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민족국가의 세례를 받은 우리 국민들은 거의 모두 다 민족주의자로 양육된다.
민족의
민족에 의한
민족을 위한 국가를 당연한 것으로 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국민의 기초 정서가 되며 국민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주문이다.
민족은 나라가 되고 나라는 곧 바로 민족이 되는 등식이 성립되며 우리 민족주의는 태생적으로 배타적이다.
그리하여 민족주의는 애국의 상징이며 민족을 넘어서는 초민족주의를 경원시하며 경계한다.
그러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절대 신뢰했던 나의 생각이 인도살이를 통해서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중국에서 북간도살이를 하며 결정적으로 깨지게 되었다.
북간도, 연변자치주의 수부인 연길에서 1860년대부터 생명과 자유를 찾아 도망나온 조선인에 대한 기록을 읽으며 나는 민족주의가 정치관료지식인들이 좋을 대로 사용하는 허상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이 직업인 사농공상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더 나가서 자신들의 기득권 연장과 안일하고 향락적인 생활을 위해 기생, 노비, 승려, 백정, 무격(무당), 광대, 공장(공인), 상여꾼을 팔반사천으로 값싸게 이용하며 규제하였다.
조선 말기 순종, 헌종, 철종과 고종의 시대는 외척들의 세도가 조선팔도를 지배하는 정치의 부패로 말미암아 토지제도와 세금제도 그리고 군 복무제도가 다 흔들려서 농공상의 상민이 천민이나 가름없이 가난하게 되었다. 세금을 감당할 수 업게된 상민들은 밤 보따리를 싸서 도망을 쳐 유민이 되었다. 조선 말기 수많은 민란은 세상이 바꾸어 지기를, 개혁을 원하는 유민들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함경북도는 조선정치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는 지역이었다. 반역 죄인들이 귀양을 가는 땅이었다.
1860년대 함경북도는 한재, 수재, 가뭄으로 전 지역이 초토화되었으나 조선정부 관리들은 구휼미인 환곡으로 이재민들을 조금 주고 많이 받는 수법으로 괴롭혔다. 상민이자 천민이고 유민이고 이재민인 소작농, 노비등이 고통을 받게 되자 헬 조선을 떠나 생명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청나라 땅으로 아니면 러시아 땅으로 도망을 쳤다.
도망친 그들은 북간도에서 추풍에서 양반관료가 없는 새 땅에서 고된 노동으로 집을 짓고 마을를 만들고 논밭을 개간하여 살만하게 되었다.
그들은 양반의 착취와 학대가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평등하게 살았다.
그들에게 민족과 국가는 말 그대로 폭력이었고 고통과 죽음 그리고 절망과 분노와 상처였다.
그들이 청나라 관리들의 박해와 차별, 토비들의 습격과 약탈, 중국 대지주들의 횡포에서 조금 자유로워 졌을 때 조선이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을사년 보호조약 체결 후에 양반관료 출신의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한다고 북간도와 추풍, 블라디보스토크에 밀려들어 왔다.
그들은 조선땅에서 마찬가지로 양반의 위세를 부리며 상민과 천민이 닦은 터 위에서 위세를 부리며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로인하여 북간도사회는 망명온 양반들이 주도하는 수직사회로 바뀌게 되었고 일찌기 고향을 등지고 나온 상민천민의 자생적 사회가 무너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후 북간도는 사회주의 열풍에 휩쓸리게 되는데 이는 양반관료들의 망명으로 상실하게 된 수평사회를 회복하려는 상민천민들의 열망이 작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자나 맹자를 읽고 허례허식에 빠졌던 양반관료들이 북간도에 들어와서 자기들이 천대하고 무시하던 상민천민에게 후원금과 자녀들을 독립군으로 모집하는 가장 좋은 명목은 “민족주의” 였다. 그들은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자기들이 착취하고 비인간화, 도구화시켰던 상민과 천민들을 격동시켰으며 자신들의 휘하로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후원과 세금(안전과 보호를 명목으로 하여 받은 세금)과 그들의 아들들을 독립군으로 삼아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해방이 된 후 그들은 남한으로 돌아가서 본인 또는 자녀들이 독립유공자가 되고 정치, 관료, 교육, 언론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독립자금과 아들들의 생명을 바친 상민과 천민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돌아가지 못하였고 돌아갔어도 그들에게는 갈곳이 없었고 예전과 마찬가지 가난한 삶의 자리뿐이었다. 양반관료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자신들의 독립운동을 위해서 애국금을 바치고 자녀들의 생명을 바쳐준 상민천민들의 희생과 공로를 다 잊었고 자신들의 희생과 공로만 부각시키며 자신들을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만들었다. 독립을 위해 가장 많은 수고와 고통과 희생을 당한 사람들은 일찌기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서 동북삼성을 개발한 조선 탈주민들이었다.
나는 여기서 양반과 지식인, 관료 정치인들이 자기 상황과 편리대로 이용하는 민족주의의 가면과 이중성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민족을 팔아먹거나 이용해 먹는 모든 극우, 극좌가 말하는 모든 민족주의를 수상하게 여기게 되렀다.
김경일의 책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 내 생각과 같은 주장이 실려 있어서 그대로 옮겨 적는다.
“민족주의 그 속을 뒤집어 보자. 우리 사회 저층에 깔려 있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정서가 오늘 이 사회에 공헌한 것은 무엇인가? 척화비의 주인공 대원군이 승리했는가? 사대부들(위정척사파)이 일제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았는가? 해방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는가? 남북을 이어놓았는가? 전쟁을 막았는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는가? 투명하고 건강한 경제 구조를 만들었는가? 무엇 하나 바꾸어 본 일도 없고 올바른 예측도 한번 변변히 해보지 못한 우리들이 여전히 우리 민족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귀 막고, 입 막고, 눈을 가린 채 ‘우리 끼리 만세’를 부르면서 미래 사회를 운운해도 되는 것일까? 정말 우리들은 도도하게 변하며 흐르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살아만을 수 있을 것인가?
바뀐 것이 무엇이 있는가?
정치인들은 선거 벽보에 붙어 그 앞을 오가는 우리들을 여전히 비웃고 있다. 그들의 개인적인 성취감을 위해 아침 일어나 주민등록증을 내보이고 화장지보다 조금 빳빳한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로 들어가 한 표를 던지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인가? 선거 참가는 민주 시민의 권리 행사라는 아량한 입발림보다는, 차라리 그게 바로 이 땅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생존 방법, 바로 권력과 힘에 대한 복종과 예의라고 속직히 고백이라도 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땅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은 한통속이 되어, 민족주의 속에 마련된 기득권과 권위의 달콤한 꿀을 나누어먹고 있다.
정치인들, 당연히 그들은 믿지 말라. 그들은 본질적으로 유전자가 왜곡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한 입에서 두 가지 말을 아무런 혀 물림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요괴 인간들이다.
기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진실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청국장처럼 냄새가 풀풀 나는 현장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 없이 채팅하듯 기사를 뱉어내는 고급 룸펜들이다. 권력의 해바라기가 되어 있는 편집 데스크의 심중을 충분히 헤아리면서 만들어낸 원고들을 기사랍시고 만들어 낸다.
학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만들어진 가면이 없으면, 하 ㄴ발자국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빙충이들이다. 그들이 논문을 써대고 강의실에서 뱉어내는 말들은 아무 곳에도 써먹을 수 없는 그들만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언제나 끼리끼리 만나서 자리를 나누고, 적당히 등록금과 세금을 연구비나 학술보조비 따위로 나누어 먹으며 시시적거리지만 돌아서기가 무섭게 서로를 물어 뜯고 비방하는 저열한 인간들이다.
정치인, 기자, 학자들처럼 민족과 민주주의를 열심히 외치는 집단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찾아낸 우리들의 대안이 찬호와 세리, 그리고 릭 윤이지만 이것이 해답이 될까? 찬호의 스트라이크와 세리의 버디 퍼팅 릭 윤의 미소에 일희일비하면서 손에 땀을 쥐어야 비로소 한국인인가? 그것이(찬호와 세리의 경기) 나의 사람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에 대해 왜 우리가 ‘애국적 박수’를 쳐주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그들이 사실은 돈 때문에 나간 것이 아니고 국위선양을 위해서라고 자위를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등한 대리만족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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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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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화적 폐쇄성에 있었다. 그것이 우웡의식에서 비롯되었건 자격지심에서 비롯되었던 간에 결과적으로 우리 삶을 망가뜨리고, 새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만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원군이 닫았던 문은 결국 포연과 함께 깨졌다. 이제 범세계화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오늘, 우리가 다시 폐쇄적 민족주의로 해답을 적어낸다면, 몇 장의 개량 한복과 김치 몇 포기는 더 팔 수 있을지 몰라도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헤어나기 힘든 함정에 빠질지도 모른다.
개방이 없으면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죽어버리고 만다. 영국이 영어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고 만 이유 역시 거만한 우월의식과 폐쇄성 때문이었다.
이제는 문화적 공존을 위한 자세 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아니 이미 지났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폐쇄적 ‘민족적 아이덴티티’는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더 우리를 불행하게 할지 모른다. 오히려 열린 마음과 유연한 태도로 나의 문을 열고 타인의 문화와 공존할 수 있을 때, ‘우리 것’이 그 나름의 생존 공간을 얻게 될 것이다.
김경민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64~69쪽, 바다출판사, 2023년 개정2판
나는 위정척사파류의 보수적 민족주의를 염려한다.
그들은 지사와 열사 의식을 가지고 충성과 지조, 의리와 절개 중시하면서 자기들만이 나라와 민족을 진정으로 염려하며 정치를 바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소중화의식에 세례를 받은 자로서 충효를 내세우며 친명 대의파를 자처하였다. 그들이 친명을 절대의리로 고수한 결과 조선이 망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조선을 멸망의 길로 몰아간 그들이 조선 독립을 위해 총칼을 들고 독립운동의 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멸망의 길로 몰아간 자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 없이 그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 후예들이 펼치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관료지식인엘리뜨주의가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2023.6.22.목. 축시
오사까 나니와에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