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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南道 서정 속 귄의 시미학
박철영
‘남도南道’란 영산강과 섬진강역권으로 산과 들을 흘러 빠져나간 강물이 남도의 끝자락인 섬을 돌아 바다에 이르는 곳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그 산악에 깃든 사람들은 고단한 생을 통해 생존에 대한 근성을 오랫동안 함께 해왔다. 그런 세월이 시대를 거듭하면서 남도사람들의 체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체득한 심성은 강화되어 외부의 강제된 변화의 시도에도 쉽게 훼손되거나 변화되지 않는 불가역성으로 심화되어 남도의 맥락을 형성한다. 마치 각 지역마다 고유한 정서가 담긴 민요가 존재하듯 ‘남도’만의 정서를 형성하여 시미학적인 서정을 보여준다. 그런 변별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남도 서정 속 귄의 시미학’으로 규정하여 특정한 정서로 구분해 보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귄’이란 표현 자체가 남도 이외에서는 활용되지 않은 고유한 심미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흔히들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문장이나 대화로 마감하지만, 전라남, 북도 권역에서는 ‘귄’이라는 말로 독특한 내, 외모에 본색을 더하여 미적 가치보다 격조를 은근하게 더해준다. ‘귄’이란 말 그 자체가 얼굴의 외모에 대한 말이란 것은 분명하지만, 필자는 남도의 시적인 정서 표현의 방법에서도 은근한 변별 가치로 구현되어 왔음을 시문장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 마침 『미래시학』의 창간호 이후 금번 가을을 맞아 50호 발간에 맞춰 상응한 기고로 융성을 기원하는 축하의 마음도 담았다.
가장 도드라진 남도의 특징을 들라 하면 한恨의 정점에서 토설해 낸 진도아리랑이 있다. 그 아우라는 면면하게 시대를 초월하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 애환을 발설하여 위로해 주거나 포원을 해원 하는 구성진 가락으로 각색하여 다양하게 구전된다. 그런 연유는 시대와 지역마다 달리 한 고통으로 가장 절실한 실상이 반영되어 불려진 적층 문학의 보고로 강물처럼 흘러왔다. 남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내재된 한의 정서는 민요뿐만이 아니라 시에서도 절절하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그러한 정서를 시적 세계로 환기한 시들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낮고 그윽한 풍경을 닮은 시적 의미를 천착해 볼 때 인간미가 깊숙이 배어 든 정한의 정서로 변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남도만의 ‘귄의 시 미학적인 서정’이란 것은 일시적으로 발현되었다 소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도만의 지역적인 역사와 배경을 토대로 형상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해철 시인은 1956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산강가를 오가며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대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터득한 강의 삶이 낯설지 않았고 어느 순간 심연 속 체화된 기억에서 문청 시절을 거치면서 문학적인 형상을 심화해 간다.
그렇게 가슴 뜨겁게 바라보며 가슴을 에돌아 나온 풍경에 절절함을 담아 발표한 시가 ‘영산포榮山浦 1’이다.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르고
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
청무를 먹으며
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
빈손의 설움 속에
어머니는 묻히시고
열여섯 나이로
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
호남선을 오르며 울었다
강물이 되는 숨죽인 슬픔
강으로 오는 눈물의 소금기는 쌓여
강심을 높이고
황시리젓배는 곧 들지 않았다
포구가 막히고부터
누님은 입술과 살을 팔았을까
천한 몸의 아픔, 그 부끄럽지 않은 죄가
그리운 고향, 꿈의 하행선을 막았을까
누님은 오지 않았다
잔칫날도 큰집의 제삿날도
누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들은 비워지고
강은 바람으로 들어찰 때
갈꽃이 쓰러진 젖은 창의
얼굴이었지
십년 세월에 살며시 아버님을 뵙고
오래도록 소리 죽일 때
누님은 그냥 강물로 흐르는 것
같았지
버려진 선창을 바라보며
누님은
남자와 살다가 그만 멀어졌다고
말했지
갈꽃이 쓰러진 얼굴로
영산강을 걷다가 누님은
어둠에 그냥 강물이 되었지
강물이 되어 호남선을 오르며
파도처럼 산불처럼
흐느끼며 울었지.
-나해철, <영산포榮山浦 1> 전문
호남선의 종착지를 향해 이어진 철도변을 따라 남도의 지형들이 굽이치면서 산과 평야를 가로질러 곳곳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남도만의 정서를 선명하게 드러낸 시를 꼽으라면 단연코 나해철 시인의 ‘영산포榮山浦’다. 영산포는 영산강 하구에 있는 포구다. 그 포구를 통해 드센 세월이 부침을 거듭하며 쇠락으로 접어든 듯하다. 영산포엔 어느 때부턴가 만선의 깃발을 달고 드나들던 ‘황시리젓배’도 뜸해지더니 그 많던 고기잡이 배들도 하나 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고기잡이 배에 목을 매며 살아가던 포구 사람들도 더는 기다릴 수 없어 하나 둘 타지로 떠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든 이웃이었던 아저씨와 아줌마가 떠났고 머지않아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라며 정든 영산포와의 이별이 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누님이었다. 항상 해맑게 웃어주던 동네 누이가 보따리를 안고 서울로 떠나갔을 때의 상실감은 매우 큰 것으로 오랫동안 가슴에 상처가 되었다. 그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목격한 화자의 마음은 더없이 쓸쓸해졌고 시대의 변화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은 컸을 것이다. 포구 사람들만이 아는 단내를 품은 멸치젓갈은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불편할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전부여서 오히려 정겨운 것이다. 봄에 잡은 멸치에 왕소금을 뿌려 옹기 독에 한 동안 담가놓으면 맛깔스럽게 발효된 멸치젓갈 향내가 진동했다. 그렇게 맛깔진 젓갈이 둥근 밥상에 빈번하게 올랐을 것이다. 숙성이 최상에 이른 가을 이후 다디단 멸치젓갈 냄새가 진동하면 겨울 김장을 하려고 사람들이 포구에 몰려들었다. 그즈음 누님도 떠나고 없는 영산포를 둘러보며 기억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르고/ 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 청무를 먹으며/ 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라며 아름답다 할 수 있는 추억이라고는 강가에 앉아 강물처럼 흘러가는 현실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못 먹어 슬프도록 야윈 ‘누님’과 속이 덜 차올라 매운맛이 강한 ‘청무’를 뽑아 우걱우걱 씹어 먹던 일만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토록 사는 것이 고달팠지만, 불평 한마디 없던 누님의 집에 불행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집을 지탱해 온 엄마가 세상을 뜨면서 의지할 곳마저 없어진 “열여섯 나이로/ 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 호남선을 오르며 울”면서 떠나갔다. 이후 영산포구길은 막혀버렸고 더는 ‘황시리젓배’는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더 각박해졌고 생존의 냉혹함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하는 절박한 지경으로 내몰렸다. “포구가 막히고부터/ 누님은 입술과 살을 팔았을까/ 천한 몸의 아픔, 그 부끄럽지 않은 죄가/ 그리운 고향, 꿈의 하행선을 막았을까” 라며 비감한 시절을 상기 한다. 그저 덤덤히 평화롭게 흘러가던 강물이 아닌 격랑의 시절이었다는 것을 통감한다. 낭만스럽게 바라본 순정한 시절이 아니라 고통에 맞서 절치부심한 민중의 삶이 뿌리째 흔들린 시대에 대한 고뇌가 민요 가락처럼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그 누님은 바로 우리 이웃이고 우리의 엄마였고 피붙이로 절박한 현실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각성의 시간은 항상 뒤에야 오는 법이다.
고재종의 시 <백련사 동백숲길에서>도 한참 동안 시간이 흘러갔다.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소리소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무명을 들여다보고
동백꽃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봄 참인가?
고재종, <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전문
고재종 시인의 시 속에서도 혹독한 봄을 알리듯 동백이 핀다. 함께 동백꽃길을 걸으며 순하도록 슬프게만 웃음꽃을 피우던 누이가 옆에 있었다. 남도 해안가 어디를 가리지 않고 피고 지는 동백꽃이 전남 강진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만덕산 아래에서 피고 있었다. 붉어 더 서럽다는 동백꽃은 해맑은 누이의 모습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라며 아직까지는 본모습을 잃지 않았다. 이후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동백꽃처럼 예쁘고 붉게 벙글었던 누이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으로 환기된다. 철없이 좋기만 했던 시절은 무장 흘러 사라져 버렸고, 남은 것이라고는 서푼도 안 되는 기억만 새록새록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소리소리 후리는구나”라며 다시는 볼 수 없는 누이를 회상하고 있다. 동백꽃으로 표상된 누이는 운명처럼 다가온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라져 간 민중의 애환을 상징하고 있다. 그토록 힘든 상황에 처하였다 해도 속마음 한번 털어놓지 못한 채 죽어서야 동박새로 환생한 누이다. 그 누이를 대하듯 서럽다는 동박새의 울음을 잠시나마 잊으려 하였지만, 마음대로 진정되는 것도 아니다. 동박새 울음에 다시 피어나는 동백숲에서 지는 노을을 타고 번져온 어둠에 잠길 ‘무명(민초)’의 삶을 생각한다. 서럽기는 매한가지라서 서로가 통속의 마음을 부둥켜안고 저 붉은 동백꽃길을 따라 “이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봄 참인가?”라며 묻고 있다. 고재종 시의 세계 안에 존재하는 ‘동백꽃’은 나해철 시의 ‘영산포’와 마찬가지로 남도 서정의 상징성을 반복적으로 진작하고 있다. 그 상징하는 근본에는 고단한 삶의 시간들을 가슴으로 떠안아 애환을 이룬 정서와 상통한다. 사무친 세월의 더께를 통해 단단해진 화석처럼 남도 서정의 진앙체로 심정적인 진동을 발산하고 있다.
고사리 장마가 지나고 난 바닷길
깊게 패인 여울물 소리에 새우떼의 선잠을 깨우는
밴댕이와 알 품은 병어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전장포 앞바다에서는
서남쪽 흑산해에서 진달래꽃 피기를 기다렸다가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
마늘 뽑고 양파 캐어 말리던 늦은 오후,
구년은 자랐을 법한 일 미터의 십키로짜리 숫치를 토방에 눕히고
추렴하여 내온 병쓰메*에 네 등살은 막장에 얹어 먹고
목살은 묵은지에 감아먹고 늙은 오이짠지는 볼 살에 얹어 먹고
고추 참기름 장에는 부레와 갯무레기 뱃살을 적셔먹고
갈비뼈와 등지느러미 살은 잘게 조사서
가는 소금으로 엮어내는 뼈다짐으로 먹어도 좋고
내장과 간은 데쳐서 젓새우 고추장에 볶아내고
쓸개는 어혈이 많아 어깨가 쳐진 친구에게 내어주고
아랫 턱 위에 붙어있는 입술 살은 두 점 밖에 안 나오니
내가 먹어도 될 성 싶은
깊은 고랑 주름살에도 꼬리뼈 살을 긁적거리고 있노라면
봉굴수리잡* 옆의 대실 개복숭아는 제법 엉덩이가 빨갛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새우 놀던 모래밭을 파헤쳐
집 지을 때부터 플랑크톤이 없던 모래밭에
새끼를 품어내지 못한 오젓, 육젓이 밴댕이를 울리고
깡다리를 울리고
병어를 울리고
내 입맛 다실 갯지렁이도 없는 바다에 올라 칼끝에 노래하던
민어의 복숭아 빛 속살은 다시 볼 수 없으리라
*병쓰메: 2홉짜리 작은 소주. 일본말 빙즈메에서 온 말.
*봉굴수리잡: 봉굴저수지 옆에 있었던 수리조합의 준말.
-김옥종, <민어의 노래>
민어가 자주 출몰하는 전남 신안군 임자면 ‘전장포 앞바다’는 김옥종 시인이 태어나 성장한 곳이다. 농촌이나 어촌이나 보릿고개라는 고달픈 계절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농경지가 부족한 섬에서 고사리를 뜯는 봄을 지나 바다를 둘러싼 산 능선에 진달래 꽃이 붉게 피었다. 빨갛게 핀 진달래꽃이 시들고 ‘조금’ 물때가 몇 번을 지나서도 한참을 또 견뎌야 했다. 찰방찰방 잔 파도 소리를 출렁이며 “뻘물 드리우는 사리물 때를 기다려/ 뿌우욱 뿌우욱 부레로 내는 속울음으로/ 내 고달픈,/ 고향에 다다른 칠월의 갯내음을 아가미로 훑는다”는 물 때는 밀물과 썰물의 차가 최대가 되는 시기여야 그토록 기다리던 민어가 떠난 섬을 기억하고 돌아왔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상은 산처럼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는 것으로 절박한 것이다. 고달픈 삶을 이어가며 한순간이라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듯이 김옥종 시인은 섬사람들의 체질화된 생존의 열망을 ‘민어’라는 어종에 빗대어 공감의 크기를 비례화 한다. 민어가 돌아온 계절도 일 년 중 한 때에 불과한 것이어서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라며 또 내일을 생각해야 하는 신안 앞바다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남도의 삶이 매번 고비처럼 다가와 일순 해소된 듯 고저를 이루지만,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는 고통은 운명이란 처지를 과감하게 떨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한 맺힌 서편제의 가락처럼 아득하게 멀어졌다 다가온 계절을 위안 삼아 힘든 시절을 견뎌내는 것이다.
비 오고 안개 자욱한 날
세량지 산길에 산벚꽃 피고
물가에 산벚꽃 진다
꽃들은 사람의 눈 밖에서 피고
사람의 마음에서 진다
보라색 손톱만한 으름꽃이
물안개를 흠뻑 머금었다
이 비 그치면 으름꽃 벙긋 터지겠다
연두가 붉은 꽃들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신생의 봄날
물오른 오리나무 물속에 물구나무 서있다
연인아, 너 오지 않는 동안에
세량지 물가에 수수꽃다리 피고
수수꽃다리 진다.
-나종영, <세량지>
비 내리는 날 전남 화순의 ‘세량지’를 둘러싼 봄 산이 물빛과 한데 어우러졌다.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길가 연못 풍경은 남도라 해서 특별하지 않다. ‘신생의 봄날’이란 것도 어느 것 하나 쉽게 본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산안개 자욱한 풍경도 그렇고 빌미 삼아 꽃봉오리 무장하게 터뜨리는 산벚도 제 나름 셈법이 있다. 만물의 생동하는 기운을 보며 시인의 가슴이 들뜨고 기어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어도 낯설지 않은 꽃의 기억들을 더듬어 격정에 들뜬 심연을 드러낸다. 저 산에 핀 산벚꽃처럼 눈으로 번져온 사랑이 또 한 번의 기회로 다가온다. 이내 “보라색 손톱만한 으름꽃”이 터지기 전 고조된 긴장은 가슴까지 차올랐다. 대답 없는 “연인아, 너 오지 않는 동안에/ 세량지 물가에 수수꽃다리 피고/ 수수꽃다리” 무량 없이 진다 하지만, 소식 없는 연인을 원망하지 않고 그렇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면면히 이어온 남도의 근성이란 것이 사무친 정한을 매몰차게 외면한 적 없었기에 그토록 못 잊어한 ‘연인’을 가슴에서 지울 수 없다. 그 꽃 지고 나면 기약없는 사랑을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지만 속내는 변함이 없다. 연못 안에서 물구나무선 오리나무의 생애가 고통스럽다고 원망하지 않듯 자연의 이치 속에서 피고 지는 꽃을 닮아가려 한다. 인생살이란 것도 순간순간 교차하는 꽃의 생애와 다를 바 없어 그저 운명처럼 안고 가는 것이다. 오랜 가뭄에 화순 세량지가 바닥을 드러내도 그것이 끝이 아니란 것을 보아온 나종영 시인의 지극해진 마음으로 풍경을 아우른다. 남도의 서정은 절정을 통해 완경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남아있을 사무친 마음을 잊지 않으려는 데 있다. 남도의 마음으로 우려낸 심연의 속은 깊고 깊다. 말에 안과 바깥이 있고 둘레를 또 만들어 층층 깊어가는 시행의 언질들이 그저 대수로울 수 없다. 모두에서 말미까지 조곤조곤 조성국 시인의 시 한 편을 올려본다.
홧김에 휴학하고 몇 날
며칠 되들잇병 깡소주 마시고
가죽 혁대에 박박 문지른 면도에
배코질하고 신병 훈련소의 각개전투
철조망 밑을 등가죽 벗겨지도록 기며
아랫입술 감쳐물고
좆도, 그까짓 여자 때문에 울지말자
눈두덩 짓누르고 또 짓눌렀다가
밤새껏 기승스런 소짝새 울음에 실려
지하 경게 초소까지 슴베이는 월색에
탈영할까 말까 심사하고
숙고하다가 그만 영영 울고 말았던
2.
잔뜩 군기 잡혀 쥐어박히고
맬겁시 전라도 깽깽이라고 얻어맞고
강제집징당한 요주의 관찰 대상자라 해서
걷어 차이고 의무대 침상에 앓아누웠는데
몸매 하늘하늘 귄 있는 간호장교
회진을 왔다 국군통합병원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섬섬옥수로
맥박 재고 체온도 재 보더니
낯이 익다고 청안시하며 고향을 물었다
광주 염주마을이라 했는데
혹시 아무개를 아느냐 묻고, 재차 묻고 또 묻기에
얼뜨려 오촌 종숙이라고 대꾸했더니
느닷없이 엉덩일 까게 해서 탁탁 때리며
세차게 장침의 주삿바늘을 놓는 통에
여러 나날 곰발 난 듯 엉덩이를 쭉 빼고
엉거주춤 걸어도 다녔는데 의젓하던 백의 천사의
손목이 그처럼 매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조성국, <실연>,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
조성국 시인은 시의 본령을 넘나들며 가끔은 한참을 멀어졌다 다시 어느 순간에 되돌아와 있는 그만의 시법을 잘 구사하고 있다. 시력도 풍부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넉넉하다. 과거의 이력을 말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아픔을 잘 견뎌내며 시의 본향을 향해 정진해 가는 시심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 특히 조성국 시인이 발간한 시집을 보면 대체적으로 남도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층위 속에 내재된 감칠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조성국 시인이 토속적인 언어망을 잊지 않고 구사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도 곧은 시심과 마음에서 시인만의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견고하다는 것일 것이다. 80년대 광주를 맞닥뜨리며 누구나 겪었을 비애 같지만, 그것도 세월이 흘러서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분명한 사회적 가치를 행동으로 실행했을 뿐이다. 시속에 들어 있는 서사는 사실이기에 충분히 이해되는 것으로 굳이 전문을 울린 것은 문장속에서 우러나온 남도 사람들이 갖는 ‘귄’의 정서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유한 정서가 ‘은근함과 고통도 스스로 감내해 가는 언어행위’를 감칠맛 나게 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몇몇 편을 더 붙이고 싶은 마음에서 좀더 말을 이어간다.
조성국 시인의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 시인수첩. 2020) 자박자박 들려주는 시 문장 속의 남도 만의 질박한 서사는 종종 가슴을 흔들어 살가운 시의 맛을 풍요롭게 한다. 그중 몇 편의 시 중 <저녁 목소리>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금방이라도 목청 낮춰 화자를 부를 것만 같은 “주린 집개가 허천뱅이별을 바라보며/ 눈동자 빛내는/ 그맘때를 훌쩍 뛰어넘어 실컷 놀던 나에게 하얗게/ 새하얗게 밥 짓는 연기 나지막히 펴져 오듯/ 밥 먹으라, 데리러 오는 저녁 목소리가/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는 저녁 밥때의 풍경은 세월이 흘렀지만,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한 인정을 담아낸다. <저녁이 올 때>에서 “허릴 토닥토닥 다독이다 말고 냅다 퍼 짚으며/ 한껏 뒤로 젖힌 젖무덤”도 그렇거니와 “덩그란 산봉 따라 저만큼 펼쳐진 대낮이/ 이제 막 가라앉은 논물에 스며들 듯”, “아시랑아시랑 집으로 찾아드는 어스름”에 바빠진 들녘은 어딜 가나 다르지 않은 그 시절의 살가운 풍경인 것이다. 조성국 시에서 그에 더해 알싸한 색감을 덧칠해 질감을 높여가는 심정적 풍요는 흔치않은 의외성을 유발한다. 육감적인 언사도 <봄밤>에서 거침이 없다. 일교차처럼 변덕스럽게 달아오른 가슴 속 주체할 수 없는 격정으로 “소쩍새 울음에 잠 못 이루는 불목허니”도 그렇거니와 “문종이에 덧대어 바른 불두화 꽃잎”의 공감적 상관성으로 “괜히 묵은 배롱나무만 몸을/ 비비 꼬아 틀었다”라며 고조된 봄밤을 서둘러 누그려 뜨렸다. 화엄사 각황전 홍매에 심취해 있던 차에 겨우 진정시킨 마음을 <또, 봄밤>에서 자극하고 만다. “꽃가지에/ 바알갛게 물든/ 애인의/ 속옷을 처음 벗기던 것마냥/ 벌렁벌렁 요동”친 마음을 화자의 ‘극락왕생’의 발원으로 환기한다. 마치 남도 산자락에 가려 보일 듯 말듯한 고만고만한 집들과 그 안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은밀함을 농치듯 받아넘기는 여유는 시적 정감에 상상력까지 더해준다. 조성국 시에서 출현한 문장은 수묵을 풀어 그린 담채화처럼 흐릿하다가도 명징해지곤 했다. 그런 시의 여백을 부조하고 있는 남도 서정의 궁극이 지향하는 지점은 잃어버린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는 것이다. 고통스런 일상에서도 전환적인 삶의 긍정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에서도 그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또한, 선량한 한 마음으로 매사에 그래야 한단 당위를 벗어날 때 벌어지는 행동의 결과도 직정적인 희화戱化로 반전하는 것도 조성국 시에서 만날 수 있는 줄거움이다. <어떤 벌(罰)>에서 품성에 바탕한 풍속도 언제나 선해야 한다는 듯 “식전 댓바람부터 씩씩거린다/ 코 짜부라지다시피 땅딸한 신접의 형수/ 쌍붙은 땅개를/ 간짓대 들고 막다른 고샅까지 몰아붙였다”는 것까지였다면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다. 반전은 “몰아붙이다 말고/ 찬물 한 바가지 냅다 찌끄러 대다 그만,/ 다릿심 반남아 풀려/ 지르밟은 나락명석맡의 당그래에 이마빡을/ 된통 얻어 맞았다”는 고소함이 한동안 희희낙락할 숭거리를 살려낼 것이다.
이처럼 남도 서정을 관통하고 있는 시의 정서는 사람 사는 일들을 실감나게 문장으로 묘사 재현하여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로 환기하려는 데 있다. 또한 난감한 경우에도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통해 격조있는 품격을 지켜가려는 것도 남도가 품고 있는 시적 서정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으뜸인 것은 말뿐만이 아니라 구조한 문장 속에서도 살갑게 다가오는 속내를 튕기는 듯한 심정적 묘사가 마치 ‘귄’ 있어 더 이삐보인 것처럼 한껏 시적 위의를 고조시킨 것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