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성지순례 이야기....부제: 광야를 지나며
지난 2011년 2월 생애 첫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갈 수 있었다. 시골 작은 교회 담임목사로서는 엄두도 못내고 교회에 부임한지 2년도 체 되지 않았기에 말꺼내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이전에 부목사로 있었던 광주의 한 교회에서 그룹으로 가는 성지순례에 함께하자고 초대해 주셨고 감사하게도 그 교회 장로님 부부가 내 몫의 여행 비용을 흔쾌히 대주셔서 동행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가족과 성도들의 따뜻한 도움도 있었다
부부끼리 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아직 어린 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10여일 동안 아내까지 집과 교회를 비울 수 없는 일이기에 홀로 순례길에 나섰다. 여행 내내 좋은 것들을 보고 먹을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떠나질 않았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시리아 세 나라를 11일간 순례하였다. 원래 이집트출애굽 여정을 따르려 했지만 여행 전 이집트에 변고가 생겨 여행이 금지되어 버렸다. 참, 나와 이집트는 연이 없나 보다 그 후에도 성지순례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히 길이 항상 막혀 버렸으니...아직도 나는 출애굽을 못했다.
촌놈이 생애 처음으로 10시간이 넘게 장거리 비행을 하고 시차 적응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도 몸소 체험했지만 피곤할 틈이 전혀 없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거의 하루 12-15시간씩 젊은 나도 소화하기 힘든 강행군이었지만 일분일초를 그냥 넘기기 아까운 시간들, 꿈결같은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예루살렘, 성전산, 통곡의벽, 감람산, 겟세마네, 비아돌로로사, 베들레헴, 나사렛, 가나, 가버나움, 가이샤랴, 맛사다, 므깃도, 갈릴리 호수, 사해, 엔게디, 갈멜산, 쿰란, 텔 단, 헤르몬산, 헤브론, 사해, 다메섹, 팔로마, 패트라, 느보산, 얍복강, 요단강...갔던 곳을 다 기억도 못할 것같다. 그 유적들 이면에 우리내 모습을 닮은 시장 골목과 음식, 생경한 팔레스틴의 풍경과 사람들, 이색적인 유대인과 아랍인의 모습, 이슬람 사원과 집들도 마냥 신기해 보였다.
가이드의 설명도 들은척만척 새로 마련한 캐논 DSLR카메라를 메고 마치 유명한 여행사진 작가나 되는 것처럼 수없이 사진을 찍어 댔던 것 같다. 말로만 듣고 상상만하던 성경의 파노라마가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가슴 뛰고 숨조차 쉴 수 없는 감동이 아닌가? 가난한 내가 평생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하나하나가 목회 설교와 성경공부자료이니 사진밖에 남는 것 없다는 신념으로 어깨가 아프고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평생 찍을 사진을 다 찍었던 것이다. 이것을 본 선배 목사님은 사진이 아니라 마음에 깊이 새겨 두어라 더 많이 묵상해라 조언했지만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은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같지만 말이다.
내게 도움을 준 분들과 지인에게 선물도 해야지 다디단 대추야자 세트, 사해에서 그 피부에 좋다는 미용 상품들, 아기자기한 아랍식 장식 접시와 소품, 기독교 유적지에서 고만고만한한 기념품 사고 고르다 보면 정신이 없었다. 잊어버린 사람은 없는지 여자없이 혼자 모든걸 챙기려니 이만저만 신경쓰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
사실 처음이라 경황없고 사진찍고 따라다니기 바빠서 아무 생각없이 다녀온 것 같지만 그 많은 인공적인 유적들보다 내 마음 깊숙히 감동으로 남아 있는 것은 ‘광야’ 이다. 터지는 눈물을 체험한 곳이 그‘광야’들이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보았던 시리아 광야, 네게브 광야 로뎀나무 밑에서, 예수님이 시험 받으셨다는 돌산 첩첩쌓인 유대광야에서, 요르단 와디럼에서 유목민 베드윈족 체험을 하며 일박하던 텐트 안에서 그렇게 눈물이 나왔다.
성서의 하나님은 왜 그 백성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광야로 내 모셨을까? 아비와 형을 속이고 쫓겨나 광야의 추운 밤 하늘을 이불삼고 돌을 베고 잤다는 야곱, 대적에게 쫓기며 광야를 전전해야 했던 다윗, 이집트 왕자가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쳐 타는 불꽃가운데 여호와를 만난 모세, 광야로 도망쳐서 로뎀나무를 붙들고 홀로 울부짖던 엘리야,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러 다메섹 가는 길 광야에서 예수를 만나 눈의 비늘을 벗고, 또 광야에서 새롭게 자신의 사명을 붙잡으려 몸부림 쳤던 바울, 이 땅에 공생애 사역를 위해 필수 코스 시험을 치르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사단의 유혹을 이기신 예수...
이제껏 나는 사시사철 초록진 산지와 물이 끊이질 않는 계곡, 마른적이 없이 흐르는 강물이 있는 풍요한 세상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아! 너무나 다른 세계, 시리도록 푸르고 눈부신 하늘 작열하는 중동의 태양 아래 그늘 하나없는 드넓은 땅 온통 붉은 자갈만 끝없이 펼쳐지는 그곳이 광야였다. 보고만 있어도 숨이 거칠어지는 메마르고 피폐한 땅 피할 곳없는 세상의 끝 같은 곳.
광야는 사람의 희망이 끝나는 장소요. 하늘 밖에 바라볼 곳이 없는 땅이다. 그러기에 간절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요. 사람의 역사가 끝나고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장소인가 보다.
그런 곳에서 눈에서 샘이 터진 듯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행여 다른 성도들이 볼까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입술을 꾹꾹 씹어 봐도 멈출 수가 없었다. 다마스커스(다메섹)로 이동하러 가는 길에 세시간 남짓 시리아의 끝없는 광야를 지날 때도 그랬다.
사실 광야로 쫓기듯 지리산 계곡으로 왔다.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교회 신축을 하던 담임목사님이-나를 불려주고 의지 하던 분이었다.- 교인과의 불화로 갑자기 교회를 사임하고 다른 큰 교회로 떠나 버리셨다.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신임 목사님이 오시기까지 열악한 환경 가운데 힘든 시기를 보냈다. 신임목사님이 오시고 나서 자리도 어정쩡하고 맘고생 몸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닌 상황에서 광야같은 산골로 도피하듯 이 곳으로 떠나왔던 것이다.
큰 도시 목회의 꿈도 꺽이고 절망스러웠었다. 생의 고난가운데 아픔과 상처, 고독을 광야가 대변해주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는데 햇볕을 가리운 구름의 그늘이 메마른 광야를 쓰다듬었다. ‘구름기둥’ 이었다. 나의 마음도 만져주듯 했다. 미디안 광야에서 엘리야처럼 광야의 로뎀나무 라는 것을 붙들고 기도할 때 다시 일어서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소리없이 만지시는 그분의 치유가 일어났던 것이다.
나를 새롭게하고 다시 서게 한 것은 성지의 그 화려한 유적과 유물들이 아니었다. 가이드의 소리도 아니었다. 오직 하늘과 맞닿은 고독의 끝판왕 광야였다. 예수님의 기도의 숨결이 머무는 그곳 바울이 새롭게 사명을 다짐하던 그 곳...
혹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있다면 진지하게 광야를 체험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가장 어려운 때에 진짜로 ‘광야’를 지날 수 있었다는 것을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로 생각한다.
히즈윌 (HisWill)의 복음성가 “광야를 지나며” 가사가 입 속을 맴돈다.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있네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2020년 5월15일 광양 로고스글쓰기 두 번째시간 정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