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스키장 가는길...
Mt. Hutt 스키장을 아십니까? 한국에선 훗 스키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선 핫 이라고 한다. 최고 높이 2,075m 표고차 672m 스키장 면적 365 헥타아르 개장 시기는 6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뉴질랜드 스키장엔 야간스키가 없다. 왜? 돈도 없고 전기도 없고 사람도 없으니. 퀸스타운의 코로넷 피크 스키장만이 야간스키를 개장한다. 그나마 주말에만. 그리고 스키장 올라가는 길이 무섭다. 장난이 아니다. 아스팔트가 아닌 맨 도로에 절벽 길을 가야 하는데 누가 그런다. 목숨 걸고 간다고…이것도 유일하게 코로넷 피크에만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그 흔한 도로변 가드레일이 뉴질랜드엔 별로 없다. 그래서 과보호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들은 질겁을 한다. 전에 어떤 미국 교포가 관광 와서는 달리는 절벽 길에 놀래서 그날 밤 잠도 못 잤다고 했다. 그렇지만 난 단련이 되었는지 좋기만 하고 그럴 때마다 한국 사람들 흉을 본다. 여기선 모두들 아무소리 안하고 잘만 산다고…
그렇지만 마운틴 핫 스키장의 올라가는 길을 쨍 한 날 가게 되면 이건 거의 알프스 수준이다. 아니 히말라야라고 해도 될 거다. 그리고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가장 가까운 Porter Heights 스키장은 꼭데기가 채 2.000미터가 안 되는데 맑은 날 거기 정상에서 보는 이곳 뉴질랜드 써든 알프스 산맥의 경치는 거의 죽어도 좋을 정도이다. 그렇다고 죽으면 안 된다. 눈이라도 살짝 뿌린 날 스킹을 하게 되면 한국에서 회자되는 파우더 스킹이 되니 말이다. 그걸 미끄러져보고는 죽어도 좋다. 여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어야 한다.
말이 좀 빗나갔다.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지난 토요일 오후스키를 타기 위해서 이곳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한 시간이 오전 11시쯤 되었다. 같이 간 청춘들은 고등학생 하나 중학생 하나. 이곳 날씨가 변덕이 심하고 특히 스키장은 고산에 위치한 관계로 여차하면 리프트 가동을 중단하는데 그날도 가까운 포터 하이츠는 Closed, 그래서 할 수 없이 멀지만 핫 스키장으로 가게 되었다.
핫 스키장에서 좀 탄다는 사람들은 거의가 일본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다. 중국 애들은 아직 스키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후 리프트 가격이 어른은 47불 학생들은 25불이다. 원화로 계산하면 만만찮은 가격이 되는데 여기는 그 흔한 할인권이란 게 애시당초 없다. 같이 간 애들이 초자들이어서 얘네들하고 초보코스에서 몇 번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나 혼자 다른 코스로 이동을 했다. 뉴질랜드 남섬은 산에 나무가 없는 관계로 꼭데기 쪽으로만 올라가면 산 전체가 슬루프가 된다. 그리고 이눔들은 잘 정돈된 길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길을 즐긴다.
그때 시간이 폐장을 시간 반쯤 남겨놓았는데 슬금슬금 남극의 똥바람이 불어오더니 급기야 3명씩 타는 리프트 가동을 중지시키더라. 그래도 한국에서는 예전에 사라진(사실 난 구경도 못했다) T-bar 만큼은 가동을 해서 마치 한국같이 줄서기를 10분씩 하면서 줄기차게 스키를 탔는데…결국 우려했던 대로 오후 4시 마감시간을 20분쯤 남기고 모든 리프트가 스톱을 했다. 스키장 문을 닫은 것이다.
그때 우리가 빨리 스키장을 빠져 나왔어야 했는데 데리고 갔던 초자들 스키를 반납하느라고 시간이 지체되었고 4시 좀 넘어서 귀로에 오르는 순간 아뿔싸! 스키장 측에서 내려가는 도로를 막아버렸다. Blizzard라는 남극의 똥바람이 불어 닥친 것이다. 스키 탈 때부터 바람이 심상찮아서 내 앞에 줄 서있던 마른 백인 아가씨가 바람에 쓰러지곤 했는데 이번 바람은 주차장의 차들이 덜썩 거리면서 날아갈 거 같은 바람이 불어 닥쳤다.
이러다 그치겠지…그러면서 아무 생각 없는 청춘들과 차 안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이번엔 눈보라까지 몰아치는 게 아닌가?…와아 무섭다…이거 정말 심하군 내가 동계 서북주능 할 때 이런 바람이 불었었지…아니 이건 히말라야 제트기류같아…등등 산에서 이런 게 닥치면 죽는 건데 지금 우린 차 안에 있으니 참 좋다 그지?…그러던 차에 스키장 측으로부터 스키장 내의 카페로 대피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 당시 우리처럼 늦장 피다 못빠져나간 불쌍한 동포들이 450명쯤 되었다고 한다. 우린 별수 없이 스키장 내의 카페로 들어갔다. 그때의 시간이 5시정도 저녁시간이 되어가고…스키장 측에선 우리에게 저녁을 제공했다. 감자 칩 한 컵과 썰어서 구운 감자튀김 한 컵 그리고 커피나 콜라 등의 음료 한 컵.
한 줄로 쭈욱 서서 공짜 음식을 제공받는 사람들의 얼굴엔 걱정도 근심도 안타까움도 놀라움도 하나도 없다. 그런 거 보다는 그냥 재미있다 즐긴다 뭐 이런 얼굴들. 한국 같으면 이 많은 사람들 밥 주는 것도 큰 문제일텐데 얘네들은 감자 하나로 끝나니 참 간편하다는 생각. 이렇게 배급 받는 사이에 스키장 측의 대표가 탁자 위에 올라가서 상황을 설명한다.
내일아침까지 바람이 분다더라… 안전해지면 도로를 개방한다… 화장실은 어디를 이용해라… 누가 의료를 담당한다… 일본인 통역은 누구다… 한국 사람 통역해줄 사람은 없냐?…(아! 내 실력은 아직…) 등등
체계적이다. 이눔들이 우리처럼 민방위 훈련을 한 것도 아니건만 우왕좌왕 허둥지둥 난리법석 뭐 이런거없이 좌악 해나가는걸 보면서 난 그래 이런 게 백인들의 힘이고 뉴질랜드의 힘이다…이런 생각을 했다. 한차례 배식이 끝나고 더 먹을 놈들 줄 서서 더 먹고 커피도 더 먹고 뭐 그런다. 공짜지만 그 숫자는 체크를 하는데 왜 하는지는 모르겠다. 국가에 그 금액을 청구하는 건 아닌지 몰따.
카페 식탁은 이미 자리를 모두 차지해 버려서 우린 아래층에 있는 렌탈 하우스 긴 의자에 앉아서 청춘들은 가지고 온 책들을 보고 난 지나다니는 사람구경을 했다. 가족단위로 오다 보니 출발이 늦어버린 사람들이 많았고 또 사람들이 모두 모여야 출발하는 버스 승객들이 많이 보인다. 모두들 이제 저녁을 먹었으니 잠자리 준비를 하는지 차에서 옷도 가져오고 왔다리 갔다리 한다.
백인 들은 아무 곳이나 잘 주저 앉는다. 잔디 문화 풀밭 문화여서 그런 게 아닌가 하다가도 전에 일본 갔을 때도 도로가 아무 바닥이나 잘 앉는걸 보고 음…선진국이란데가 이런 특징이 있구만 그랬는데 지금 내 눈앞의 광경도 그런 형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지구상에 한국사람 들이 가장 깔끔을 떨지 않나 싶다.
그러다가 8시쯤 다시 사람들을 2층 카페에 모이게 하더니 지원자를 뽑더라…아마 바람이 좀 약해졌나 보다. 일단 10대정도 차를 내려 보내고 이상이 없으면 모두 내려간다는 내용이다. 나하고 같이 간 청춘들의 들은 내용까지 종합하면 그랬다. 이럴 땐 내가 나가야지 암…대한의 남아가 이럴 때 빠지면 안되지 그랬는데 내 차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차장 맨 끝에 있어 적합하지가 않았다. 연설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이 와중에도 농담도 하고 마치 지가 영화에 나오는 영웅이나 된 거처럼 느끼는거 같두만…
이렇게 선발대가 눈보라를 뚫고 간격을 맞추어 나가고 우린 2층 창 너머로 그 광경을 봤다. 내 나라 대한민국엔 이런 류의 사건이 있을리도 없고 내려가지 마라고 해도 우짜던지 내려가는 사람들이 나올 거고 모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 서로 차지한다고 시끌할거고 등등…조금은 착잡한 마음으로 얘네 들의 대응방법을 봤다. 그리고 1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다시 식탁에 올라간 스키장 대표가 이야기 한다.
선발대가 무사히 산을 내려갔다…(환호성) 나머지도 내려간다…(환호성) 스노 체인을 갖추고 체인은 우리 스키장 스탭이 지시하는 곳에서 푼다…(환호성) 아직도 똥 바람이 많이 부니 차간 간격을 좁혀서 내려가라…(환호성) 이 역사적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겠다 모두 손을 들어달라…(와~ 제일 큰 환호성)
자연재해의 어려운 순간을 이렇게 헤쳐나가는, 오히려 즐기는 것 같은 이눔들은 무엇인지…약이 올랐다. 잘난 척 하는 놈도 없고 잘 나 보이는 놈도 없고... 우리는 왜 이렇게 하질 못하나 그러면서 말이다. 스키장 직원들이 고생했다. 대부분 아르바이트나 한시적 직원이지만 지들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또 여기 눈은 한국 눈과 달라서 습설인 관계로 옷에 닿으면 다 녹아 버린다. 소나기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많은 담당자들이 홀라당 옷을 버리면서 열심히 차들의 진행과 출발을 도와준다.
그러고 보면 오후 4시부터 출발하는 10시까지 6시간 정도 우리는 마운틴 핫 스키장에 갖혀있었고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는다. 웃기는건 크라이스트처치엔 빗방울 하나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 비록 스키는 별로였지만 우리의 빛나는 청춘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칼 하나를 심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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