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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말씀 : 요한복음 4:15-26.
(요4:26)“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물을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대신 물을 가득 퍼서 연약한 여자의 수고를 덜어 주는 신사도, 기사도를 발휘하신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의 리브가는 물을 달라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에게 물을 퍼서 마시게 하고 낙타에게까지 먹였지만 주님은 “내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대신 주님은 그녀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 마시면 속에서 솟아나는 샘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물은 육신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땅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아니라 사람의 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입니다. 이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물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물이 없습니다. 이 물은 주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물로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샘이십니다(렘 2:13, 17:13).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모두가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는데 성경은 “...그들이 자기들을 따라가던 영적 반석으로부터 마셨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고전 10:4).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늘에서 주시는 만나를 먹었고 영적 반석에서 나는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4-55절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내 살은 참으로 양식이요 내 피는 참으로 음료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과 음료는 자신의 살과 피 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말씀이 살(육신-flesh)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피를 지니셨는데 우리를 위해 살과 피를 다 주셨습니다.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씀은 그분의 살인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육신과 그분의 피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 양의 피 같은 보배로운 피요, 하나님의 피(행 20:28)임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야곱의 우물로 물을 길러온 여자에게 “누구든지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14절)라고 하신 물은 생명수입니다(계 21:6, 22:17).
주님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네게, 마실 물을 내게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고 하셨는데(요 4:10) 하나님의 선물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생수 즉 성령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계 21:6)고 하시며 누구든지 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고 하십니다(계 22:17). 이것이 복음 전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전한 두 가지는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신원)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자신이 누구인지 증언하셨고 우리도 그분이 누구인지를 증언하면 됩니다. 혼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반드시 전해야 하는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늘 전하신 한 가지가 이것입니다.
“내가 그니라.”(막 14:62, 요 4:26, 8:24,25,28, 9:9, 13:19, 18:5,6,8, 계 1:18, 2:23). “내가 그니라(I am).”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 것으로 이 사실을 아는 것이 구원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15절입니다. “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이 물을 내게 주사 내가 목마르지 않게 하시고 또 여기로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하매” 여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선물에 관심을 가지고 “이 물을 내게 주사.......”라고 구했습니다. 여자는 주의 말씀을 듣고 물을 구했습니다. 여자가 생애 처음으로 주님께 구한 기도입니다.
여자가 달라는 물은 다시 목마르지 않고 여기로 물 길러 올 필요도 없는 그런 신비한 물입니다. 당신이 주겠다고 한 물을 내게 주어 내가 목마르지 않게 해 주고, 물 길으러 여기 오지도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나름대로 해석해서 적용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설교를 들을 때 이런 식으로 듣고 이해하고 적용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자기가 이해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적용해서 그걸 달라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구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을 깨닫고 바르게 구하기까지 누구나 성장이 필요합니다.
1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부르고 여기로 오라, 하시니” 주님은 여자의 기도에 대해 곧바로 응답해 주지 않으시고 화제를 돌려 “가서 네 남편을 부르고 여기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때로 사람과 삶의 문제를 건드릴 때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가장 큰 인생 문제는 남편 문제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다 아십니다. 물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주님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8-50절, 2장25절을 보면 주님은 나다나엘을 아셨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셨습니다. “나다나엘이 그분께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노라, 하시니”(요 1:48)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자신을 알고 계심을 보고,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너를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다나엘을 알고 계실 뿐 아니라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은 그 자리에서 응답하기를,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라고 했습니다(요 1:49). 예수님이 구약에 기록된 메시야(그리스도)이심을 알아 챈 것입니다. 주님은 나다나엘에게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밑에서 보았다고 네게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느냐? 네가 이것들보다 더 큰일들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요 1:50).
예수님은 처음 본 사람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십니다.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을 필요가 없으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사람 속에 있던 것을 아셨기 때문이라.”(요 2:25) 주님은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아시고 우리의 생각하는 것과 상상하는 바를 다 아십니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주께서는 모든 마음을 살피시고 생각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을 아시나니...” 라고 한 그대로입니다(대상 28:9).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다 알고 계시며 그가 한 일이나 그의 생각과 상상까지도 다 안다면 그는 대체 누구입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대언자, 천사로 여길 것입니다. 아니면 신이나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다 아시고 그 이름을 부르시며, 그들의 행위와 상태를 다 아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물을 달라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부르고 여기로 오라.”(요4:16)고 하신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치부를 들추거나 비난하거나 죄를 자백하라고 압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신 이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자신의 신적 성품, 권능인 ‘전지하심’을 보여 주심으로 그녀에게 자신이 주요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해 주려 하신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들과 주석가들이 이 구절을 설교할 때 정작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장황하게 말을 늘여 놓는 것을 자주 봅니다. 주님은 여자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에 대해 말씀해 주셨고 이제는 여자와 말하고 있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7,18절입니다. “여자가 응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하고 잘 말하였도다. 네게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그 점 에서 네 말이 참되도다, 하시니라.” 여자는 가서 남편을 여기로 데려 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요즘 여자들이라면 “제가 어딜 봐서 결혼한 여자로 보입니까? 저 지금 돌싱이예요, 얼마 전에 이혼했어요, 왜 남의 프라이버시를 건드리세요?”등등 별별 말이 다 나올 것입니다. 여자는 주님의 말씀에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네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하고 잘(well) 말하였도다.” 라고 하셨는데 이는 그녀가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을 거리낌 없이, 주저 없이, 거침없이, 양심의 가책 없이 자연스럽게 분명히 말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말로 하면 “뚫린 입이라고 말은 참 잘한다.”고 비꼴 때 말을 잘한다고 할 때 사용하는 ‘잘’(well)입니다. 주님은 그녀가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을 “잘 말하였도다.” 라고 분명히 확인해 주시고 곧 바로 “네게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그 점에서 네 말이 참되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여자를 알고 계셨고 여자의 과거 경력, 현재의 사정, 말한 의도와 속 깊은 사정까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네게 다섯 남편이 있었고...” 주님은 여자가 한 일을 알고 계십니다.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주님은 여자의 현재 상태와 사정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자가 과거의 다섯 남편이 있었다는 것과 지금도 그녀에게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너의 동거남은 남자 친구일 뿐 “남편”은 아님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자가 현재 자신과 함께 있는 남자를 자기 남편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주님은 정확히 아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신학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전지하신 분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19절입니다. “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로소이다.” 주님의 말을 들은 여자의 반응이 이것입니다.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로소이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다 알고 마음속까지 다 알고 계신 분을 보니 대언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마 일반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정말 용하네, 귀신 뺨치는 사람이네, 당신은 어디서 나의 개인 정보를 취득하셨나이까?” 정도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야곱을 알고 대언자를 압니다.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로소이다.” 여자는 나름대로 듣고 직접 경험한 것을 근거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자는 야곱의 우물에서 주님을 1:1로 만나 대면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지만 주님을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듣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20절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경배하였는데 당신들은 이르기를, 사람들이 마땅히 경배해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나이다, 하매” 여자는 자신을 훤히 알고 있는 예수님을 대언자로 인정하고 경배에 관한 종교적인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산(그림신 산)에서 경배했는데 당신들은 사람들이 마땅히 경배해야 할 곳은 예루살렘이라고 하니 대언자님께서 답을 좀 주시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지금도 그림신산에서 경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자의 관심은 어디서 경배해야 하는가? 그녀는 경배의 장소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습니다. 이 여자에게 이질문은 생명을 거는 절실한 문제가 아니라 그냥 한 번 던져보는 지나가는 질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죄 문제를 슬쩍 회피하면서 왜 그렇게 교회가 많으냐? 교단, 교파가 왜 그리 많으냐?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어느 교회가 가장 좋은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정도입니다. 이들이 정말 절실하게 알고 싶어 하는 질문이 아니라 그냥 해 보는 질문입니다. 여자는 유대인인 남자가 뭐라고 답변할지 이미 짐작하고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너희가 이 산에서도 아버지께 경배하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에서도 경배하지 아니할 때가 이르느니라.” 주님의 답변은 여자의 예상과 달리 예루살렘이라고 하지 않고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께 경배하지 아니할 때가 온다고 하십니다. 성전 경배 시대가 끝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따라 주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경배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성전에서 경배를 드리지 않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집에서 빵을 떼고 교제를 나누며 경배했습니다. 집에서 성도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란 말은 신약 시대의 경배는 성전에 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 각 개개인의 몸이 성전이요 그들의 모임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22절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경배의 장소가 아닌 경배의 대상이 문제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했고 아테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경배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란 말씀은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이 누구인지 안다는 말씀입니다.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유대인에게서 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그 분 즉 구원자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심을 알고 경배합니다.
주님은 드디어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는 것은 구원자께서 유대인에게서 나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서 나신 구원자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구원자이시고 이방인들에게 구원자이십니다. 42절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신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요 4:42).
사도 요한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노니”(요일 4:14)고 했습니다. 유대인에게서 온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 세상의 구원자가 나셨습니다.
23절입니다.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주님은 경배의 장소가 어디인지를 물은 여자에게 그것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을 알고 경배해야 한다는 것과 영과 진리로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림신산이냐, 예루살렘이냐?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곳에서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는데 먼 미래가 아니라 ‘곧 지금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지금 자기에게 영과 진리로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24절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 주님은 경배의 주제에 대해서 확실히 매듭을 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하라고 하십니다.
25절입니다. “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분이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분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리이다, 하매” 여자는 주님께서 경배에 대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흘려듣고 있습니다. 주님을 대언자라고 말해 놓고 막상 답변을 하자 대언자의 말이 아니라 일개 유대인 선생이 하는 말 정도로 판단합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분이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란 말은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믿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 다. “그분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리이다.” 메시야가 오시면 경배의 장소나 경배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니 그 때 그분에게서 들을 것이니 당신은 이제 그만 말하고 그치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주님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 당신 말을 듣느니 앞으로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시는 분이 오시면 그분이 하는 말을 듣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들은 언제가 오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믿었지만 그분이 예수님이란 사실을 알고 믿은 이는 거의 없습니다.
2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녀가 메시야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자 곧 바로 자신을 증언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네가 말한 메시야 그리스도가 바로 지금 네게 말하고 있는 그란 것입니다.
주님께서 “네게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이라고 하신 그분이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알면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 줄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홀연한 깨달음이나 신비한 체험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분이 참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것으로 복음 전도를 마치셨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믿고 안 믿고는 여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충분히 입증하셨고 증언하셨습니다.
여자는 자신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그분, 참된 경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그분, 유대인에게서 난 구원, 장차 오시리라고 알고 있던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그분이란 사실을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하신 모든 말씀은 이것을 증언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자는 “내가 그니라.”고 하신 그 분을 믿었습니까? 28절과 29절에 따르면 그녀는 그 분을 믿었고 자신이 살던 도시로 들어가 그분을 증언했습니다. “그때에 여자가 자기의 물 항아리를 버려두고 자기 길로 가서 도시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말하되, 와서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이분은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 4:28,29).
“와서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이분은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그 분을 선포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의 첫 번째 증거, 표시가 사람들에게 그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누군가에게 그분을 선포하고 증언할 것입니다. 침례인 요한, 예수님 자신, 사도들의 사역은 모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선포하고 증언할 때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며 육체를 입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증언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와서 주를 에워싸고 말하기를,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시나이까?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소서”라고 요구했습니다(요 10:24). 그 때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믿지 아니하였도다.”(요 10:25)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그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나를 믿으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점점 더 힘을 얻어 이분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며 다마스커스에 거하던 유대인들을 당황하게 하니라.”(행 9:22) 사도 바울이 회심한 후 한 일이 이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알고 믿게 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성경을 통해 증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왔을 때에 바울이 영 안에서 눌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매”(행 18:5)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열심히 증언했습니다. 이것이 복음 전도입니다. 이것이 혼을 구원하는 복음이요, 우리가 전해야 하는 복음입니다.
“이는 그가 성경 기록들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며 힘 있게 유대인들을 확신 시키되 공개적으로 그리하였기 때문이더라.”(행 18:28)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을 증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한 것입니다. 성경으로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이가 전도자요 증인입니다.
요한일서 2장 22절과 5장 1절을 보겠습니다. 이 두 구절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믿는 자의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면 누가 거짓말하는 자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니라.”(요일 2:22) 성경은 누구를 거짓말쟁이라고 합니까? 성경이 정의하는 거짓말쟁이, 성경이 규정하는 거짓말쟁이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보다 더 큰 거짓말쟁이는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며, 낳으신 그분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자도 사랑하느니라.”(요일 5:1)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입니다.
나는 구원받은 사람인가? 나는 거듭난 사람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성경의 답변이 이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사람입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신비한 영적 체험이나 놀라운 꿈을 꾼 사람이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한 진리가 이것입니다.
우리가 듣고 믿은 복음, 우리가 받은 구원,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그 복음으로 예수님은 주요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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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이 다알고게십니다 우리는 그앞에 엎드러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