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93)
《'왕벌의 비행(Flight of the Bumblebee)'》
러시아의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오페라 '술탄 황제의 이야기'를 위해 만든 이 짧은 관현악곡은, 신비로운 백조의 마법으로 왕벌이 된 주인공 그비돈 왕자가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을 모함한 이모들을 쏘아주기 위해 날아가는 장면을 그린 음악이다.
그러나 오페라의 거대한 서사 속 한 장면으로 존재하기보다, 이 곡은 그 자체로 ‘속도와 한계’를 시험하는 거대한 무대가 되었다. 반음계로 끊임없이 하강하고 상승하는 16분음표의 모티프는 그저 귀로 듣는 음향에 그치지 않고,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의 신체적 경계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만드는 독특한 생동감을 지닌다.
몇 분도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시간에 수백 개의 음표가 공중에서 튀어 오르고 내달린다.
박자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한 음 한 음을 명확하게 짚어내야 하는 연주자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히고, 그 몰입의 에너지는 그대로 듣는 이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진짜 왕벌의 날갯짓은 어쩌면 무섭고 두려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완성해 낸 이 음악적 왕벌은 날카롭다기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유려하고 아름답다.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반음계의 움직임은 곤충의 날갯짓이 가진 경이로운 에너지와 생명력을 그대로 본따 놓은 듯하다.
단순한 속주 자랑에 그치지 않고, 서양 음악이 가진 반음계적 화성의 매력을 정교하게 응축해 놓았다고 할 수있다.
그 짧은 찰나에 경험한 폭풍같은 몰입감이야말로 이 곡이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사랑받아 온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날아오를 때, 그 흔적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깊은 여운과 소름 돋는 감동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오페라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순간, 이 곡은 인간이 가진 신체적, 예술적 한계를 시험하는 하나의 거대한 ‘속도전’이 되었다. 수많은 연주자가 자신의 손가락이 바람보다 빠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왕벌의 날갯짓에 도전해 왔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음악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그리고 그 쉼 없는 날갯짓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야말로 '왕벌의 비행'을 닮아 있다. 눈을 뜨자마자 쏟아지는 정보와 메시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일정표, 그리고 뒤처지면 낙오될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리를 끊임없이 내몰고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1초에 수십 번씩 날개를 치는 왕벌처럼 위태롭고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왕벌의 비행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감동은 단지 ‘얼마나 빠른가’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감각과 에너지를 오롯이 쥐어짜 내어, 찰나의 순간에 전부 쏟아붓는 ‘밀도 높은 생명력’에 있다. 쉼 없이 윙윙거리는 음표의 폭풍 속에서도 연주자는 단 한 순간도 딴생각을 할 수 없다. 오직 지금 피어나는 그 음표 하나에 온 존재를 던져야만 비로소 완벽한 비행이 완성된다.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밀려드는 업무와 번잡한 세상의 소음 속에서 우리가 지치는 진짜 이유는 속도가 빨라서가 아니라, 그 속도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분주함에 끌려다니는 삶은 고통스럽지만, 내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박자로 비행할 때 그 분주함은 비로소 생동하는 에너지로 바뀐다.
오늘 하루, 세상의 박자가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이 곡을 들어보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남의 박자에 쫓겨 허우적대고 있는가, 아니면 나만의 비행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날갯짓하고 있는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완성한 아름다운 왕벌처럼, 우리에겐 저마다의 소음을 고귀한 음악으로 바꾸어 낼 힘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이번엔 찐) 하모니카로 이게 가능해?? l 왕벌의 비행 (Flight of the Bumblebee) Harmonica Cover
https://youtube.com/watch?v=PcjFYkigEm0&si=bk5OwdM_xmcTfJty
첫댓글 <<https://youtu.be/ogeCldIU72Q?si=lwYSZ7xyRsG3jYNC>>
PLAY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대단하여이다^^^
감탄만 나옴^^^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