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 두릅가시에 찔리면 큰일 나
기억과 추억 사이/수필·산문·에세이
2007-06-03 06:37:34
평전 마을 옆 산자락이라 했다. 날이 저물면 눈에 불을 켠 들짐승 몇 마리 어술렁거리며 나올법한 산자락이라 했다. 말로만 들으면 처가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외진 곳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차로 10분쯤 걸리는 거리, 몇 해 전 장인어른이 소일삼아 과수원을 일구었던 산자락으로 오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장모님의 부탁 때문이었다. 아침에 성당 신자의 딸 결혼식에 참석한 후 아내와 계족산으로 산행을 다녀올까 하다가 받은 장모님의 전화, 빨리 내려와 두릅을 따 가란 말에 얼싸 좋다하고 후다닥 처가로 내려온 길이었다. 운동 삼아 산행을 하는 것도 건강에 좋지만 산자락을 훑으며 두릅순을 따는 맛 또한 추억에 남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릅이란 말만 들어도 내내 상큼한 향내가 입안에 가득 차 올랐다. 뜨거운 물에 데친 두릅을 초장에 찍어 먹을 때의 그 맛이 아직도 스멀스멀 혀끝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처가에 들러 장모님과 함께 과수원으로 개간했던 산자락에 와보니 맨 먼저 우리를 맞는 건 풀들이 지천으로 솟아오른 황량함이었다.
그 때 바람과 구름과 햇볕을 벗 삼아 튼실한 가지를 무작정 뻗어 올렸던 그 많던 자두나무들은 흔적 없고 그 대신 얼키설키 헝클어진 들풀위로 솟구친 두릅나무와 가죽나무, 머위들이 서로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과수원을 판지도 한 4.5년 정도는 된 것 같았다. 장인어른이 불편한 몸으로 과수원을 건사하는 것도 힘이 부쳐 결국 남에게 팔았는데 주인을 잃은 과수원은 그때부터 황량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상전벽해란 말은 바로 이런 처지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듯 자두나무밭이 황무지로 변해있는 꼴을 보니 땅이 꺼져라 한숨만 새어나왔다. 그러나 아쉬운 내 마음은 아랑곳 하지도 않고 두 모녀는 두릅나무를 보자마자 경쟁을 하듯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사우도 빨리 저쪽에서 따, 억센 것도 다 따 담아. 물에 데치면 풀어지니께‘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은 두릅나무는 그 끝에 곱고 부드러운 두릅순을 매달고 있었는데 전에 한번 다른 사람의 손길을 탔는지 뜯어간 흔적이 역력했다. 그 대신 애기손처럼 오종종 올라온 부드러운 두릅순을 감싼 채 날개처럼 우후죽순 잎을 펼쳐 올린 센 두릅순들이 솟아나 있었다.
그러나 내 키를 훌쩍 넘은 두릅나무에서 두릅을 따는 것은 고역이었다. 나뭇가지 끝이 손이 닿지 않는 바람에 나뭇가지를 둥글게 휘어잡고 두릅을 따다보면 껍질에 송송 박혀있는 가시들이 따끔따끔 찔러대기 일쑤였다. 거기다 가지가 너무 약하고 연한 바람에 더 세게 구부리면 딱 하고 부러져 버렸다. 점점 끝이 뭉툭한 나뭇가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붉으스레하게 매달려있던 두릅순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봐도 족히 몇 그루정도는 해 치운 것 같았다. 특히 전에 움막이 있던 자리에 두릅나무가 많았다. 그 시절 과수원 밭가에 허름하게 지어놓은 움막은 훌륭한 쉼터 역활을 했다. 자두꽃이 흐드러지게 피거나 물오른 자두가 주먹만하게 주렁주렁 열릴 때면 처가에 와도 맨 먼저 이 움막에서 점심을 때우며 시간을 보냈다. 구들장 같은 넓고 평평한 바윗돌을 한 중간에 놓고 주변을 둘러 거적과 비닐을 덧대 세워놓은 움막집, 검은 화강암 비석을 꽂아놓은 오래된 무덤이 지척에 있어 음산한 기분이 들게 했지만 맑고 향긋한 자두꽃 냄새에 취해 망중한을 보내기엔 제격이었다. 인적도 드문 곳에서 이런 삶을 사는 것도 나에겐 호사로 다가오리라.
두 모녀의 자루는 벌써 두릅순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몸빼 바지를 빼입은 듯 날씬하게 키가 큰 가죽나무도 눈에 들어왔다. 가죽잎과 두릅순은 구별하기가 힘들 정도로 닮아있었다. 내 유년시절 어머니는 집 앞 언덕배기에 자라는 가죽나무에서 가죽잎을 따 맛있는 반찬으로 무쳐 주었다. 밥 한 숟가락을 퍼서 그 위에 양념한 가죽잎을 얹어 먹을 때의 맛이 어른이 된 지금도 내 혀끝을 얼큰하게 적시고 있었다.
머위도 한군데 오복이 모여 잎을 술렁이고 있었다. 머위 또한 그 시절 우리 집의 먹거리였다. 머구라고도 부른 머위는 초가집 뒤안으로 진을 치며 우후죽순 흩어져 있었는데 어머니는 머위줄기를 뜨거운 물에 데쳐 껍질을 벗겨 반찬을 만들어 주거나 밀가루를 반죽하여 머위줄기를 넣고 국을 끓여 밥상에 올려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구수하게 혀끝에 감기는 머위국은 그 맛이 상큼해서 좋았다. 서툰 솜씨로 끓여준 국이지만 감칠 맛 나게 맛이 있었다. 물론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이라 그렇겠지만 어머니의 손끝에 배인 솜씨는 내 입맛을 매료시킬 만큼 훌륭한 요리기구였다.
두릅을 따는 아내와 머위를 따는 장모님,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기할 만큼 많이 닮았다. 갸름한 얼굴이나 목소리, 산이 떠나 갈 듯 웃어제치는 웃음소리는 한 핏줄이라고 알려줄 만큼 닮은 구석이 많았다. 더 따 담을 두릅순이나 가죽잎이 없는지 아내는 이제 까만 화강암 비석이 꽂힌 무덤앞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무덤 앞을 훑어 봐. 고사리도 있을 끼여. 사우도 같이 가”
“무덤에서 딴 고사리는 어쩐지 찝찝한 생각이 드네요”
“괜찮아, 아무 상관없어”
억지로 걸음을 옮겨 무덤 앞으로 올라왔지만 아내가 세 개 정도 고사리를 꺾었을 뿐, 찬찬히 훑어봐도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무덤 아래 풀밭으로 내려와 바람결에 춤추듯 잎을 팔랑이는 머위들을 뜯기 시작했다. 흙과 함께 딸려 올라오는 머위뿌리를 손톱으로 똑똑 끊어 자루에 밀어 넣었다. 두릅순과 까죽잎, 머위잎이 한데 뒤섞인 자루는 금세 불룩해졌다.
불룩한 자루를 차에 싣고 와 처가마당의 돗자리에 쏟아놓은 것은 해거름이 내려앉을 때였다. 늦봄의 봄기운에 묻혀 상큼한 내음도 뒤섞여 올라왔다. 이것이 자연의 냄새였다. 비바람과 햇살에 젖어 살집을 불리고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재공해주는 천연의 먹을 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그리고는 모두들 둘러앉아 먹을 것들을 다듬기 시작했다.
두릅 줄기에 송송 박힌 가시를 칼로 박박 문질러 긁어내는가 하면 세서 못 먹을 것 같은 가죽잎들은 골라내고 머위줄기에 묻은 흙을 털어내어 정갈하게 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두분의 농담도 구수하게 익어갔다. 완전 잔칫집 분위기처럼 가족들의 정이 뚝뚝 묻어났다.
“사우, 두릅에 나있는 가시를 칼로 빡빡 문질러야 돼”
“두릅가시도 가시여. 칼로 문지르게, 데치면 그냥 허물허물해져 아무 탈이 없어”
“모르는 소리 하지 마, 두릅가시에 위장을 찔리기라도 하면 클나”
해거름이 되어 대전에 올라갈 시간이 되었지만 두릅부침개를 부쳐 먹고 가라는 장모님의 성화에 다시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두릅부침개라니, 파나 배추 적은 부쳐 먹은 적이 있었지만 두릅부침개는 처음이라 맛이 아주 독톡하고 색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정갈하게 다듬은 두릅순을 한주먹 집어 부엌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칼질소리 요란하고 소나기 쏟아져 내리듯 차르르 반죽이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남은 것들을 마저 다 다듬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한참만에 부엌문을 열어보니 뚝딱 부쳐놓은 부침개 한 조각, 노릿하게 익어 구수한 냄새를 봄기운처럼 풍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