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등명 자귀의 법등명 법귀의 (自燈明 自歸依 法燈明 法歸依) 제행무상 불방일정진 (諸行無常 不放逸精進) 자신과 진리에 의지하고 모든 것은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라. <부처님 열반 3개월 전 가르침> |
강병균(포항공대 교수)
진화론, 생물학, 유전자학, 뇌과학과 천체물리학의 비약적인 발달에 따라 유신론적 종교와 유아론적(唯我論的)인 종교가 설 곳을 잃고 있다. 과학이 제시하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증거 앞에서 종교가 힘을 잃고 있다. 가히 종교의 위기이다.
하지만 불교의 원음을 찾으면 오히려 불교의 부흥을 가져올 수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너무나 혁명적이었기에, 불교는 부처님 사후에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적 한계로 인하여 실증적인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유아론적인 힌두교적 참나(眞我, true atman) 불교와 중음신(中陰身) 불교 등으로 퇴보하고 말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진화론 생물학 유전자학 뇌과학 천체물리학 등) 과학의 비약적인 발달에 따라 부처님의 무아연기론(無我緣起論)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무지(無知)에 잠겨 있는 한국불교를 진단하고 처방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한국불교는 불교인가?
불교의 최대 장점은 포용성이다. 불교는 그 지방의 민속신앙과 토속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산식각(山神閣)과 시왕전(十王殿)이 좋은 예이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이 지나자 무엇이 불교이고 무엇이 불교가 아닌지 모호해졌다. 그래서 ‘한국불교는 불교인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특히 과학시대에 태어난 신세대 중에 종교인구가 급감하는 이 시대에 의미가 있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불교가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한다. 불교는 세상에 만연한 고통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종교이다. 초월적인 존재에게 복종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이해를 통해서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목표이다. 계정혜(誡定慧)를 닦아 탐진치(貪瞋痴)를 제거해 윤회의 흐름을 끊으면 더 이상 육체적 고통도 없다. 윤회란 시시때때로 다양한 대상에 빙의(憑依)하여 사는 의식(consciousness)의 흐름을 말한다. 이걸 의식의 지향성(指向性)이라고 한다.
속인들은, 불교 경전이라는 텍스트를 전문가들인 승려들의 해석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승려들이 미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천 년 케케묵은 미신이 승려들의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이런 미신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게 윤회환생이지 다른 게 윤회환생이 아니다.
1) 미신 불교
우리나라 유명한 승려들의 사상은 힌두교적 유아론과 미신으로 가득하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신도들 역시 그렇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부처님 가르침은 멀고 살아 있는 승려들과 그들의 환망공상(幻妄空想, 환상 망상 공상 상상)은 가깝다.
어떤 큰스님의 스승은 달이 지구보다 6배나 크다고 했고, 지구가 달에서 빠져나왔다고 했다. 달의 전면은 원형이지만 뒷면은 고깔 모양이라고 했다. 이런 내용을 모아 그 제자는 《금강심론(金剛心論)》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수년 전에는 불교텔레비전에서 이 스님 특집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스님은 이 책을 펼쳐놓고 찬탄하면서 이 부분을 클로즈업하는 통에 경악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일지반해(一支半解)한 현대과학 지식으로 스님을 비판하면 방불훼불(彷佛毁佛)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기독교식으로 하자면,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그 스님이 선정 중에 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강백으로 알려진 어떤 스님은 절 뒷산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두 사람이 선암사 경내 두 그루 나무로 환생했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큰 절 방장 후보였던 한 스님은 공사장에서 큰 돌을 깨뜨리면 돌이 피를 흘리며 복수를 한다고 주장했다.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낸 백성욱은 겨울이면 제비가 물속에 들어가 조개가 되었다가 봄이면 다시 제비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걸 미신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게 진짜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금강경》을 해설하면서 난생(卵生)에 대해서 부끄러운 생물들이 자기 몸을 가리느라 알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예언으로 유명한 한 스님은 ‘1977년에 김일성이 죽는다. 2000년경에 포항에서 석유가 난다, 일본열도가 가라앉는다, 서해안이 융기한다, 만주가 우리 땅이 된다, 통일이 된다’고 예언했지만 다 틀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가 대단한 예언가인 줄 안다. 그런 예언 능력이 불교 수행을 통해서 나오는 줄 안다. 그가 점치기를 즐겨하고 점치는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소문이 있다.
비구니 선지식으로 알려진 어떤 스님은 수성 · 금성 · 화성 · 목성에서 외계인이 비행접시를 지구로 날린다고 주장했다. 자기 마음(주인공)으로 태풍의 진로를 바꾸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인공(참나)에게 맡기면 못 고칠 병이 없다고 가르쳤지만 말년에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약탕기를 달고 사는 큰스님들을 폄하했지만 자신도 자리보전을 하다 죽었다. 이런 예들은 불법을 공부하면 병과 죽음을 이길 신비로운 힘이 생기는 줄 오해하는 망상의 소산이다.
승려들이 신비한 지식이 있는 줄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같이 몇 달만 살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신비한 능력으로 귀뚜라미보일러나 스마트폰이나 자동차를 고치는 법이 없다. 법률지식에도 무지하다. 도대체 무얼 아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다 안다는 선언만 있을 뿐이지, 다 안다는 내용이 없다. 그나마 안다고 하는 것도 대부분 환망공상이다. 진화론을 부인하고 종불변론(種不變論)을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현대과학에 역행하는 역행보살들이다. 이판도 사판 못지않게 대한민국 불자들을 고문한다. 괴이한 사상으로 신도들 뇌에 기생하며 신도들을 놔주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는 무지를 먹고 산다고 말한다.
2) 참나(眞我) 불교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여러 큰스님과 현재도 전국의 선승들에게 존경을 받는 고승들의 법문을 들어보면 무아연기론(無我緣起論)이 아니라 ‘참나 불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분들이 가르치는 참나(眞我, true atman)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아주 구체적인 존재이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인식하는 존재이다. 소위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존재이다. 화를 내는 존재이고 꼬집으면 아파하는 존재이다. 이 몸 저 몸 들락날락하는 존재이다. 힌두교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운동의 창시자인 프라부파다가 말하는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이사 가는’, 즉 이 몸을 빠져나와 저 몸으로 옮겨가는 존재이다. 우주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고 우주가 없어진 후에도 있는 영원한 존재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존재이다. ‘모든 것은 무아(無我)이지만 모든 것이 무아인 줄 아는 존재는 무아가 아니다.’ 혜민 스님과 한자경 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존재는 연기법을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이다. 이들은 ‘이 존재가 가아(假我)인 5온의 식(識, 마음)과 달리 공(空)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걸 참나(眞我, true atman)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에 비하면 기독교의 이신(理神)은 아주 점잖은 존재이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인식하는 법도 없다. 중력의 법칙, 상대성원리, 열역학법칙, 전자기법칙, 베르누이의 법칙 등 우주의 이법(理法)일 뿐이다. 이처럼 기독교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는데, 즉 인신공희를 받고 인종말살을 자행하던 분노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잔인한 야훼라는 인격신에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다시 이신으로 진화하는데, 불교는 거꾸로 더 나쁜 방향으로 퇴화하고 있다, 즉 우주의 이법인 무아연기론(無我緣起論)에서 참나라는 일체종지(一切種知)를 지닌 베다교적 인격신으로 퇴화하고 있다.
3) 중음신(귀신) 불교
부처님 당시에는 지내지 않은, 중음신(中陰身)을 제도하는 49재를 지내는 것은 귀신불교이다. 부처님은 식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며 이생에서 저승으로 업을 짊어지고 가는 중음신을 부정하셨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에서는 ‘밀린다 왕문경’에 나타나듯이 윤회는 그 즉시 일어난다.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음 몸을 받는데 시간이 걸릴 이유가 없다. 왜 다음 생을 찾는데 시간이 걸려야 한다는 말인가? 우주 법칙이, 즉 업에 의한 환생법칙이 있다면 왜 즉시 작용하지 않는가? 우주법계(宇宙法界)는, 즉 인과장(因果場)은 생명체가 죽자마자 그 즉시 업을 계산해서 그 업에 ‘딱’ 맞는 다음 생을 부여할 능력이 없다는 말인가? 설마 '심장'(心場 mind field)인 인과장(因果場)이 중력장(重力場), 전자기장(電磁氣場) 등의 '물리적인 장'(physical field)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의 지배하에 있어서, 정보전달에 있어서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즉 양자역학의 영향으로 다음 생을 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중음신 이론은 귀신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발생한 이론일 수 있다. (지금도 귀신을 보았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다음 몸을 받지 못한 귀신이 존재한다면, (이 귀신은 아직 6도 중의 다음 몸을 받지 못했으므로) 환생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중음신계는 귀신계이다. 기독교세계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즉시 연옥으로 가거나(가톨릭),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므로(개신교)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종파에 따라서는 지구 최후의 날 Doom's Day에 지금까지 죽은 이들이 부활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부활은 몸과 영혼의 부활이어서 여전히 귀신이 설 자리가 없다. 몸을 잃은 귀신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부활한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불교도들과 힌두교도들은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몸이 죽을 때 영혼도 같이 죽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신은 문화현상임을 알 수 있다.
중음신 이론은 질이 나쁜 승려들이 신도들에게 겁을 줘서 돈을 얽어낼 시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혹은 만들어내지 않았어도 이미 존재하던 이론이 그런 용도로 유익하게 쓰인 교리일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사바세계에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한다. 통상 다음 몸을 받기까지 걸린다는 49일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이 승려들은 아소카 대왕시절에 대왕의 전폭적인 불교후원에 힘입어 시주가 풍성히 들어오는 불교계로 시주를 노리고 머리를 깎고 위장전입·잠입한 외도들일 수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결의한다. : “강 모(某) 교수가 우리의 정체를 폭로하려고 용을 쓰지만, 이 수익성 좋은 사업을 잃을 수는 없다. 이 사업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유지시켜 이 사업장으로 계속 환생해서 세세생생 이 낙(樂)을 누려야 한다.”)
중음신 이론을 포기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사찰입장료, 즉 문화재관람료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돈 되는 장사를 포기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세금까지 면제인 49재 현금수입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피해자인 선량한 스님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중음신은 부처님이 설하지 않은 이론이므로, 부처님 사후 후대 제자들이 고안해낸 이론이므로, 다른 후대 제자들이 극심히 비난한 이론이므로(그 흔적이 금강경 사상 중 인상 pudgala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므로 아무리 의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강병균
포항공과대학교 수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수학과, 동 대학원 졸업.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박사(수학). 울산대학교 교수 역임. 저서로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1, 2)이 있고, 〈법보신문〉에 《금강경》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연재하고 있다.
출처 : 불교평론, 뉴스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