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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성폭력 관련 발생 보도를 접하면서, 정부의 성폭력예방대책 발표를 바라보면서,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부분들을 글로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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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성폭력근절 대책을 바라보며
최근 국민감정에 기대어 발표된 정부의 성폭력근절대책은 한마디로 가해자처벌강화 중심의 사후대책일 뿐, 사건발생 예방대책이나 피해자 지원은 없다. 이에 현 정부의 근본적인 인권의식 부재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정책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련한 각계의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하고 발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전시행정의 표본으로 당장의 국민감정의 눈치만을 살피면서 급작스레 준비된 대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가장 눈에 띄이는 대책이 경찰의 불심검문이다. 성폭력예방과 불심검문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불심검문은 행여 범법행위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하여, 또는 범법행위를 한 수배자들을 검거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불심검문과 성폭력예방은 직접관계가 없음에도 최근의 성폭력사건으로 국민들의 감정이 흔들리는 기회를 이용하여 이를 활용하는 것은 대표적인 단기적이고 즉흥적인 대응이다. 표정에 따라, 옷차림에 따라, 행동거지에 따라? 마땅히 세분화된 불심검문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
오랜기간 성폭력피해자들을 지원하고 가해자를 대상으로 재범방지교육을 진행해오면서 온갖 사건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던 본인도 최근에는 미약하게나마 마음이 흔들리는 스트레스를 겪고 있을 정도로 최근의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하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주위의 어린여자아이를 둔 가족들이나 성인여성들이 나에게 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수 있나요?”
그러나 그들에게 안타깝게도 적당하게 해줄 말이 없다! 당장 다음 주 초등학교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예방교육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걱정이다. 자기에서 자고 있는 여자아이를 이불채로 납치하여 성폭력을 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활보하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지난 며칠은 대한민국 성폭력 관련 역사의 장이 바뀌어가는 한 주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건이 터져 나왔다. 비록 말초신경에 기대어 선정적으로 경쟁하듯이 성폭력사건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사들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에 가히 성폭력에 대한 패러다임을 대대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나가야 할 것인가?
사후처벌위주의 대책보다는 사전 예방대책이 중요하다
첫째, 가해자처벌강화 위주의 대책은 근본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법률의 소급적용에 대하여서는 신중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자발찌에 이어 또 다시 신상공개까지 소급적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매우 세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성범죄자재발방지교육을 수년간 진행해 본 경험에 의하면 전자발찌 소급적용자의 경우 이들의 사회적응에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을 뿐 오히려 성폭력 재발방지에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재범방지교육의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발찌를 한 성범죄자의 경우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재범’할 우려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현재 그 사람이 어느 장소에 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놓치고 있다.
둘째, 강력한 처벌위주의 대책은 오히려 강력범죄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성폭력범죄 예방을 위해 아이들에게 “하지 마세요!라고 소리질러라”라고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셋째, 성폭력예방교육을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해야 한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너그러움을 변화시킬 예방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수년간 직장내성희롱을 비롯한 성범죄재발방지교육의 현장에서 만나본 성폭력가해자의 경우 아직도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너그러움이 이들로 하여금 ‘억울하다’는 분노의식에 갇혀 재범방지의 교육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이 존재하고 있음이 이를 증거 한다. 또한 이구동성으로 신상공개, 전자발찌, 화학적거세등의 제도가 있는줄 알았다면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들을 하고 있다. 그것이 진심이던, 꾸며낸말이던간에. 따라서 성폭력에 대한 너그러움을 덜어낼 수 있는 교육, 그리고 가해행위를 하면 이런저런 처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교육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넷째, 수없이 되풀이된 의견으로서, 아동성폭력 근절위주의 정책에 앞서 성인여성을 포함한 모든 성범죄에 대한 근절의지를 보여주는 시각이 필요하다. 아직도 성인여성대상 성범죄에 대하여서는 너그럽게 인식하는 우리사회의 인식개선에 정부가 앞장서기 바란다. 그럴 때 비로소 아동성범죄 근절도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다섯째, 피해자의 피해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또한 이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가해자 처벌중심의 국가대책이 실효성이 없음을 누누이 지적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인간도 아닌’ 이들 가해자에게 어떻게 분풀이를 하면 좋을까에만 관심이 있을 뿐 피해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나 예방을 위한 정책은 없다. 이번 정부대책은 응보적 사법대응이다. 최근 몇몇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조금씩 회자되기 시작한 회복적사법의 패러다임과 거리가 멀다. 우리가 경계하고 장기적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응보적사법의 접근보다는 회복적사법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정부는 성폭력 근절 대책을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이는 피해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되는 근본적인 성찰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성,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임이 최근 확인되고 있으며,
피해자 유발론에서 벗어난 피래다임으로 성범죄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최근 잇따른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너무나 당연하다. 물론 저항이 더 어려운 어린아이이므로 전국민적으로 분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오히려 더 분노해야 한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성인 여성에 대한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어찌 해왔었는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성인여성대상 성범죄 보도가 있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주위에 많이 남아있는 피해자유발론으로 인하여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 대하여는 너그럽기 그지없었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서는 만삭의 임신한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위기에 있을 경우, 옆에 있는 3살배기 아이와 자신의 몸속에 있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심각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게다가 사건이 보도되지 않고 묻혀버렸다면, 이마저 아마도 ‘강제’가 아니었다던가 ‘저항’이 없었다는 이유로 강간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현재의 성폭력의 사법적 개념이다.
그 외 많은 여성들이 모텔에 따라 들어갔다던가, 애인관계에 있었다던가, 평소 남자를 유혹하고 다니는 행실을 한 여성이라던가 등 등의 이유로 가해자의 응당한 처벌과 그에 대한 보상은 커녕 2차 3차 피해를 입고 일생을 우울하게 지내는 여성들에 대하여는 왜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가. 이는 성범죄가 아니었다는 패러다임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국민이 동의하는 성범죄의 영역을 아동만이 아닌, 성인대상 성폭력으로 그 범주를 넓혀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성범죄 강력처벌 동의 개념이 외국과는 다르다.
늦은 감이 있으나 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강력처벌과 강제 행정조치들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성범죄자 처벌에 대한 기본 감정과 외국의 경우는 그 패러다임이 많이 다르다.
외국의 경우 성폭력처벌조항이 강력한 것은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인권침해이며 강제된 성적행동, 즉 분명한 폭력행위이기 때문에 강력처벌에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생각이의 방향이 다르다.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는 개념보다는, 한 여성의 순결을 짓밟아버렸다는 식의 동정론이 그 의식속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강력처벌에 동의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외국과 매우 다른 접근이다.
강제된 임신을 하고도 낙태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배려해야 한다.
강력한 저항이 동반된 성폭력만 성범죄로 인식할 뿐 아직도 자신의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로 인하여 임신을 하고도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
성폭력을 사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2중, 3중의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상담, 지원하는 일은 우리에게는 일상의 일이다. 아는 오빠에 의해 강요된 술취함으로 인하여 강제적인 성관계를 당하고도, 판사의 성폭력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낙태수술을 하지 못해 우리와 함께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다니는 여자청소년들, 성인여성들이 오늘도 거리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헤메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인지적 여성폭력예방교육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지역의 30대 자영업자가 자신이 고용한 알바여성에게 성폭력을 행함으로써 피해여성이 자살한 사건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정부가 발표한 여러번의 성폭력예방대책의 실효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 사건의 가해자에 대하여 단순 강간이 아닌, 강간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서 보듯이 성폭력은 성적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에 관한 문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최근 발표한 정부의 성폭력예방대책은 사전 예방대책보다는 사후 국민들의 감정적인 여론에만 부응한 단기적인 처벌위주의 대책이었다.
성폭력예방교육정책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었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너그러움을 변화시킬 예방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성폭력예방교육 정책은 그 무엇보다 먼저 수립되어야 하는 여성폭력예방대책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본인을 비롯한 여성폭력피해 상담기관을 중심으로 여성단체들이 주장해왔던
성인지적 여성폭력예방교육의 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전 국민으로 하여금 건강한 성의식을 가지고 생활하게 하는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 이는 각종 폭력예방과 폭력발생 후 이에 대한 처벌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청소년의 경우는 여성폭력예방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하는 몇몇 교육이 각급 법률에 근거하여 의무화되어 있지만 성인의 경우는 공공기관의 직장내성희롱예방교육과 아동청소년성보호법에 근거한청소년대상 성범죄 신고의무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 의한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자의 재범방지교육 이외에는 법률에 명시된 성의식, 성폭력예방관련 교육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청소년은 성인 성의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성인 대상 성폭력예방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린이나 청소년만을 대상화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인 예방교육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지역사회에서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함께하는 교육을 진행하되, 지역의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지적인 성폭력예방 교육은 매우 시급하며 필요한 일이다. 성인평생교육의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제화 하여 의무적으로 강제할 필요도 있다.
여기서 국가라 함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모두 일컬으며 법제화란 지역 조례를 포함한다. 특히 지역에서는 중앙정부의 지침이나 조례에 의해 강제하지 않으면 실제로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여성폭력예방의 효과 이외에 무너져가는 지역사회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데도 매우 중요하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집단이나 개인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면 자연스레 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여성대상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체단체는 여성폭력예방정책을 사후 사건처리방식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지역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예방차원의 성인지적 여성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기 바란다.
재범방지의 현장에서 본 성폭력가해자들
자신의 친딸을 강간하고 교도소에 갇혀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에 남아 있는 다른 가족을 걱정하는 성범죄자도 있다. 심지어 목회자가 되겠다고도 하고 선생님 같은 사회복지사나 상담가가 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사회복지사도 될 수 있고 심리 상담전문가로 변신할 수 있다. 그 것 자체에 대하여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교육을 통하여서도 다른 사람보다 유달리 더 성인지 부분이 수정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주장하며 유연한 사고를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상담전문가가 되고 싶고 그래서 그런 공부를 하고 싶고 자격증을 얻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할 때, 참으로 난감하다.
또한 기독교 등 종교에 귀의하여 하나님을 받아들임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하고 그래서 속세에서 지은 죄를 모두 반성하고 너무나 마음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데 이제와서 자신의 성적 행위를 들여다보라고 하면서 괴롭힌다고 항의하는 성범죄자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오늘’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면서 진정한 용서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가 누구를 용서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보게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은 분들에게 부탁이 있다
혹여 이 글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다른 지점이 있다고 하여 행여 감정적인 댓글을 달거나,
특정 문구를 거론하면서 이런저런 부정적인 비난을 해올까 염려되는 지점이 있다. 이를 각오하고 이 글을 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인터넷문화가 좀 더 성숙하여 감정적이 대응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하는 인터넷문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12년 9월 6일 저녁에
용인성폭력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