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내 방에는 원래 인형이 딱 네 개 있었다. 곰돌이 인형 셋, 강아지 인형 하나. 곰돌이는 하버드와 스탠포드 반팔티를 입고 있는데, 미국에 계신 어머니의 친구 분께서 우리의 대입을 위해 사온 친구들이다. 다른 곰돌이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사귀었던 친구가 크리스마스 날 선물로 준비했던 인형이다. 귀엽기도하고, 가족들한테는 선생님께 받았다고 거짓말을 해놓은 상태라 버리지 못하고 여지껏 데리고 지낸다. 강아지 인형도 꼬질꼬질하지만 나와 내 여동생의 어린 시절을 책임져주었던 친구라 여전히 방에서 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닥 나는 인형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하자면 좋고 싫음의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했었다. 그저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았던 귀여운 장식물 정도? 밤에 잘 때도 내 옆자리는 베개 차지였지 인형이 있던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랬던 내 방에 일 년 사이 새로운 인형이 넷이나 들어왔다.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분홍색 돌고래 인형 올리버, 내가 직접 만든 양말인형, 그리고 무민과 몰랑이 인형. 몰랑이는 프랑스에 간 동안 애인이 내 무사귀환을 바라며 준비했다가 내가 귀국하자 선물로 줬고, 300일 기념으로 무민 인형을 받았다.
그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애인과 함께 커플로 맞춘 인형들인데, 내 생각보다 애인은 의외로 더 인형을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애인이 나와 사귀고 새로 맞이한 인형들만 모두 다섯. 분홍색 돌고래 인형 필립, 흰색 물범 인형 마리오, 흰 리라쿠마 인형과 카카오톡 캐릭터 무지 인형, 그리고 내가 만들어서 준 양말인형 목이. 모두 좋아하지만 특히 목이를 잠 잘 때마다 손에 꼭 쥐고 잘 정도로 많이 아낀다. 한 손에 꼭 쥐어지는 크기이기도하고, 솜의 촉감이 좋아 말랑말랑 폭신폭신하다. (비록 자고 일어나면 바닥 저편에 나뒹굴고 있긴하지만..) 귀여운 인형을 좋아하는 애인덕분에 선물로 인형을 챙겨주기도하고 받게 됐는데 옆에 두고 자니 꽤나 그 심적 편안함(?)이 괜찮았다. 두 눈이 큰 무민은 내가 안았을 때 두 팔을 다 써야할 만큼 커다란 크기인데 쓰다듬고있다보면 잠에 잘 못 드는 나조차도 스스르 잠에 빠지게 된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바비인형처럼 목욕탕에 데리고간다거나 놀이용품으로 쓰지는 않아도 그저 안고만 있는데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좋아 자연스레 나도 인형을 좋아하게 됐다. 나는 인형들에 그렇게 특별한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님에도 괜시리 더 정이 가고, 하룻밤 이틀밤 껴안고 자는 날이 늘수록 잘 때 더 찾게 되었다. 털을 결대로 쓰다듬을 때 느껴지는 본능적인 나른함은 나도 알 수 없을만큼 강력한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걸 왜 모아, 진드기의 주거주지라는 어머니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하나둘씩 모으게 되는 중독성이 생긴다. 다음 번에는 에버랜드에도 한 번 들고 가봐야지. 애인과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무릎 위에 무민 인형을 올려놓는다. 금새 또 잠이 들고 싶어지는 건 피곤해서 뿐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오늘도 꼭 껴안고 얼굴 좀 부비다가 스르르 잠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