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장 39-40절. 과부(홀아비)의 재혼에 관하여. 요약설교
39절.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 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1. 그리스도인 과부가 재혼하는 것은 거룩한 것이어야 하고 기독교 결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홀아비의 재혼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특별히 과부의 재혼에 대해서 교훈하시는 것은 당시에 남자들은 혼자라도 생계 유지가 가능했지만, 과부들은 재혼하지 않으면 대부분 성매매로써만 생계 유지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2. 여인은 남편의 생전에 결혼의 법으로 자기 남편에게 속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 중에 하나가 죽은 경우 외에는 이 결혼의 속박이 풀어질 수 없습니다. 단지 간음한 경우에나 의도적인 유기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로마서 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남편이 죽으면’에서 ‘죽는다’는 단어(κοιμηθῇ: 원형 κοιμάομαι)는 원래 ‘잠잔다’(sleep, fall asleep)라는 단어입니다.
죽음은 성경에서 종종 잠자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은 항상 잠자는 상태로 남아있지 않고,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람이 잠에서 깨는 것처럼.
4. 죽음으로써 그녀는 이전의 의무로부터 벗어나서, 완전히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결혼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과부가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5. <길>의 주석(Gill's Exposition of the Entire Bible)에는 그녀의 남편은 반드시 주님 안에 있고, 회심한 자여야 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가장 바람직하고, 고상하기는 하지만. 다만 그 여자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계속할 수 있고, 남편 때문에 믿음을 포기해야 하지 않고, 주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남자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40절.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1. 이것은 ‘혼인론의 각론 4’로서 ‘과부의 결혼문제’에 대한 교훈입니다.
남녀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복된 제도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 18절에는, “사람이 독처함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과부의 재혼도 역시 복된 일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5장 7-10절에는, 과부와 의무적으로 결혼해야 할 남편의 동생 남자가 과부된 형수와 결혼해주지 않으면 사회에서 창피를 당하고 매장당하도록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즉, 수혼제도(嫂婚制度). 혹은 계대혼인법(the Levirate Marriage)에서, 과부의 재혼을 거절하는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 ‘신발 벗기운 자’라는 수모를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과부의 재혼은 복되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과부의 재혼도 신자와 결합해야 된다는 것이며, 결혼생활에 초연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못할 바에는(29-31절 참조), 차라리 신앙생활을 위해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2. 바울 사도가 <더욱 복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은 걱정들로부터 자유로울 것이고, 덜 고통을 당할 것이고, 좀 더 평안하고 고요하게 살 것이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여가가 더 많을 것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단지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뿐이고, 명령으로나 권위적인 자세로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런데 바울이 과부나 홀아비의 재혼보다는 독신생활을 더 좋다고 말한 것은 바울 자신의 체험에서 말씀한 것입니다.
즉 바울은 과거 산해드린 공회원일 때 ‘수주고스’(σύζυγος: Suzugos)란 여인과 결혼생활을 했으나, 바울이 예수 믿은 후로 선교사의 삶을 살 때, 아내가 안정된 가정생활을 요구하면서 바울을 괴롭히다가 결국 이혼해버렸습니다. (이것은 확정적이지 않으나 추정적인 내용임)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과부나 홀아비가 재혼해서 가정생활에 걱정과 트러블과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는 혼자 그대로 사는 것이 고통 없는 평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바울의 경우이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부부가 합심하여 헌신적으로 주의 일을 해가고, 또 사업도 더 잘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6:3-4).
그러므로 과부나 홀아비의 재혼 문제는 우리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고자로 살도록 은사를 주셨으면 고자로 살고, 결혼해서 살도록 하셨으면(이것이 일반적인 은사임) 결혼하는 것이 올바를 것입니다. (마태복음 19:12)
4.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것은 고린도인들과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들( Corinthians and your teachers)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바울 이외에 고린도 교회 지도자들은 이 주제에 관하여 자기들이 주장하는 규칙에 대해서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성령을 받아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고, 은연중에 이 사실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 아닙니다.
5. 그런데 본 장(7장)에서는 바울의 ‘신앙 제일주의’(fideism: believialism)적인 교훈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신앙제일주의 때문에, 하나님이 복되게 제정해주신 결혼생활이나 세상적 일반생활을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성경은 도처에서 일상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히브리서 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하게 여기라.
디모데전서 4:1-4. 말세에 악령에 미혹 받은 사람들이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할 것이나, 혼인은 귀하고, 식물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
누가복음 16:10. 지극히 작은 재물에 충성된 자는 크고 신령한 일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재물에 불의한 자는 크고 신령한 것에도 불의하니라.
6. 결론적인 권고
(1) 고린도전서 7장 38절을 근거로 바울이 ‘독신주의’를 선호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38절.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특히 이 말씀을 근거로 부모가 딸이나 약혼녀나 과부의 독신생활을 권유하는 것이 옳지 못하고, 여자가 독신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고, 오히려 이 말씀은 약혼한 남녀(fiance와 fiancee)가 동거하는 문제에 대한 말씀입니다.
(2) 고린도전서 7장 29-31절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모든 생활에 대해서 초연하고, 신앙제일주의로 살아야 할 것 같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29-31절.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그러나 이 성경 말씀은 이 세상에서의 가정생활, 경제생활 등에 소홀히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결혼하여 애 낳고 사는 것), 경제생활, 직장생활, 여가생활은 어떠해야 하는가요?
그리스도인이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이나 여가생활에 충실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오히려 칼빈주의자들은 가정과 직장생활에 충실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소명(calling)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지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고, 또 세상에서는 환난과 갑작스러운 불행 등이 있으므로, 세상살이에 너무 몰두하고, 우상시하여, 어떤 불행을 당할 때, 신앙을 버릴 정도로 세상사를 절대시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3) 7장 32-34절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은 처녀와 과부의 독신주의를 선호하고 장려한 것일까요?
32-34절.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아닙니다.
이 말씀은 약혼한 남녀(fiance와 fiancee)의 동거 문제에 관한 교훈입니다.
즉 법적으로 약혼한 남녀(fiance와 fiancee)가 결혼식 하기 전에 동거해도 죄가 아니나, 결혼식 하기 전에는 동거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말씀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신령하고 귀한 것입니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히브리서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디모데전서 4:1-3절.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다만, 결혼생활에만 몰입하여 주님의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결혼생활을 통해서 두 사람이 더욱 합심하여 주님의 일을 크게 하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생각지 않은 때에 갑작스런 환란을 당할 수도 있으므로,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못 하는 한이 있더라도, 신앙을 잃지 말고, 주님을 변함없이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변화무쌍한 세상살이, 믿지 못할 세상살이에서, 너무 결혼생활이나, 직장생활이나, 정서적인 문화생활을 절대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시면서, 어떤 일을 닥치더라도, 가정에 위기가 닥치거나, 직장을 갑자기 잃거나,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건강을 잃더라도, 이런 일 때문에 신앙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직, 변화 많은 세상 가운데서, 모든 일에 좀 초연해서, 언제나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주님만을 모시고, 흔들리지 말고, 천성을 향해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세상일에 몰두하느라고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또한, 신앙생활을 핑계로 세상일을 소홀히 하지도 마십시오!
세상 생활에 노예가 되지 마시고, 초연한 신앙을 가지십시오!
또, 신앙생활을 잘하시는 가운데, 세상일도 지혜롭고 성실하게 하여서, 주님께 영광 돌리고, 전도가 잘되도록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