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시집<돌돌> 실천문학사. 2017년 1월.
[저자 소개]
저자 최영철은 최영철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그림자 호수』·『호루라기』·『찔러본다』·『금정산을 보냈다』 등과 육필시선집 『엉겅퀴』,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변방의 즐거움』 등을 냈다. 백석문학상을 비롯한 몇 개의 상을 받았다. 이번 시집은 ‘자연과 사람은 화쟁하는 실천’의 주체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여러 시편이 돋보인다.
[목차]
1부 풀수염 /프라이 하는 법 /햇살의 내력 /붉은 볼 일침 /감기라는 바이러스 씨 /잊지 마 꿈 세트 /삼단우산 /고독한 사람 /망각에 대한 항소심 /웃어라 첫닭 /터져라 당의정 /국밥의 탄생 /비철 이야기 /디엠지 부동산에 대한 전망 /햇살 한 줌 시키신 분 /만세, 삼일절 /납죽 /나무의 연인 /사려니 숲 /새날, 하구에서 /진흙쿠키 /백발 연탄 /그해 여름의 소나기 /
2부 돌돌 /스마트 정진 /하지의 밤 /빗방울 듣는 밤 /바이오테러 /칸칸칸 /무인 전철 /무인 모텔 /방음벽 /사랑과 전쟁 /제4호 찜질방 /지독한 사랑 /와불 지나며 /아내들 사이에 아내가 없다 /모기젖 /주위를 뱅뱅 돌았다 /내빼자 병아 /달빛의 이력 /死의 찬미 /자살특공대 /등대 전설 /멸치 /벌벌벌 벌레벌레 /
3부 1초 전 /약발 /검은 물 /아침이다 /백야白夜 /별 /나무들의 단식 /뜻밖의 선물 /또 다른 돼지들 /빈소에 가면 웃음이 나오는 이유 /골문 앞 /나눔 070 /기일忌日 /봄의 화원 /저승꽃 /뇌사에 대한 문학적 고찰 / 마지막 한 잔 /거 /나목 /노숙에게 /파지破紙 /길 /봄 복수/
[해설]
그곳은 시인에게 “너희들 다 쓸어가고/범벅이 된/주둥이만 남아 꿀꿀대는” 시골이며 ‘아우성’이다. 그곳에 시인은 뼘을 대고 감정을 덧대고 있다. 그곳은 “더 가봐야 갈 데도 없다/갈 데도 없는 길을 가”는 격정의 검은 물이 흐르는 강 옆이다. 하지만 그곳을 ‘뜻밖의 선물’이거나 살만한 숲이라고 명명하며 시인은 마음을 열어준다. 아니, 그곳이 시인을 받아준다고 말하자. 따라서 시집은 열어주고 받아주는 상호텍스트를 되풀이한다. 예컨대 그곳은 젊은 시절의 밤처럼 “막차 놓치고 홀로 지새우는 밤이 갓길”인 동시에, 이제 되돌아온 “하지의 달을 둥글게 펴 밤 불빛에 방생하”는 땅이다. 하지의 달과 달 속의 기억들로 공간은 풍성하고 시간은 아프다. 시인의 뛰어난 시로 기억될 「풀수염」에서 “수염과 같은 보호색이었다가 어느새 수염으로 진화한 풀들”의 정체성을 살핀다면 자연과 사람은 화쟁하는 실천을 서로 익혀야 한다. 그곳에서 조금만 비켜서면 ‘칸칸칸’이 필요한 ‘고독하고 섬세한 영혼들’의 ‘불가마’ 같은 삶이 있다. 대치하는 두 개의 시공간은 서로 독을 품은 채 어긋나거나 화해하며 길항하거나 무관심하다. 그리하여 “어느 게 장인지 졸인지 모르게/머리를 박자 첨벙, 꼬리를 말자 빙빙/몸을 섞자 돌돌, 파고들자 펄펏/처음은 다른 몸이었으나 이다지 뒤섞여/이다지 허물어져 오늘만은 하낫”이라는 해학이 곳곳에 등장했다. 시집을 다 읽었다면 그곳은 남도의 동남부가 아니라 당신에게도 낯익은 땅이다. -송재학-
[작가의 말]
-노심초사의 즐거움-
난장에 나와 우왕좌왕 하다 보니 어느덧 파장 무렵이다. 내가 가지고 나온 물건이 낡고 투박한 것이어서 늦은 장터를 오래 지키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맵시 있는 것들을 가지고 나온 장꾼들이 물건을 다 팔고 떠들썩하게 더 큰 장으로 옮겨간 뒤에도 내 앞에는 여전히,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이라도 챙겨 어서 다른 장터로 옮겨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차마 버리고 갈 수 없었던 이것. 땡처리도 할 수 없었던 이것. 등단 시점으로 치면 30년이지만 살아온 것으로 치면 60년을 보내며 내는 시집이다. 무척 즐겁고 애틋하고 뭉클하고 아프고 고되고 슬픈 길이었다. 너무 오래, 어눌한 말을 내뱉었다. 엄밀히 말해 그 말들은 하나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파장이요 자연의 율동이었다. 나는 그것들의 말을 엿들은 염탐꾼이었고 누군가가 무심코 흘리고 간 말을 주워 담아 궁굴려본 흉내쟁이였다.
막다른 강마을에서 7년을 살았다. 둘 이상을 가지는 게 버겁고 둘 이상을 생각하는 게 차차 어려워졌다. 처음엔 퇴행인 줄 알고 낙심했으나 그것도 진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진보인 줄 알고 건너뛰고 넘어온 길들이 무지막지한 퇴행이 되고 있지 않은가.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하루 네댓 번이고 구멍가게도 하나 없고 이야기 통하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을 나는 잘 살아냈다. 대화 상대는 내 안에 도사린 온갖 잡다한 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심심할까 봐 길고양이와 새들과 벌레들이 내 머리맡에 와 놀다 갔다.
勞心焦思. 평화로운 변방에 들어와 살면서 유유자적하지 않으려고 내가 나에게 내린 행동강령이었다. 노심초사, 참 가혹한 말이다. 그러나 나란 놈은 매사에 게으르고 요령부득이어서 이렇게 무언가로 딱 부러지게 닦달하지 않으면 옆길로 빠지기 일쑤였다. 하여 이런 어마어마한 지침을 하달하게 된 것이었다. 저만큼,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있는 나에게 나는 ‘어이, 어디 가? 그리로 가면 길이 없어’ 하고 소리쳤지만 도통 먹혀들지 않았다. 인정사정없이 나를 체포해 올 수밖에 없었다. 풍경에 반하고 향기에 반하고 적요에 반해 혼미해진 나를 다그치려면 이렇게 단호해져야 했다.
노심초사. 사실 그건 새롭게 떠올린 말이 아니었다. 온갖 크고 작은 상념과 씨름했던 십대 중반에 이미 거머쥐었던 말이고, 그 뒤로도 희희낙락하려는 나를 내리치는 매운 죽비로 사용했던 말이었다. 아무 짓도 않고, 아무 생각도 않고 물끄러미, 잔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강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노심초사의 죽비를 내리쳤다. 낙동강이 지척인 마을에서 태어나 그런지 나는 유순한 강을 좋아했다. 산과 바다도 좋지만 나는 분명 강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슬렁 유유자적 강변을 걸었는데 어느 날 불현듯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평화를 구가할 때가 아니지 않니?
세상은 더 오리무중이고 아비규환인데
너 혼자 달관할 때가 아니지 않니?
나는 강을 따라 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추궁했고 곧 강변 산책을 그만두었다. 내가 바라볼 지점은 아직까지는 저 건너 도시 변두리의 시끌벅적한 난장이었던 것이다. ‘아직’이 아니라 어쩌면 죽을 때까지 도시 변두리의 번다스러운 일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예감도 들었다. 얼마간 탐닉했던 강마을의 고요한 평화야말로 얼마나 나에게 불길한 조짐이었던가. 얼떨결에 주어진 평화를 서둘러 강물에 던져버리고서야 나는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만다행이었다. 더 이상 아쉽지도 그립지도 안타깝지도 슬프지도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무료하고 무의미한 감옥일 것이다. 어떻게든 평화롭고 무료한 감옥을 탈출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서럽고 아픈 마음에 경배했다. 소음이라고는 가끔 짖는 개 소리가 전부였다. 개들은 그 고요와 평화가 불만이라는 듯 한번 짖기 시작하면 아무 대꾸도 없는 허공을 줄기차게 물어뜯었다. 그 소리에 나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저 녀석이 어느새 나의 나태를 알아버린 것일까? 그 의문에 답하듯 길 건너편 개들까지 합세해 더욱 요란하게 짖기 시작했다. 광활한 적요가 주는 평화를 깨고 개들은 그렇게 일정한 간격과 높이로 내 의식을 난도질했다. 이 적요는 불길하다고, 이 적요는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적만이 뒷짐 지고 걸어다니는 골목, 지나는 행인도 없는 길을 향해 줄기차게 짖어대는 개의 항변은 분명 나를 향한 것이었다. 생각은 거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소리치는 동네 개들의 질타를 듣고 있다가 불현듯 이 말이 내게 왔다. 노심초사. 하늘이 나를 어여삐 여겨 나를 닦달할 매운 회초리 하나를 내려주신 것이다. 옳거니, 나는 얼른 엎드려 그 회초리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그것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세상 앞에 애태우는 마음 노동자다. 외람되고 염치없게도 나는 다시, 나에게 찾아와 줄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오래 여러 번의 봄을 기다리게 될 줄 몰랐다. 나의 봄은 대부분, 봄을 기다리던 마음을 내려놓고 겨울을 수긍하려고 할 때쯤 찾아왔다. 이제 더 이상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끈을 놓아버릴 즈음 찾아왔다. 어김없이 오는 봄을 나는 늘 시험하고 의심했다. 봄을 기다린다 해놓고, 봄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해놓고, 정작 나는 어느새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녘에 나가보니 저만치 당도한 봄이 왁자지껄하다. 그들은 어느 귀퉁이에 숨었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게 아니라 나에게 건네줄 무엇인가를 들고 꽁꽁 얼어붙은 겨울들판을 건너오고 있었던 것이다. 출간을 앞두고, 7년을 살았던 강마을을 떠나 햇볕 좋은 바닷가 마을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강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 중 몇 줄기의 강물이 나와 동행해 주었다. 다시 나는, 돈 떨어진 건달처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