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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1-3)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돌이나 철 그리고 금으로 만들어진 우상들처럼 아무런 반응하지 않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구속의 역사를 지체치 않고 이루어가십니다.
1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2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1-3)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다시 말씀하시며, 그에게 크고 놀라운 비밀을 알려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기도하면 응답하겠다고 하시며, 그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겠다고 하십니다.
(1) 계시의 배경(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였다’(1). 계시의 내용과 관련한 정보는 아닙니다. ‘아직’이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33장을 앞 장에 연결해주는 언급입니다. 32:1-2에 따르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열째 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예레미야는 왕궁의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참조. 37:21; 38:13,28). ‘두 번째’는 기도에 대한 두 번째 응답을 가리킵니다. 표적 행위 직후 예레미야가 여호와께 기도하자(32:16-2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응답을 주셨는데(32:26-44),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두 번째 응답이 주어집니다.
(2) 권능의 여호와(2)
계시의 내용을 알려주기 전에 먼저 여호와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2). 여기 ‘일’로 번역한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두 입장이 나름대로 경쟁 중입니다. 하나는 칠십인역에 의존해 목적어로 ‘땅’을 삽입하고 모음점을 수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에서 막연히 여호와의 생각이나 계획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를 시작하는 32:17의 창조에 관한 언급은 전자를 심판 이후의 구원과 관련된 33:3의 ‘크고 은밀한 일’은 후자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전자에 따르면 무한 능력의 창조주께서, 후자에 따르면 계획을 만들고 그대로 실행해 성취하시는 여호와께서 약속하셨기에 예루살렘과 유다의 구원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 참조. 10:16; 31:35; 32:18)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다른 신들과 구별되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3) 크고 놀라운 일(3)
다음 절은 예레미야 개인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가 당신을 부르면 그에게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그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도 그에게 말해줄 것을 약속하십니다(3). 예레미야는 이미 32장에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그분에게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너는 나를 부르라’는 명령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기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실 준비가 되셨음을, 곧 심판의 시대가 끝나고 구원의 시대가 밝아옴을 전제합니다(참조. 29:12). 예레미야가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참조. 7:16; 11:14; 14:11). 여호와의 응답은 기대를 뛰어넘는 응답입니다. 예레미야가 알 수 없었던 것까지 그에게 알려주십니다(참조, 사 48:6).
예루살렘 성의 심판과 구원(4-9)
하나님게서는 열심과 능력으로, 지혜로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크고 비밀한 일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재림을 통한 심판과 구원을 통하여 이뤄질 것입니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사 43:13)하신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4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6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9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4-9)
본문은 예루살렘 성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예루살렘이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회복의 날이 올 것이며, 그들이 다시 번성하고 평안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예루살렘이 온 세상에 기쁨과 찬양의 이름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1) 성의 파괴와 죽음(4-5)
이 문장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공성축대와 칼에 맞서 (방어를 위해) 허문도성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은) 갈대아인들과 싸워 내가 노여움과 분함으로 내리칠 사람들의 시체로 그것들을 채우려고 나온다. 그들의 모든 죄악 때문에 내가 이 도성에서 내 얼굴을 숨겼기 때문이다.’ 4절은 이사야 22:10의 경우처럼 방어를 위한 예루살렘 성의 긴급조치와 관련한 말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성 주변에 공성 축대를 쌓고 공격하자 포위당한 예루살렘 사람들은 적의 공격에 맞서 성벽에 인접해 세워진 집들을 허물어버립니다. 성벽 주변의 집들을 허물어 병사가 주둔하는 공간과 병력을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거기에서 나온 돌은 성벽을 보강하는 건축 자재나 무기로 사용합니다. 성을 방어하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하지만, 여호와께서 갈대아인들의 편에서 ‘노여움과 분함’(참조, 7:20; 32:31; 36:7)으로 성을 공격하시기에 전혀 무익한 짓입니다(5). 예루살렘 사람들은 승리를 기대하며 싸우지만, 실상은 자기 파멸적 싸움입니이다. 허문 집들을 사람들의 시체로 채우려고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얼굴을 숨기셨기에 예루살렘에게는 패배와 죽음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서 얼굴을 숨기신 이유는 ‘그들의 모든 악행’ 때문입니다.
(2) 예루살렘 성의 치유와 영광(6-9)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절망과 죽음에서 소망과 생명으로 바뀝니다. 심판(4-5)이 끝나고 구원의 약속이 선포됩니다. 서두의 ‘보라’는 새로운 사건의 시작을 시사해줍니다. 심판이 예루살렘 성에 집중된 것처럼 구원도 예루살렘 성에 집중됩니다. ‘노여움과 분함으로’ 예루살렘을 치셨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건강과 치유를 가져다주실 것을, 예루살렘 주민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넘치는 평안과 진실을 보여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6; 참조. 30:17). 여호와께서 의사가 되셔서 죽음에 이르는 불치의 병에 걸린 예루살렘을 치료해 낫게 하시고 평화와 안정(‘평안과 진실’)을 풍성히 경험하게 하십니다.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멸망한 예루살렘이 외부의 위협과 폭력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게 됩니다. 치유의 비유적 약속이 7-9절에서 다섯 개의 약속으로 구체화합니다. 첫째, 유다와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십니다(7a). 심판 시대를 끝내시고 구원 시대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케 함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한가지였기에(참조. 32:32) 이스라엘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둘째, 그들을 ‘처음과 같이’ 다시 세우십니다(7b; 참조. 24:6; 31:28; 42:10; 45:4).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떠났고, 땅은 주민도 짐승도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생존의 위험에 처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들을 번성케 하여 수가 줄어들지 않게 하십니다(참조. 30:19; 31:27). 셋째, 모든 죄악에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용서해주십니다(8). 무거운 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과거에 범한 죄악의 굴레로부터 온전하게 해방해주십니다. 용서는 여호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새 언약의 약속에 속하기도 합니다(참조, 31:34). 넷째,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 앞에서 ‘기쁜 이름과 찬송과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9; 참조. 13:11; 신 26:19). ‘그들의 모든 악행’ 때문에(5) 민족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된 예루살렘이(26:6) 다시 민족들 가운데 높임을 받습니다. 다섯째, 민족들이 보고 두려워 떨 정도로 예루살렘 주민에게 ‘모든 복’을 베푸십니다(9b; 참조. 32:42). 여호와의 ‘노여움과 분함'의 대상이었던 예루살렘이 축복의 대상이 된다. '민족들이 두려워 떪’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조롱하던 민족들이 폐허가 된 도성을 ‘기쁜 이름과 찬송과 영광’의 대상으로 만드시는 여호와의 큰 능력을 보고 두려워 떱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번성(10-13)
기도는 죄인과 연약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기도 응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과 감사로 주의 초청에 응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심판을 향하면서도 자비를 베풀려는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멸망 직전의 백성에게 회복의 약속을 두 번이나 제시하고 기도를 명령합니다.
1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10절과 동일) 12○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 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가 살 곳이 있으리니 그의 양 떼를 눕게 할 것이라 13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서 양 떼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10-13)
예루살렘과 유다가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고 탄식하는 ‘너희’에게 주는 말씀으로, 10-11절은 ‘사람도 없고’에 대한 답변이고, 12-13절은 ‘짐승도 없다’에 대한 답변입니다.
(1) 사람의 번성(10-11)
현재의 문맥에서는 9절의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의 구체적 내용입니다. 절망과 탄식의 소리만 들리는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가 다시 생기를 되찾습니다.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로 가득 찹니다(11). 사라졌던 축제와 결혼의 잔치가 돌아오고,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한 자들의 감사제로 성전도 기쁨을 되찾습니다.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삶도 ‘처음과 같이’(7) 다 회복돼 즐거움과 기쁨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2) 짐승의 번성(12-13)
짐승도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예루살렘과 유다에 다시 생명이 자라납니다.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 목자들이 양 떼를 쉬게 할 목장이 다시 생깁니다(12-13). 눈으로 세지 못하고 손으로 하나하나 세야 할 정도로 양들이 많아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낙담하고 좌절하고 있는 기도의 사람에게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만 유일하게 자신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시고 그 말이 실제 시간 속에서 이뤄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그분의 약속을 붙잡고 크고 비밀한 것을 기대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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