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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강의(經史講義) 10 ○ 논어(論語) 3
양화(陽貨)
이 장에서, 다섯 가지가 인(仁)이 됨에 대해서, 주자는 “마음이 보존되고 이치가 얻어진다.[心存理得]”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인(仁)을 구하는 방도이지 인을 체득한 공효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이다. 공(恭), 관(寬), 신(信), 민(敏), 혜(惠)는 이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밖을 제어하고 안을 편안히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찌꺼기들은 아직도 모두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인욕(人欲)이 깨끗이 없어지고 천리(天理)가 유행하는 인자(仁者)의 경우와는 조예(造詣)의 깊고 얕음이 아주 다를 뿐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집주》에서 느닷없이 “마음이 보존되고 이치가 얻어진다.”라는 말을 여기에 해당시킨 것은 지나치게 무게를 둔 것이 아닐 수 있겠는가?
[이익진이 대답하였다.]
다섯 조목은 과연 인(仁)을 구하는 방도인데 주자가 이렇게 풀이를 한 것은, 심존리득(心存理得)으로 다섯 조목의 일을 삼는다는 것이 아니고 또한 다섯 가지를 행하기만 하면 마음이 곧 보존되고 이가 곧 터득된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개 다섯 가지 공부가 지극하게 되면 그 공효가 심존리득이 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집주》의 하나의 즉(則) 자에서 그 뜻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장의 육폐(六蔽)는, 모두가 학(學)이라는 한 글자를 좇아서, 비록 이 여섯 가지 미덕(美德)이 있더라도 참으로 학문을 하여 이루지 않으면 그 폐단이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인(仁), 지(知), 신(信), 직(直), 용(勇), 강(剛)이 본디 달덕(達德)이 아닌 것이 아닌데, 범씨(范氏)의 학설에 “그 치우침을 바로잡아 준 것이다.[救其偏]”라고 하였으니, 인(仁)과 지(知)도 또한 치우침이 있는가? 만약 범씨의 학설을 병통이 없을 수 없다고 한다면, 주자가 그것을 취한 것은 또 어째서인가?
[성종인이 대답하였다.]
인(仁)과 지(知)가 본디 달덕이지만 또한 치우침이 있는 것입니다. 인과 지 쪽에서 말하자면 그 덕(德)이 비록 애당초 치우침이 없는 것이지만, 인과 지에 힘쓰는 자 쪽에서 말하자면 그 전체(全體)를 얻는 자도 있고 그 일단(一端)을 얻는 자도 있습니다. ‘인자(仁者)가 보면 인(仁)이라고 하고 지자(知者)가 보면 지(知)라고 한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범씨의 학설에 신은 병통이 있음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이 장의 ‘득실을 상고해 본다[考見得失]’는 것은 자기의 득실(得失)을 상고해 보는 것인가, 아니면 시인(詩人)의 득실을 상고해 보는 것인가? 만약 시인의 득실을 상고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가이흥(可以興), 가이군(可以群), 가이원(可以怨)은 모두 시를 배우는 자의 존심(存心)과 행기(行己)에 속하고 가이관(可以觀)만 시인에게 속하므로 말을 하는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만약 자기의 득실이라고 한다면, 주자가 일찍이 장씨(張氏), 범씨(范氏), 여씨(呂氏), 양씨(楊氏)의 학설을 배척하며 말하기를, “시(詩)의 언어에는 사방(四方)의 풍속과 치란득실(治亂得失)의 사연과 인정물태(人情物態)의 변화가 들어 있다. 어찌 자기의 지(志)를 살피는 것이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두 학설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하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인가가 참으로 어렵다. 어떻게 보아야 옳겠는가?
[신복이 대답하였다.]
‘득실을 상고해 본다’는 말은 실로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겸하여 말한 것입니다. 주자가 장씨, 범씨, 여씨, 양씨의 학설을 배척한 까닭은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장의 위(爲) 자를 주자는 “고수위시(高叟爲詩)의 위(爲)와 같으니 단지 강론(講論)함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후세의 구이(口耳)의 학문도 또한 장면(墻面)의 기롱을 면할 수 있는가? 이남(二南)이 본디 수신제가(修身齊家)의 근본이지만, 반드시 몸에 돌이키고 쓰임에 적용한 뒤라야 바야흐로 자기 몸에 실제로 얻음이 있는 것이다. 지금 단지 시를 강론(講論)만 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도 성인 문하의 체인(體認)의 공부와 모순이 되는가?
[신복이 대답하였다.]
옛날의 강론이란 것은 그 이치를 참으로 알아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일찍이 “시를 삼백 편을 외워도 정치를 맡겼을 때에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많이 외운들 또한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옛사람들의 강론을 후세의 구이의 학문에 견주어서 볼 수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후세의 학자와 같은 경우라면 비록 평생토록 시를 외워도 눈앞의 담장은 그냥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기질(氣質)의 치우침은 고금(古今)의 차이가 없어야 하는데, 삼질(三疾)이 옛날에는 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것은 어째서인가? 증점(曾點)의 광(狂)과 자고(子羔)의 우(愚)와 자장(子張)의 긍(矜)도 오히려 옛날의 삼질에 참여되기에 부족한가?
[김희조가 대답하였다.]
선유가 은거구지장(隱居求志章)을 논하여 말하기를, “당시에는 안회(顔回)와 증자(曾子)가 이에 해당할 수 있었는데도 그런 사람을 못 보았다고 바로 말한 것은, 대개 성인이 세상을 개탄하는 뜻이니, 안회와 증자 이외의 사람들을 두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에 이른바 삼질(三疾)도 역시 세상 사람들을 개탄하되 증점(曾點) 등 몇 사람은 제외하고 말한 것입니다.
이 장의 뜻을, 《집주》에서는 ‘사(邪)가 항상 정(正)을 이김’을 위주로 말하였고, 남헌(南軒)과 면재(勉齋)는 ‘옳은 듯하면서도 그른 것’을 위주로 말하였다. 어느 것이 맞는가? 맹자도 일찍이 이것을 인용하였는데 오로지 ‘옳은 듯하면서도 그른 것’을 위주로 말하였다. 그렇다면 마땅히 남헌과 면재의 말을 정설로 삼아야 하는가?
[이현도가 대답하였다.]
이 장의 취지는 두 가지가 모두 통하는데, ‘옳은 듯하면서도 그른 것’이 이미 맹자가 인용한 바이고 보면, 《집주》에서 범씨(范氏)의 학설을 동그라미 밖에다 둔 것은 어쩌면 그냥 한 가지 학설로만 보고 정설로 보지는 않도록 하려 한 것일 듯합니다.
부자가 그가 없는 틈을 엿보아서 갔다가 양화(陽貨)를 만난 것과 맹자가 이튿날 동곽씨(東郭氏)에게 조문을 나간 것은 이 장에서 비파를 끌어다가 노래를 부른 것과 동일한 뜻이다. 다만 문 앞에 찾아온 사(士)를 대우하는 것은 임금을 섬기는 대부(大夫)를 대우하는 것과는 의당 예(禮)를 차리는 것이 같지 않아야 한다면, 부자가 유비(孺悲)에게 어찌 그 만나고 싶지 아니한 뜻을 분명하게 말해 주지 아니하고서, 신병(身病)이 있다고 사양을 하고 나서 또 신병이 있는 게 아니었음을 알려 경계시켜, 이토록 이리저리 굴려 잗달게 하였던 것인가?
[심진현이 대답하였다.]
유비가 성인 문하에 죄를 얻은 것이 비록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부자가 처음에 신병을 이유로 사양한 것은 그를 거절한 것이고 나중에 또 비파를 끌어다 노래를 한 것은 그로 하여금 거절한 뜻을 알게 하여 스스로 새로워질 길을 생각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엄정(嚴正)한 가운데 불설(不屑)의 가르침을 겸하여 포함하고 있는 것이니, 이리저리 굴려 잗달게 하였다고 말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이 장의 요점은, 처음에 안(安) 자를 썼으니 안(安)이라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을 차마 하는 것이고, 가운데 세 개의 불(不) 자를 썼으니 불(不)이라는 것은 차마 하지 않음이고, 끝에 인(仁) 자를 썼으니 인(仁)이라는 것은 차마 하지 아니함의 실제이다. 이것이 바로 예악(禮樂)에 대한 재여(宰予)의 질문에 대답한 것인데, “사람인데도 어질지 못하면 예(禮)를 어디다 쓰며 사람인데도 어질지 못하면 악(樂)을 어디다 쓰랴.”고 한 것과 서로 조응(照應)을 하는 것이니, 성인(聖人)의 말씀이 물샐틈없이 극진하다. 다만, 재여가 속마음을 다 터놓고 질문을 하였으니 부자의 대답도 마땅히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으로 반복하여 비유해 깨우쳐 주는 것이 옳겠는데, ‘마음이 편하면 그리하라[安則爲之]’고 한 것은, 격노하여 배척해 끊어 버리는 뜻이 없을 수 있겠으며 성인의 온화하고 박절치 아니한 기상에 어그러짐이 있지 않겠는가?
[조제로가 대답하였다.]
삼년상(三年喪)은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같은 것이고 효자의 마음에는 오히려 그 덕(德)을 갚기에 부족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재여가 성인의 문하에서 배웠으면서도 도리어 상복 기간을 짧게 하는 것[短喪]에 대한 질문을 하였으니, 부자가 어찌 처음에 마음이 편안하냐고 묻지 않을 수 있었겠으며 나중에 맛있지 않고[不甘] 즐겁지 않고[不樂] 편치 않음[不安]을 말하여 깊이 책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두 구절은 실로 모두가 천리와 인정에 편안함과 편안치 않음의 뜻을 반복하여 비유해 깨우친 것입니다. 더구나 그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깊이 그 근본을 찾아 힘껏 그 잘못을 배척하여 그로 하여금 듣고서 스스로 뉘우치도록 하였으니, 이것은 또 성인이 끝내 사람을 끊어 버리지 않는 은미한 뜻입니다.
‘마음 쓰는 바가 없음[無所用心]’은 용기로써 주관함이 없는 데에서 오로지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자로(子路)가 이것을 인하여 상용(尙勇)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이니 성인의 대답은 이의(理義)의 용기와 혈기(血氣)의 용기를 나누어 분명하게 말해 주어야 마땅할 듯한데, 단지 무의(無義)의 용기라는 말로 그 잘못을 배척하기만 하고 그쳤으니, 자로의 허물이야 참으로 바로잡을 수가 있겠지만 마음 쓰는 바가 없는 자들에게는 그 나태함을 덧보태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강세륜이 대답하였다.]
자로(子路)는 용기를 물었는데 성인은 의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이른바 의리를 으뜸으로 친다[以義爲上]는 것은 이의(理義)의 용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자로의 잘못을 가르쳐 바로잡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마음 쓰는 바가 없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난리를 일으킨다[爲亂]’고 한 것과 ‘도적질을 한다[爲盜]’라고 한 것이 어찌 깊이 경계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성인(聖人)은 남의 단점을 말하는 자를 미워하는데 《춘추(春秋)》 한 부(部)는 포폄(褒貶) 아닌 것이 없고, 성인은 아래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는데 위 영공(衛靈公)의 무도함을 또한 일찍이 말하였다. 반드시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누구를 비방하고 누구를 칭찬하겠는가’처럼 된 뒤라야 바야흐로 ‘사심도 없고 기필함도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자공에게 고한 것이 이와 같은 것은 어째서인가? 어쩌면 자공이 사람 비교하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말하여 그 병통을 바로잡아 준 것인가?
[심진현이 대답하였다.]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죄악을 죄주는 것과는 다름이 있습니다. 《춘추(春秋)》는 사람들의 죄악을 죄주는 것입니다.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한다는 것은, 바로 가까운 이를 위하여 기휘하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부자는 위 영공에 대해서 본디 군신(君臣)의 분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칭(稱)이란 드러내는 것으로써, 남의 허물을 다행으로 여기는 뜻이고, 산(訕)이란 비방하는 것으로써, 얼굴을 대놓고 간쟁하는 것 같은 것이 아니니, 성인이 자처하는 바가 처음부터 어찌 일찍이 칭(稱)이나 산(訕)과 비슷하겠습니까. 성인뿐만이 아니라, 비록 사람을 비교하기 잘하는 자공이더라도 또한 반드시 이러한 병통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군자도 미워함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인하여, 마땅히 미워해야 할 바를 말해 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허물을 고치고 선(善)으로 나아가게 권면함은, 마땅히 실천해야 할 선(善)과 마땅히 버려야 할 악(惡)을 법(法)과 의(義)를 잡고 재단해 주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 ‘미움을 받으면[見惡]’이라고만 하였으니, 비록 군자이더라도 또한 어찌 향당(鄕黨)의 불선(不善)한 자에게 미움을 받음이 없겠는가? 성인이 말씀을 하신 취지에 대해 필시 변론거리가 있을 것이다.
[이곤수가 대답하였다.]
호오(好惡)는 인정(人情)에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와 다르면 사람들은 반드시 미워합니다. 비록 선(善)을 하는 군자라고 하더라도 또한 어찌 불선한 사람에게 미움을 받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군자가 미움을 받음은 한 사람의 사사로운 미움이고 이 장에서 말한 미움을 받음은 천하가 함께하는 미움입니다. 말씀하신 취지가 본디 절로 다른 것입니다.
위는 양화편(陽貨篇)이다.
[陽貨]
此章五者之爲仁。朱子釋以心存理得。然此皆求仁之方。而未及乎體仁之功。夫恭寬信敏惠。不過是收斂此心。制外安內而已。則査滓猶未渾化耳。其與仁者之人欲淨盡。天理流行。造詣深淺。不啻相懸。而集註之遽以心存理得當之。得不太重乎。翼晉對。五者之目。果是求仁之方。而朱子之以是爲訓者。非以心存理得。爲五者之事。亦非謂纔行五者。心便存理便得也。蓋謂五者之工。至於極處。則其效可以爲存理得云爾。集註一則字。其義可見。
此章六蔽。都從學之一字。言其雖有此六者之美德。而苟無學以成之。其蔽也如此云爾。仁知信直勇剛。固未嘗非達德也。而范說以爲救其偏。則仁知亦有偏處耶。若謂范說之不能無病。則朱子之取之。又何歟。種仁對。仁知固是達德。而亦有偏處。自仁知言則其德雖未嘗偏。而自其用力於仁知者言。則有得其全體者。有得其一端者。若仁者見之謂之仁。知者見之謂之知是也。范氏之說。臣未見其有病。此章考見得失。謂考見己之得失耶。抑考見詩人之得失耶。若謂考見詩人之得失。則可以興可以羣可以怨。皆屬學詩者存心行己。而可以觀之偏屬詩人。不成立言之體。若謂己之得失。則朱子嘗斥張范呂楊之說曰。詩之所言。有四方之風。治亂得失之故。人情物態之變。豈爲觀己之志者乎。兩說誠難取捨。不知如何看則爲得耶。馥對。考見得失。實兼人己而言。朱子所以斥張范呂楊之說者。爲其專就自己上看故也。此章爲字。朱子謂與高叟爲詩之爲同。只是講論爾。然則後世口耳之學。亦可免於墻面之譏歟。二南固是脩身齊家之本。而必須反諸身措諸用。然後方有實得於己。今但以講論爲詩者。何其與聖門體認之工矛盾也。馥對。古之講論者。眞知其理而有可以實踐者。故夫子嘗曰誦詩三百。授之以政不達。雖多亦奚以
爲。豈可以古人之講論。比看於後世口耳之學乎。信如後世之學者。則雖終身誦詩。眼前之墻。故在也。氣質之偏。宜無古今之殊。而三疾之古有今無何也。點也之狂。柴也之愚。張也之矜。猶不足與於古之三疾歟。煕朝對。先儒論隱居求志章曰。在當時顔曾可以當之。而直曰未見其人者。蓋聖人慨世之意。從顔曾外說。然則此章所謂三疾。亦是慨世人。而從曾點諸人外說也。此章之義。集註則以邪常勝正爲主。南軒勉齋則以似是而非爲主。何者爲得歟。孟子亦嘗引此而專主似是而非說。然則當以南軒勉齋爲正歟。顯道對。此章之旨。兩義皆可通。而似是而非。旣爲孟子之所引。則集註范說之置諸圈外。豈欲其以備一說。而不作正義看歟。夫子之瞰其亡而往見陽貨。孟子之明日出弔東郭氏。與此章取瑟而歌。同一義也。但所以待及門之士者。宜與事君大夫者。爲禮不同。則夫子之於孺悲。何不明言其不欲見之實。而旣以疾辭之。又以非疾警 之。若是其宛轉委曲歟。晉賢對。孺悲之得罪聖門。雖未知何事。而夫子之始以疾辭之者。拒絶之也。終又取瑟而歌之者。使知拒絶之意。而俾思其自新之圖也。此於嚴正之中。兼包不屑之敎誨。恐不當以宛轉委曲言也。此章眼目。始之以安字。安者忍也。中之以三不字。不者不忍也。終之以仁字。仁者不忍之實也。正所以答宰予禮樂之問。而與人而不仁如禮何。人而不仁如樂何者。互相照應。聖人立言。儘乎其置水不漏。而但宰予之問。本出無隱。則夫子之答。亦當以天理人情。 反復譬曉可也。安則爲之者。得無激怒斥絶之意。而有乖於聖人雍容不迫之氣象耶。濟魯對。三年之喪。自天子達於庶人。而孝子之心。猶不足以報其德也。宰予遊於聖人之門。而反有短喪之問。夫子安得不始問其安乎。終言其不甘不樂不安以深責之乎。然此兩節。實皆於天理人情。安與不安之義。反復譬曉。何况俟其出而深探其本。力斥其失。使之聞而自悔者。此又聖人不終絶人之微意也。無所用心。專由於無勇以主之。故子路因此有尙勇之問。聖人之答。似當以理義之勇血氣之勇。分開劈破。而但將無義之勇。斥其失而止。則子路之失固可正也。無所用心者。得不益其頹惰耶。世綸對。子路以勇爲問。而聖人以義答之。所謂以義爲上者。卽指理義之勇也。此不特敎子路之失。亦所以敎無所用心之人。曰爲亂曰爲盜者。豈非深警之之辭耶。聖人惡稱人之惡者。而春秋一部無非袞鉞。聖人惡居下流訕上者。而衛靈公無道。亦嘗言之。必如吾之於人。誰毁誰譽。然後方可謂毋意毋必。而所以告子 貢者如此何也。豈子貢喜方人。故說此而矯其病歟。晉賢對。稱人之惡。與罪人之罪有異。春秋者。罪人之罪者也。居下訕上。乃爲親諱之事。夫子於衛靈公。固無君臣之分也。况稱者揚也。是幸人過之意。訕者誹也。非犯顔諫之類。則聖人所處。初何嘗近似於稱與訕耶。不特聖人。雖以子貢之方人。亦必無此等病痛。此不過因君子亦有惡之問。而言其所當惡者而已。勉人之遷善改過。當以善之當爲。惡之當去。秉法義以裁之。今曰見惡云爾則雖君子。亦豈無鄕黨不善 者之惡之乎。聖人立言之旨。必有可以辨之者矣。崑秀對。好惡人情之所不能無者。苟異於己。人必惡之。雖以爲善之君子。亦豈能無惡於不善之人。而君子之見惡。一人之私惡也。此章之見惡。天下之同惡也。立言之旨。固自不同。以上陽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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