하면서도 문학의 문을 두드리는데,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해 본다면 대열에 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 문복희 교수님과 화백문학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마음을 글로 전한다. 모쪼록 좋은 글을 써서 보답하는 문우가 되도록 열심히 갈고 닦을 것이다.
<약력>
경원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시조생활사 제55회 신인문학상 수상. 세계서법문예대전 서예부문 입선
경기서화대전 및 초대작가전 삼체상 수상, 한자교육추진연합회 지도위원
한국식물화가협회 회원, 초우문학회 이사 및 작가회 회원
시조동인지, 한진모터스 대표, 화백문학 36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