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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분들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죠? 네 평안하지 않으셨나요? 니하오 지난 한 주 동안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누군가를 만날 때는 니하오 그리고 뭐만 하면 셋이 다른 말은 몰라요 그냥 네 여러분들이 지난 한 주간 너무나도 관심 갖고 기도해 주셔서 정말 은혜롭게 대만 비전 트립을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 대만 비전트립은 13년 동안 코칭 네트워크라고 하는 모임이 이렇게 이어져 왔는데요. 이 코칭 네트워크 모임을 통해서 다녀왔습니다. 8분의 목회자들이 함께 다녀왔는데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교단에서 하는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그 프로그램에서 시상을 받은 아주 거금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거금이 시드머니가 돼가지고 이번 대만 여행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교회에서도 이렇게 지원해 주셔가지고 풍성하게 이번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시행착오부터 우여곡절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별히 8명 중에 두 분의 부모님이 곧 돌아가실 상황이라 아무래도 좀 쉽지 않겠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비행기를 곧 취소해야 되는 그리고 또 저는 또 이제 여러 가지 계획해놓은 것 중에 숫자를 또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거든요.
근데 상황에 따라서 우리 한번 기도하면서 대처해보자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준비를 했는데 바로 여행 떠나기 전 주 월요일날 오생남 목사님 어머니 돌아가셨잖아요. 그리고 딱 여행 돌아와가지고 그다음 날 또 그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강문구 목사님 어머니가 그래서 어떻게 기가 막히게 그 날짜를 딱 빗나가게 하셨는지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이번 이 비전 트립을 통해서 뭔가 깨닫게 하고 보게 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날씨도요. 너무 좋았어요. 지금은 대만이 여행의 비수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약간 비도 많이 오는 우기여서 여행을 별로 안 오는 시기래요.
근데 선교사님도 그렇고 또 이제 여행 가이드 하는 사람의 설명도 그런데 분명히 이 중에 날씨 요정이 있는 것 같다 막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자기가 생각할 때 일반적인 날씨가 아니라는 거예요. 너무 여행하기 좋은 날씨라는 거예요. 그 우리가 간 때가 그래가지고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고 또 비가 가끔 오는데 오는 시간은 꼭 저녁에 우리가 숙소 들어가서 잠잘 때 막 이럴 때만 막 왕창 오고 이런 식으로 날씨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막 이렇게 다니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하나가 너무 넘쳤어요. 근데 그러면서 우리가 질문을 던졌으니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히게 하나님이 인도하실까 근데 공통적인 우리의 답변은 뭐였냐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성도님들이 계시니까 또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들을 인도해 주실 거야라고 그렇게 표현할 정도로 하나하나 모든 과정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제가 매일매일 좀 이렇게 보고드리듯이 사진을 몇 장 이렇게 올렸는데 집사람이 괜히 이렇게 여행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의 그 사진들을 올려가지고 못 나가는 분들도 계신데 괜히 좀 그렇지 않냐 그랬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마음보다는 성도님들이 기도해 주시고 또 제가 이번에 일정을 전체적으로 구성하고 인도해야 되는 상황이어서 솔직히 처음 가는 곳인데 제가 거기를 가이드를 해야 되니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요 그쵸?
근데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셔가지고 너무나도 짜진 대로 다 인소를 했고 잘 먹고 잘 보고 잘 느끼고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이 4일 일정 중에서 이틀의 일정은 대만이라고 하는 나라가 이렇게 길쭉하게 생긴 섬인데요. 이 길쭉하게 생긴 섬에서 이 동쪽의 중부 쪽에 있는 화렌이라고 하는 시골 마을 그 마을에 있는 선교사님이 곳에 선교사님이 계신 곳에 갔습니다.
선교사님과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사역지 그리고 그 주변에 이제 원주민 사역지를 좀 돌아보는 그런 시간을 가졌는데요. 탐방 중에 이제 대만이라고 하는 나라의 어떤 특징 또 이 나라가 가진 역사적인 아픔, 또 기독교가 지금 어느 정도의 상태인지 이런 것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대만이 우리나라랑 그렇게 멀지 않거든요. 근데 멀지 않은데 너무 대만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만은 우리나라와 수교 국가일까요? 아닐까요? 저보다 더 훨씬 잘 아시네요. 저는 대만은 우리나라랑 수교 국가로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중국하고 수교를 맺으면서 바로 이 수가 이렇게 끊어졌더라고요. 돌아다니는데 우리나라 광고가 안 보여요. 제가 해외를 자주 나간 건 아니지만 몇 번 나가보면 우리나라 삼성 LG 우리나라 연예인들 막 이런 사진들이 잘 보였는데 여기 갔는데 거의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지 그랬더니 좀 약간 그런 것들도 있더라고요.
일본의 영향력이 굉장히 커요. 일본에 50년 동안 통치 기간이 있었는데 오히려 우리나라는 굉장히 일본하고 감정이 안 좋은데 대만 사람들은 감정이 좋더라고요. 50년의 시간을 거쳤는데 오히려 그 50년 전에 자기들을 괴롭히던 사람들이 있어가지고 그 사람들보다는 훨씬 잘해준 거예요. 그래서 일본의 어떤 영향력이 잠재가 많이 남아 있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그냥 대만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나눌 거니까 한번 설명을 해보면 경상도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땅입니다. 별로 안 크죠. 제주도보다는 한 20배 정도 큰 나라인데요. 대만에 원래 원주민이 있었는데 그 원주민이 지금 그 나라의 한 2% 정도밖에 되지 않고요. 대부분은 한족들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들입니다. 청나라 때 넘어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이제 국민당이 이제 공산당하고 싸우면서 패배해가지고 넘어온 사람들. 그래서 이 사람들과의 어떤 갈등의 문제도 굉장히 좀 심각해요.
특히 원주민들은 2%밖에 되지 않고 굉장히 약자이기 때문에 좀 이따 이제 제가 또 설명도 드리겠지만 굉장히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여기도 출산율이 너무 떨어져가지고 지금 사회적인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고 이 도교 불교의 영향력을 볼 수 있어요. 기독교인들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불교와 도교의 영향력을 그대로 가지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솔직히 그런 게 좀 있잖아요. 약간 밑바탕에 불교적인 유교적인 밑바탕에 있듯이 좀 그런 영향력이 강합니다. 가정이 굉장히 많이 무너진 사회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아침에도 보통 식사를 이렇게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 샌드위치 같은 걸 사서 먹는 문화가 기본적으로 되어 있고 저녁에도 길거리 음식을 사다가 야식 저녁에 하는 시장이 뭐야 야시장 야시장이 발달해가지고 야시장에서 야식을 사다가 먹는 문화 그러다 보니까 가족들끼리 같이 모여서 밥을 먹지 않는데요.
그러니까 가족과의 관계가 점점 깨질 수밖에 없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아주 작은 예를 들어줬는데 자기가 사역하는 교회에 어떤 이제 동생이 남동생이 전화를 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받았는데 남동생이 하는 말이 자기 누나가 혼자 살고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 소천한 것 같다. 좀 몸이 안 좋았는데 연락이 전혀 안 되고 막 그러니까 소천한 것 같다. 그러니까 선교사님 한번 가보시라고 이제 연락을 한 거예요.
근데 이제 선교사님이 이 다급하니까 연락을 했나 보다. 그러고 이제 그러면 형제님은 언제 오시냐고 그랬더니 저는 바빠가지고 못 가요 이러더라는 거예요. 집이 먼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진짜 바쁜 사람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게 뭔 말이냐면 개인주의가 굉장히 강하고 가족과의 관계가 깨지니까 이런 장례도 그렇게 그냥 교회가 있으니까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 이런 느낌으로 그 정도로 관계가 깨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겁니다.
나라적으로는 동성애가 지금 합법화된 나라가 되어버렸고요. 또 삔랑이라고 하는 마약 같은 각성제가 굉장히 그 지역에 퍼져 있는데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부채 모양의 이렇게 레오 사인이 굉장히 많아요. 마치 우리나라에 담뱃집같이 담배 팝니다. 이렇게 담배 옛날에 그런 집들 많았잖아요.그런 것처럼 그런 데가 많은데 이게 뭐냐 하면 보통 껌처럼 씹을 수 있는 담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걸 먹으면 약간 환각 증세가 나기도 하고 좀 약간 각성제가 돼서 힘을 이렇게 내기도 하는데, 이게 수백 년 전부터 이게 전통같이 흘러오다 오는 거다 보니까 그냥 돌아다니면 다 그게 있어요.
근데 이게 지금 발암 물질이어가지고 세계적으로는 식용을 금지해 놓은 물질인데 이 사람들은 워낙 전통이 돼 있다 보니까 이거를 수시로 그냥 마치 요즘 담배 피우는 사람들처럼 수시로 그냥 편안하게 먹기도 하고 그렇게 사용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온순해요. 저는 중국 사람하고 느낌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서 어디 가면 시끄럽잖아요. 막 이렇게 여행 가면 중국 사람들 있으면 시끄러운데 이 사람들은 조용하더라고요. 그리고 말을 이렇게 하면 말을 잘 들어주려고 하는 이런 자세가 있습니다. 약간 그러니까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근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선교사님이 하는 얘가 이거예요. 100명에게 복음을 전하잖아요. 그러면 그중에 한 100명이 다 들어줘요. 그러니까 그냥 아예 나 듣기 싫어요. 그러고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한 90명 이상은 들어준다는 거예요. 근데 그중에서 한 10명 정도가 수긍을 하면서 교회에 나가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근데 실제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거의 없대요. 그러니까 앞에서는 예 하지만 뒤에서는 아니요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겉과 속이 좀 다른 그리고 심지어 이제 관계가 생겨서 약속을 잡아도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요.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요. 연락도 안 돼 그래서 화나잖아요. 나중에 이제 성도들하고 나 그 사람 만나기로 했는데 이렇게 안 왔다고 그러면은 그 사람들이 성도들이 하는 말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오늘 비 왔지 않냐고, 오늘 날씨가 굳지 않냐고 아니면 오늘 뭐 뭐 있지 않냐고 뭐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그냥 뭔가 있으면 그냥 그런 걸 이렇게 약속도 어겨도 되고 이런 문화가 이 선교사님이 생활하면서 이해되지 않고 처음에는 많이 힘드셨다라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이제 선교사님과 잠깐 이렇게 같이 교제하고 또 그곳에 있는 성도님들을 만나면서 많은 도전들이 있었는데요. 솔직히 이곳이 복음을 증거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땅인 것 같아요. 왜 그냐하면 받아들이기는 받아들이는데 자기네 종교하고 똑같이 옆에 이제 받아들이는 거예요. 마치 이제 성경에 나오는 그런 한 지역처럼 아덴이라고 하는 지역이 그런 지역이 있잖아요.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데 자기가 믿는 신의 한 부분인 거잖아요. 많은 신 중에 하나. 근데 이 사람들도 약간 그런 토양이 있고요.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굉장히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이 여기가 지금 이제 이 교회가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교회인데요. 이곳에서 복음을 코로나 중에도 정말 끊임없이 증거했다는 거예요. 예배를 이렇게 우리랑 똑같더라고요. 예배를 못 드리는 상황이 됐어요. 근데 어떻게 예배를 드렸냐면 한 두 가정씩 와가지고 끝에 끝에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이 가정 끝나면 다음 가정에 두 가정 와서 예배드리고 이렇게 하루에 몇 번을 드려서라도 예배를 드렸다는 거예요.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좀 회개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가 너무 환경에 굴하지 않았었는가 이분들도 전도하는 게 막혔죠. 근데요. 막혔어도 끝까지 나갔답니다. 왜 1 대 1은 가능하니까요.
이 선교사님이 원래 중국에서 선교를 하다가 쫓겨나신 분이에요. 그래서 이 대만에 넘어가 가지고 가정에서 자기 가족끼리 시작을 하셨답니다. 근데 여기로 이제 옮긴 게 한 달밖에 안 되셨어요. 그러니까 시골에 있다가 이제 이쪽 약간 도심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너무 막 기대하고 계시는 거예요. 이제 여기는 사람이 많아가지고 전도할 사람이 너무 많다고
저희하고 같이 동행하는 여정 하는 중에도 이 선교사님이 때만 되면 옆에 누군가 이렇게 잠깐이라도 같이 있을 시간이 되면 물어보는 거예요. 예수 믿냐고 솔직히 엄청 찔렸어요. 목회자인 저도 성도들하고의 관계에 집중하기 바빴지 이렇게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교회 다니냐고 예수님 믿냐고 이런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솔직히 전도하는 시간 외에 교회에서 규정한 전도하는 시간 외에 거의 드물었다는 그 생각을 하면서 너무 부끄럽고 좀 회개하는 시간이 들었습니다.
여기 교회 방문했는데 성도님들이 한 5분 정도가 저희가 먼 곳에서 온다고 미리 엄청나게 준비하고 환대해 주셨습니다. 그 성도님들 이 과일도 직접 저렇게 막 맛 한번 보시라고 여러 가지 과일을 쫙 세팅해놓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면서 대접해 주시는 시간도 있었고요. 그리고 끝나고 나서 이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기도 제목을 듣고 같이 기도해 주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대요. 그래서 아니 그냥 우리는 다 같이 기도 제목을 듣고 다 같이 합심 기도하는 시간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되겠냐 그랬더니 선교사님이 아니라고 여기 사람들은 목사님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이렇게 올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번에 한번 그런 특별한 은혜를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라고 하셔서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이거는 선물까지도 준비해 주셔가지고 선물 받고 이렇게 앉혀놓고 이분이 이제 기도 제목을 말하면 선교사님이 알려주시고 이제 다 같이 손을 얹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근데 이 기도받는 이 성도님들이 얼마나 사모하는지를 느껴지니까 목회자인 저희들도 막 이게 더 막 기도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거의 한 사람당 진짜 10분 이상씩 기도를 하고 목이 막 이렇게 약간 갈라질 정도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몰라요.
근데 나중에 이제 선교사님이 이분들 나중에 이제 또 피드백을 하게 됐는데 너무 감격했다고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은 목사님들에게 기도받을 수 있겠냐고 자기가 그 소망으로 말했던 그 기도 제목이 이루어진 줄 믿는다고 막 이런 식으로 간증하는 그런 은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요즘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목회자의 위치가 굉장히 낮아져 버렸어요. 그렇죠 요즘에는 어디 가서 제가 목사니까 좀 믿어주세요 이렇게 말을 해도요. 솔직히 먹히지 않는 시대를 요즘 살고 있는데요. 근데 저런 성도들을 만나면서 움츠려 있었고 뭔가 저도 약간 주눅들어 있었던 마음들이 좀 이렇게 다시금 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사역자지라는 그런 자부심을 또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이제 카우만이라고 하는 선교사가 세운 건데요. 우리나라에 성결교회가 생기는 데 있어서 영향력을 준 사람이 카오만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대만에도 영향을 줬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서울신대에 가면 카우만 광장이라고 하는 광장을 만들어 놓을 정도로 이 사람이 기억을 하자고 이 사람을 하는 사람인데 저 사람의 영향력도 같이 잠깐 봤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지금 이제 현지인 교회예요. 그러니까 원주민 교회 아까 2% 정도밖에 되지 않는 원주민이 산다고 그랬잖아요. 대만이라는 나라가 다 똑같은 언어를 쓰는 그냥 외롭게 죽어가는 상황인 거죠.
근데 여기서 더 심각한 거는 뭐냐면 이 교회를 이끌어갈 목회자들조차도 이제 없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 이제 원주민교회에 저기 서 있는 분이 지방회장인데 18개 교회가 있대요. 그 지방에 근데 18개 교회에 목회자가 10명밖에 없대요. 그러니까 한 사람이 한 2개 교회를 맡아야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자기네는 원래 은퇴 연한이 65세인데 자기가 정말 건강하고 원하면 70세까지도 할 수 있대요.
근데 70세에 은퇴하고 나면 이제 교회를 맡을 후임자가 없으니까 지금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다음 세대가 없는 거예요.
짧은 방문이었지만 이곳에서의 또 나눔과 또 우리의 기도 근데 정말 우리같이 보잘 것 없는 목회자들이 가서 같이 기도해 주는 그것만으로도 이분들이 너무 힘을 얻는 거예요. 우리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줄 사람들이 있구나 그 은혜 감격 그 시간을 같이 이렇게 누리면서 정말 우리가 지금 우리의 현재 현장들도 중요하지만 눈을 좀 더 크게 떠야 되겠다라는 그런 생각들을 해보았습니다.
근데 여러분 짧은 시간 제가 이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지만 이곳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우리에게도 지금 일어나고 있잖아요. 출산율 저하 노령화되고 있는 교회들, 다음 세대가 부재한 상황들 전도가 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뭔가 막혀버린 것 같은.
근데 여러분 제가 이곳에서 도전받았던 건 뭐냐 하면 오히려 도전받았던 것은 그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힘쓰고 애쓰는 선교사님과 현대인 교회들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그 척박한 땅에서도 복음이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도 척박하다고 우리가 요즘 전도하기 힘들다는 말을 저도 여러분들도 요즘은 안 된다고 안 된다고 우리가 이야기했잖아요.
근데 요즘 우리가 결단 찬양으로 찬양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믿으면 끝난 것이다. 우리의 입술로 선포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들 저도 이 여행지 이 선교지 여러분들하고 같이 가고 또 이곳에서 우리가 또 많은 것들을 경험했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생각들도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곳에서 어렵게 사명 감당하는 선교사님들과 교회들을 앞으로 더욱더 기도로 물질로 도울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소망의 시간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지상 명령이 있죠.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가라. 제자를 삼아라.
일부의 민족이 아니라 일부의 사람, 니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 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도 여러분들 주변에 복음을 아직 경험하지도 못한 예수라고 하는 이름은 들어봤을지 몰라요.
근데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복음을 온전히 믿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성령이 임하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러니까 그런 열정을 가지고 저런 척박한 대만에도 가기도 하고 아프리카에 가기도 하고 세계의 땅끝까지 그렇게 가서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전달하고 가르치고 함께 살아가는 그러한 이들이 있는 것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요. 단기 선교나 또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일들은요.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고요. 교회에게 맡기신 귀한 사명입니다. 근데 만약에 이런 것만이 선교라고 한다면 우리는 좀 선교하고 너무 거리가 먼 삶을 살잖아요.
그렇죠. 여기서 우리는 용어를 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하는 삶과 선교적인 삶이 좀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선교하는 삶과 선교적인 삶 금방 제가 말한 선교사님처럼 해외에 나가서 선교를 한다든지 아니면 그들을 파송하고 후원한다든지 이런 건 선교하는 삶 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일상이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 바로 선교적인 삶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매일 말하고 또 우리가 행동하고 물질을 쓰고 일하는 것 그 자체도요.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우리 모두가 이 선교적인 삶을 살아감으로 선교를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상 명령을 하실 때 그 지상 명령은요 소수의 몇 사람들에게만 내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내려주신 명령입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는요.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그 복음 전파는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 아버지들, 할머니 할아버지, 또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또 전문직에 있는 그런 사람들, 또 사업을 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일상이 그 장소가 바로 여러분들이 선교할 수 있는 선교지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무명의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권능으로 이 땅에 악한 것들을 쫓아내고 멸망과 저주를 푸는 천국의 열쇠를 우리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위대한 사명의 위대한 약속의 초대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우리 한번 다 같이 사도행전 1장 8절 읽어볼까요? 시작
아멘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터전이 예루살렘이고 또 땅끝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옆에 믿지 않는 사람이 바로 땅끝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를 향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공통적인 것은 세상에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도피해서 그냥 신앙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패된 세상에 썩지 않도록 소금으로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마틴 루터가 그리스도인의 자유라고 하는 논문을 쓰면서 그곳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에게 제2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그리스도인은 이웃에게 제2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힘만으론 불가능하죠.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에 소금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맛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서 말씀하죠.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여러분 소금은요. 원래 짠맛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염화나트륨은 어떠한 공격에도 그 맛을 저항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러한 안정적인 화합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금이 어쩔 때 맛을 잃어버릴까? 그건 다른 불순물과 혼합될 때 그런 맛을 잃어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맛을 잃어버린 소금, 다른 것들과 혼합되어 덜 엎혀진 소금, 그 소금은 소금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똑같은 소금이라 할지라도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결국 버려져서 밟히고 먼지에 불과한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대만에서 만난 그 선교사님이 지금 선교하면서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말씀을 여쭤봤더니 아까 그 원주민교회 목사님도 동일한 말이었는데 지금 전도해가지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근데 이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기는 하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손가락질 당하고 있는 사람이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복음을 증거하는 게 계속 막힌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죠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먼저 하고 있는데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소금으로서의 삶을 빛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으면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밖에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잃어버릴 수 있는 방식 그것은 세상에서 물러나 은둔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물러나 있으면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없죠. 소금이 소금통 안에 딱 담겨 점만 있으면 그 소금은 어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예배하는 것도 너무 중요합니다. 함께 모여 교제하는 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각자의 삶에 갔을 때 희망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그 삶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소금은 고기와 생선에 뿌려져야 부패를 막으며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녹아져야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과연 우리는 지금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고 있는지, 지금 나는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또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잃어버릴 수 있는 방식은 바로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순응하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과 똑같아지면요 세상에 어떠한 영향력도 끼칠 수가 없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사람들이 다 예스라고 외칠 때, 우리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노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들 아니라고 말할 때 우린 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예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가면 우리는 맛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고 그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둡습니다. 깨어지고 어둡습니다. 근데 그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두운 곳에서 우리도 똑같이 어두운 삶을 살면 안 된다는 거예요.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의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등불을 비춰야 됩니다.
근데 우리가 어떻게 등불을 비칠까요? 궁극적인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한번 따라해볼까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내 힘과 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 오직 예수로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 삼아 살아갈 때 우리 삶의 빛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썩고 있고 어둠이 가득합니까? 정치판이 개판이고 주변에 정말 불의한 일이 가득합니까? 그걸 비판만 하고 계십니까? 어쩌면 우리가 소금과 빛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해서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교회를 향한 비판 늘어나고 있습니까?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과 너무 닮아 있었던지, 또는 소금통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질책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 16절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데요. 이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기에 앞서서 이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인 내가 세상에게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내가 관계하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스도인들의 착한 행실은 복음 전파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부정적이고 부정직하고 비인격적이라면 누가 우리의 말을 믿어주고 복음을 받아들일까요? 사도들은 복음을 증거할 때 메시지만 증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을 향해서 원수와 그들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착한 행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바탕 위에 복음이 뿌려진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먼저 저도 지난번에 우리 비전위원들하고 모임을 가지면서 몇몇 성도들의 어떤 그런 의견들도 들으면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 교회가 이제 이곳에서 계속 있을 것인가 아니면 뭔가 좀 변화를 줘야 할 것인가 근데 핑곗거리가 이거예요. 여기가 5층이다 보니까 주변이 상권으로만 되어 있다 보니까 이게 주변에 사람이 없고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조차 없으니.
근데 이번에 선교지 갔다 오면서 제가 회개했습니다. 핑계거리를 참 잘 찾았구나 찾았구나. 주변에 사람이 왜 없습니까? 그렇죠 우리가 나가면 얼마든지 사람은 있어요.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 학교 앞 전도도 우리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막혀 있지만 어떻게라도 방법을 만들어 가야 할 필요가 있는데 딱 막히는 순간 다음에 언제 기회 주시면 하겠다고 내려놔버렸던 그게 너무나도 마음에 회개함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근데 중요한 건 우리가 토양을 바꿔야 될 필요가 있는데 그 토양을 바꾸는 과정에는 우리의 언어 생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부탁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세 가지 언어만 잘 써도요. 외국 사람하고도 이게 통하더라고요. 뭔가 부탁할 일이 있으면 죄송한데요. 프리즈 그리고 이거 번역기 대놓고 말을 하면 와서 들어주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뭔가 이렇게 좀 어깨가 부닥치거나 이러면 소리 한마디만 해도 그냥 쑥 지나가는 거예요. 좀 감사한 일 있으면 땡큐 한마디만 해도 서로 웃는 거예요.
요즘 우리가 내 옆에 사람하고도 소통하지 않는 시대죠. 그런 시대라고 나도 똑같이 그렇게 살고 있어요. 엘리베이터 탔을 때 한마디라도 안녕하세요. 저는 몇 층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냥 인사부터 시작하자고요. 그리고 고마운 일 있으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또 여러분들 일터에서 우리가 어떻게 착한 행실을 쌓을 수 있을까요? 정직해야 합니다. 세상은 사기치는 것 부정직한 것이 지혜라고 요즘 말합니다. 요즘 직장에서 시간 왜 수당을 받기 위해서 퇴근 시간이 6시면 6시 5분에 퇴근하면서 그걸 탁 끊고 수당을 받는 또는 저녁 식사비를 받는 이런 거에 대한 뉴스들을 여러분들 듣게 되죠.
근데 손가락질하고 여러분들 판단하면서 한번 우리의 삶을 보자고요.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연하게 부정직한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하고 있는 게 있지 않나요? 소금이 된다는 것은요. 부정직한 문화에 대항하고 정직한 문화를 만드는 그 발걸음이 바로 소금이 되는 겁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착한 행실 중 하나는 탁월함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일터에서 일하면서 낙태하거나 꾀를 부리거나 그런다면 여러분 그런 사람에게 누가 복음을 받아들일까요? 그런 사람이 말하는 그 말에 맡겨진 일에 여러분 탁월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맡겨진 일터,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그 일,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탁월한 그러한 기술을 가지십시오. 그게 바로 착한 현실이 되고 오히려 그것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는 겁니다.
가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로 합시다 이런 말을 많이 해요. 은혜로 합시다. 교회에서 뭔 일을 할 때도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은혜로 합시다 아주 좋은 말 같은데 그 말에는 대충 하자라는 말이 약간 포함돼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은혜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더 최선을 다하고 더 탁월하게 직장에서 빛을 발하고 역할을 감당해야 돼요. 그럴 때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물을 겁니다. 너는 왜 다른 사람하고 다르냐 너는 왜 그렇게 손해 보면서 정직하냐 너는 어떻게 이렇게 탁월하냐 너는 왜 이렇게 사람들을 돕냐 너는 왜 다른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냐 도대체 무슨 소망이 있기 때문에 똑같이 힘들고 아니 더 힘들어 보이는데 너는 왜 이렇게 기쁘냐 여러분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답변할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아멘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궁금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온다는 것이죠. 그때 뭘로 대답하실 겁니까?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는 선교의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일상에서의 삶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아감으로 이 시대 가운데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을 살리는 통로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일상에서 선교사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셔서 우리로 말미암아 복음이 놀랍게 확장되는 귀한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