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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20/170510]이런 ‘여행의 맛’을 맛보신 적 있나요?
이 광활한 우주에
나 혼자가 아닌
가족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홀로 어둠 속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끔찍하지 않는가
홀로 산해진미를 먹는다고 한들
무슨 맛이 있으랴
홀로 멋진 풍경을 즐긴다 한들
그 즐거움이 단 한 시간이라도 가랴
가족과 함께라면 어둠 속도 두렵지 않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보다 더 귀한 것이 있는가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야말로 정말 즐겁지 않겠는가
고로
신의 창조물 중에 가장 멋진 작품은
바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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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경험하는 가정 멋진 일은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조지 맥도널드
구순 아버지의 금일봉 & 호주 동생부부 찾아간 큰아들
# 지난달 큰아들네(갓 돌 지난 손자 포함)가 휴가를 내 호주 선샤인코스트에 사는 동생네(유학생 부부)를 며칠간 만나고 돌아왔다. 아마도 1년 반 전에 유학을 떠난 동생부부도 보고 싶고, 특히 아들(조카)도 보여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다섯 명이 재밌게 노는 가족사진을 보내올 때는 그 ‘기쁨’을 잘 몰랐다. 그런데, 며칠 후 사진을 다시 보는데 순간 울컥했다. 동생네를 찾아 먼 여행을 다녀온 형이나, 형이라고 활짝 반기는 동생. 이제 겨우 걸음마 떼고 비척비척 걷는 조카와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진 사진들은 보면 볼수록 흐뭇하고 신통하기까지 했다. ‘왜 아니겠느냐? 너희는 서로 한 명 밖에 없는 형과 동생이 아니냐? 앞으로도 이번처럼 언제나 우애있게 살거라’ 간절한 바람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흔한 살 아버지가 ‘제주도 2박3일 5남매 가족여행’ 소식에 선뜻 일필휘지로 간단한 바람의 글과 함께 ‘금일봉’을 주신 까닭은. 사실 이것은 무척 황감한 일이다. 첫날 펜션에서 큰동생이 봉투를 개봉하니 10만원권 수표가 5장 들어있었다. 즉석회의에서 “아버지의 뜻을 새겨 소중하게 잘 쓰자”고 결론을 짓고, 인증샷을 찍어 아버지께 카톡으로 보내드린 후 형님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덕분에 잘 놀다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라. 그래라”
역지사지(易地思之), 부모님 입장으로 보면 이보다 더 흐뭇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나부터도 두 아들네가 외국에서 흥겹게 노는 사진을 보고 흐뭇해 했거늘. 아아-. 당신이 낳아 기르고 가르쳐 분가(分家)까지 시킨 7남매. 5남매가 아니고 당신의 총생 7남매가 모두 모여 함께 논다면 ‘기쁨 두배’ 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불효자(不孝子)이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황금연휴 2박3일 제주닷!…장생의 숲길 11km 최고!!
# 아무튼, 우리의 여행은 5월초 황금연휴를 맞아 1월부터 작전을 짰다. 가이드인 넷째 며느리 컨셉은 트레킹. 3일 새벽 4시 판교에서 2쌍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 김포공항으로 차를 몰았고, 염창동에서는 형님부부가, 논산에서는 막내동생 부부가 청주공항으로 직행. 큰동생은 그전날 여수항에서 5시간 동안 배를 타고 먼저 도착, 찜찔방에서 눈을 붙였다던가. 8시 50분 제주공항, 다섯 가족 합류.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다(올해초 가족행사가 유난히 많았다. 1월 중순 구순 아버지를 모시고 일본 오사카와 교토-나라를 3박4일 7명이 다녀왔다. 또 큰동생-둘째동생 딸이 1, 2월 연이어 결혼을 해 뒷풀이를 돌아가며 수원과 판교집에서 했다). 자꾸 만나야 수다떨 일이 더 많다는 것은 진리인 모양이다. 스타렉스 11인승을 타고(3일간 운전을 도맡은 형과 큰매제에게 고마워하자), 용두암 근처 ‘김희선 제주몸국’ 맛집에서 ‘아점(아침 겸한 점심)’을 하기로 했다. 몸국은 갈조류인 모자반을 불려서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넣어 만든 제주 특산물. 모자반은 톳과 비슷하다. 6000원이면 아주 싼 편. 칼칼하고 시원하니 모주꾼들 해장하기에 딱 맞춤이다. 인근 구름다리에서 첫 인증샷을 찍은 후 절물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2017 한국관광 100선’에 뽑혔다던가. 목표는 휴양림을 한 바퀴 뺑 돌아가는 ‘장생의 숲길’이다. 30∼50년생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울창한 숲길, 오전 11시, 마침 피톤치드(phytoncide․녹음이 짙은 나무숲속에서 뿜어내는 방향성 물질. 피톤치드를 호흡하면 피부와 마음이 맑아져 안정을 가져오며 건강에 매우 좋아 삼림욕하는 데 최고)가 왕성하게 내뿜는 시간이다. 11.1.km, 최소 3시간 30분 걸린다한다. 막바지 길에 ‘절물오름’도 있다. 숲길은 햇빛이 거의 들지 않고 길 따라 향기도 제각각 달라 저절로 우리를 기분좋게 만든다. “힐링코스로 딱이다. 이런 곳이 있었냐” 이구동성(異口同聲) 감탄이다. 가뭄에 콩나듯 인적까지 드물어 우리 가족이 숲 전체를 전세낸 듯하여 더욱 좋았다. 맨발로 걸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흙길. 군데군데 야자매트(인도네시아 삼나무 끈?)도 깔리고 길의 높낮이가 적어 남녀노소 누구나 반길 길이다. 장생의 길을 걸으면 그러지 않아도 ‘100세 인생’이라는데, 불로장생(不老長生)이라도 한다는 것일까. 길은 부엽토와 ‘송이’(화산암이 잘게 깨진 것)가 깔려 천연쿠션이 따로 없는 듯, 피로감이 덜한다. 간혹 연리목(緣理木)이 나타나 ‘부부 인증샷’ 찍기도 제격. 사약(賜藥)의 원료로 쓰인다는 ‘천남성’이 길 옆에 무성하다. 죽순같이 생겼는데 올라오는 꽃은 기분 나쁘게 코부라와 영락없이 닮았다. 네이버 ‘모여모’ 앱에 사진을 찍어 보내 알게 된 지식이다. 3시간이 넘어가자 조금은 지치고 지겨운데, 오름까지 나타났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가? 모두 그 자리에서 멈추라고 하더니, 앞사람 어깨를 토닥토닥 주물러주자고 한다. 정말 타이밍 잘 맞춘 good idea. 누가 마다하랴. 마사지를 몇 분 한 후 “뒤로 돌아” 다시! 인증샷을 몇 번 보았지만, 자꾸 보아도 흐뭇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언제, 어디에서 ‘연출’할 것인가. 이것 하나만 해도 ‘제주 가족여행’은 조짐이 사뭇 좋다.
‘토종닭 샤브샤브’ 맛집 순례는 여행의 또다른 별미
# 모두 아시겠지만, 여행(旅行)의 또다른 맛은 ‘맛집’을 찾아 ‘기똥찬 음식’을 먹는 것이다. ‘교래리 성미가든’을 아시는가? 점심이 늦어 ‘점저(점심과 저녁의 준말)’로 해야 할 판, 오후 3시 반이다. 토종닭백숙 1마리 6만원. 먹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비싸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번호표를 받고 20분을 기다리니, 배고파서 더욱 맛있는 걸까? ‘닭 샤브샤브’ 들어보기는 하셨는가? 연한 닭가슴살만 골라 뜨거운 물에 야채와 함께 먹는 맛이라니? 3마리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니, 속담은 여기에서 생겼을까? 거기에 ‘22도 한라산 소주’ 노래를 부르던 광양의 하서방은 신바람이 났다. “역시 소주는 22도쯤 되어야 해” 여성들은 막걸리잔을 부딪치며 건배(乾杯)다. 건배 구호는 셋째형이 “이런 모임?”을 선창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흔치 않아!!!”를 외치는 것. 뜽금없는 큰소리에 주변손님들이 웬일인가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행은 종종 이런 파격도 있어야 한다. 녹두죽은 덤. 정말 배 터지게 먹으니, 이제 만사가 귀찮다. 가이드는 졸지에 일정을 바꾼다. 숙소(서귀포 꿈에그린 펜션)에 체크인한 후 짐을 풀고 저녁도 먹지 말고 쉬자는 거다. 오케이. 올레시장 모듬회 쇼핑은 내일하는 걸로.
★ 5개 펜션 “다음모임도 여기서”…‘단체잠옷’ 5벌 “대박”
# 이제껏 이런저런 펜션을 다녀봤어도, 이런 펜션은 처음이다. 거실이 거짓말이 아니라 운동장만 하다. 침대가 여성방 5개, 남성방 5개. 와우- 오매 좋은 것? 이런 펜션이 2일에 54만원이라니? 이럴 수가? 샤워실 두 개, 세탁기도 있고 주방 식기들까지 모두 ‘신삥(세련된 새 것)’. 텔레비전도 큼직하고, 밥상도 10명이 옹기종기 먹기 딱이다. 어안이 벙벙하다. 이거, 완죤히 죽인다. 2년 후에 또 이곳으로 오자!(이 여행은 넷째의 회갑기념을 겸하기도 했다. 그때는 큰여동생 회갑. 모임은 최가네 형제 회갑만을 기준으로 하는 걸로. 앞으로 여동생 3명이 2년 터울이니 6년이 지날 것이고, 7년 후에는 셋째형이 칠순이 되므로, 또 2년마다 모임이닷!). 그날의 건배 구호는 “우리 건강하자”(왜냐하면 누구 하나 탈락없이 이런 모임은 계속돼야 하므로)이다. 여성동무들은 간단한 야식을 끝으로 10시 일제히 취침. 남성동무들은 청년은 아니지만, 이대로 자는 것은 제주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동양화 공부’를 두어 시간 했다던가. 막내 윤서방은 타짜수준인 듯. 손놀림이 장난이 아니다. 둘째 오서방은 현장을 잡으려는 듯 눈에 쌍심질을 켜며 화통 삶아먹은 소리를 질러댄다. 고스톱은 역시 할 일이 아니다. 돈 딴 사람은 좋겠지만, 돈 잃은 사람은 돈 잃어 기분도 나쁜데 머리 나쁘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말이다. 아이구 허리야. 할 일은 아니나, 친목(親睦)놀이로는 이만한 것은 없다. z-z-z. 다음날 옆에서 코를 곯아대 잠을 설쳤다는 사람도 있지만, 정색할 것까지 있으랴. 여기에서 빠트릴 수 없는 한 가지는 여성들의 ‘잠옷 통일’. 큰동생의 센스로 단체잠옷까지 생길 줄이야. 보기에 참 좋아라. 인증샷을 찍고 고향의 아버지께 카톡으로 보내고 형님은 전화를 하고. 참으로 이런 화기애애(和氣靄靄)한 가족모임이 어디 흔하랴.
올레길 10코스 “환상”…해삼․전복 샛거리 그리고 우럭튀김
# 이튿날 새벽 6시 모두 기상. 누룽지로 가볍게 아침을 때운 후 ‘올레길 10코스’ 트레킹에 나서다. 화순항에서부터 모슬포항까지 장장 17.3km, 5시간은 족히 걸린단다. 화순금모래해수욕장을 지나 마라도여객선이 떠나는 송악부두를 지나 송악산 정상에 오르고 모슬포항까지 걸어야 한다. 산방산을 휘감고 도는 아름다운 길이다. 초입 사계해수욕장에서 ‘샛거리’를 먹기로 한다. 해녀가 직접 잡아 올린 해삼과 전복 망태를 발견하자마자 즐거운 비명이 터졌다. 오서방은 마냥 콧노래를 부른다. 3월 새학기 교장으로 첫 부임한 윤서방, 호기롭게 샛거리와 그날의 점심은 ‘도리’를 하겠단다. 듣기론 수표 5장을 가져왔다던가. 싱싱한 홍게와 전복에 17.5도 쏘주는 차라리 싱거운 양념이다. 앉은 자리에서 3병을 족치는데 가이드는 길을 재촉한다. 길은 끝없고 점점 팍팍해진다. 소생과 형수는 중도탈락. 다행히 하서방이 그날의 운전을 도맡는다며 나섰다. 송악산 정상 오르는 길은 뒤를 자꾸 돌아봐야 한다. 해변가 끊임없이 부서지는 하얀 포말(泡沫)과 불어오는 해풍(海風)이 이루어내는 풍경이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다운 코스라는 말은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형제섬 한 가운데로 막 떨어지는 노을을 보았다면 사진이 증명하듯 정말 환상적이었으리라. 6쪽마늘밭이 즐비하다. 일하는 아줌마들은 마늘쫑을 일일이 뽑지 못하고 그냥 윗대가리를 잘라버린다. 쫑을 뽑거나 잘라줘야 마늘통이 굵어지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도 모슬포항에 이르니, 1시가 넘었다. 샛거리를 했기에 망정이지, 어제처럼 ‘점저’로 몹시 시장할 뻔했다. ‘제주인의 밥상’이라는 맛집을 찾았다. 1인 정식 1만 6000원. 우럭튀김이 정말 별미(別味), 버릴 게 하나도 없다. 막내동생은 간장게장에 정신없이 밥을 비벼먹고, 이 정도면 점(點) 하나 찍은 점심으로는 준수하다. 이것도 초임 ‘교장턱’이다. 뭐, 어떤가? 돈 벌어 이럴 때 형제자매한테 쓰지 누구에게 쓰겠나? 제주를 찾는 지인들에게 ‘제주 올레길’ 하면 10번 코스를 강추한다. 송악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파도(짜장면도 배달된다하여 화제가 된 섬이다)와 마라도가 지척이다.
천연숲 비자림 압권…올레시장 장보기…로얄 살루트 38년산
# 오후에 일정 하나를 더 소화하기로 했다. 구좌읍의 천년숲 ‘비자림(榧子林)’이 그곳이다. 비자나무를 아시는가? 처음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주목(朱木)숲인 줄 알았다. 500∼800살 되는 회갈색 거목(巨木) 비자나무 2800여그루(나무마다 번호레벨을 해놓았다)가 이루는 천연숲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1년에 10만명이 찾는다던가. 3km쯤 되는 숲길엔 온통 ‘송이’가 깔려 있다. 50여분 소요. 엄청난 연리목 앞에서 인증샷. 제주의 교통체증도 장난이 아니다. 모슬포항에서 1시간 30여분. 차내에서 웃음꽃은 연속 터졌으니, 공간이 좁다보니 말못할 애로사항도 있다. 막내동생은 1시간여를 ‘쩍벌녀’ 산부인과 자세를 취하다 보니 다리가 뻣뻣해졌던가. 윤서방의 항의성 발언이 좌중을 계속 웃게 한다. 막내야, 고생했다. 형부가 어려워 그 고통을 말없이 감수하다니? 가는 길도 걱정이다. ‘나홀로 운전’ 하서방은 어찌 졸리지 않으랴. 이제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모듬회를 뜰 차례. 갈수록 태산, 혼잡한 시장에서 체증으로 1시간여를 고생고생. 모듬회 3접시(1접시 3만원)와 멍게, 얼음, 천리향 등을 사서 “어서 가자, 우리집으로”. 간신히 숙소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즉석에서 파티가 벌어졌다. ‘로얄 샬루트 38년산’ 듣도 보도 못한 고급양주다. 면세점에선 품절이라는데, 면세가격으로도 50만원 정도란다. 카탈로그엔 32년산이 38만 6천원이다. 넷째의 믿음직한 큰아들이 제 아버지 회갑기념이라 하여 ‘큰돈’을 써 큰아버지와 고모부들을 즐겁게 했다. 한 잔, 한 잔, 피같은 술이다. 시중 술집에서는 150만∼200만원 한다니, 참, 대단하다. 연초엔 둘째동생의 사위 황서방이 ‘발렌타인 30년산’을 선사하여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줬는데. 이제 ‘조니 워커 블루’만 마시면 고급양주 ‘그랜드 슬램’을 하게 된다. 어디 누가 ‘눈먼 돈’ 생겨 블루 맛 좀 보게 해줄 수 없을까? 모듬회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멍게의 향긋한 바다내음이 입안에 가득하다. 매운탕에 신라면을 넣어 야참을 대신한다. 그 맛이라니? 그것도 별미. 가족오락으로 최고인 ‘월남뽕’(이 노름을 즐기다 월남이 망했다던가)을 동생들과 빙그레 둘러앉아 한다. 판돈으로 쌓인 1천원이 마치 낙엽같다. 한꺼번에 ‘아도’로 털리기도 하고, 이 ‘낑겨먹기(아버지의 표현)’는 할수록 재미있다. 화투 1자와 12자를 펼쳐놓으니, 판돈이 모두 내 것같지만, 하필이면 1자나 12자가 떨어질 게 무어남? 아이구, 운도 지독히도 없지. 행운은 언제나 ‘허허실실’ 윤서방 몫이다. 희한한 일이다. 그것 참, 제주여행은 날씨까지 도와줬다. 비자림 걷기를 마치고 시장을 가는데, 비가 오는 듯 안오는 듯, 초저녁부터 내일 아침까지만 내린다는 게 아닌가. 띵 호아!
‘인간극장’ 가족의 숲…식물에게서 배운다
# 연 이틀 무리했다. 무려 35km를 더 걸었으니. 우리 형제, 대단하다. 작은 구간, 형수와 내가 약간의 탈락은 했지만, 100% 완보(完步)나 마찬가지. 아침 9시 출발. 조금은 느긋한 맛도 즐겨야 할 일이다. 샐러드로 소식(小食)을 하자. 좋다, 좋아. ‘환상숲’을 들어보시기나 했나요? <곶자왈, 아버지의 숲을 걷다>는 작년 6월 방영된 <인간극장> 5부작의 제목이다. 1996년 47세 은행원이 뇌경색으로 떨어져 두 번의 수술에도 오른쪽 몸이 마비됐다. 고향 제주에다 뜬금없이 ‘숲’ 1만여평을 산 후 4년간 700m의 산책길을 혼자서 만들었다. ‘아버지의 숲’에서 ‘가족의 숲’으로 되살아났다. 1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곶자왈을 아시는가? ‘곶’은 숲을, ‘자왈’은 자갈을 뜻한다. 화산이 분출할 때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덩어리로 쪼개져 요철(凹凸)지형이 만들어지고 나무나 덩굴식물들이 섞여서 자란 원시림의 숲을 말한다. 제주도의 ‘허파꽈리’로 큰 ‘곶자왈’이 4곳 있다고 한다. 숲해설가는 ‘인간승리’ 주인공의 아내이다. 따님이 아버지를 돕자고 휴직을 냈다가 결국 주저앉았다던가. 그 소식을 들은 어느 서울 청년이 돌연 프로포즈를 하여 숲속에서 웨딩마치를 올리고, 아예 정착했다고 한다. 완벽한 휴먼스토리다. 가족들이 1시간마다 교대로 숲해설을 한다. 야 이거, 정말 멋지다. 아내 해설가에게 자랑을 했다. “우리 가족도 작년 11월 ‘인간극장’에 나왔어요” “그래요? 우리는 ‘인간극장 가족’이네요”. 입장료 5천원이 비싸다며 투덜거렸지만, 1시간을 걸어보라. 결코 비싸지 않다. 교훈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아 받아 모두 적어놓고 싶다. 동식물에게 결국 인간은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진리. 갈등(葛藤)의 어원을 아시는가? 칡은 오른쪽으로 감아돌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아도는 게 특징이다. 나무줄기를 타고 칡과 등나무가 엉켜 올라가다보면 서로 죽고, 죽이게 되는 게 숙명(宿命). 이들의 갈등관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사랑의 연리목들을 보아라. 자연(自然)은 스스로(自) 그러한(然) 모습을 간직한 채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콩짜개 덩굴식물도 상생(相生)의 상징이 아니던가. 자연이 주는 감동과 교훈은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따뜻하게 해준다. 우리를 보고 세상의 모든 생명과 함께 겸손한 삶을 살라고 ‘무언(無言)의 침묵(沈默)’으로 웅변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어쩌면 영원히 말이다.
노꼬메오름 정상 “장관”…등산도 잊은 고사리 채취…흑돼지 향연
# 이제 점심 먹기 전에 제주의 또다른 명물 ‘오름’을 오를 판이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거리는 짧지만 경치는 가장 좋은 곳이 애월읍의 ‘노꼬메오름’(해발 830여m)이다. 2.3km, 계속 오르막길이다. 나만 힘든가? 1시간여를 오르니, 서부 제주의 전경이 엄청 시원한 봄바람과 함께 우리를 반기는데, 올라오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그저 감탄 일성(一聲)이다. 멋있다. 이런 오름이 제주에는 360여개가 있다던가. 그중에 좋은 기억으로 강추하는 오름이 따래비오름, 사라오름(한라산 진달래휴게소 근처로 가장 높다), 거문오름, 다랑쉬오름 등이다. 큰동생 부부와 윤서방은 오름 입구에서 여기저기에서 솟아나는 고사리 채취에 반해 아예 등산을 포기, 한 보따리를 캤다. 아쉽지만, 이제 점심 맛집을 끝으로 여행을 접어야할 판이다. 회갑을 맞는 넷째가 쏘기로 한 흑돼지 맛집은 불행히도 오후 3시부터 영업을 한다기에 네이버에서 인근 맛집을 검색. ‘칠돈가’를 찾았다. 흑돼지 근고기 600g에 5만4000원. 8인분을 시켰다. 중국인 청년의 서빙이 낫낫하다. 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한 둘째동생은 중국어 학습에 열중하더니, ‘기회는 찬스’라는 듯 성과 이름, 나이 등을 중국어로 물어본다. 참 맛있다. 탁월한 선택이다.
이번 여행은 제주의 정수(精髓)인 기똥찬 관광지(장생의 숲길, 비자림, 곶자왈 환상숲, 노꼬메오름)와 맛집(성미가든, 칠돈가, 제주인의밥상)을 골고루 섭렵하는 행운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숙소(꿈에그린펜션)까지 별(*) 다섯 개라니. 3일 동안 44km를 넘게 걸었다던가(3일 16.5km + 4일 18.3km + 5일 9.9km). ‘흔치 않은 일’을 치른 듯 뭔가 뿌듯하고 보람차 ‘부자된 느낌’, 우리 ‘장년(壯年)’의 멋진 추억(追憶)을 쌓은 듯했다. 오죽이나 좋은 일인가?
사돈어른에 어버이날 선물…형님부부 등 모두 ‘힐링여행’ 대만족
#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모두 다 잘 가세요. 제주항에 큰 동생네를 내려준 후 공항으로 향했다. 면세점에서 마지막 점(點)을 찍었다. 논산의 사돈어르신네 어버이날을 맞아 선물을 준비했다. 홍삼갱 1상자를 구입, 형님이 막내동생에게 전달식을 가졌다. 수 년 동안 숱한 신세를 졌다. 철철이 신선한 딸기와 딸기잽을 주시는 통에 입이 호강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도토리묵을 직접 쑤어 고향으로 보내 나눠 먹기가 무릇 기하였던가. 그 고마움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돈어르신들이 아닐 수 없다. 고맙습니다. 선물은 약소하지만, 홍삼갱 드시고 만수무강하세요. 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행은 끝났다. 형은 지난해 추석 무렵 졸지에 GS편의점을 시작했다. 형수는 외손녀 돌봄에 정신없이 바쁘셨다. 두 분 모처럼 힐링이 되셨으면 좋겠다. 그러시라고 무리해서라도 이 여행을 강추했다. 오죽하면 조카들도 찬성하며 적극 권했겠는가.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 시시때때로 힐링을 하지 않으면 일상을 사는데 팍팍한 게 현대인의 삶이다. 이런 휴식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로이 재충전하는데 최고일 듯. 우리가 생각해도 참 잘했고, 모두 용했다(낙오없는 걷기는 모두 건강하다는 증표가 아니겠는가). 서로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자. 격려와 덕담을 하자. ‘최강(崔-姜·어머니가 진주 강씨이다) 패밀리’의 행복을 위하여!!!
얘기꽃․웃음꽃 바다…오래된 방언 작렬…‘냉천양반 1, 2, 3’
# 마지막으로 ‘낙수거리’ 여담(餘談)을 부친다. 여행 후기가 너무 길다. 여기서 농지꺼리 한 토막을 남긴다. ‘국수’와 ‘국시’의 차이점을 아시는가? 모두 무슨 말인가, 갸우뚱한다. 자, 들어보자.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까리’로 만든다. 모두 웃어 죽는다. 그럼 밀가루와 밀까리의 차이점은? 밀가루는 봉지에 담고, 밀까리는 봉다리에 담는다. 그럼 봉지와 봉다리의 차이점은? 봉지는 종이로 만들고, 봉다리는 종우때기로 만든다. 또 있다. 국수는 마트에서 팔고, 국시는 점빵에서 판다. 점빵과 마트의 차이점은? 점빵은 대부분 깡촌에 있고, 마트는 대처에 있다. 점빵의 주인은 국민핵교를 다녔고, 마트의 사장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뭐, 그렇다는 얘기이다.
우리는 사흘 동안 얼마나 무수한 이야기꽃, 웃음꽃들을 피워댔던가? 바로바로 고향(故鄕)과 우리의 탯말(사투리, 방언) 이야기이다. 차속에서든 집안에서든 그치지 않는 화제들. 일단 ‘동네 한바퀴’를 돈다. 어느 어르신이 돌아가셨고, 어떻게 아프고, 우리 부모는 동네에셔 최고령이 된 지 오래이고, 누구 어머니 택호(宅號)는 무엇이고를 마치 ‘오래된 내기’처럼 알아맞추기도 한다. 기억해 본 적도 없지만, 이럴 때에는 왜 그렇게 생각이 잘 나는지 모를 일이다. 할머니 택호(목알떡)를 비롯하여 이모할머니, 돌아가신 수많은 어른들, 살아있는 누구네 엄마 등 줄줄줄 잊었던 택호 30여개가 쏟아진다. 이것도 솔차니(상당히) ‘재밌는 게임’이다. 형제들의 공통된 기억, 동질감(同質感)을 확인하는 데는 최고다. 여동생들이 모두 ‘냉천댁’이므로 사위들은 졸지에 ‘냉천양반 1, 2, 3’가 됐다. 나는 처가가 삼계면 후동(後洞)이어서 ‘후동양반’이 되고, 형은 처가가 남원 대산면이어서 ‘대산양반’이 되었다. 서로 택호를 불러보면서 낯설어 또 웃음바다가 된다. 행복은 의외로 심플하다. 웃는데 무슨 돈이 드는가. 건강의 지름길인 걸. ‘백년손님’ 사위들과 며느님 두 분은 이 화제에는 뻘쭘하겠지만 아랑곳없다. 하지만 탯말에 이르면, 고향이 한 분만 빼고 모두 전북(全北)인지라 끼어들 여지는 차고 넘친다. ‘낄끼빠빠’를 아시는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알아야 한다’는 속어이다. 대처생활하면서 한번도 써먹어 보지 못했던, 잊어버린 사투리는 왜 그렇게 툭툭 튀어나오는지, 한 단어, 한 단어, 서로 앞다퉈 언급할 때마다 폭소가 터진다. “맞아, 맞아. 그런 말이 있었어” “어떻게 너는 그런 말을 여태것 안잊어 먹었냐?” “잊어먹었는디, 급하면 불쑥게 그런 말이 튀어나오덩만. 희한하지?” 어찌나 많은지 예를 들어볼 것도 없다. 사투리 경연대회가 펼쳐진다. 아그똥하다. 이마를 열자나 으등거린다. 썩을넘, 육시럴 넘, 호랭이가 달칵 물어갈 놈, 자식이 아니라 웬수(왜 그렇게 그때는 당신 자식들한테 욕을 해댔었는지?), 뽀짝(바짝), 쇳대(열쇠), 영쌩(안맞음), 섬닷하다(상차림이 어설프다). 맹숭맹숭, 뿌렁구(뿌리), 거솔(거짓말), 빠물레기(홍시가 아닌 감), 부석작(부엌), 간짓대, 뽈깡, 티받이(쓰레받이), 시암(우물), 실떡벌떡, 다무락(담), 살강(찬장), 시앙(생강), 쪼싸대다, 물짜다, 소캐(솜), 깨골창(개울), 후딱(금방), 해우(김)……. 사흘간 쏟아진 사투리들의 행진을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으랴. 단어 한 마디에 모두 ‘원없이’ 웃을 수 있어 행복했다. 군(郡)별로 잘 모르는 단어는 설명이 이어진다.
손자손녀 자랑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소통의 ‘6․3’ 학수고대
이어지는 화제는 손자손녀 자랑이다, 이제 막 딸들 결혼을 시킨 여동생들은 오빠들의 손자손녀 동영상에 눈이 쫑긋. “천사가 따로 없다”며 화들짝 반긴다. 손녀 돌봄에 살까지 빠지며 너무 힘이 부친다는 형수는 그래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같기에 ‘새로운 힘’이 난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울고 웃는 나날의 연속에 또 세월은 간다. 이제 질세라, 나의 아내 손자 자랑도 장난이 아니다. 앞으로 자랑하려면 돈내고 하라는 지청구를 여기저기에서 받는다. 그것도 즐겁다. 우리의 사랑하는 총생들이 아닌가? 어떤 일이 있어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랄 일이다. 얘들이 사는 세상은 진정으로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운 선진국이어야 할 터인데. 우리가 그런 나라를 만들어 물려줘야 할텐데. 이번 대선이 화제에 잠시 올라 흥분도 한다. 모두 다 잘 될 것이라는 결론이다. 며칠 후 진짜로 그렇게 됐다. 정말 잘 된 일이다. ‘소통(疏通)’이 ‘만사형통(萬事亨通)’의 지름길이다. 한 나라의 정치든, 한 집안의 가족이든. 우리는 ‘소통의 여행’을 다녀왔다. 6월초 아버지 생신을 계기로 경기도 여주, 어느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모이기로 한 30여명의 ‘대식구’ 단합대회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며, 이만 후기(後記)를 줄인다. 안녕! 우리 형제들이여! 꿈 속에서라도 ‘사랑한다’ 얼마든지 말하리라.
‘제주 왕복 비행기티켓’ 횡재…“범사(凡事)에 감사(感謝)하라”
# 추기 : 마지막 날 점심에 흑돼지를 먹은 ‘칠돈가’는 마침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음식값을 현금 15만원이상 지불하면 전국 어디서나 '제주도 왕복 대한항공 티켓'을 준다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나, 만상에나. 이런 행운이. 추첨도 없이 즉석에서 왕복 비행기표를 주다니? 이건 숫제 횡재(橫財․windfall)가 아닌가. 덤까지 있다. 2일간 렌트카 대여비 무료. 오, 마이 갓! 현재 제주도 여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분들은 ‘칠돈가’로 달려가시라. 올 가을, 거의 공짜로 제주도 여행을 우리 부부가 한번 더 할 수 있다니, 유효기간도 2018년말까지다. 천천히 계획을 세우고 즐겨도 되리라. 주역 첫머리에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고 했던가. 행운은 우리의 것. ‘범사(凡事)에 감사(感謝)하라’는 말은 역시 빈말이 아닌 듯. 흐흐.
율곡 이이(1536-1584) 선생도 일찍이 말씀하셨다. "온 가족이 화목하기를 힘써 마음이 화평하면 집안에 좋은 일들이 반드시 모인다(一家之人 務相雍睦 其心和平 卽家內吉善之事必集)"고.
김광규의 시(詩) ‘살펴보면 나는’
시인 김광규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시는 ‘내’가 어찌 ‘나만의 나’이겠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살펴보면 나는’이라는 시를 감상해 보자.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
그렇다면 나는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남편이고
오빠고
조카고
아저씨고
............................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시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연속적으로 자문하는 걸까?
오직 ‘관계 속의 나’를 강조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버지로, 아들로, 동생으로, 형으로, 오빠로, 남편으로, 조카로,
아저씨로….
시인은 소풍 온 이 세상,
‘관계 속의 나’로서 ‘열심히 잘 살자’는 말을 하고 싶은 듯하다.