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강해 (10)
그리스도의 모델하우스
왕하 13:20-21
I. 서론
미국은 땅이 넓기 때문에 대도시의 다운타운을 제외하고는 집들이 옆으로 펴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땅이 좁기 때문에 시골을 제외하고는 집들이 높이 솟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아파트를 많이 짓고, 아파트에서 생활을 많이 합니다. 기존에 이미 지어진 아파트에 살고자 할 경우에는 입주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 안에 들어가서 집의 구조를 보고 결정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새 아파트는 경우가 다릅니다. 이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아파트가 완공이 되기 전에 계약을 하기 때문에, 모델하우스를 방문해서 그 집의 구조를 확인한 다음에 살지 말지는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델하우스는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집과 똑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델하우스에서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그 모델하우스를 통하여 실제 완공될 집을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넓은 의미로 말씀드리면,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모델하우스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모형론이라고 말합니다. 영어로는 Typology입니다. 물론 구약성경의 모든 내용이 신약성경의 모형론(혹은 모델하우스)이 되지는 않습니다. 모형론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실재 존재했던 사건이나 인물이 모형론이 될 수 있습니다. 가상의 사건이나 인물은 모형론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그 사건이나 인물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날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광야길을 가는데 길이 너무 험해서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뱀을 그들에게 보내셔서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뱀에 물린 사람이 뱀의 독으로 인해서 극심한 고통을 당했고 하나 둘씩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놋뱀을 쳐다본 자는 뱀에게 물린 상처가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제로 놋뱀을 만들어 쳐다보게 했는데, 그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다 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실재로 일어난 사건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모형론적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해 주는 구속사적 사건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약의 모형론은 사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사가 바로 그런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엘리사의 삶과 사역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미리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엘리사가 그리스도의 모델하우스가 될 수 있는 이유를 몇 가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II. 본론
1. 첫째, 엘리사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1)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전수받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엘리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수많은 기적을 행하면서 그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예수님 또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에게 임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면서 그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은 장소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장소가 “요단 강”으로 같았다는 것입니다.
2) 엘리사는 보리떡 이십 개로 백 명을 먹이고 남겼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고, 열두 광주리가 남기셨습니다. 엘리사와 예수님 모두 질량의 법칙을 이긴 것입니다. 적은 양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인 후, 모두 음식을 풍족히 남기는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3)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치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마을에 들어가셔서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나병을 치료해 주신 사례는 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사와 예수님의 공통점은 직접 환부에 손을 데고 치료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치료를 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했고, 예수님께서는 열 명의 나병 환자들에게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4) 엘리사는 죽은 아이를 다시 살아나게 해 주었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아들을 다시 살아나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 성 과부의 아들, 나사로를 다시 살아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수넴 지역과 나인 성은 모레산 주위에 있는 인근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부활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5) 엘리사는 죽은 다음에도 생명을 살렸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왕하 13:20~21,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엘리사는 죽은 다음에도 죽은 사람들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모형론은 구약에 등장한 사건이나 인물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둘째, 모형론이 주는 두 가지 교훈입니다.
이런 성경의 모형론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먼저, 구약 성경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구약 성경이 없다면, 신약 성경에 나오는 사건이나 인물이 구약 성경에서 나온 예언의 성취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주보를 보시면, 어거스틴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New Testament is hidden in the Old Testament and the Old is made manifest in the New.” (신약성경은 구약성경 안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성경은 신약성경 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델하우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엘리사의 모습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이웃들이 그리스도의 실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는 이런 분이시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엘리사와 예수님의 공통된 삶을 중심으로 세 가지로 말씀해 드리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성령의 충만을 입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이미 기름부음을 받아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지만, 엘리야가 떠나기 전에 엘리야를 따라다니면서 기어코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해서 그것을 받아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교훈해 줄까요? 우리에게 지위와 능력이 모두 필요하며, 지위가 있다고 능력이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라는 지위만으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이미 메시야셨습니다. 하지만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셨습니다. 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당부하셨습니다. 행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는 이미 나의 제자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성령 충만의 능력을 입기 전에는 사역을 하러 나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세상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위로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위와 함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엘리야와 엘리사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했다면, 우리에게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지위와 직분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가난하고 연약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엘리사는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가난한 제자의 가정을 위하여 기름이 끊이지 않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적국의 장군인 나아만의 나병까지 치료해 주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죄인과 과부와 창녀들과 함께 하셨고,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주위에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기도하고 돌보아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주위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은 다음에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사는 죽은 다음에도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은 다음 부활하셔서 모든 믿는 자들의 구주와 주님이 되셨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지위와 능력으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우리가 뿌린 사역의 씨앗은 계속해서 자라고 성장하여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엘리사는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세대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