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워커(Walton H. Walker)장군 &
그랜드 워커힐 서울
서울특별시 광진구 워커힐로 177
(광장동)
2019/10/9 수요일 12:00 (再편집분)
6·25전쟁 발발(勃發)후 1950년 12월, 76세의 이승만 대통령과 워커(Walton H. Walker) 장군
著書<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6·25와 이승만> 78쪽에서(2019년 版)
- 끝 -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Walkerhill Hotel & Resort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과 한강 사이에 있는
5성 호텔로 1963년 개관하였다.
객실수
그랜드워커힐서울: 426개,
비스타워커힐서울: 244개,
더글라스 하우스: 52개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차산 기슭에 들어서 있어 전망이 좋으며,
●그랜드 워커힐 서울과
●비스타 워커힐 서울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
1961년 사단법인 워커힐이 창립되었고,
1962년 국제관광공사에 인수되었다.
1963년 4월 호텔을 개관하였다.
한국에 마땅한 휴양지가 없어서 일본으로 휴가를 떠나는
주한(駐韓)미군을 유치하기 위하여 세운 호텔로서,
‘워커힐(Walkerhill, 워커 언덕)’이라는 명칭은
초대 미8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쟁 때 활약한
월턴 H. 워커(Walton H. Walker)를
기리는 의미로 지어졌다.
1968년에는 파라다이스 카지노 워커힐을 개장하였다.
1973년 3월 선경그룹(현 SK) 선경개발이 인수하였다.
1977년 호텔 체인 ‘쉐라톤(Sheraton)’과 프렌차이즈 계약을 맺었고,
1978년 8월부터 쉐라톤 워커힐이라는 호텔명을 사용하였다.
1982년 컨벤션센터(국제회의장, 수용인원 6000명 규모)를 개장하였고,
1992년 면세점을 개점하였다(2016년 면세점 폐점).
호텔 등급은 1975년 특급, 1991년 특1급(현 5성)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많은 호텔 브랜드를 보유한 대형 호텔 체인인
스타우드(Starwood Hotels and Resorts Worldwide, INC.)가
‘쉐라톤’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스타우드 산하 브랜드가 되었다.
2002년 11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로 다시 명칭을 바꾸었다.
2001년 스타우드의 또 다른 브랜드인
‘W 호텔(W Hotels)’을 도입하는 계약을 맺고,
2004년 8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바로 옆에
W 서울 워커힐을 개관하였다.
2009년 12월 SK네트웍스(주)에 인수합병되었다.
2017년 1월 스타우드와 체결했던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쉐라톤’과 ‘W 호텔(W Hotels)’ 브랜드 사용이 종료되었다.
이에 2017년 1월 1일부터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은
‘그랜드 워커힐 서울’로, W 서울 워커힐은
‘비스타 워커힐 서울’로 명칭이 바뀌고
독자적인 브랜드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Walkerhill Hotel & Resort] (두산백과)
첫댓글 그랜드 워커힐 서울^^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Walkerhill Hotel & Resort
그랜드 워커힐 서울^^
Walkerhill Hotel & Res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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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erhill Hotel & Resort
著書<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6·25와 이승만>
229~230쪽에서(2019년 版)
1950/10월/24일
평양으로 파견한 200명의 우리 경찰 병력이 해주(海州)에서
美24사단에 의해서 정지 되었다는 보고(報告)를 받고
대통령은 안면 신경을 움직이며, 손을 후후 불었다.
“그자들이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그따위 짓을 하다니... .
기어이 탯덩이 녀석을 정신 차리도록 해주겠어.“ 하며
대통령은 흥분했다.
대통령은 미(美)24사단장 처치장군(將軍)을 탯덩이 녀석이라고
부르며 항상 못마땅해 했는데 바로 그곳이 처치장군(將軍)이
관할하는 미군지역이었다.
우리는 *워커장군(將軍)에게 항의하려고 했으나
그는 오늘 아침 일본(日本)에 가고 없었다.
대통령은 뒤뜰로 나가 한참동안 장작을 패며 화를 가라앉혔다.
어느 정도 안정한 대통령은 무초대사를 불렀다.
처음에는 무초대사에게
“미국사람들이 자신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한국인은 들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 못 이 오.“ 하고 말했다. (아래에 계속)
(위에서 계속)
그런 다음
“북한 주민들이 요청해서 파견한 경찰을 처치장군(將軍)이
막았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이 알게되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 덧붙이면서 이 사실(事實)을 즉시
*워커나 맥아더장군(將軍)에게 알리도록 요청했다.
무초대사는 우리 경찰을 처치장군(將軍)이 정지시킨 데는
필시 어떤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 나라 안에서 우리에게 어디로 가라,
어디는 가지 말라고 명령하는 자(者)가 과연 누구냐?“ 고
화를 내며 언성(言聲)을 높였다.
대사는 나에게 도와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으나 나도
차갑게 외면해버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어 험악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대통령님은 대사께서 美군정인물들이 더 이상 한국에
입국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사실(事實)을 알고
계셔요.“ 하고 무초대사에게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무초대사도 그제야 살았다는 표정(表情)을 지었다.
대통령은 오늘 오전 11시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거행된
UN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UN이 한국을 도와서 한반도에서..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