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살구나무
제9회 대상
오경자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치매가 걸린 사람도 추억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엉켜서 혼란을 일으켜서 그렇지 어쩌면 더 많은 추억들이 한꺼번에 달려 나와 현실세계를 덮어 버리는 것이 치매가 아닐는지 모른다. 고생스럽고 모질었던 추억조차도 지난 후면 아름답고 그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세상 휘돌 만큼 돌아 이제 귀로의 끝자락 가까이 섰으니 이제 정말 아름다운 추억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더위가 슬슬 어깨를 간지를 무렵이면 새콤달콤한 살구가 향기를 앞세우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앞마당에 커다란 살구나무를 안고 사는 글벗 덕에 거의 반세기 전의 살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 집 살구나무에서 어제 딴 것이라며 한바구니 살구를 안겨주는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받아 든 순간 향훈이 가슴으로 와락 안겨든다. 아 얼마만인가?
어릴 적 외갓집 살구나무가 생각나며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면서 목울대가 켕겨온다. 자란 후 대학을 서울로 올라오면서 다시 돌아온 서울 생활을 하는 동안 살구는 잊혀진지 오래 되었던 것 같다. 사 먹어야만 하는 과일들 중에 살구까지는 것이지 못했고 자연스레 잊혔던 것 같다. 그동안에도 가게에서 팔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흔하게 먹던 살구를 돈 주고 사먹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 아닌가 모르겠다.
6·25전쟁 중인 1950년 9월4일 새벽 우리집에 들이닥친 내무서원인지 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납북되고 일자 소식도 모른 채 1·4후 막바지인 12월 31일인지 1월 1일인지에 어머니와 나는 마지막으로 서울을 따나는 체신부 열차에 몸을 실었다. 우여곡절 끝에 보름이나 지나서야 겨우 전주 외가에 도착했다. 잠시 피난했다가 서울로 돌아갈 생각으로 짐도 제대로 풀지 않고 살았다고 해야 함이 맞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전입학도 하고, 새 학기도 되고, 학교 정문 앞에는 칡뿌리라는 것도 있고 오디 등 처음 보는 것들이 즐비하고 입이 새까매진 아이들이 선생님 앞에 불려나가 꾸중을 듣는 일들을 구경하면서 새로운 풍속도를 익혀나가게 되었다.
외갓집 앞 넓은 공터 같은 마당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탐스러운 열매를 주황색으로 익혀가며 향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저절로 익어 떨어지는 살구를 주워 먹으면서 노는 우리는 마냥 좋기만 했다. 그늘이 좋아 온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던 그곳이 살구 철이면 더 없이 좋은 놀이동산이 되어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큰 외사촌 오빠의 큰 아들인 조카가 나보다 5살 아래이다 보니 자연히 내가 대장 격이었다. 그 너른 마당이 대문을 나와 길 건너편에 있지만 외갓집 땅이어서 우리가 주인이었기에 마치 내가 주인 격이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살구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소꿉놀이를 하면서 여러 가지로 이용하기도 했다.
수확 철이 되면 머슴 아저씨들이 따서 한데 모으고 외할머니와 외숙모가 처리하셨는데 그 후까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살구를 실컷 먹고 온 동네 아이들이 신바람 나게 살구를 먹고 즐겼던 기억만 남는다. 살구 씨는 행인이라고 해서 모아놓으면 약재로 나누어 가기도 하고 약재상 아저씨가 가져가기도 했다. 어차피 우람한 살구나무는 우리들의 꿈의 무대였지만 살구로 해서 더욱 친근한 공간이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살구나무 밑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어머니가 다가오시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하고 지나가셨다. 얼핏 귓결을 스치는 말이 ‘아유, 제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했던 나무라 저렇게 여기만 와서 사나?’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하면서 어머니에게 쫓아가서 물었다. 어머니 대답은 기가 막힌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전주 문화사진관에 걸린 어머니의 독사진을 보고 혼인하고 싶어서 수소문해서 외갓집 주소를 알아냈다. 몰래 잠깐 간 것인데 본인이 알면 우리 죽는다고 사정을 해도 아버지는 끈질기게 주인을 설득해서 기어이 외갓집을 알아낸 것이다. 낮에 와서 지형을 살피니 바로 이 살구나무 위에 올라가면 외갓집 안마당이 손바닥처럼 내려다보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밤에 아버지는 이 살구나무 위에 올라가 어머니가 뜰에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사흘을 정진한 끝에 겨우 어머니의 옆모습만 확인하고 꼭 혼인하리라 마음을 굳히고 매파를 수소문해 외갓집에 혼담을 밀어 넣고 그 댁의 사위로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아 바로 나를 있게 한 살구나무가 아니던가? 이럴 수가. 그래서 어머니는 살구를 잘 먹지 못했던가 보다 워낙 신 것을 잘 못 드시긴 하지만 차마 그 살구를 넘길 수 없었던 것을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 후로 그 살구나무 밑에서 고개를 외로 꼬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훌쩍이기도 하고 올라갈 수는 없지만 나무 둥치를 껴안아보며 아버지의 수염볼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제는 살구나 먹으면서 그때의 그림엽서를 마음속으로 뒤적이며 앉아있다. 두 어른은 이미 하늘에 계실 것이고, 나 또한 갈 날이 그리 머지않았으니 반갑게 만날 그 날을 위해 오늘도 흠없이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