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각 교구별로 복자성당이 하나씩 있다.
한국천주교회 병인박해 100주년이 되는 1966년에 이를 기념하는 성당을 각 교구별로 짓기로 주교회의에서 결정하였다.
대구 대교구에서는 대구시 동구 신청동에 울산 태화강변 장대벌에서 순교한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 등 세 분의 유해를 안치하고 복자성당으로 축성되었다.
그렇다면 복자는 어떤 위격을 갖고 있는가?
로마교황청 시성성에서는 성인이 되는 과정을 선포하였다.
놀라운 정도의 덕행을 실천하였거나, 순교한 사람들에 대하여 일정기간 조사를 거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교황청 시성성에조사대상자로 선정되면 ‘하느님의 종’으로 부르다가
시성성에서 순교자 또는 뛰어난 덕행을 실천한 사람으로 판결되면 ‘가경자’로 선포된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교황은 시복위원회를 주재하여 시복여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에도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께서 직접 방문하여 순교복자 103위 시성식을 가졌다.
또한 2014년 8월에도 프란체스코 교황 성하께서 친히 방한하여 124위 시복식을 하였다.
여기서 복자와 성인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복자품에 오르면 해당 국가에서만 공경을 받는다.
성인품에 올라 성인으로 선포되면 전 세계 가톨릭 국가에서 공경을 받으며
성인의 세례명을 새 신자들이 세례식 때 세례명으로 받을 수 있다.
성인들의 초상화에서도 얼굴 뒤에는 후광을 받을 수 있으며 성인을 전구자로 기도를 바칠 수 있다.
신청동 복자성당은 현재 복자품에 오른 세 분 순교자 유해를 모셨다.
허인백 야고보는 김해에서 출생하였으며 언양에서 신앙생활하다가
울산 대재마을 교우촌에 와서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를 만났다.
김종륜 루카는 공주출신으로 충청도 일대가 소란해지자 박해를 피해
상주군 멍에목 교우촌으로 피신왔다가 울산 교우촌으로 내려갔다.
서울 출신 이양등 베드로도 박해를 피해 경상도로 내려왔다가
울산 대재마을 교우촌에 정착하여 공소회장을 하면서 전교에 힘써왔다.
그러던 중 1868년 세 분은 체포되어 울산 장대벌에 끌려와서 순교하였다.
복자성당 안에 들면 세분 복자의 유해가 제대 뒤편에 모셔져 있다.
유해 앞에 무릎 끓고 순교복자 세 분의 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그 분들이 남긴 신앙을 되새겨보았다.
그 분들이 올곧게 믿었던 하느님은 살아계시며 인간의 생명을 주관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세상에 드러낸 거였다.
성당을 다니는나는 진정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요한묵시록 제3장에 보면 라오디케이아 교회에게 보낸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복자성당에서 교중미사를 봉헌하면서 이 말씀이 뇌리에서 떠올라 나를 서서히 조여들어왔다.
이 말씀은 분명 나의 신앙상태를 두고 하신 것일 거다.
하느님을 믿으려면 확실하게 믿으라고 다그치는 말이다.
오늘 요한복음 제6장은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이 말씀이 지금 여기에서 선포되는 것은 성체성사의 기적을 재현하는 거다.
성체성사 속에 하느님께서 주관하는 영원한 생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구대교구 순례미사에서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깨닫고
목숨을 내어놓을 정도로 그분을 믿는다고 고백하도록 이끌어 준 순례의 길이었음을 드러내야 할 거다.
첫댓글 가브리엘 형제님과 함께 대구교구 성지순례한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네요.
오고 가는 차안에서, 성지 순례지에서 틈틈히 알려주신 해박한 설명말씀에 하느님의 은총이 비 같이 내림을 느꼈다면, 저 만의 감성 이었을까요?
아는 것 만큼 보였고, 보인 것 만큼 순교자들의 삶이 가슴을 찢었습니다.
가브리엘 형제님~~
야고보 성지순례단의 여정에 자주 함께하며 우리들의 귀를 열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년부터는 자주 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