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5
2007년 5월 가수 비가 도쿄돔에 섰다. 폭우가 쏟아졌다. 여닫을 수 있게 돼 있는 거대 지붕을 닫았다. 관객 4만3000여 명이 들어찼다. 인기 그룹 SMAP 멤버, 축구 선수 미우라 가즈요시 같은 일본 스타들이 객석에 앉아 있었다. 비는 힘찬 몸짓과 노래로 도쿄돔을 들썩이게 했다. 한국 가수의 첫 도쿄돔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 도쿄돔은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홈구장이다. 세계적 스타나 일본 최고 가수만 서는 초대형 공연장으로도 쓰인다. 마이클 잭슨, 비욘세, 이글스가 여기에 섰다. 일본 가수도 X재팬, SMAP, 아무로 나미에 정도 돼야 이 무대에 오른다. 무엇보다 5만5000 객석을 채울 만한 인기와 관객 동원력이 필수다. '겨울연가' 이후 불붙은 한류 붐을 타고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JYJ, 카라, 소녀시대, 2PM 역시 도쿄돔에 섰다. K팝 스타가 줄을 잇던 때다.
▶ 방탄소년단이 어제 그제 이틀 연속 도쿄돔 밤을 밝혔다. '원폭 티셔츠' 논란으로 일본 방송사들이 출연을 취소하고 혐한(嫌韓) 보도와 우익의 비판이 쏟아지던 와중이었다. 공연장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밤마다 5만명 넘는 관객이 몰려 "BTS 사랑해요"를 외쳤다.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ARMY)'가 주축이었다. 다음 주 오사카 교세라돔 사흘 공연과 내년 1·2월 나고야, 후쿠오카돔 이틀씩 공연도 벌써 매진이다.
▶ 지난주 일본서 나온 방탄소년단 싱글 앨범 '페이크 러브/에어플레인 파트2'는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걸그룹 트와이스는 음반 '예스 오어 예스'로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했다. 한국 남녀 아이돌 그룹이 나란히 일본 가요계를 휩쓴 셈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한국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일본에서 커지던 중에 나온 소식이다. K팝 경쟁력이 정치나 역사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 만큼 커진 것 같다.
▶ 올해는 우리가 일본 대중문화에 문을 연 지 20년이다. "일본 문화에 종속돼 우리 문화 산업이 말라 죽는다"는 불안은 오래전 깨졌다. 영화·드라마·대중음악·게임·애니메이션 같은 문화콘텐츠의 대일(對日) 수출은 13억7605만달러(2016년)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1억5099만달러보다 10배 가까이 된다. 문화는 개방하고 섞이면 강해진다. K팝의 약진이 대표적이다. K팝은 일본과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에서 춤과 노래의 '메이저리그' 주역을 넘볼 만큼 훌쩍 컸다. 그 선두에 방탄소년단이 있다.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