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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연도 |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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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야마시타 노부히로 |
| 출연 | 쓰마부키 사토시, 마쓰야마 겐이치, 구쓰나 시오리, 나카무라 아오이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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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생운동의 기세가 잦아든 1971년의 어느 날, 토우도 신문사의 〈주간 토우도〉 소속 기자였던 사와다는 선배 기자 나카히라와 함께 지하조직 게이세이 안보 소속의 운동가와 접촉한다. 우메야마라는 이름의 운동가가 밝힌 계획은 자위대의 무기를 탈취해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무장테러를 벌이겠다는 거였다.
학생운동에 대해 부채의식을 품고 있었던 사와다는 그의 계획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과 C.C.R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적인 취향을 통해 우메야마와 사와다는 친밀한 사이가 된다. 하지만 선배 기자인 나카히라는 사와다에게 우메야마의 정체가 수상쩍다며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와다 또한 그에 대해 조금씩 미심쩍은 감정을 품기 시작한다.
사실 나카히라의 판단대로 우메야마는 게이세이 안보의 조직원이 아니라 고작 세명의 추종자를 거느린 실체가 없는 조직의 수장에 불과했다. 우메야마는 자신을 의심하는 사와다에게 아지트를 공개하고 ‘적방군’이라 이름 붙인 자신의 조직을 세상에 알리려 한다.
그리하여 우메야마는 전직 자위대 장교를 포섭해 마침내 무기 탈취 계획을 지휘하는데, 부대에 잠입한 조직원들이 무기는 탈취하지 못한 채 보초병만 살해하고 만다. 이 소식을 접하고 적방군이 행동을 개시했다고 생각한 사와다는 우메야마와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고, 살해된 보초병의 피 묻은 완장을 기념으로 받는다.
하지만 결국 우메야마는 살인죄로 체포되고, 사건의 증거물인 완장을 숨겼다는 이유로 사와다 또한 공범으로 몰리게 된다. 그리고 심문과정 중 모든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는 우메야마의 비겁한 모습에서 사와다는 이상의 끔찍한 좌절을 목격한다.
1. 시대적 배경
영화가 시작되면 도쿄대 야스다 강당 진압 소식을 전하는 라디오 뉴스가 들려오고 그 이후 카메라는 텅 빈 채 폐쇄된 야스다 강당 내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야스다 강당 사건을 계기로 1960년대 내내 격렬히 진행됐던 일본 학생운동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1960년대 초 미일상호안보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이른바 안보투쟁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은 1968년에 이르러 학생운동단체 연합인 전학공투회의, 즉 전공투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전공투의 주된 투쟁방식은 대학 건물을 점거한 뒤 바리케이드로 봉쇄하는 공성전. 그러한 시위는 무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점거와 봉쇄를 반복했던 야스다 강당 사건에서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오랜 점거기간 동안 운동권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났고, 결국 도쿄대쪽에서 경찰기동대에 진압을 의뢰하게 된다. 드디어 1969년 1월18일, 출동한 기동대는 모든 바리케이드를 와해시키고 강당 내 학생들을 검거한다. 1988년까지 야스다 강당이 폐쇄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날의 투쟁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도쿄대 전공투 의장이었던 야마모토 요시타카와 니혼대 전공투 의장인 아키타 에이지가 체포되면서 전공투는 급속도로 와해된다. 애초 전공투의 성격이 학생운동단체의 연합이었던 만큼 명확한 구심점이 없었다는 것도 빠르게 와해된 이유 중 하나였으며, 이후 일부 단체들만이 나리타 공항건설 반대투쟁(일명 산리쓰카 투쟁)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본 학생운동이 쇠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국제적으로는 베트남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한 1969년에, 영화 〈마이 백 페이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극중 사와다가 선배 기자인 나카히라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도 나카히라는 나리타 공항건설 반대투쟁에 관련한 취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2. 원작과 영화
〈마이 백 페이지〉는 일본의 평론가 가와모토 사부로의 동명 회고록을 각색한 영화다. 원작과 영화의 제목인 〈마이 백 페이지〉는 뮤지션 밥 딜런의 노래 〈My back pages〉에서 따왔다. 이상을 좇던 젊은 시절에 대한 회고와 반성을 담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밥 딜런의 노래 또한 그가 초창기에 추구했던 정치적 이상이나 포크 저항운동과 결별하던 시점에서 회고의 의미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곡의 후렴구인 “Ah, but I was so much older then, I'm younger than that now”(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젊은 것 같아)가 원작의 저자인 가와모토 사부로와 극중 사와다의 심경을 대변한다.
가와모토의 회고록은 야스다 사건이나 나리타 공항건설 반대투쟁, 베트남 반전운동의 취재담을 담은 1부와 운동가를 자칭하는 ‘청년 K’와의 만남을 다룬 2부로 나뉘는데, 영화는 책의 2부를 각색했다. 그 과정에서 청년 K가 우메야마라는 인물로 재탄생했고, 그가 이끌었던 조직 ‘적위군’은 ‘적방군’이라는 가상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극중 우메야마의 조직원들이 저지른 자위대 보초병 살해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던 ‘아사카 자위대 병사 살해사건’을 고스란히 묘사한 것으로, 당시 〈아사히저널〉의 기자였던 가와모토는 영화 속 사와다와 마찬가지로 체포되어 징계 면직됐다.
영화에서 사와다와의 짧은 인연으로 등장하는 주간지 표지모델 구라다 마코의 모델은 원작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야스쿠라 사치에다. 이누도 잇신 감독이 리메이크한 1974년판 드라마 〈황색눈물〉을 비롯해 서너편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했던 그녀는 모친의 병수발을 위해 연예계를 떠났다가 노이로제 증상을 호소하며 1975년 도쿄 자택 인근의 열차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영화에는 사와다와 구라타가 잭 니콜슨 주연의 〈잃어버린 전주곡〉을 함께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가와모토도 야스쿠라 사치에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
3. 주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프로듀서 네기시 히로유키로부터 가와모토의 회고록을 추천받았던 2007년에만 해도 그는 전공투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원작이 일본 최초의 야외 음악 페스티벌이었던 포크 잼보리 취재담과 같이 1960~70년대 음악이나 영화를 묘사한 것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가와모토 사부로를 만나고 난 뒤 감독은 생각을 바꾸게 된다. 영화평론가 미루쿠만 사이토와의 대담에서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각본가인 무카이 고스케가 가와모토씨에게 ‘병사가 죽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는데 가와모토씨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원작에서도 그랬다. 본인이 체포되는 대목에서는 필자로서 냉정하지 못했다고 할까? 그래서 영화가 자위대 병사 살해사건을 중심에 두면 모든 것이 선명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와모토씨도 줄곧 덮어만 두고 있었던 것을 한번 열어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야마시타 노부히로와 무카이 고스케는 사와다라는 인물의 죄의식을 작품 전체의 키워드로 삼았다.
4. 프로덕션 과정
사와다를 연기할 배우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다정하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이미지를 선보였던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죄의식이라는 키워드로 초기에 선명하게 다가온 사와다 캐릭터와 달리 감독과 각본가는 우메야마라는 인물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미루쿠만 사이토와의 대담 중 “무카이와 둘이서 ‘가와모토씨는 어째서 그런 가짜를 믿게 된 걸까?’라고 푸념만 했다”는 고백처럼 단지 C.C.R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만으로 사와다와 우메야마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독은 애초 우메야마를 영화 내내 수수께끼에 싸인 인물로 그리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드라마가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과 ‘장차 배신할 인물임에도 주인공이 매료된다면 그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3년여를 매달린 끝에 카리스마는 있지만 겉도는 캐릭터인 우메야마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그러한 카리스마와 허세, 빛과 그림자 모두를 표현하기 위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우메야마 역의 마쓰야마 겐이치에게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코미디의 왕〉과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투 다이 포〉를 보도록 했다.
5. 영화적 기법
〈마이 백 페이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화면의 거친 질감이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이 영화를 16mm필름으로 촬영한 뒤 35mm필름으로 확대하는 블로업(blow-up) 과정을 거쳤는데, 이렇게 하면 필름의 입자가 두드러지게 보이고 화면의 채도가 낮아져 탈색된 듯한 느낌을 준다. “어찌 보면 사와다와 우메야마 둘 다 학생운동 세대의 중심인물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그들이 가진 쓸쓸함. 그 정서가 내겐 무척 흥미로웠다”는 감독의 느낌을 화면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로 일상적인 소재를 꾸밈없는 화면 연출로 영화에 담아왔던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격동의 시대를 다룬 이 작품에서 이전에는 좀처럼 쓰지 않았던 기법을 사용한다. 바로 슬로 모션인데, 사와다가 전공투 의장인 가라타니 요시로나 지하운동의 대부 마에조노 이사무를 만나는 장면에서 그의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한다.
이 슬로 모션은 전적으로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사와다의 주관을 반영하고 있다. 전공투의 투쟁이 격렬하게 진행되던 시기에 이미 기자 생활을 하고 있었던 사와다는 학생운동에 대해 동경과 부채의식을 안고 있었고, 그것이 전공투 간부들을 마치 이상적인 존재나 영웅처럼 바라보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와 대비를 이루는 기법은 후반부에 보초병이 살해될 때 쓰인 두개의 롱테이크 화면이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이전에도 롱테이크 화면을 즐겨 사용했지만 이 작품에서 사용된 이유는 전작들과 다르다. 다른 작품에서의 롱테이크가 일상을 시공간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함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보초병이 받는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쓰였다.
앞서 슬로 모션이 사와다의 이상과 주관적 시점을 반영한 것이라면, 이 롱테이크는 그가 직시해야 할 현실과 객관적 시점을 반영한 것이다. 프로듀서인 네기시 히로유키는 이렇듯 끔찍한 장면의 롱테이크 촬영에 대해 난색을 표했지만 감독은 사와다는 물론 원작자인 가와모토가 직시해야 하는 죄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완고하게 찍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여 끝내 관철시켰다.
〈바보들의 배〉나 〈후나키를 기다리며〉와 같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초기작에서 보여준 특유의 유머 감각이 잘 나타난 장면들도 있다. 우메야마의 조직을 묘사한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낡은 자취방에 불과한 공간을 아지트라고 부르고, 빨래를 바깥에 걸면 발각될지 모른다며 여자 동료를 나무라지만 정작 부끄러워하며 여성용 속옷을 치우지도 못하는 남자 조직원의 모습은 전형적인 블랙코미디처럼 연출되었다. 이 장면에 대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여자들의 브래지어도 부끄러워하는 자가 혁명군을 자처하는 아이러니라니. 좀 삐딱하게 보는 나의 시선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6. 영화의 결말
영화의 결말은 신문사에서 해고된 뒤 원고 청탁을 받아 생활하는 사와다의 후일담을 보여준다. 어느 날 홀로 술을 마시러 들어간 가게에서 그는 과거에 신분을 숨기고 서민들의 삶을 암행 취재할 때 만났던 친구 다모츠를 만난다. 당시 토끼를 파는 노점상에 불과했던 다모츠는 어느덧 자그마한 술집의 주인이 되어 있었던 것. 아직도 자신의 정체가 기자였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다모츠와 다소 어색한 대화를 나누던 사와다는 “그때는 개망나니였지만 재미는 있었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고 그의 통곡과 함께 영화가 끝난다.
이 마지막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등장한 몇개의 장면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영화의 서두로, 다모츠와 함께 노점상 노릇을 할 때 사와다는 실수로 장사 밑천인 토끼들을 죽게 만든 적이 있다. 이 죽음은 영화 후반부 자위대 병사의 죽음과 대구를 이루며 사와다가 묻어둔 죄의식의 일부가 된다. 두 번째는 사와다가 일하는 주간지의 모델이었던 구라다와의 대화다. “울면 사내가 아니지”라는 말에 구라다는 “그렇지 않아요. 전 제대로 우는 남자가 좋아요”라고 답한다. 우메야마도 계획 실행을 앞두고 사와다에게 “행동에 나서기 전엔 나도 ‘무서워, 무서워’ 하며 울고 싶어”라고 말한 바 있다.
신문사에서 해고되던 날에도 사와다는 사무실에서 구라다를 만난다. 그리고 “아무 죄도 없고 안 죽어도 될 사람이 죽었다죠?”라는 구라다의 말에 사와다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와다가 다모츠와 해후하며 눈물을 흘린다. 울면 안된다는 사와다와 울 수 없는 우메야마. 울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이 영화에서 그 감정이란 다름 아닌 작품의 키워드, 죄의식이다. 다모츠와 만난 자리에서 사와다는 비로소 잊고 있었던 토끼의 죽음과 병사의 죽음이라는 두개의 죄의식을 모두 깨닫고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이다.
사와다 마사미(쓰마부키 사토시) : 토우도 신문사 소속 기자. 학생운동의 쇠퇴 이후 늘 부채의식을 안고 살았던 청년. 과격한 봉기를 주장하는 우메야마를 만나며 어딘지 미심쩍은 그에게 점차 매료된다.
우메야마(마쓰야마 겐이치) : 본명 가타기리 마사루. 논리보다 행동을 부르짖는 과격주의자이나 변변한 조직도 없이 혁명을 꿈꾸는 인물.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사와다를 이용하려 한다.
구라다 마코(구쓰나 시오리) : 모델이자 배우. 〈주간 토우도〉의 표지모델이 된 인연으로 사와다와 심야영화를 함께 보러 다니는 사이가 된다.
나카히라 다카히로(후루타치 간지) : 베트남전 취재가 꿈인 사와다의 선배 기자. 오랜 현장취재를 통해 학생운동의 계보에 정통하여 우메야마의 허점을 첫눈에 알아보고 사와다에게 경고한다.
아타카 시게코(이시바시 안나) : 운동에 대한 사명감보다는 연모의 감정으로 우메야마의 조직에 합류한 여대생.
시바야마 히로시(나카무라 아오이) : 우메야마를 의심 없이 따르는 조직의 후배. 자위대 무기 탈취 작전을 직접 수행한다.
마지막 기회야. 나를 진짜로 만들어줘.
- 우메야마자위대 무기 탈취작전을 위해 떠나는 조직원 시바야마에게 건네는 우메야마의 대사. 혁명가를 꿈꾸지만 정작 자신은 행동하지 않는 그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우메야마는 “뭔가 하려고 했는데 이미 끝나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다. 그 아이러니는 카리스마와 허세를 오가는 그의 이중적인 캐릭터를 낳았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시바야마 일행이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도 우메야마는 식당에서 만화책을 읽으며 낄낄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와모토 사부로의 회고록 〈마이 백 페이지 : 어느 60년대 이야기〉(1988). 국내 미출간
2011년 제85회 〈키네마준보〉 베스트10 일본영화 제9위 및 신인여우상(구쓰나 시오리)
〈恋の季節〉(핑키 앤드 킬러스) : 1968년 7월에 발표되어 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히트곡. 영화에서 ‘1969년’ 챕터를 여는 곡으로, 무라카미 류 원작의 영화 〈쇼와가요대전집〉부터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 파(破)〉에 이르기까지 60~70년대 일본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로 자주 인용된다.
〈Have you ever seen the rain?〉(C.C.R) :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과 함께 극중 사와다와 우메야마가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한 노래. 영화에서는 마쓰야마 겐이치의 통기타 반주로 두 사람이 함께 부른다. 우메야마의 말처럼 제목의 ‘비’는 베트남에 쏟아진 폭탄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일반적이었지만 C.C.R의 존 포거티는 이를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My Back Pages〉(밥 딜런) : 원작 타이틀의 유래이자 영화의 엔딩곡. 밥 딜런의 노래를 2인조 밴드 마고코로 브러더스와 싱어송라이터 오쿠다 다미오가 리메이크했다. 오쿠다가 원문 영어가사를, 마고코로 브러더스의 요-킹이 번안한 일본어 가사로 나누어 불렀다.
〈파주〉(2009) : 한국 운동가의 후일담과 그의 죄의식에 관한 영화. 이 작품 또한 16mm필름으로 촬영한 뒤 35mm로 블로업했다.
〈올모스트 훼이모스〉(2000) :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기자가 된 소년이 목격한 뮤직 비즈니스의 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