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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마르케스 자서전>
1. 한 페이지 요약 및 견해
이 책은 저자 자신의 획기적인 사건을 기점으로 연대기로 쓰지 않고 기억나는 대로 써내려간 소설 같은 인생 서사시다. 그는 책 제목과 같이 이야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책의 첫머리에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능이 있음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흥청망청 세월을 보내던 그에게 어머니와의 짧은 여행이 자신의 주도적인 인생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가난하고 소심한 문학 소년이 거장으로 우뚝 선 예술가의 삶과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보기를 바란다.
저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릴 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는데, 외할아버지는 콜롬비아를 파국으로 몰고 간 천일전쟁에 참전한 대령출신의 퇴역 군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하고 소심했던 저자는 글쓰기와 그림에 관심이 많았으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스무 살에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한다. 문학에 집중하고 싶었던 개인적 열망과, 자유당과 보수당의 갈등이 다시 극심해지면서 야기된 정치적 혼란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썼는데, 저자를 걱정한 신문사는 그를 유럽 특파원으로 파견하였다. 그 뒤로 로마,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에서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저자에게 세계적 명성과 성공을 준 1967년 대작 『백년의 고독』은 3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2,000만 독자를 사로잡았고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기자다운 날카롭고 비판적인 시선과 라틴 아메리카 토착의 환상적인 신화를 결합한 그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선구자’라는 헌사를 듣게 되고 1982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 그 외 작품으로는 <낙엽>,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어느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등이 있다.
이 책은 어머니와 집을 팔러 여행가는 대목부터 시작한다. 여행 때에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말라.”는 릴케의 말을 조용하게 생각하며, 글을 써서 벌지 않은 돈은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소심한 그가 엄청난 결정을 한 것이다. 이 책은 부유한 외조부모집에서 생활하는 장면이나, 몰락하면서 가난에 찌들인 장면들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사실 가족이 많아서 헷갈렸다. 그래서 가계도를 그려 해결했다. 이 책에서 격동하는 콜롬비아 현대사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많은 가족들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소설의 소재로 섰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빨간 색의 표지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저자의 열정과 열망을 표현하기 위함인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콜롬비아가 이 책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백년 고독>을 읽고 싶다. 또한 글을 쓰고 싶은 나는 기회를 만들어 마르케스가 살았던 아라까따까나 바랑끼야 등을 돌아보면서, 그가 느꼈던 느낌이나 감정들을 온몸으로 느껴 보고 싶은 심정이다.
2. 나를 확장시킬 책 속의 내용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p.7)
현재 정확히 일흔다섯 살이 넘은 내가 작가로 살아오는 동안 아니 내 평생 내가 내렸던 모든 결정들 가운데 어머니를 따라 나서기로 한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p.12)
바람도 모기나 겨우 놀랄만하게 불고 있었다. (p.14)
어머니가 지닌 덕성을 가장 돋보였던 것은 긴 생애 동안 어머니를 괴롭힌 심술궂은 역경들도 굴복시키지 못한 특유의 유머 감각과 강철 같은 건강이었다. 하지만, 가장 완벽하게 받음으로써 선천적으로 지니게 된 엄청나게 강한 성격을 감출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이었다. (p.15)
버나드 쇼의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교 가기 위한 공부 같은 건 중단해야 했다.”라는 구절에 용기를 얻은 나는 언론과 문학에 대해 배우겠다는 필요성은 느끼지 않으면서도 언론인으로, 작가로 살겠다는 무모한 환상을 지닌 채 그전 해에 대학을 자퇴해 버렸다. (p.16)
외할아버지는 그 지역 군수를 두 번이나 역임하고 돈에 관한 한 경솔한 판단을 하기도 했지만, 친척 여자와 함께 여행할 경우에만 이등칸을 탔다. 사람들이 왜 맨날 삼등칸만 타고 다니느냐고 외할아버지에게 물을 때면 “사등칸이 없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p.28)
향수는 나쁜 기억을 지우고 좋은 기억을 확장한다. 그 누구도 향수의 맹공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p.30)
그는 나만의 유령이었다. 혼자서 밖을 나다닐 때면 그의 집 앞을 지나가지 않도록 일부러 멀리 돌아다녔다. 그가 나를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p.45)
예술적 재능은 모든 재능들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것인바, 인간은 그 재능 덕에 무엇인가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다는 것이었다. (p.49)
사라는 아주 어려서부터 탁월한 지적 능력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까예하의 멋진 총천연색 그림 동화 전집으로 나의 첫 번째 문학적 욕구를 자극해 놓고는 내가 책을 훼손할까 두려워 내가 책을 보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았던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것은 내가 작가로서 처음 겪은 고통스러운 좌절이었다. (p.57)
나는 조상이 저지른 과오가 내 자신의 것인 것처럼 그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았을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은 자의 가족에 대한 연민을 내 가족에 대한 연민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다. (p.63)
내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의 존재 방식과 일치되는 이름 하나를 갖게 될 때까지는 자기 발로 직접 걸을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이 내게 생기게 된 것 같다. (p.80)
학살 사건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내 생각을 완성시켜 주었고, 나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객관적인 사고를 지니게 되었다. (p.97)
작가로서 일말의 후회도 없이 늙을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까따까의 외갓집에서 외조부모가 겪은 불행은 그들이 항상 자신들의 향수 속에 함몰되어 있었다는 것이며, 그들이 그 향수를 떨쳐 버리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깊이 함몰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p.98)
외삼촌들의 이마에 그려진 재의 십자가를 가족이 동질성을 파악하는 데 이론이 여지가 없는 표시처럼 항상 그리워했다. (p.102)
세상을 떠받치는 측은 여자들이고, 반면에 우리 남자들은 특유의 난폭성을 발휘해 세상을 무질서하게 만든다는 나의 확신 역시 바로 그런 믿음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다. (p.107)
그는 생전 처음으로 내가 알게 된 작가였다. 나는 즉시 그와 동일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머지, 마마 이모더러 내 머리를 그 사람 머리처럼 빗겨 달라고까지 했다. (p.108)
우리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돈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p.116)
그때까지만 해도 가족에게 긴급하게 여겨진 적이 전혀 없던 우편물이 그 당시는 신의 섭리를 전달하는 사절로 변해 있었다. (p.119)
내가 실제 삶과 처음으로 접한 것은 길 한가운데서나 이웃집 채마밭에서 이루어지던 축구에 대한 발견이었다. (p.127)
어느 날 밤에는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내 머리를 강타했고,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그가 체스 게임에 몰두해 버리면, 나는 그가 죽기만을 진정으로 바랄 뿐이었다. (p.134)
내 마음은 릴케가 말했듯이,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말라.”고 조용하고 있었다. (p.149)
소설이란, 쓰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p.152)
나는 겁을 먹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까따까에 가고, 돈 라몬 비녜스와 역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바랑끼야 그룹 멤버들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내가 평생 지니게 될 새로운 원기를 불어 넣었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나는 타자기로 글을 쓰지 않고서는 단 한 푼도 벌지 않았다. (p.181)
바랑끼야에 살고 있던 부모님은 찢어지게 가난했으나, 그 가난은 오히려 내가 어머니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행운이 되었다. (p.209)
어머니는 자신의 속마음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가난은 눈에서 드러나는 법이란다.” (p.210)
나로 하여금 수끄레를 잊을 수 없는 마을로 기억되게 한 것은 마음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그 자유로움이었다. (p.229)
학교가 감오처럼 무서웠고 규칙적으로 종을 울리는 체제에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그것은 열세 살 때부터는 가족과 조운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가족의 명령과 자식 수를 늘리는 부보의 열정으로부터, 위태위태한 세월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책을 읽을 만큼 빛이 비치는 곳에서, 숨 쉴 시간도 아까워하며 독서를 하는 자유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기도 했다. (p.231-232)
가끔씩은 기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승객들이 기차에서 내려 다음 굽이까지 걸어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p.269)
누가 마중을 나오고 나오지 않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세상 반대편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관처럼 생긴 트렁크 위에 앉아 있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p.272)
불행하다는 것. 그것은 바로 내가 보고타에 도착한 지 나흘 뒤, 정부 장학생 선발 시험 원서를 접수하게 될 교육부를 향해 추위, 보슬비와 싸우며 전속력으로 걷고 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p.274)
그 옛 수도원은 그 기나긴 영고의 세월 속에서도 무감각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수도원이 설립되었을 당시 현관문 돌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지식은 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p.278)
아침 식사에 나오는 계란 두 개는 시세가 가장 좋은 화폐였다. 계란 두 개로 세 끼 식사를 아무 거나 좋은 조건에 구입할 수 있었다. (p.282-283)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의 관계는 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저녁 식사가 끝난 뒤 학교 마당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휴식 시간에도 극히 자연스러웠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때까지 익숙해져 잇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교류를 할 수 있었고, 이런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우리가 존경심과 동료 의식이 발휘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고마운 점이었다. (p.287)
내가 비명을 질렀던 이유는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나를 악몽에서 깨워 주는 자선을 베풀어 달라고 구원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p.294)
나를 감동시키지도 못했고, 따라서 진정 내 것이 아닌 내 삶에서 전혀 쓸모가 없었던 과목들에 왜 내가 재능과 시간을 바쳐야 하는지 나는 진정으로 알 수 없었다. (p.325)
대통령궁에 들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으나, 정작 우리가 거기서 발견한 권력의 신비에 관한 유일한 증표는 완벽한 정적뿐이었다. (p.327)
“내 자식들과 같은 피를 나눈 아이들이 그런 데서 방황하도록 놔둘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p.333)
진지한 작가라면 설득력 잇는 이유가 없이는 등장인물 하나도 마음대로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엇고, 이 경우도 바로 그에 해당되는 경우였다. 요즘 나는 소설 자체가 또 다른 소설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p.340)
절제된 울음은 위대한 여성들이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는 확실한 수단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요즘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면 나는 아연 긴장하게 된다. (p.354)
나는 <변신>에 등장하는 ‘스스로를 의식하고 있지만, 자기 자신에 관한 허위적인 미스터리와 존재론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시체’의 발상을 차용해 나름대로 다듬었다. (p.366)
시는 격렬한 열정이었고, 존재의 다른 방식이었으며, 아무곳으로나 흘러내리는 촛농이었다. (p.372)
그는 발렌시아가 콜롬비아에서 영혼에 불을 지핀 것이 아니라 언어에 정형 수술을 시술했다는 이유로 고발했으며, 발렌시아의 시는 지나치게 과장되고 형식적이며 잔꾀가 많은 예술가가 쓴 것이라 규정했다. (p.375)
각 세대는 서로 다른 세대를 밀어냈다. (p.383)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이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한 가능성, 즉 문학의 한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내가 그 사실을 스스로 체감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는데, 마침내 나는 소설과 기사가 같은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고, 요즘은 그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절감하고 있다. (p.389)
단편소설이 장편소설보다 상위에 있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더 확신하고 있다. (p.400)
순찰 경찰관 여럿이 시위대의 붉은 완장을 찬 채 우리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에서 총을 발사함으로써 총소리가 내 가슴속에서 진동했다. 그때부터 나는 총소리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422)
내 것이 되었건 다른 사람 것이 되었건, 웬만한 공포는 잊어버리는 법을 배웠으나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본 그 두 눈에 서린 절망감만은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황량한 안개 속에서 내가 계속해서 보고 있던 것은 내게 불가능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나를 향해 기어오던, 죽어 가는 그 남자의 거대한 얼굴뿐이었다. (p.424-425)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것들과 앞으로 존재해야 할 모든 것들에 관해 얘기했다. (p.474)
영화는 모든 예술에 유용한 예술이라는 것이었다. (p.497)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생명력 있는 삶을 살고 있었으나, 그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제 발로 묻히겠노라 작정했기 때문에 세상에 너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렇게 살아가는 미덕을 유지했다. (p.500)
나는 가까이 있는 두 단어 사이에 운율(그것이 모음 압운일지라도) 이 있는 취약한 문장에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그런 문장은 내 마음에 들기 전까지는 발표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p.515-516)
어떤 것은 잘 읽고, 어떤 것을 대충대충 읽었는데, 나는 그 책들 덕분에 내가 좌초되어 있던 창조적 정체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p.518)
그 당시까지도 나는 체계적인 독서법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닥치는 대로 끊임없이 책을 읽어 대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좋은 시건 나쁜 시건, 유독 시를 많이 읽었다. 나쁜 시들을 읽고 기분이 몹시 상해 있을 때라도 나쁜 시들이 조만간에 좋은 시들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p.535)
나는 피우고 잇는 담배를 다 피우기도 전에 다른 담배에 불을 붙여 천식에 걸린 사람이 숨을 들이 마시듯 삶의 갈망과 더불어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다. 하루 세 갑에 이르는 담배 때문에 손톱이 누렇게 변하고, 내 젊음을 교란시키는 기침을 늙은 개처럼 해 댔다. (p.535)
나와 카리브 문화는 내가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나를 형성하는데 절대적이고, 근본적이고, 대체할 수 없는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현자들의 책을 읽는 재미도 대단했지만, 과연 그런 책들은 어떻게 써져 있는지 발견하고자 하는 탐욕스로운 호기심 때문에 정통적인 장인 소설가처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처음부터 제대로 읽고, 나중에는 거꾸로 읽었으며, 책의 구조 속에 가장 은밀하게 숨어있는 미스터리들을 알아낼 때까지 일종의 외과적 수술을 통해 내장을 샅샅이 들어냈다. (p.539)
내가 살고 있던 나침반도 없는 무질서 속에서 그 작품은 새로운 봄의 시작이었다. (p.547)
당시 내가 가지 꼬락서니를 하고 다닌 이유는 가난하거나 시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에너지가 지독하게 어려운 글쓰기 학습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요즘 깨닫고 있다. (p.552-553)
어려운 상황에서 온 가족과 함께 살아간 일은 현재 기억의 영역이 아니라 상상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p.575)
나는 엄격한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각 장의 쪽수와 책 전체의 쪽수를 정확하게 뽑아냄으로써 책의 길이를 사전에 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이런 계산을 하는 중에 오류가 단 하나라도 눈에 띄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탈자 하나까지도 창작의 오류나 되는 것처럼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p.579)
가장 심각했던 것은 내가 그 소설을 쓰고 있던 그 시점에는 그 누구의 도움도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균열들이 텍스트 안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고, 나만이 그 균열들을 볼 수 있는 눈과 그 균열들을 감내할 마음을 지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p.588-589)
소심한 성격 탓에 그만두었다. 글을 쓰는 데 가장 유용한 비결들 가운데 하나는 어느 문을 두드려 직접 뭔가를 물어보지 않고서도 실제의 상형 문자들을 읽어 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점을 내 삶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p.595)
내가 만난 모든 것, 일어나고 있던 모든 사견, 내가 소개받은 모든 사람들이 마치 전생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현생에서 내가 이미 본 적이 잇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p.603)
호텔 정원에 설치된 그늘망은 내게 당첨된 복권과 같은 것이었다. (p.608)
콜롬비아는 두 대양 사이에 놓인 운하가 우리 것이 아니라 미국 것이 되도록 하는 데 호의적인 조건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안데스적 정신을 소유한 나라인 것이다. (p.660)
내 한계는 음악을 들으면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쓰고 있는 것보다 듣고 있는 것에 신경을 더 많이 쓰기 때문이다. 음악회에서는 옆 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들과 약간은 외설적인 일종의 친밀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요즘도 음악회에는 거의 가지 않고 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 좋은 음악을 집에 구비해 놓을 수 있는 여건이 되면서, 나는 내가 쓰고 있는 것과 어울리는 음악을 잔잔하게 틀어 놓고 글을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p.663-664)
업무에 필요한 불변하는 원재료는 진실, 오로지 진실뿐이었고, 바로 그 점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긴장을 유발했던 것이다. 호세 살가르와 나는 결국 이런 긴장감이 지나쳐 일요일에 쉬고 있을 때조차 단 한순간도 평화롭게 지내지 못했다. (p.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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