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次李靑蓮紫極宮韻 (庚申元月二日)
(이청련의 자극궁 운에 답함)
淸絶一名區 속세를 멀리해서 말고 아름다운 곳에
猗猗滿綠竹 곱디곱게 녹죽이 가득하다
身痼烟霞拪 고질에 시달리는 몸이 풍진속세를 떠나와
味甘石泉掬 달콤한 석간수를 손으로 떠 마신다
樂爾迎新遊 즐겁게 낯선 유람객을 맞아들이니
與人我不獨 더불어 있는 나는 외롭지 않네
栢椒數壺醪 잣과 산초 빚은 막걸리 몇 병으로
信宵連宿宿 며칠 밤을 연이어 새고 샌다
勝會久難營 좋은 만남은 오래가기 어렵다더니
纔爲三日卜 겨우 사흘밖에 되지 않는구나
斗星漸向東 북두칠성은 차츰 동쪽으로 향하고
時適三陽復 때마침 삼양에 되돌아 온다
人世多少思 인간 세상에는 근심이 적지 않아
支離自反覆 자질구레한 것들이 반복되는 법
與君設車丑筵 그대와 함께 축하 잔치를 차리지만
每羨工程熟 그때마다 손놀림이 익숙한 것을 부러워했네
※ 삼양(三陽) : 봄, 혹은 음력 정월.
■ 次帝巖山遊會韻 (제암산야유회서 화답)
梯空攀壁去無休 하늘에 사다리 걸치고 절벽부여잡고 쉼 없이 가고
直上上頂作勝遊 곧바로 꼭대기에 올라 멋들어진 놀이를 즐긴다
群嶽如朝回四面 뭇 산들은 조회나 하듯 사방에 둘러서 있고
盤巖閱㥘老千秋 너럭바위는 겁내면서도 천년을 그 자리에 있다
深山始聽黃金鳥 깊은 산으로 가니 꾀꼬리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不尺庶登白玉樓 지척에는 사람들이 백옥루에 오른다
茫茫眼力天無際 아득히 눈으로는 하늘 끝이 보이지 않고
瀛海滄波萬里流 영해의 푸른 파도는 만리를 흐른다
帝巖山水最休休 관대하기로 제암산의 산수가 으뜸이니
未暇當年一陟遊 겨를 없던 그 시절에도 한번 올랐었다
深谷林泉不受夏 깊은 골짜기와 숲속의 샘은 더위에도 변함없고
絶頂爽氣冷生秋 꼭대기의 상쾌함은 서늘한 가을기운이 돈다
盤石平平當臥榻 반석은 평평해서 와탑으로 삼아야 하겠고
層巒巍巍若上樓 층층이 겹친 뫼 드높아 마치 누각에 오른 듯하다
勝會此時諸士子 빼어난 만남의 이 시간 여러 선비들이 모였는데
冠鄕一代盡名流 지금 관산의 명사들이 모두 어울렸구나
※ 영해(瀛海) :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상상했던 바다.
■ 陪春軒族兄及一訟金兄漢敎氏入冬栢亭吟
(춘헌족형과 일송 김한교와 동백정에 읊다)
石逕聯笻步上遲 돌길에 산죽이 빽빽해 걸어 오르기 더디어도
爽凉氣味却忘時 상쾌한 기분에 오히려 시간 가는 것을 잊는다
白酒三盃閑世界 백주 서너 잔에 세상살이 여유로워지고
淸談一席好秢期 청담 나누는 호시절에 벼가 영구는 구나
入牕岳色成圖面 창으로 들어오는 산 빛은 한 폭의 그림이고
張樂蟬聲暗樹枝 노래하는 매미는 나뭇가지에 숨었다
勝區此會非常事 명승의 이번 모임은 심상한 일이 아니니
欲敍幽情各唱詩 가슴속 고상한 뜻을 펼치려 저마다 시를 노래한다
此地相逢總舊容 여기 만난 이들은 모두가 낯익은 얼굴인데
翼然亭子卽高峰 날아갈 듯 우뚝한 정자가 바로 높은 봉우리인 게라
雲光翠滴簾端宿 구름 빛은 비취방울로 주렴 끝에서 잠들고
風氣凉來水面從 바람은 서늘히 불어와 수면을 따라 간다
客子淸琴連夜樂 나그네는 맑은 거문고를 밤이 되도록 울리고
主人白酒滿樽濃 주인이 내는 백주는 술잔에 넘친다
無塵烟景多隨處 어디를 둘러봐도 티 없이 아름다운 경치
各把短筇下堤松 저마다 단장짚고 소나무 욱어진 둑길을 내려온다
※ 청담(淸談) : 은거하는 현자들이 나누는 기품 있는 담소.
■ 洞務室與桂史梧軒新窩桂隱諸宗同酬唱
(동무실서 계사․오헌․신와․계은 제종과 노래함)
經來世事若登舟 지나온 세상사는 마치 배를 타는 것과 같았고
蕭然人情多九秋 소슬한 인심에 9월 늦가을과 같은 때도 많았었다
何如竹院七賢會 대나무 정자에서 일곱 현자가 어렵사리 만났으니
倣得香山九老遊 향산의 구노회와 방불하여라
日宜禾畝甘霖作 시절은 벼가 익기에 마땅하고 단비도 내리는데
時適梧牕烈火流 때마침 오동나무 창으로 뜨거운 기운이 흘러든다
始得今年拪息地 비로소 올해에야 쉴만한 곳으로 옮겼는데
翼然高閣出蛇頭 높이 솟는 누각은 뱀이 머리를 치켜든 듯하다
山雲巖樹盡成圖 산자락 구름과 바위 위의 나무는 온통 그림 같은데
月到其時欠者梧 달이 제때를 비추니 오동나무 없음이 아쉽구나
百畝嘉禾秀前野 드넓은 논에 잘 자란 벼들이 팬 앞 들
一聲汽笛泛金湖 외마디 기적소리가 황금빛 호수를 감돈다
高樓軒敞誰功矣 높아서 밝게 트인 누각을 누가 세워 놓았는지
數日淸遊眞樂乎 여러 날의 기품 있는 놀이가 참으로 즐겁구나
莫道斯筵無別味 이 자리에 색다른 재미가 없다고는 하지 말지니
肴盈盤上酒盈壺 안주는 쟁반에 가득하고 술은 병에 넘치는 것을
※ 香山 : 낙양(洛陽)에 있는 산.
※ 九老會 :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가 낙양의 香山에서 8명의 친구들과 만든 모임.
■ 葉吟 (잎을 노래함)
遊情未了夜相尋 어울리던 정이 미흡해서 밤중에도 서로 찾는데
白髮中間靑子衿 늙은이들 상사이에서 젊은이들이 옷깃을 여민다
循俗論懷多感古 남들처럼 속내를 토로하자니 지난 일들이 사무친데
悅親舒情匪斯今 반가운 친지들이 모여 정을 나누며 금세를 탓한다
昏簷閒宿敀雲影 해저문 처마아래 편히 누니 달그림자 가까이 오는데
夜枕冷生流水音 밤 베개엔 찬 기운이 돌고 흐르는 물소리 또렸하다
酒力初醒詩令晩 술기운이 우선하자 시로써 밤을 달래는데
荳燈結穗已更深 콩알만한 등잔불 고개 숙이니 이미 밤이 깊었구나
■ 與小波宋兄會茶山酬唱 (송소파형과 다산재서 노래함)
百年占得此江山 백 년 동안 이 강산에 자리하여 온 터전
同我良朋趁昏還 뜻 맞은 벗과 해질 무렵에 돌아왔다
濁酒三盃明月下 탁주 몇 잔을 밝은 달 아래서 나누고
淸歌一曲白雲間 맑은 노래 한곡을 흰 구름 사이로 흘러 보낸다
食猶過飽終爲病 아직도 먹는 것을 과식해서 끝내는 병이되고
詩不佳成自愧顔 좋은 시를 이루지 못해 스스로 부끄러운 낯이네
吾輩相逢何太晩 우리들 만남이 너무 늦었나니
連從數日剩偸閑 며칠을 함께 하고서도 여전히 한가함을 엿본다
(144-097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096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96일차에도 '죽암공(계문)의 유고'가 밴드에 게재됩니다.
[본문내용- 죽암공 유고]
(앞에서 이어서, 2일차 연재 중) / 무곡
죽암공의 유고글이 두번째로 밴드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밀한 자연을 주제로 삼은 점이 여러 특징 중의 한가지로 보입니다./ 무곡
죽암공의 한시를 읽노라니 그 학식과 덕망이 높았음을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우주의 근원과 자연의 이치, 세상사를 읽어 표현하는 예리함이 돋보입니다. 또한 사물과 마음을 서술하고 묘사하는 기법이 탁월합니다. 아마 존재선생님을 이어 씨족내에서 독보적 존재라 조명할 수 있겠습니다./ 벽천
茂谷(무곡) 위상환 님
개인에게는 신언서판이 있고, 집안에는 가풍이 있듯이, 문중에는 씨족문화가 있습니다.
우리 문중은 우수한 씨족문화를 발굴해 선조들의 얼을 잘 이어가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묵묵히 씨족문화 창달에 앞장서신 저자이신 원산대부님과 게재하시는 무곡대부님께 머리를 숙입니다./ 벽천
원산대부님은 참으로 대단하시고,
소인에게는 과분한 언사올시다.
죽암공의 경우는 격물치지의 최정상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많은 분들이 선조들의 격조높은 글들을 늘 가까이 했 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곡
화향백리 인향만리라 했는데 공간에만 적용되는 것보다 시간에도 적용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화향백년 인향만년이랄까요!/ 벽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