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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일하는 완주 상관 벧엘요양병원 앞에 선 손완정 원장. |
“젊게 살았습니다. 책가방을 들고, 필통을 들고 학교에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기운이 솟아요... 한 학기동안 즐거웠습니다.”
60을 바라보는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방송통신대에 입학해 ‘프레시맨’이 됐고, 한 학기를 무사히 끝마쳤다. 한국방송대학교 인문대학 일본학과 1학년 손완정 원장(58.완주 벧엘요양병원)을 만났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다. 눈빛은 지금도 호기심에 이글거린다. 세상사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학교생활에 열심히 참여하고,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그리고 요양병원 의사로 일하면서 어떻게 대학에 새로 들어갈 생각을 하셨는지...?
“저는 살면서 나이 같은 것에 얽매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알고 싶은 것들, 배우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아요, 나이는 대학을 가려고 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고요... 병원 일 때문에 좀 어려움은 있었지만 저만 열심히 하면 가능하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시간에 공부가 가능한 방송통신대를 선택하게 된 것이고요...”
▶방송대에도 많은 학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일본학과를 선택하셨어요... 의사라면 연계되는 분야의 공부를 필요로 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의외의 학과를 선택하셨어요.
“2018년 여름에 우연히 일본 대하드라마 ‘아쯔히메’를 본 적이 있어요. 50부작인데 1주일만에 다 봤습니다. 울림이 커서 내용과 느낌을 노트에 적어 가며 봤었지요. 이 여인의 기지로 에도(지금 도쿄)는 불바다를 피하게 되고, 쇼군가와 천황가는 전쟁 직전에 극적인 타결을 봅니다.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서 양 측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를 찾게 되죠... ‘아쯔히메가 양측 협상가들을 뒤에서 조율 했고, 일본 근세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여걸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한 학기가 지나갔습니다. 보람도 있고, 어려움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무사히 한 학기를 보낸 소감은...?
“방송대는 일반대학처럼 학생들끼리 얼굴을 볼 기회가 적습니다. 당연히 동기와 선배들 얼굴 익히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들어가자마자 제가 과대표를 하게 됐습니다. 선배들은 나를 다 아는데 나는 선배들을 많이 모르니 죄송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죠. 다른 과에 비하면 신입생이 12명으로 단촐 했지만 동기 셋이서 의형제를 맺고 학과를 이끌어 왔습니다. 중간 레포트에서 좌절할 뻔 했지만 나를 담금질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생활은 어땠습니까...? 동기들과 세대 차이가 있었을 텐데요...?
“방송대는 우리 선입관과는 많이 다릅니다. 옛날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대학에 가지 못한 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됐지만 지금은 고학력자들의 재교육장이 되고 있습니다. 거의가 대졸이고, 연령대도 70대가 가장 많습니다. 저는 오히려 젊은 축이어서 세대 차이는 있을 수 없었고요... 제가 원래 매사에 적극적입니다. 적극적으로 나서니 동기들이나 교수님들도 좋아하시고, 그 덕분에 한 학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학기중 보람 있던 일을 꼽는다면...
“동기들과의 스터디입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 대학에서 만나 한 시간정도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평소 일본어 기초 교재로 하다가 기말고사 전에는 전과목 정리를 한 게 큰 보람입니다. 여기서 주도적으로 하다 보니 내 공부는 저절로 되었어요. 6과목 가운데 A가 4과목, B가 2과목입니다. 스터디 후에 학우들과 막걸리 한 잔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신입생 OT도 신선했고, 선배들과의 공주, 부여 MT도 즐거웠습니다. 대학원 선배의 초대로 이뤄진 한산 소곡주 양조장 탐방도 좋았습니다.”
▶한 학기를 보내고 아쉬움도 있지 않겠어요...?
“입학 2일 전에 열린 OT때 12명 전원이 함께 졸업하겠다고 선배들 앞에서 공언했었는데 이번 기말고사에서 2명이 결시한 것이 아쉽습니다. 특히 학교에 입학한 뒤 전적으로 방송대 위주로 살다보니 친구들과 만남이 줄어들게 된 점이 아쉽습니다.”
▶방송대 생활의 노하우라고 할까요...? 한 학기를 통해 얻은 것은...?
“방송대는 평상시에는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하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출석 수업을 합니다. 전북에서는 전주에 캠퍼스가 있고, 각 지역별로 학습관이 따로 있습니다. 그룹 스터디를 꼭 추천하고 싶어요. 이게 공부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데, 이게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방송대는 스터디그룹 참여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물러나야 하는 저희 세대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데요, 삶에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내실 수 있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학과를 변경하면서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게 방송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대를 꿈꾸는 예비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나 조언은... ?
“저도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가 기말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면서 이게 쉽게 생각할 게 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습니다. 시험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예요. 많은 학생들이 시험 과정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이한 생각으로 입학하지 말고,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갖고 입학 하면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얻게 될 겁니다. 저는 적극 추천합니다.” / 강찬구 기자
손완정 원장은 진안 부귀가 고향이다. 일찍이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전주로 나왔다. 전북대 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원광대 임학과를 졸업했으나 주변의 기대를 받들어 원광대 의과대에 다시 입학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서 의술을 베풀었으며, 현재는 완주군 상관에 있는 벧엘요양병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도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강렬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천성에다가 남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해 주변에 사람이 많다. '아쯔히메'로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새로운 꿈이다. / 사진은 의과대 학생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