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 소개된 저자와 책인데 '선집'이라는 이름으로 세 권의 에세이를 동시 출간하고 있다.
<사나운 애착>이라는 제목이 강렬했다. 영어 원제가 뭘까 궁금했는데 Fierce Attachments 라고 해서 사납다는 뜻을 갖고 있긴 했다. 폭력이나 집착 같은 것과는 다른 뉘앙스를 주는 단어들을 골라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뽑아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인들의 자전적 에세이 '자기 서사'를 읽을 때면 늘 놀라게 된다.
올리버 색스 '온더무브'에서도 그랬고, 아니 에르노 '세월'에서도 비슷하게 느낀 점인데 일단 자기 객관화가 훌륭하다. 유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기 삶을 돌아보는 일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 애착과 편향,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밖에 없고 한국 저자들의 자기 서사는 이런 점에서 읽으면서 불편하달까, 감정이입이 덜 되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좋아했던 외국 저자들의 자기 고백은 이런 점에서 솔직함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개인의 삶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역사가 되는가를 보여준다. 보통의 내가 학교에 가고, 부모님과 대립하고, 사랑과 성을 경험하는 일들은 극히 개인적이며 사적인 일인데 그것이 동시대 사람들의 규범과 가치에 공감하며 시대를 재현하는 서술이 된다는 것. 이것이 개인의 일기와 회고록의 차이일 것이며 대중적인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뉴욕 변두리 유태인의 딸로 태어난 저자가, 자기 삶을 '사납게' 꾸려온 엄마 밑에서 자라며 엄마를 통해 아버지를 읽고, 유태인들의 위선을 읽는다. 특히 가족처럼 가까이 지낸 이웃집 아줌마를 통해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에 걸쳐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 나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바꿔 읽으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난 딸들이 권위를 잃어가는 아버지, 종교와 규율에 집착하지만 실은 속물적인 어머니, 손가락질 받는 거리의 여인이지만 솔직하고 자유로운 이웃집 언니를 보며 성장해가는 서사와 다르지 않다. 이런 여성 서사가 여성들에게 주는 강렬한 공감대와 연대의식,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 문학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저자가 맺는 여러 번의 성과 사랑, 연애의 서사는 여자들의 마음을 콕콕 찌르는 부분이 있다. 어린 시절 충동적인 연애와 성 경험, 결혼이 답이 아닌 걸 알면서도 주춤주춤 끌려가듯 걸어들어간 결혼생활, 실패가 뻔히 보이는 결혼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 이혼 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유부남과의 오랜 연애 같은 것들은 흔한 이야기이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한 여자의 심리와 내면의 묘사, 정서 같은 것들은 적어도 여성 독자인 우리들에겐 닿아오는 지점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런 책들을 읽으며 여성들이, 자기 삶을 객관화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며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해가는 법에 대해 좀 더 알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