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코스(거진항~통일안보공원) 11.8km
해파랑길 49코스는 거진항~거진해맞이공원~화진포해변~대진항~통일안보공원에 이르는 코스로 거진해맞이공원에서 해파랑길의 마지막 산길을 걸어 응봉에 올라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고 화진포해변으로 내려와 화진포호수와 김일성, 이기붕,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을 둘러보고 초도항과 최북단의 대진등대, 마차진해변을 거쳐 통일안보공원에 이르는 11.8km의 길이다.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 경치를 즐기는 일은 좋은 일이 틀림이 없다, 특히 무아의 지경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경치는 더욱 그럴 것이다, 무엇을 본다는 생각이 없이 보고, 느끼고 감성에 빠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극치일 것이다. 거진해맞이공원을 오르는 가파른 데크계단을 오르며 쉬엄쉬엄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하며 뒤돌아보는 풍경은 가히 극치라고 말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힘겹게 거진항의 등대공원에 오르니 숨은 턱까지 헐떡거리지만 경치 하나는 정말 죽이는 풍경이다.
해파랑길 마지막 코스 49코스와 50코스 통일전망대를 만나러 가는 날인 오늘은 가을하늘이 풍만한 천고마비의 계절은 간데없고 갑자기 내린다는 가을장마 소식에 염려하며 떠나는 2022년 10월 2일~3일 황금연휴 날이다, 매월 1~2코스씩 부산 오륙도에서부터 올라온 해파랑길이 이제 최종 코스에 들어서자 그간의 여독을 풀어보자고 1박2일 코스로 마지막 코스에 도전하는 오늘은 2022년 10월 2일이다, 이제 남은 거리는 23.5km 중 49코스 11.8km를 2일에 걷고 남은 11.7km의 50코스 중 차량을 타고 들어가야 하는 거리를 빼면 통일안보공원에서 제진검문소까지 약 5km 정도를 마지막 날 걷게 되는 것이다.
점심식사를 위해서 지난 코스에 찾아와 사전 파악을 해 놓은 제비호식당으로 회원들을 인솔한다, 이 곳은 TV 맛기행에서 2번씩이나 방영된 맛집이라 예약을 하지 않고는 많은 인원이 식사를 할 수가 없다, ’시장이 반찬이다‘ 하지만 생선조림과 지리를 전문으로 하는데 맛이 일품이다, 모두가 칭찬이 일색이다, 맛있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이동하여 거진항을 한 바퀴 돌아 커다란 글자로 “거진미항”이라고 쓴 가파른 데크를 올라간다, 산 위에 등대가 가을 햇빛을 받으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거진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거진항~통일안보공원까지는 여러번 찾아왔기에 이전 여행 때의 길이 훤하게 보이는 것 같다, 하얀 등대를 지나고 오솔길을 따라 정자에 이르면 산림헌장이 서 있다.
“숲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과 기름진 흙은 숲에서 얻어지고,
숲온 생명의 활력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숲에서 비롯된다, 꿈과 미래가 있는 민족만이 숲을 가꾼다,
이에 우리는 풍요로운 삶과 자랑스러운 문화를 길이 이어가고자 다음과 같이...(후략)”
한자(漢字)로 숲은 림(林)과 삼(森)으로 쓴다, 우리 한글의 숲자는 꼭 숲과 같이 생겼다, “책에서 보다 숲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후략)..... 처럼 결코 배울 수 없는 것을 숲은 가르쳐 준다” 라는 말처럼 숲은 우리의 스승이다, “이 땅은 조상들에게 잠시 빌린 것이고 다시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으로 조상에게 잠시 빌린 것이다.” 라는 인디언의 격언이 떠 오른다, 잘 꾸며진 공원 능선에 반갑게도 예전에도 있던 12지신상의 장승과 석탑들이 긴 세월을 견디며 서 있다, 해맞이공원을 지나 묘지가 있는 숲속을 지나고 “해맞이산소길”을 따라간다.
군사용 도로와 함께 쓰는 산길을 걷고 또 한참을 지나 차도를 건너 화진포해변이 한눈에 보이는 해발 122m의 응봉에 선다, 예부터 화진포호수 동쪽에 위치한 높은 산이 매가 앉은 형상과 같다, 하여 매“응”자를 써서 “응봉(鷹峰)”이라고 불렀다, 는 표지석이 있고 ‘해발 122m, 화진포소나무숲삼림욕장, ’응봉‘이라는 표지석도 있고 옆의 전망대에서 오른쪽 화진포해수욕장과 왼쪽의 화진포호수가 내려다보인다, 바다와 호수가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이곳에서 북녘을 바라보면 멀리 금강산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관동팔경의 제1경이라는 총석정이 있다는 삼일포해변이 아스라이 들어온다.
화진포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지만 10여년 전에 2차례씩 왔던 여행 때와는 다르게 내려가는 길이 한결 편해졌다, 중턱까지는 데크와 계단이 조성되어 무리없이 숲길을 따라 화진포로 내려선다, 화진포는 둘레가 16km나 된다는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 화진포 호숫가에 꽃 중의 신선이라는 해당화가 많이 피어 경관을 아름답게 한다, 하여 ’꽃화(花)‘ 자를 써서 이름을 화진포라 한단다. 화진포로 내려서는 막바지에 “역사안보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된 김일성 주석이 머물렀다는 김일성 별장과 이기붕 부통령 별장, 이승만 대통령 별장을 차례로 둘러본다, ’화진포의 성‘은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했다는 캐나다 선교사의 별장이었다, 1938년 독일 건축가가 독일에 있는 성을 그대로 본떠서 지었다고 하여 ’화진포의 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1948년 8월에 김일성 주석 일가가 다녀간 뒤로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고 있고 김정일의 어릴적 사진도 계단에 걸려있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화진포호수의 다리를 건너 야트막한 언덕 호숫가에 있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화진포에 놀러 왔다가 풍광에 반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 이후 화진포를 되찾자 이곳에 별장을 지었다, 해당화가 모두 지고 앙상한 가지에 간혹 붉은 열매만 볼썽사나운 해당화를 지켜주고 있는 호숫가를 따라 걷다가 호수와 바다를 이어주는 개천을 만나 배모양의 “화진포화진포해양박물관”에 들어갔다가 이정표를 따라 해안가로 가니 금구도가 바다 가운데 외로이 떠 있다, 섬 한가운데 자라는 대나무숲이 가을엔 노랗게 변해서 섬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어 금빛거북, 금구도(金龜島)라 한다, 신라시대 수군기지로 해안을 지키던 석축이 일부 남아있다고 하며, 광개토대왕 3년(394년) 8월 거북섬에 왕릉축조를 시작해 광개토대왕이 세상을 떠난 2년 뒤인 장수왕 2년(414년)에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화진포 앞 거북섬에 안장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지린성에 있는 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역사는 보고 있다고 한다.
밤송이 같은 검은 성게가 수북이 쌓여있는 초도항을 지나서 동해 최북단 항구인 대진항에 이른다, 하얀등대와 빨간등대가 시야에 나타난다, 하얀등대는 ’항로 왼쪽에는 암초 등 장애물이 있으니 오른쪽으로 다니고, 또 배가 부두에 접안할 경우 부두가 오른쪽에 있다는 표식이란다.‘ 빨간등대는 그 반대의 경우이고, 노란등대는 해상을 주의하라는 신호란다. 주변철책이 가로막고 있는 해안가 도로를 걷는다, 해안가 철책은 우리나라 해안에 많이 설치되어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었는데 지금은 거의 철거되고 휴전선 인접 지역에 일부만 남아있다, 예전의 방문 때는 철책 넘어 해수욕장을 들어가 보지 못해 안타까웠으나 격세지감이 몰려온다. 해안길을 따라 걷자니 좌측으로 대진등대가 보인다, 대진등대의 불빛은 12초마다 깜빡이며, 약37km 떨어진 해상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대진등대는 어로한계선을 나타내는 도등의 역할도 수행하며, 동해안 최북단 무인등대인 저진도등을 원격관리한다고 한다, 저진도등은 두 개의 등대를 연결하는 선이 어로한계선을 표시한다고 한다.
대진항과 대진등대를 지나니 오늘의 목적지 ’금강산콘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어 한산하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코로나-19로 짓눌렸던 심신을 풀어보려고 찾아온 나들이객의 차량으로 주변은 만원이다, 내일 아침에 비라도 온다면 젖은 몸을 한동안 추슬려야 한다는 판단에 통일안보공원까지 가서 인증스템프를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와 방 배정을 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버스로 대진항으로 이동하여 그간의 회포를 풀어가면서 싱싱한 생선회와 맛깔스러운 매운탕으로 신나는 식사를 한다, 물론 알코올이 빠져서는 안되는 일이였지만 그 알코올이 다음날의 지장이 있어서는 않되는데...., 다시 버스를 이동하여 숙소로 돌아와 창문을 열고 어둠이 짙게 깔린 마차진해변을 바라보니 예전의 마차진해변은 찾아볼 수 없는 황홀한 야경을 감상하며 잠시 회상에 젖어본다,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다른 마니아들은 40일, 50일에 해파랑길을 완주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3년이라는 긴 세월을 동해안과 함께하며 어려운 코로나-19 감염병을 극복해 왔다, 모두가 직장에 매인 몸이니 오랜 시간 일터를 비울 수 없기에 매월 1~2회씩 장장 35개월 동안 해파랑길을 걸어온 것이다. 내일이면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꿈나라로의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