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저는 이상욱 신부가 ‘노동자 요셉’으로 축일을 5월 1일로 지내기에, 성모성월 첫날 축일인 것을 부러워했었는데요, 생각해 보니 저는 예수성심성월 첫날이더라고요. 그래서 안 부럽습니다.
저는 성남동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어머니 말씀 들어보니 세례를 주신 파리외방전교회 오일복 요한 신부님이 ‘유스티노’로 세례명을 정해주셨다고 합니다. 저의 생일과 축일이 가깝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정하셨는지 늘 궁금해하다가, 신부님께 직접 여쭤봤더니,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부제 때 영성지도를 해 주신 파리외방전교회 서봉세 신부님께서 “세례명을 누가 지어줬나” 물으시기에, “오일복 신부님”이라고 했더니 서신부님께서 “오일복… 이 새끼…” 그러시기에 깜짝 놀라서 “왜 그러시느냐”했더니, ‘너무 좋은 세례명’이라면서, ‘유스투스’가 ‘똑바른’이란 의미인데, ‘하느님의 뜻과 너의 뜻이 올곧게, 똑바로 가는, 그런 의미’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유스티노 성인은 기원 후 100년 경 태어나셔서 165년에 순교하셨는데, 진리에 이르기 위해 철학자가 되었지만, 철학으로는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성모님을 ‘새로운 하와’라고 부른 최초의 교부가 유스티노입니다. 유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녀였던 하와가 뱀의 말을 잉태하여 불순종과 죽음을 가져왔지만, 처녀이신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을 잉태하여 순종과 생명을 가져오셨다.”
또한 20세기에 칼 라너 신부님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학설을 발표했는데요,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줄 모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서,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1,900년 전에 이 이야기를 먼저 하신 분이 유스티노 성인입니다. 유스티노 성인은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씨앗인 로고스가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사람들도 로고스를 따라 살았으면 그리스도인”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유스티노 성인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로마 총독 앞으로 끌려갑니다. “제신들을 믿고 제왕들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에 유스티노는 ‘마침내 마주한 진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온갖 교설을 알아보려고 노력한 후 마침내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오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그러자 총독은 말합니다. “이 불쌍한 녀석아, 그게 바로 네가 신봉하고 있는 교설이란 말이냐?”
저는 이 말이 참 좋더라고요. “이 불쌍한 녀석아” 세상 사람들은 잘나고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야, 이 불쌍한 녀석아”라는 말을 들어야 올바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본기도에서도 “하느님, 복된 유스티노 순교자에게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지혜를 깊이 깨닫게 하셨으니”라고 기도했습니다.
존경하올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의 선종 소식에 며칠간 마음이 계속 아픈 것이 사실입니다. 어제 몽골에서 봉헌된 장례미사에 가셨다가, 사랑하는 동생을 이역만리에 묻고 한국으로 돌아오셔야 하는 형님과 누님들의 심정이 어떠실까 생각하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저 사람이 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일했는지 이해되지 않고, 불쌍한 사람, 가련한 가족들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김성현 신부님은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이라는 생각이 어젯밤 강하게 들었습니다. 아프리카 차드에 가셨다가 5년 만인 2004년, 병으로 돌아가셔서 그곳에 묻히신 성심수녀회 허성녀 수녀님을 비롯하여 선교지에서 당신 자신을 바친 선교사들은 지금도 많이 계십니다. 우리가 일일이 알지 못할 뿐입니다. 그분들 모두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께서 데려가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봉헌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교라는 것 자체가 체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이고, 사제직 역시 그러합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고 목숨까지 바친, 많은 익명의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진리이신 주님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신 수 많은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 불쌍한 녀석아, 그게 바로 네가 신봉하고 있는 교설이란 말이냐?”
첫댓글 감사합니다 신부님
자신을 생각하게 되는 깊은 울림 으로 다가옵니다
신부님의 축일을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올려주시는 말씀 기쁘게 읽고 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더불어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강론을 읽고 생각해보니
하느님 품에 가신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과 박해 때 한국에서 순교하신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 그리고
순교 선조들 특히 이름조차 남지 않은 들꽃같은 무명의 순교자들의 모습이 겹치는 느낌입니다.
우리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흉내라도 낼 수 있기를 기도로 청해봅니다.
https://youtu.be/T6cDLr_y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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