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法無性無分別하면 此人善入諸佛智라
法性徧在一切處와 一切衆生及國土하며
三世悉在無有餘호대 亦無形相而可得이로다
법은 성품도 없고 분별도 없음을 알면
이 사람 모든 부처님의 지혜에 잘 들어가리라.
법의 성품 온갖 곳에 두루 있으며
일체 중생들과 여러 국토와
삼세에 모두 있어 남음 없지만
그래도 그 형상을 얻을 수 없도다.
▶강설 ; 법의 성품은 고정된 실체가 없으면서 온갖 곳에 두루 하다. 그와 같은 이치를 아는 사람은 곧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간 사람이다. 법의 성품이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두루 하더라도 어떤 형상도 찾을 수 없다.
一切諸佛所覺了를 悉皆攝取無有餘하야
雖說三世一切法이나 如是等法悉非有로다
일체 모든 부처님이 깨달은 것을
모두 다 남김없이 다 거두어
삼세의 일체 법을 비록 설하나
이와 같은 법은 하나도 있는 것이 아니로다.
▶강설 ; 부처님은 평생을 통해서 그 많은 법을 설하고도 “나는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시고 일체 존재의 존재원리를 무수히 설하셨다. 그것도 과거 ·현재·미래의 일체 법까지 설하셨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법은 하나도 있는 것이 아니로다.”라고 하였다.
如諸法性徧一切하야 菩薩廻向亦復然하니
如是廻向諸衆生하야 常於世間無退轉이로다
모든 법의 성품이 일체에 두루 함과 같이
보살의 회향함도 또한 다시 그러하니
이와 같이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여
항상 세간에서 퇴전함이 없도다.
▶강설 ; 모든 법의 성품이 온 우주 법계에 두루 한 것과 같이 보살이 온갖 선근을 닦아서 다시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는 일도 또한 그와 같다. 즉 법계 그대로가 선근을 닦음이며, 선근을 회향함이다. 즉 법계선근 법계회향이다. 우주적 참 나를 깨달은 보살은 이렇게 선근을 닦고 이렇게 회향한다. 이러한 회향에 어찌 중단이 있으며 퇴전이 있겠는가.
화엄경 80권 중 무려 3권반이나 되는 길고 긴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의 법문이 이제 끝이 났다.
불교의 전반을 살펴보면 보시에 대한 가르침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화엄경은 오로지 보살행을 권장하는 가르침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살행은 무엇으로 표현되는가. 그것은 보시며, 나눔이며, 회향하는 일이다. 제6회향에서는 60종의 보시를 들고 그것을 다시 회향하는 내용으로 일관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불법은 무엇을 보시하든 보시하는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보시가 없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돈을 벌어 재산을 모으든 공부하고 수행하여 쌓은 덕행도 자신이 쌓은 수행을 보시하고 나누자고 하는 일이다. 만약 일생동안 공부만 하고 나누지 못하면 그것은 일생을 그르친 삶[誤平生]이리라.
(화엄경 강설 28 끝)
불교의 전반을 살펴보면 보시에 대한 가르침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화엄경은 오로지 보살행을 권장하는 가르침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살행은 무엇으로 표현되는가. 그것은 보시며, 나눔이며, 회향하는 일이다. 제6회향에서는 60종의 보시를 들고 그것을 다시 회향하는 내용으로 일관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불법은 무엇을 보시하든 보시하는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보시가 없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돈을 벌어 재산을 모으든 공부하고 수행하여 쌓은 덕행도 자신이 쌓은 수행을 보시하고 나누자고 하는 일이다. 만약 일생동안 공부만 하고 나누지 못하면 그것은 일생을 그르친 삶[誤平生]이리라.
(화엄경 강설 28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