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81
대한민국 정치 인식, 그 박학한 무지와 무지한 박학
“처음에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에. 다음은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홀로코스트 추모관에 새겨진 독일 루터교회 목사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에밀 마르틴 니묄러(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의 시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침묵이 홀로고스트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견해?’ 딱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저 니묄러 목사의 시와 같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서도 유독 ‘정치’ 두 글자만 나오면 마치 득도하려는 스님처럼 묵언수행이다. 새 까먹는 소리라도 중얼거려야 정치는 변한다. 이 나라를 움직이는 가장 우듬지가 정치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나는 무지하다는 사실 이외에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크라테스의 박학한 무지의 실천궁행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푸틴과 트럼프 경고에도 우크라 참전 만지작” “‘김 여사 특검법’ 세 번째 거부권 행사…민주화 이후 최다 기록” 기사가 나와도, “윤석열 정권 2년 반 동안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끝을 알 수 없는 무능, 대통령과 그 가족을 둘러싼 잇따른 추문과 의혹으로 민주공화국의 근간이 흔들리고 민생이 파탄 나고 있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과 함께 현 정부의 다음과 같은 국정 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는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 줄을 잇고, 사제들조차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외쳐도, 민주주의가 전체주위로 후퇴해도, 침묵으로 일관해야 한단 말인가? “당신이 정치에 무관심하다 해도, 정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 찌(Aung San Suu Kyi)의 삶을 그린 영화 <The Lady>에 나오는 대사를 되새김질해 보았으면 한다.
또 한 부류는 오로지 ‘내 말은 맞고 너는 틀리다’이다. 전지전능한 정치신이라도 된 듯이 모든 것을 다 안다. 이 역시 무지한 박학일 뿐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생산하는 컴퓨터에서 유사한 어휘만 모이게 작동하는 알고리즘만 철석같이 믿는 꼴이다. 비행기를 예정된 경로와 고도로 항행하기 위한 자동항법장치가 작동하는 언론만 본 정치적 견해이다.
이를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 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인지 편향의 한 학설이다. 능력 없는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지만 능력이 없기에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리지 못하는(반대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많이 알기에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나을 거라 여겨 위축된다) 현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능력이 없는 사람 쪽이다. 이 사람들은 환영적 우월감으로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해 다른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곤경에 처한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벌건 대낮에 저급한 토론 실력과 수준 낮은 정치적 견해를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까지 높이는 이들을 보면 참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런 무지한 박학을 열변하는 이들에게 찰스 다윈은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는 경종을 남겼다.
‘박학한 무지’든, ‘무지한 박학’이든, 이런 국민의 ‘정치’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병리학적 현상은 ‘병리학적 정치인’을 생산한다. <논개>의 시인 변영로 선생의 말처럼 “정치는 미봉(彌縫, 임시변통)의 소산이 아니다. 대정견(大定見, 큰 일정한 주장)이 있어야 하고 대이상(大理想, 큰 이상)이 있어야 하며 ‘숭고한 고집’이 있어야 한다.” 이를 만족시킬 정치인은 못 되더라도, 어찌 한 나라 대통령이란 자의 언행이 괴이한 행동과 반말 화법에 불통, 부도덕, 부조리 ‘3불(不)’과 무능, 무지, 무식, 무례, 무책 ‘5무(無)’란 말인가. 그러니 러시아제국을 멸망케 한 요승(妖僧)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y E. Rasputin) 같은 물건에 버금가는 무속인들까지 설레발치는 세상이 된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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