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만추문예 시 당선작
녹는점
박진아
내 책상 위의 돌
누가 줬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길고 유연한 밤이 시작되는 사막의 모래색을 가진 둥근 돌
돌의 몸에는 하얀 점, 갈색 얼룩, 검은 번짐, 숨어있는 세로선, 패인 자국
손안에 쥐고 손가락으로 안아본다
한 손에 안긴 돌은 편지 속 마침표처럼 차가워
하아아아아 입김을 불어 본다
돌이 돌을 불러와 돌은 돌로 채워져 돌은 돌을 노래해
서늘한 바다를 닮은 고비사막의 밤 기온, 모래 언덕에서 떨어진 흙 알갱이, 사막에서 혼자 새끼를 낳은 어미 낙타
돌의 몸에 있는 패인 자국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본다
불규칙한 선과 면이 돌의 몸에 모래처럼 쌓여 있어
돌이 돌을 깎아내 돌은 돌과 부딪혀 돌은 돌을 기다려
돌의 앞면과 뒷면을 구별할 수 없어 한 손에 돌을 쥐고
나를 보고 있는 돌의 몸에 난 세로선을 따라
파란 색연필로 호수를 그린다
한 줄, 두 줄
그은 선이 만나고 쌓여 돌의 몸에 호수가 생긴다
상처 난 몸 위에 그려진 호수는 어미 낙타의 눈물처럼 고요해
하아아아아 호수에 입김을 불어 본다
일렁이는 호수 안에 돌의 노래, 돌의 목소리, 돌의 뒷면, 돌의 둥근 몸
손안에 쥐고 흔들어 본다
호수는 일렁이다 찰랑이고 물이 흘러넘쳐 돌을 쥔 손안에 고인다
돌의 뒷면이 호수에 잠긴다
기억하지 않는 얼굴 앞면이 돌과 겹치며 호수 안으로 가라앉는다
손안에 고인 물에 창백하게 젖은 돌을
고요한 입에 넣는다
축축하고 차가운 돌이 부드럽고 따뜻한 입천장에 닿는다
입안을 부풀려 돌의 둥근 몸을 돌려 가며 녹인다
하얀 작은 벽에 부딪히는 돌, 붉은 이불로 돌을 감싸안는다
사막을 뒤덮은 소금 호수처럼, 하얗게 녹아 결정이 된 소금처럼,
이불의 온기로 돌은 녹아진다
돌이 돌에 안겨, 돌은 돌을 녹여,
돌에 돌이 잠길 때까지
돌과 돌의 경계가 없어질 때까지
돌 속, 선량한 돌의 심장이 나올 때까지
둥근 돌 몸속에 들어있는 모래색을 가진 선량한 심장
사막을 뒹구는 돌의 체온, 잠든 밤 돌을 깨운 호수의 일렁임, 소금 결정처럼
굳어 가는 돌의 심장
빈 어항에 돌을 넣는다
돌이 어항 속으로 가라앉을 때 호수는 일렁인다
일렁임은 돌의 심장을 부르고, 손안에 고인 물이 돌 위로 흐른다
심장은 돌처럼 녹아 어항 구석에 고인다
[만추문예] 낯선 돌의 비밀을 풀어내는 시인 - 매일경제
박진아
1976년생, 인덕대 토목과 졸업
그림책 『구멍』, 『좋아좋아좋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