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華山)"
화산은 우리 중화위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산이다.
중화(中華)라는 말은 산서성 운성시의 동서방향으로 길게 놓인 중조산(中條山)과 섬서성 위남시(渭南市)의 화산(華山)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즉, 고대 중국인들은 중조산과 화산을 갖는 나라를 천하의 중심으로 여겼던 것이다. 중화위씨 조상의 나라인 전국시대 위나라는 이 두 산을 가져서 천하만민이 위나라를 천하의 흉복(凶腹=中心)이라고 일컬었다.
산 이름은 대개 오행사상에 의거하며 붙이는데 화산의 "華"는 오행으로 "火" 계열의 한자이다. 오행으로 "火山"은 돌산이다. 즉 화산은 돌산이다. "華"는 "빛날 화"인데 돌산인 화산이 햇빛을 받아 빛난다 하여 "빛 나는 산"의 의미로 "화산(華山)"이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또한 "華"자는 고대에 "花"자와 같았는데 화산의 모양이 연꽃이 핀 모양과 같다하여 "華山"이라고 했다 한다. 화산 입구의 조형물을 보면 큰 원형기둥위에 연꽃을 조각해 놓은 것을 보면 이런 설명이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화산을 가는 방법을 인근 국제비행장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방법이다.
산서성 운성시(運城市)에서 화산으로 간다. 운성역에서 기존의 보통열차를 타고 화산으로 간다. 열차로 2시간 거리이다. 이 노선을 가면 그 유명한 황하(黃河) 서쪽 끝을 볼 수 있고 철도가 중조산과 평행하게 동서로 건설되어 있어서 중조산의 진면목을 감상하며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침대좌석을 구입하기 바란다. 또한 화산으로 가는 여정에 풍릉도(風陵渡)역이 있는데 이곳에서 양귀비 고향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황하를 즐기고 싶으면 운성시 화차북참(고속열차역사) 시내버스 정류소에서 예성(芮城)행 차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서 택시로 이동하면 예성에 12km 거리에 대우도 황하 풍경유람구(大禹渡 黄河风景游览区)가 있다. 시내버스가 구불구불하게 협곡에 건설된 중조산을 넘는 길로 가게 되므로 중간에 내려 트레킹도 가능하다. 중조산과 화산을 모두 올라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예성현에는 관운장의 고향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 또한 볼만한 유적이다.
그리고 예성 정류소에서 2km 정도 거리에 여동빈을 기리는 도가사당인 영락궁(永樂宮)이 있는데 이곳의 고건축과 벽화가 유명하다. 본래 황화강 유역에 있었던 영락궁은 삼문협 댐 건설로 인해서 수몰 위기에 처하자 현재의 위치로 이설했는데 이곳은 중화위씨 필만공께서 처음으로 위나라의 대부로 봉해지셨을 때의 위나라 도성의 남문이 있던 장소로 우리 중화위씨에게 그 의미가 지대한 장소이기도 하다.
몇가지 덧붙이자면, 운성시 하현(夏縣) 우왕대(禹王臺, 이곳이 하나라 우임금의 도성임)와 운성시 안읍(安邑) 위표성(魏豹城)이 전국시대 위나라 도성이다. 이곳도 역시 운성화차북참에서 시내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예성현(芮城)차를 타고 가서 가면 된다. 또한 관운장 고향 유적지가 운성시 경내에 있는데 이곳에는 세계 최대의 동상인 관운장 동상이 서있다.
산서성 남부 운성시를 예전에는 황하의 서쪽지역이다 하여 "하동(河東)"이라고 하였는데 이곳은 고중국(古中國)으로 옛 유적지가 여러 곳 있다. [산서성 운성시 관광홈페이지 주소 : http://www.yclyw.gov.cn/zx/index.html]
중원 제 1폭포인 "호구폭포(壺口瀑浦)"를 가려면 운성에서 고속열차로 임분시(臨汾市)로 이동하여 얼마전 새로 준공된 고속도로를 통해서 가면된다. 이 경로는 서안에서 가는 것보다 거리가 가깝다. 서안에서 호구폭포를 구경하면 동쪽에서 호구폭포를 보게 되는데 이 모습이 서쪽에서 보는 모습보다 우월하다고 한다. 시간이 있으면 서안쪽에서 호구폭포를 가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임분시에서 호구폭포까지는 왕복 270km정도이고 서안에서 호구폭포까지는 왕복 800km이다.
한국에서 운성으로 가는 직항로는 없다. 운성을 가장 저렴하고 편리하게 가는 방법을 추천하면 인천-석가장 제주항공편을 미리 저가로 예매하고 석가장에서 운성으로 고속열차편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중원대륙의 여행은 석가장을 중심으로 계획하는 것이 좋은데 이는 특히 오늘날 고속철도가 석가장을 중심으로 건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여정이다.
이 방법은 손쉬운데 서안화차북참에서 화산화차북참으로 간다. 중간에 위남시(渭南市)에서 한번 정차하는데 고속열차 총소요시간은 30분이다. 주로 이 방법으로 화산여행을 한다.
주릉을 방문한 다음날 아침 일찍 화산을 등정하기 위해 나섰다. 좀더 일찍 나가려고 했으나 고봉준령을 오를 것을 생각해서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가려하니 7시쯤에 출발하였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물어보니 택시기사가 약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니 타라고 한다. 고속열차역사 이곳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 10여분을 가더니 다 왔다고 내리라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택시기사에게 "고티에짠(高鐵첨)"이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미심적었으나 별도리 없이 내려보니 "서안(西安)"이라고 적힌 역사 간판이 보였다. 경찰에게 물어보니 "266公交路"라고 적어주면서 건너편쪽으로 손을 가르켰다. 열차시간이 촉박하여 이곳에서 몇번이고 택시를 잡기위해서 시도를 했으나 택시기사들이 고개를 젖고 그냥갔다. 아마 출근길에 고속철도역사로 가는 것은 수지가 안맞는 모양이다. 20여분을 기다려서 시내버스를 탔는데 노선도를 보니 [서안역-서안북]으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노선의 끝과 끝을 연결하고 있었다. 50여분을 지나서 서안북역에 도착하니 미리 예매해놓은 고속철은 이미 출발한지 20여분이 지난 후였다. 다시 표를 사서 화산으로 향했다.
화산고속철도역에서 하차하니 호객하는 기사가 다가와서 "얼스콰이(20원)"이라고 했다. 무료셔틀버스가 있다는 정보가 있었으므로 가보니 버스 두대가 있는데 이 버스가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한 택시기사가 와서 호객행위를 하는데 이 버스는 화산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 택시기사의 택시를 탔는데 한 5분을 지나서 길가에 택시를 세우더니 지도를 꺼내서 어느 여정으로 갈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래서 지도를 보고 화산북봉으로 올라서 화산 서봉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하니 종이를 꺼내서 소요비용을 적어서 내민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가다말고 멈춰서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잘 알아듣지 못하여 서로 실갱이를 하다가 10여분을 낭비했다. 그래서 별안가 "화산!"하면서 갈 것을 재촉하자 다시 화산을 향해서 택시를 몰았다. 한참 후에 인터넷에서 본 화산 상징탑이 보였다. 이윽고 차를 멈추었는데 이제는 택시기사 손가락 셋을 내보이면서 "산스(삼십)"라고 한다. 그렇찮아도 중간에 시간을 끌어서 조급하여 열을 받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서 나도 모르게 화게나서 "얼스(20)!!!"하고 소리를 치니 택시기사가 주눅이 들었는지 그렇게 달라고 하였다.
[서안북역 - 화산북봉 케이블카 여정]
화산 입장표를 파는 곳으로 가는 도중의 광장에 앉아서 준비해간 밥을 꺼내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표사는 곳을 가니 조금전 택시기사처럼 또 화산 등정 비용을 적어서 내밀었다. 그런데 대화가 잘 안되자 이곳에서도 10분을 허비하였다. 이곳에서는 "문표"와 화산북봉을 오르는 곳의 케이블카역사까지 가는 "차표"만 사면 되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되는 것을 전부 적어 내미니 참으로 황당하게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블카까지 가는 버스에 오르자 한국인이 20여명이 탑승해 있었다. 전주에서 온 가족들이 대부분이었고 두사람만 따로온 부자지간 여행객이었다. 처음에 아주머니 두 사람이 큰 소리로 떠들어 댔는데 천길 낭떠러지 협곡을 오르자 겁을 먹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이윽고 화산북봉을 오르는 입구에 도착하니 패루가 있었다.
화산북봉을 오르는 케이블카는 중국인 가족과 함께 탑승했다. 젊은 부부와 대여섯살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운무가 자욱하여 처음에는 화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고도가 상승하자 구름 위에 화산의 봉우리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정말 말로써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아이가 칭얼대서 보니 엄마 아빠가 긴장이 되는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손으로 의자를 힘껏 부여잡고 있었다. 아이가 계속 칭얼되면서 몸을 흔들며 투정을 부리자 케이블카가 약간 흔들렸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하는 속담이 떠올랐다. 수백미터 협곡의 상공을 지나는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 엄마 아빠의 관심이 소원해진 것을 불평하여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우섭기만 했다.
북봉에 도착하여 서봉을 가기 위해서 가는데 이따금씩 한국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당초에는 동, 서, 남, 북의 모든 봉우리를 다 오르려 했으나 화산의 경관을 보는 순간 나머지 봉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오늘은 천천히 북봉과 서복의 여정을 감상하기로 했다.
이곳은 도가의 산인 관계로 도가 관련 사당이 몇몇 보였다. 미련이 남아서 도정에서 자물쇠를 사서 하나 매달았다. 좌판에 있는 자물쇠를 보니 작은 것이 20위안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20위안인줄 알았더니 자물쇠 파는 아주머니가 손가락을 가르키는 곳을 보니 자물쇠에 글을 세기는 비용이 따로 있었다. 물론 그 비용은 자물쇠 구입비용보다 두배 정도 였다. 전동공구로 자물쇠에 카페지기 이름과 "전가평안(全家平安)"이라는 글을 세기고 나서는 벌떡 일어서더니 리본을 꺼내들더니 이것도 사야 한단다. 참 중국인의 고전적 상술을 보는 것같았다. 결국 족히 자물쇠 구입가격의 4배 정도를 들여서 하나 구입해서 난간에 매달고 키는 아래로 집어던지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왔다. 다시 가는 기회에 매단 자물쇠를 다시 보기 위해서 바위가 두개가 포개어 있는 곳을 표지삼아 매달았다.
천천히 경관을 감상해 가면서 서봉을 향해 가니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서봉에 도착하여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하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기 위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냥 내려오기에는 미련이 남아서 맥주켄 2개를 사서 한잔하고 케이블카를 탔다. 이번에는 중국인 아주머니 두사람과 동승했는데 한국인이라고 하자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호의를 보였다.
다시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내려와서 면류로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화산입구로 향했다. 어두움이 내리는 화산입구에는 택시 세대가 주차해 있고 원거리행 버스만 있었다. 택시로 다가가서 화산북역을 가자고 하니 택시기사가 손가락 셋을 보이면서 "산스(30)"하였다. 카페지기가 두 손가락을 보이면서 올 때 20위안 줬다고 하면서 "얼스(20)"하자 안가겠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30위안을 주기로 하고 탔는데 출발하기전 택시기사 다시 뒤를 돌아보면서 손가락 셋을 보이면서 "산스(30)"하였다. 그렇게 하자고 하니 그 때서야 출발을 했다. 어둠이 깔린 화산북역에서 한국에서 예매한 표를 찾기 위해서 여권을 내미니 옆에 있던 젊은 남자가 "한국에서 오셨네요"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서 중국에 사느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였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해서 서안으로 가서 내일 서울로 갈 것이라고 하였더니 자기들은 안양(安陽, 은나라 유적지)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화산 입장표를 보니 화산에 대한 수식어가 산외산(山外山)이란 글귀가 보였다. 화산은 정말 보통산과는 다른 모습을 한 산 이외의 산이었다. 오래도록 기억되고 또 다시 찾고 싶은 산이었다.
많은 중국인들이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어서 북봉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가는 사람들은 북봉에 걸어서 올라서 북봉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일출을 본다고 한다. 다음에 화산을 가면 카페지기도 걸어서 북봉에 올라 화산을 일출을 보고 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안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